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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1997년 12월 30일 화요일

영화 『러브&팝』: 영상작가로서의 안노 히데아키

출전: 『퀵 재팬』 vol.17 (1997년 12월호) pp. 72-88.
  • 映画『ラブ&ポップ』――映像作家としての庵野秀明
  • ◆薩川昭夫インタビュー
  • ◆大月俊倫インタビュー
  • ◆庵野秀明インタビュー
 자료를 공유해 주신 잠자리 선생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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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ラブポップ
­ ­97년 11월 12일. 고탄다五反田에 있는 이마지카イマジカ의 시사회실에서, 나는 안노 히데아키 감독 작품 『러브&팝』(’98년 1월 10일 개봉 예정)을 보았다. 완성된 영화는 트집 잡을 데 없는 「팝」이다. 소녀도, 영상도, 스토리도, 각각의 요소가 그 자체로 아름답게 완결되어, 주마등처럼 흘러왔다가 사라져간다. 아름다운 것이 그저 아름다운 것으로 남아 있는 것. 확실히 이것이 팝의 이상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에반게리온』이라는 지옥순회를 마친 감독의, 현 시점에서의 하나의 답변임은 분명하다.
­ ­라스트에서 영화는 그야말로 불의의 습격처럼 「안노 히데아키」가 되었다. 볼 만한 마무리에 박수가 일었다. 나도 박수를 치면서, 그런데 나는 이제 이것의 제작자들을 인터뷰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골머리를 감싸안았다. 그 자체로 완결되어버린 작품에 대하여, 과연 유효한 할 말이 있을까. 가벼운 막막함을 느끼면서, 나는 인터뷰에 임했다. (타케쿠마 켄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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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카와薩川 아키오昭夫  듣고 쓴 이
타케쿠마 켄타로
구성: 이토 고
14일 정오를 조금 지났을 무렵. 나는 긴자의 레스토랑에서 사츠카와 아키오씨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러브&팝』의 각본을 집필한 사츠카와씨는 『에바』의 메인 각본가로서도 유명하다. 또한 근년 짓소지 아키오実相寺 昭雄 감독의 좋은 파트너로서, 곧 돌아올 봄에는 짓소지 감독 작품 『D언덕의 살인사건』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 ­나는 사츠카와씨와는 초면이지만, 본지에서 『에바』 관련 기사를 집필하던 당시부터 꼭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다. 만나기 전에는 여윈 예술가 타입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모습을 드러낸 사츠카와씨는 훤칠한 대장부라서 놀랐다. 만, 막상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니, 어느새 이 사람이 터무니없는 예술청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짓소지 작품으로 각본가가 되다

타케쿠마­ ­사츠카와씨는 쭉 영화업계 일을 해오셨던 건가요.
사츠카와­ ­각본가가 되기 전에는 프리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했던 아르바이트가 아니메 필름 편집일이었던 것입니다.
타케쿠마­ ­처음부터 목표는 각본이셨다?
사츠카와­ ­그렇다기보다는, 원래는 감독이 되고 싶었지요. 감독이 되기 위한 경력으로 조감독이냐, 각본가냐 하는 선택지가 있어서, 저는 각본을 골랐던 겁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내 봤는데, 전부 1차에서 떨어지거든요. 이건 심사위원들이 나를 못 알아보는 거다 싶어서, 알아봐줄 것 같은 사람이다 싶은 짓소지 아키오씨에게 작품을 보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짓소지씨의 인정을 받으면서 각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 ­그래서, 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내 쪽으로 바람이 부는구나 하는 생각은 드네요. 80년대에는 뭘 해도 안 되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다, 어쩌면 이 루트로 각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지는 최대한 영상일은 멀리 하려 했습니다. 사회를 영상현장밖에 모르면 영 좋지 않잖아요. 폐색해서 자기모방에 빠져버릴 테니까. 그래서 공사현장 십장도 해 보고, 웨이터도 해 보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뭔가 알바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 하고 있습니다 (웃음).
타케쿠마­ ­영화를 보니까, 짓소지 감독하고 정말 궁합이 잘 맞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츠카와­ ­그렇지도 않아요. 맞춰 주는 거죠, 제가 감독한테. 안노씨한테도 마찬가지로 맞춰 주고 있고. 자질이 전혀 다르니까. 다만 안노씨하고는 아니메 편집일 하던 시절부터 구면이었기 때문에, (『에반게리온』에서도) 비교적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죠. 이게 만약에 각본가와 연출가로서 초면인 사이였다, 아마 싸움 났을 거에요.

안노 히데아키와의 만남

타케쿠마­ ­안노씨하고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편집으로 참가하셨을 때가 초면이었나요?
사츠카와­ ­그렇다고 할 수가 있죠. 『나디아』 편집은 그룹택의 후루카와古川 (마사시雅士)씨, 무시프로의 오가타尾形 (하루토시治敏)씨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만, 두 분 모두 스케줄 사정 때문에 할 수 없게 되어, 다른 편집자 양반이 하게 되었는데, 안노씨하고 그 사람하고 와장창 해버렸던 것이죠. 그래서 『나디아』의 10화 이후는 제가 일하던 편집실에서 일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랄맞은 감독인 거 같으니 사츠카와 너가 하라고 그래서. 저는 연출가 지망생이었으니까, 감독하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일할 기회가 생겨서 좋겠다 싶었고. 근데 저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알고 있었지만, 가이낙스는 이름도 몰랐거든요. 그런 방면으로는 파질 않아서요.
타케쿠마­ ­실제로 일을 해 보니 어떻던가요?
사츠카와­ ­같이 편집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이 사람은 굉장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필름 코마의 감각을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2코마는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1코마를 아는 사람은 좀처럼 없죠. 안노씨도 저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제 쪽에서 제안도 하게 되고.
­ ­제가 아니메는 많이 못 봤지만, 실사 편집은 연구를 했거든요. 그래서 같이 편집하다 보니까, 역시 같은 세대다 보니 보는 영화도 공통점이 많고. 어떤 대사가 원래 어디서 가져온 건지 지적하면 안노씨가 처녀처럼 뺨을 붉히고 (웃음). 「그래서 안 되나요?」 그러고. 저는 「안 될 거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그러니까 그런 형태에서는 비교적 궁합이 잘 맞았다, 그런 느낌이네요.
타케쿠마­ ­그러고 나서 『에바』 만들기 시작할 무렵에, 사츠카와씨는 짓소지 감독의 『지붕 밑의 산보자』로 각본가 데뷔를 하셨는데, 그것을 보고 안노씨가?
사츠카와­ ­아뇨, 그 때 『지붕 밑…』 그거 안노씨 못 봤거든요.
타케쿠마­ ­그럼, 느닷없이 맡긴다고 찾아왔던 건가요.
사츠카와­ ­그런 셈이죠. 그러니까 제가 쓴 각본을 읽어보고 온 건 아니었던 거 같고요. 처음 협의하는 자리에서 저는 로봇물 한 번도 본 적 없고, 못 쓴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드라마를 써 주시면 된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OK.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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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감각을 아니메로

타케쿠마­ ­그래서 처음에 하셨던 게?
사츠카와­ ­3화 『울리지 않는, 전화』네요. 4화(『비, 도망쳐버린 뒤』)도 저입니다. 4화에 관해서는, 3화 마지막에 신지와 토우지가 (간단히) 사이가 좋아지는 형태로 (안노씨의 원안에서) 처음에 되어 있었는데,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아서. 이 따위로 아니메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은 침 뱉어 버려야 할 이야기 아니냐, 막 그랬습니다. 로봇에 타라 같은 말 들으면 도망치는 게 당연하다, 그런 얘기를 안노씨에게 하고 4화를 썼던 것입니다만.
­ ­5화, 6화는 비교적 순조롭게 써내려갔습니다. 완성된 영화도 (각본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고. 예컨대 아야나미의 방도 안노씨의 메모에는 「살풍경한 방」이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그 방은 제가 알바하던 시절 실제로 보았던 방을 그대로 글로 써서 구체화한 겁니다.
타케쿠마­ ­헤에. 그게 현실에 있는 방이라고요?
사츠카와­ ­예에. 패킹을 교체하는 「수도진단」 알바를 했었는데, 진짜 아야나미의 그 방과 똑같은 원룸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타케쿠마­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야마가 히로유키山賀 博之씨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에바』가 이런 심리극이 되어간 것은 사츠카와씨의 영향이 크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 나왔거든요.
사츠카와­ ­심리라고 해야 하나, 일단 3화에서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말을 처음 가져온 게 저였고요. 그리고 (역주: 예정에 없던, 사츠카와가 혼자 각본 쓴) 4화가 투입되었고, 그게 안노씨가 내면세계로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제가 캐릭터를 파악하는 방법이 아니메답지 않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타케쿠마­ ­내적 독백이 후반에 많이 사용되었지요. 그것도 사츠카와씨가 제안한 거였나요?
사츠카와­ ­아뇨, 후반의 그런 것들은 안노씨의 세계예요. 왜냐면 (역주: 사츠카와 본인의 전공인) 실사에서는 보통 내적 독백 같은 거 안 하잖습니까. 해도 저렇게 잘 안 돼. 그러니까 소위 『에바』에서 유명해진 대사라 그러면 대부분 안노씨의 것이라 봐도 됩니다.

『에바』와의 연속성

타케쿠마­ ­그래서, 지난 봄에 『에바』가 나오냐 마냐 가지고 난리가 났을 때 말이죠, 제가 아마 작년(96년) 섣달 그믐날 가까웠을 무렵에 안노씨를 만났었는데, 그 때 벌써 『러브&팝』 얘기를 슬쩍 하더라고요.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그런 소리를 하니까, 설마 이렇게 빨리 착수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웃음).
사츠카와­ ­그도 그럴 게, 안노씨가 『DEATH』 각본을 제게 의뢰한 게 작년 11월이었거든요. 저도 각본회의 하다 안노씨가 『러브&팝』 하고 싶다 그래서 싸웠는데.

여고생 사진들은 모두 영화 『러브&팝』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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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에서 도망치려고 그딴 소리 하는 거지 막 그러고 (웃음).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각본회의 중에 『점보그 에이스』 얘기를 늘어놓느라 한 시간을 낭비하고 막 그랬단 말입니다 (웃음). 그런데 『러브&팝』에 대해서는 프로듀서 난리南里 (미유키)씨한테도 이야기를 했다니까 이거는 진담인가 싶었고. 그 때는 뭐 1000만엔 짜리 자주영화라도 해서 테레비동경 심야방송으로 소박하게 내보내거나 그러겠지 싶었는데요.
타케쿠마­ ­그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되어버렸다?
사츠카와­ ­예에. 출자자가 붙고 극장개봉도 하게 되어서, 에산이 1억 엔 모였거든요.
타케쿠마­ ­최초의 단계에서 안노씨로서는 『에바』를 후딱 끝내고, 뭔가 즐거운 것을 하고 싶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도피성이라는 느낌이 있었겠네요.
사츠카와­ ­그보다는 『에바』 다음에 『러브&팝』을 했으니까 『에바』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이거 없었어 봐, 아마 안노씨 2년은 망가졌을 겁니다.
타케쿠마­ ­아무튼 그래서 너무 빨리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서 놀랐어요. 하기야 『에바』같은 혼신의 역작을 하고 나서 이상하게 텀이 길면 오히려 그거야말로 큰일이지요. 주변의 기대는 올라가고. 그게 압박이 되어서 도저히 찍을 수 없게 되고. 그런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 이런 거였을까요.
사츠카와­ ­그것도 있었을 테고, 그냥 단순히 원작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주인공한테 홀렸다는 말까지 했으니까.
타케쿠마­ ­『러브&팝』에는 어딘가 『에바』의 속편같은 요소가 있지요. 이것은 사견입니다만, 두 작품 모두 「타자와의 만남」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안노씨와 그 주변의 이야기는 하신 게 없으신가요?
사츠카와­ ­「타자와의 만남 운운」 그런 얘기를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러브&팝』이 『에바』와 같은 흐름 위에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타케쿠마­ ­촬영대본에서 바로 「기분 나빠」라는 대사로 시작하기도 하잖아요.
사츠카와­ ­대본 첫머리에 쓰레기가 바다에 떠 있다고 되어 있지요. 그러면 「기분 나빠」로 시작하는 것도 되지 않을까 해서 제가 보탠 겁니다. 그래서 드라마가 시작되는 날짜도 『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개봉일인 97년 7월 19일로 해 보았고요.
타케쿠마­ ­영화 완성본에서는 「기분 나빠」는 편집당했지요. 연동성을 확고히 하면 별로라고 생각되었던 걸까요?
사츠카와­ ­뭐, 촬영대본까지 대사가 남아 있었던 걸 보면, 아슬아슬하게 고려는 했던 거 아닐까 싶습니다만.

다큐먼트를 지향했다

타케쿠마­ ­각본은 굉장히 원작에 충실하네요. 완전 그대로라고 하면 실례가 되겠지만요.
사츠카와­ ­원래 안노씨가 하고 싶은 건 다큐멘터리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실제 안노씨가 등장인물로서 화면에 나와서 여자애를 찍는다는, 다큐멘터리 터치의 (역주: 초고보다도 이전의) 제로고ゼロ稿를 제가 썼었습니다.
타케쿠마­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사츠카와­ ­예산이 1000만 엔이면 그런 게 어울릴 거 같았고. 근데 궤도가 수정된 건, 아마 히라노 카츠유키平野 勝之씨의 『유미카由美香』(비디오 타이틀 「두근두근 불륜여행」)이라는 작품을 안노씨가 보고, 자기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고,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쇼크를 받았던 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산이 1억이나 붙었기 때문에, 제대로 꼴을 갖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정도 당연히 있었을 테고요.
타케쿠마­ ­영화 완성본을 봐도, 다큐멘터리를 노리고 있었던 기미가 느껴졌거든요. 차라리 그 아이디어로 밀어붙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사츠카와­ ­글쎄 어떨려나요 (웃음).
타케쿠마­ ­안니, 뭐, 안노씨는 예전부터 프라이빗 필름, 프라이빗 필름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드러내는 게 서투른 타입이잖아요. 『에바』의 경우에는 아니메라는 필터가 있었기 때문에 역으로 그만큼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실사에서 날것의 자신이 나온다면, 아무래도 그렇게까지는……, 그런 것이었을까요?
사츠카와­ ­그럴 수도 있겠네요.
타케쿠마­ ­해야겠지……, 막 그러면서 무책임한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만 (웃음).
사츠카와­ ­제로고에는 하메도리ハメ撮り도 있었어요. 원조교제 여자애하고 안노씨의.
타케쿠마­ ­하메도리? 그래서, 제 의견을 정직하게 말하자면, 『러브&팝』은 안노씨가 『에바』의 라스트씬 부근에 멈춰섰다가, 반 걸음 나아가서 주변을 힐끔거리고 있다는 그런 인상이었거든요. 물론 의욕은 느껴지고, 영화로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역시 역시다 그렇게 생각은 했습니다만.
사츠카와­ ­저는 좋았습니다. 『에바』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안노씨하고 같이 했던 일들 중에 이게 제일 좋았어요. 여자애가 잘 찍혔으면 좋다 그런 말인데 (웃음).
타케쿠마­ ­그런데 여자애를 찍는 방법도, 이건 아마 확신범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다지 개개의 캐릭터들을 내세우듯이 찍는 방법이 아니었단 말이죠.
사츠카와­ ­맞아요. 그게 참, 각본 단계부터 저한테는 여자애 네 명이 하나의 인격이라는 노림수가 있었던 거거든요. 뭐어, 보통은 드라마를 짜다 보면 다른 세 명은 방해만 되는 거죠. 히로미裕美와 원조교제하는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 보다 드라마틱해졌을 텐데요. 하지만 안노씨는 (원작에 있는) 네 명을 그대로 다 등장시켜 달라고 하셨고.
타케쿠마­ ­그 부분은 원작에 충실하게.
사츠카와­ ­예에. 다만 후반에 혼자가 되었을 때도 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게 그녀에게 붙어서 끌려다니는 게 있지요.
­ ­……그래서, 역시 오디션에서 여자애가 정해지지 않으면 어떤 영화가 될지 모른다고 안노씨가 말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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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가 결정된 7월 중순부터 (본방송용) 각본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타케쿠마­ ­엄청 평범한 여자애를 뽑았지요.
사츠카와­ ­그랬지요. 그건 안노씨가 처음부터 얘기했어요. 소위 고삐리 원조교제 영화 같은 건 별로 흥미가 없다고. 원작보다도 더 평범하게 캐스팅했죠.

「가짜 안노」가 등장했던 이유

타케쿠마­ ­사츠카와씨의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어디인가요. 영화 중에서요.
사츠카와­ ­친구들과 헤어질 때, 히로미가 손을 흔드는 컷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또……, 뭐래야 하나, 안노씨의 결벽적인 부분이 좋지 않았나 싶기도하고.
타케쿠마­ ­확실히, 여자애 팬티를 직하에서 올려다보는 듯한 구도가 잔뜩인데, 전혀 징그럽지 않군요. 그치만 안노씨, 꽤 변태적인 사람 아닌가요 (웃음).
사츠카와­ ­아니, 결벽인 거 아닐까요? 『에바』만 해도 깨벗은 씬들이 나오지만, 전혀 징그럽지 않고.
타케쿠마­ ­변태인 방향성이 다르구나.
사츠카와­ ­그런 부분의 자질은 역시 나하고는 다르구나. 그걸 『나디아』 때부터 느꼈고. 『DEATH편』 때 안노씨가 제작회사 사람한테 저를 소개하는데, 「이 사람하고는 안 맞아서요」 그런 소리를 했거든요.
타케쿠마­ ­하지만 아마 안노씨로서는 그래서 좋았던 것 아닐까요. 사츠카와씨의, 「자신에게 없는」 부분이.
­ ­……그런데 히로미와 비디오점에 가는 남자가 나오는데요, 이거 아무리 봐도 안노씨잖아요 (웃음).
사츠카와­ ­행색이 똑같죠 (웃음).
타케쿠마­ ­이거, 안노씨가 이렇게 하자고 그랬던 건가요.
사츠카와­ ­그거는 의상 고를 때 배우 테즈카 토오루手塚 とおる씨한테 『북경원인』 티셔츠를 입혔는데. 그럴 거면 목에 분홍색 타올도 두르고 페트병도 들리자고 제가 그랬습니다.
타케쿠마­ ­완전 본인 아닙니까 (웃음).
사츠카와­ ­마무리로 샌달까지 신겼죠. 그 의상 고른 게, 크랭크인하고 나서 현장이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이었고요.
타케쿠마­ ­그거, 뭔가 심상치 않은 캐릭터가 서 있는 거에요 (웃음). ……아무튼 완성된 영화의 라스트씬은 각본과 완전 다르게 만들어졌는데요.
사츠카와­ ­그거는 로케까지 갔으니까 일단 대본대로 찍을 생각이긴 했을 겁니다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찍을 수 없게 되었나 봐요.
타케쿠마­ ­그래서 시부야의 개골창을 여자애들이 걸어가는 라스트가 되었다는 (웃음). 그래도요, 저 그 라스트씬 진짜 좋았거든요.
사츠카와­ ­예에, 저도 좋아합니다. 아무튼 그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뭐래야 할까, 극복하는 기책이 굉장하다고 할까요.
타케쿠마­ ­각본대로 갈 수 없게 된 시점에서,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뿅 하고 내놓는 거죠. 거기서 안노씨 특유의 파워가 나온다.
사츠카와­ ­그런 거지요.

2000년까지는 감독을

타케쿠마­ ­그나저나 안노씨도 그렇고 짓소지씨도 그렇고, 개성적인 감독들하고만 합을 맞춰오셨는데요.
사츠카와­ ­컬트 뿐이군요 (웃음). 저, 실제로는 전혀 아니거든요. 『에바』에서도 제 개성이 가장 드러난 건 카오루군 이야기 같은 게 아니고, 15화 『거짓과 침묵』이었다고 생각하고요.
타케쿠마­ ­미사토와 카지의 연애드라마 회차군요. 사도가 나오지 않는…….
사츠카와­ ­사도도 안 나오고, 에바도 한 컷 뿐이고. 제 영화 취향은 데이비드 린David Lean이나 쿠로사와 아키라黒灘 明의 팬이거든요. 또 나루세 미키오成瀬 巳喜男라던가.
타케쿠마­ ­별로 컬트가 아니네요?
사츠카와­ ­컬트한 자질은 저는 없어요. 짓소지씨한테 처음 각본을 보냈던 것도, 딱히 울트라 팬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고. 에도가와 란포江戸川 乱歩도 짓소지씨와 합을 맞추기 위해 처음 읽었을 정도입니다.
­ ­그래서 짓소지씨하고도, 어느 정도 각본이 꼴을 갖추고 나면 회의에서 음악을 어떤 걸 할까 얘기가 많이 나와요. 『울트라맨 티가』의 『꽃』이라는 에피소드에 나온 외계인은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라는 오페라에서 따 와서 「레스카우트성운의 마농성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레스코Lescaut를 영어식으로 읽어서 「레스카우트」 이런 식. 음악은 『나비부인』의 이중창 「벚나무 가지를 흔들어라」. 세 명의 외계인도 그 가극에 등장하는 버터플라이, 스즈키, 고로를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타케쿠마­ ­흐ー음, 굉장히 해박하시네요. 그럼, 『에바』에서 사용된 클래식도 사츠카와씨가?
사츠카와­ ­15화에서 신지가 켜는 첼로 곡(역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독주곡 1번)은 제가 지정했습니다. 『DEATH편』의 곡도 오리콘 1위를 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제대로 선곡할 걸 그랬어요 (웃음).
타케쿠마­ ­『러브&팝』도 절대 유행을 타지 않을 클래식이 쓰였지요.
사츠카와­ ­이번에도 좀 골라 달라는 소리 듣고 도망쳐 버려서 (웃음). 이번에는 선곡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타케쿠마­ ­저는 사츠카와씨와 안노씨의 관계성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사츠카와씨의 감독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사츠카와­ ­각본가 업무는 내년까지만 하고 잠시 정지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세컨드 임팩트 오기 전까지는 감독을 할 예정입니다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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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츠키大月 토시미치俊倫 듣고 쓴 이
타케쿠마 켄타로
구성: 카스가 마사노부
­ ­사츠카와씨를 인터뷰한 그날 저녁, 나는 시부야로 이동해 토에이 직영 영화관 사무소에서 오오츠키 토시미치씨와 만났다. 오오츠키씨는 주식회사 킹레코드의 제작부장. 『신세기 에반게리온』, 『기동전함 나데시코』, 『소녀혁명 우테나』의 프로듀서로서 솜씨를 발휘한, 아니메 업계의 「태풍의 눈」 같은 존재다. 물론, 『러브&팝』에서도 그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를 담당했다.
­ ­오오츠키씨에게서 나는 「복잡하고 불가사의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우수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강력함과, 예술가 같은 나이브함, 그리고 어린이처럼 천진한 열정이 모순 없이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안노 감독의 좋은 이해자인 이 사람의 존재 없이는 『에바』도 『러브&팝』도 태어날 수 없었음은 틀림없다.
­ ­오랜만에 만난 오오츠키씨는 처음에는 말이 적었다. 연일 이어진 격무에 피로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취재가 시작된 순간, 그야말로 스위치가 들어간 것처럼 맹렬한 변설을 토해내기 시작해, 이쪽을 놀라게 했다.

이것은 『에바』의 속편이다!

타케쿠마­ ­매스컴들이 멸써 여러가지 듣고 갔을 것 같아서, 제가 무엇을 여쭈어야 좋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웃음). 『에바』에서 『러브&팝』으로의 흐름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기획이 서기 시작했던 게 봄 에바(『DEATH&REBIRTH』) 제작 도중이었던 작년 2월경부터였던 게 맞나요.
오오츠키­ ­그 무렵은 좀 정신이 없던 시기라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작년 가을에 둘이서 키치죠지吉祥寺에서 술을 마실 때 안노씨가 「실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서. 테레비동경 심야방송에서, 에산 3000만으로 1시간 반 정도 찍게 해 달라는 얘기로 저한테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러자면 기본적으로 남는 게 VTR 뿐이고, 할 거면 좀 제대로 된 형태로 하고 싶었고, 모처럼 안노씨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단관개봉이라도 괜찮다면 극장에 걸어보는 게 어떻냐고. 그래서 토에이 쪽에 극장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토에이에서 아무쪼록 대대적으로 하고 싶다고 (웃음).
­ ­이 순간 이야기가 확 커진 거죠. 그래서 전국 4관, 5관 이러고. 까놓고 얘기해서 예산도 3000만에서 갑자기 1억 3000만이라는 큰 버젯이 되었고. 현실의 여고생을 기용하자고 결정된 것도 그 시점이었으니까, 그래서 시기적으로 다음 여름방학이 승부라고. 촬영은 굉장히 스무스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1개월 조금 넘긴 기간만에 촬영 끝내버렸으니까요.
타케쿠마­ ­그랬더니 안노씨가 이번에는 담담하게 찍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던 건가요.
오오츠키­ ­응. 그래서 여름에 『에바』 실사파트 찍고 있을 때, (다음에는) 이런 형태로 하고 싶다면서, 벌써 의욕이 후끈후끈했어요. 그래서 순수하게 저는 『에바』의 속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타케쿠마­ ­아니, 완전 그런데요.
오오츠키­ ­안노씨는, 아마 어느 시기가 이전까지는 「속편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겠지만요. 「같은 사람이 감독했으니까 비슷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거고, 끝난 작품 달고 가지 않는다」고, 아마 그렇게 말하면서 우길 거 같습니다만. 그렇지만 제 사견으로는…….
타케쿠마­ ­(웃음) 속편 맞다.

안노야, 장하다!

오오츠키­ ­마지막 씬에서 여자애 네 명이 관객 쪽을 향해 걸어오잖아요. 역시 그거는 『DEATH편』의 사중주……, 아니, 이런 소리 하면 안노씨한테 쳐맞을 것 같은데 (웃음). 그러니까 히로미쨩은 신지군이고, 나머지 세 명의 캐릭터는 레이이고, 아스카이고, 나기사 카오루군이고. 물론 완전 그대로는 아니지만, 역시 4명이라는 인간관계는 『에바』를 질질 끌고 온 거랄까. 『에바』는 (관객을) 나락 바닥에 던져넣는 듯한 마무리로, 뭐랄까 너무 철학적인 신차원新次元으로 가 버렸는데요.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한 차례 『에반게리온』에서 꽝 하고 했다가, 바로 이어서 이 촬영에 들어가서 그 결론을 도출한 거 아닌지.
­ ­역시 말이죠,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하든지, 저는 이번에 안노씨와 『러브&팝』을 해서, 정말로 최고로 행복하네요. 안노야, 장하다. 정말 있지, 그 『에바』로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이번에 이렇게까지 해냈다는 건, 그것만으로 저로선 이미 극찬합니다.
­ ­그래서 현장에서 안노씨를 따라다니던 난리라는 프로듀서도 굉장히 우수한 남자였고, 요컨대 연출에 관해서는 안노, 현장에 관해서는 난리, 그 밖에 돈뭉치라던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에 관해서는 오오츠키라는, 완전한 삼권분립을 깔았거든요. 그러니 「이건 말했다, 말 안해」 라던가 그런 이야기가 일절 없었고. 저는 그런 소리 할 거면 영화 같은 거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서로에게 열어젖힌 전면적인 신뢰.

[79]

­ ­실제로 저도 오히려 한 번도 현장을 보러 안 갔는데, 제가 꽤 그런 배짱이 좋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취재를 받는다던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가고 그러니까 (웃음). 그거는 그걸로 딱 잘라 결론내는 거니까요. 뭐어, 저 자신에 대해서도 장하다고 (웃음). 이래놓고 관객이 들어와 준다면 말이야, 정말 할 말이 없는데.

최초 구상은 다 거짓말입니다

오오츠키­ ­그리고 상영된 영화에 관해서 여러가지 말씀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저는 제 자신의 입장은 제하고서, 한 사람의 안노 팬으로서 저는 한 120점 주고 싶어요. 역시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그 상태로 열심을 다한 안노는 훌륭했습니다. 이 영화는 (올해) 여름에 찍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습니다. 『에바』도 결국 여름 영화였지요? 『러브&팝』도 촬영이 전부 여름이었으니까.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거는 비판도 환영인 거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평가받았으면 좋겠고. 특히 실사니까 지적하기 쉬운 부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기술적으로 미숙하다던가, 뭐 그런.
타케쿠마­ ­아니 『에바』라도 굳이 말하려고 하면 결점은 있는 거니까요. 근데 그런 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데요. 그냥 이번 『러브&팝』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거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솔직히 수법과 내용에 약간의 저어齟齬를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혹시 최초의 구상과 어긋났던 것인지, 일부러 어긋나게 한 것인지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요.
오오츠키­ ­아니, 실은요. 이거 너무 다 까발리는 거 아닌가 싶지만, 안노씨는 최초 구상은 전부 거짓말인 사람이에요 (웃음). 처음에는 이러저러하겠다 말을 해도, 마지막은 이렇게 된다는 걸 안노씨 머릿속에서는 정말로 정밀하게 계산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 얘기했던 구상이 마지막엔 저렇게 될 거라는 건, 저는 알고 있었어요. 확실하게 말합니다.
타케쿠마­ ­오래 알고 지내셨으니.
오오츠키­ ­그거는 뭐. 그래서 생각대로 영화가 나왔고. 이야, 나는 보는 눈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고 (웃음).

압박 같은 건 신경도 안 쓴다

타케쿠마­ ­처음에는 좀 더 다큐멘터리스러운 걸 하려고 했었던 거죠.
오오츠키­ ­처음에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은, (그런 챌린지를 설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고양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그럴 때 바보같은 프로듀서라던지가 「그런거 무리야」라던가 말해도, 그 자리에서 걔는 들어먹지를 않는 거죠. 「할 수 없다」 같은 얘기는 듣기가 싫다고. 그래서 저도 「아아, 해라, 해, 하고싶은 대로 해, 됐지. 오냐」 그러고
­ ­그래서 저는 처음 대본이 올라왔을 때,
[80]

이런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웃음). 그래서 타케쿠마씨한테 띡 하고 떠오르는 이번 영화의 결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 안노도 마음에 걸려하고 있는 걸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타케쿠마씨 등에게 무자비하게 말해달라 그러는 거고…….
타케쿠마­ ­확실히 걸리는 부분은 있지요. 그래도 그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니까요. 저는 아마 안노씨의 작품에 대해 아주 특수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그런 일은 오오츠키씨가 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웃음).
오오츠키­ ­안 해.
타케쿠마­ ­그런 관계성은 만들지 않는 거네요.
오오츠키­ ­그거는 걔 개인의 문제지.
타케쿠마­ ­다만 작가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주변에서 틀을 잡아 준다고 해야 할까, 압박을 주지 않으면 오히려 파워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있잖아요. 안노씨는 그런 타입 아니었던가요.
오오츠키­ ­아니에요. 그런 압박 같은 거에 굴하지도 않아요. 걔한테 있어서는 현장에서 작업하는 스태프가 안노씨를 불신하게 된다던가, 못 따라가겠다고 말한다던가, 그런 게 무서운 압박이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마사유키摩砂雪이나 츠루마키鶴巻이 「안노씨 이상해」라던가, 「지금의 안노씨는 맞춰줄 수가 없어」 같은 말을 하게 되면 그게 괴로운 거지. 나 같은 놈이 주판 튕기며 마진이 어쩌고저쩌고 말해봤자, 그런 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요 (웃음).

그야말로 신업이지요!

타케쿠마­ ­제가 작년 말에 안노씨한테 『러브&팝』 얘기를 살짝 들었을 때는, 설마 이렇게 빨리 제작에 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오오츠키씨한테야 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봄 『에바』 때 어지간히도 어수선했잖아요? (웃음) 그런데, 그 후에 한 달 정도 지나서 전화를 했는데 뭔가 후련해 하면서. 그리고 『에바』가 정리되는 대로 바로 실사 작업 들어갈 거라고 해서, 솔직히 깜짝 놀랐거든요.
오오츠키­ ­아니, 나는 기뻤어요.
타케쿠마­ ­왜냐하면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보통 쉬고 싶어지잖아요? 그런 판단이 저로서는 불가사의했는데.
오오츠키­ ­그래서 쉬었잖아요. 봄 영화 전에.
타케쿠마­ ­아아, 그러고 보니 (웃음).
오오츠키­ ­거기서 쉬었으니까요. 그래서 주위에 폐를 끼쳤다는 것이 굉장한 자극이 되었던 것이죠. 안노씨 뿐 아니라 저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짐을 짊어지고. 짊어졌지만 영화는 완성되었고, 사회적으로는 평판을 받았고, 여름에도 만족스럽게 자기 생각대로 배트가 울렸으니까.
­ ­그래서 『러브&팝』은, 여름 텐션의 지속이 있는 그대로 확 하고 갔으니까요, 여름 극장판을 하면서, 여름에 진짜 촬영을 했다는 게, 그야말로 신업神業이지요. 어쩌면 저 같은 것보다도 굉장히 냉정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사회도 자신도 굉장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진짜 천재 아닐까요.
타케쿠마­ ­이야, 오오츠키씨 오늘 텐션 굉장해 (웃음). 그러고 나서 안노씨와 이야기는 하셨나요? 시사회 후에.
오오츠키­ ­아니, 「이런 영화가 되어 버렸는데, 미안」, 「아니아니, 훌륭한데」라고. 그 말밖에.
타케쿠마­ ­인터뷰 완결하겠습니다. 오늘은 이걸로 패배했다는 것이네요 (웃음).

공포의 제로고

오오츠키­ ­타케쿠마씨, 이번에는 어디쯤에서 걸리는 게 있었나요?
타케쿠마­ ­저도 『에바』의 속편이 되겠구나 생각했거든요. 완결편 라스트에 「기분 나빠」라는 대사가 있었잖아요. 신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의 의지로 타자로서의 여성에게 손을 썼다가, 거절당한다. 그런데 그건 신지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위대한 한 걸음이라는. 최고의 라스트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안노씨가 실사로 코갸루コギャル 영화를 찍는다고 듣고, 오오, 거기서 더 나아가나 어쩌나 싶었고. 그런 관점에서 보았던 것이기 때문에, 여자애들 찍는 방법이 제가 보기에 꽤 걸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라라,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오오츠키­ ­과연 그렇군.
타케쿠마­ ­그것 뿐이고요. 테마나 제재는 완전 OK고. 그림 만드는 것도 철렁하게 아름다운 씬들이 곳곳에 있었고. 시부야의 배수로를 걸어가는 라스트도 저는 정말 좋았는데요.
오오츠키­ ­뭐어, 전대미문이지요. 여고생들한테 개골창을 걷게 만들었으니.
타케쿠마­ ­그래서 안노씨 나름대로 엄청 챌린지했던 건데, 조금 「걸려버린 것 아닐까」 하는 게.
오오츠키­ ­뭔가 그, 렌즈를 통과하기 이전에 여자애와 날것의 커뮤니케이션을 한 위에, 다시 렌즈를 통과시키는 복잡한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뭐어, 본인의 용모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웃음).
타케쿠마­ ­전혀 다른 테마에 챌린지한다면 별개인데요. 근데 『에바』에서 그렇게까지 해놓고, 관객한테도 「자, 너거들, 이거 본 뒤에 어쩔 거냐」라면서 들이대고. 동시에 그건 안노씨 자신에게도 들이대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오오츠키­ ­뭔 소린지 알겠습니다, 예이.
타케쿠마­ ­이거는 정말이지 제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평론가스러운 말은 할 생각도 없습니다만, 저는 여름의 라스트를 보고, 이제 이거는 『에바』 얘기를 한다거나, 에바 책을 낸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고, 자신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좋은가라는 아픈 데를 찔렸거든요.
­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이 『러브&팝』 페이지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웃음). 그보다도 다음은 「자신의 표현」으로서 무언가 해내지 않으면 『에바』에 져 버릴 거라고

[81]

저 자신도 생각했었고. 그런 생각 하고 있는데 안노씨가 『러브&팝』 들어갔으니까, 자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 ­그래서, 이것은 결과론입니다만, 앞서 사츠카와씨의 이야기를 듣고 왔거든요. 실은 이번 영화에 완성각본과는 전혀 다른 제로고가 있었는데, 그거는 좀더 다큐멘터리적인 이야기였다고. 까딱 잘못하면 AV적인, 안노씨 본인이 카메라를 메고 하는. 그 얘기 들었을 때 「역시」싶었고.
오오츠키­ ­제로고, 읽어본 적 없지요?
타케쿠마­ ­예에, 안 읽어 봤습니다.
오오츠키­ ­원작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입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도 없는 씬들이 속출했습니다. 읽고 나서 어질어질했어요. 하지만 이 짓거리 했다가는 다음부턴 영화 못 만든다. 그걸 안노씨도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도 한 번 사츠카와씨한테 제출은 받고 싶어했거든요. 그 “막다른 골목”을. 그랬더니 「야, 이대로 했다가는 끝장이다」라는 게 확인이 되어서, 이번에 이렇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옥의 솥가마를 함께 들여다보다

타케쿠마­ ­제가 왜 다큐멘터리에 꽂혔냐 하면, 개인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원숭이도 그릴 수 있는 만화교실』으로 일종의 막다른 골목을 겪었고, 그 뒤로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일종의 타자와 만나는 자극이랄까, 다큐멘터리 지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오츠키­ ­타케쿠마씨가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너무 잘 알겠는게, 『에바』에서 그렇게까지 저질러 놓으면, 그 너머는 할 수가 없어요. 할려면 사화나 자신과 남은 평생 계속 싸워야 하고. 그런 거 상대하는 건 싫거든요, 저는 (웃음).
­ ­그래서 『에바』 다음에 이제 어쩌지 그랬을 때, 안노씨는 『러브&팝』을 고르고, 나는 『기동전함 나데시코』를 고르고. 이번의 『나데시코』(원주/98년 여름 개봉하는 극장판을 말함)는 저에게 있어서 『역습의 샤아』 이후의, 아주 별의 별 거를 다 집어넣은, 전함도 나오고 로봇도 나오고 개그도 있고 (웃음), 사적 결정판이거든요. 다른 스태프들로 『에바』를 해 봤자 의미가 없으니까…….
타케쿠마­ ­순수한 오락작품으로서 결정적인 것을 만든다.
오오츠키­ ­그쪽으로 전법으로 바꿔야지 업계에서 살아갈 수가 있어요.
타케쿠마­ ­잘 알고 있습니다.
오오츠키­ ­완전한 오락작품으로, 안노씨한테 팍 하고 침을 뱉는 것 같은 영화지요. 「이런 거 내가 10년 전에 했던 거잖아」라는 말이 나올 법한 그런 것을 하는 것이, 제가 안노씨에게 거는 「싸움」이니까요.
­ ­왜냐면 나하고 안노가 한 거 이외에, 지금 텔레비젼 애니메이션에서 누가 『나데시코』를 넘었냐, 『에바』를 넘었냐, 『우테나』를 넘었냐 하면, 『포켓몬스터』 정도밖에 없거든요 (웃음). 아무튼 나는 『나데시코』하고 『우테나』 하고 있다고. 그래서 너(안노)하고도 이렇게 하고 있다고.
­ ­내가 다른 감독하고 합을 맞춰서 해낸 것을 보고 안노씨가 자극을 받아서, 오오츠키하고 다음에 할 작품에서는 저 두 작품을 넘어서겠다, 그런 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 제가 던지는 도발인 거죠. 뭐랄까, 전혀 상대해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타케쿠마­ ­이야, 그래도 안노씨 같은 사람, 잘 안 나오지요. 그렇게 간단하게는.
오오츠키­ ­평생 만나지 않아도 된다면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만나야 한다면 이상하게 어중간한 관계는 맺고 싶지 않아요. 이제 부글부글 끓는 지옥의 솥가마를 함께 들여다볼 수밖에 없어. 봄 영화 마지막 무렵은 솥가마에서 목만 튀어나온 느낌이었고. 저한테 관해서는.
타케쿠마­ ­그 때는 굉장했지요.
오오츠키­ ­왜냐면 영화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거 100% 알고 있는 건 안노씨하고 나 뿐이었으니까 (웃음). 언론 취재 받을 때만 「좋은 영화가 될 겁니다. 기대해 주십시요」 따위 거짓말 쳤고 (웃음). 아니, 정말이지, 뭐어, 어떤식으로 받아들이셔도 되는데요. 저도 타케쿠마씨나 안노쨩과 마찬가지로, 까놓고 말해서 미쳤거든요 (웃음).

언젠가 안노씨와 특촬영상을

타케쿠마­ ­오오츠키씨는 앞으로, 예를 들자면 킹레코드를 모체로 해서 애니업계의 인재를 육성하겠다 그런 구상은 있으신 건가요.
오오츠키­ ­전혀 없어요. 저는 단순히 현장 사람들을 좋아하고, 현장 사람하고 술 먹는 걸 좋아해서, 『나데시코』의 사토佐藤씨라던가, 『우테나』 감독을 맡은 이쿠하라幾原씨라던가. 그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얘기하다 보면 이쪽에도 영향이 있고, 반대로 내가 영향 준 게 영화에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반응해주신다거나, 사주신다거나 그런 상황을 좋아하기 때문에.
타케쿠마­ ­츠루마키씨라던가 마사유키씨 등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대요?
오오츠키­ ­츠루마키씨는 2월 4일 발매되는 『에반게리온』 (역주: 레이저디스크) 11권의 22화 쪽 추가작화와 연출 콘티를 하고 있습니다. 21화도 22화도, 새로 넣은 추가컷이 있으니까요. 극장판 쪽도 1월 4일에 WOWOW에서 『DEATH&REBIRTH』를 했고, 그 버전도 봄에 개봉했던 거하고 조금 다릅니다만. 『DEATH편』은 남는 부분을 컷트하고, 더빙도 거의 전부 다시 합니다. 뭐어, (마사유키씨의) 감독판(『DEATH(TRUE)』)인 셈이지요.
­ ­앞으로는 몇 년 후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안노씨나 히구치 신지樋口 真嗣씨하고, 『에바』 하고 있는 스태프들을 모아서, 10억 엔 정도 들여서 일대 특촬영화를 만들고 싶네요. 이건 꼭 실현하려고 합니다. 다음 세기 초엽 쯤에. 꼭 여러분에게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이토 고伊藤 剛●1967년생 『광물마니아 잡학노트』를 공저하여 근간 예정

[82]
안노庵野 히데아키秀明    
듣고 쓰고 구성한 이
타케쿠마 켄타로
­ ­그 다음 날, 11월 15일 토요일.
­ ­가이낙스 응접실에서, 나는 안노 감독과 오랜만에 대면했다. 뭐, 시사회 날 시사회장 로비에 있던 안노씨와 서서 이야기 정도는 나누었지만, 따지고 보니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몇 개월만의 일이다.
­ ­실내에는 AV계의 귀재 백시시 야마시타バクシーシ 山下 감독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비디오를 돌리고 있다. 야마시타씨는 동업자 컴퍼니 미츠오カンパニー 松尾씨와 함께, 『러브&팝』의 메이킹제작을 맡았던 것이다. 두 사람에게 의뢰한 것은, 물론 안노 감독이다.
­ ­『퀵 재팬』 편집자가 가져온 녹음기를 탁자에 세팅한다. 해서,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낼까……를 생각하는 순간에, 안노씨가 「하이」 라며 큐를 보냈다.

저는 앞으로 5년입니다

타케쿠마­ ­(웃음) 갑자기 큐를 내보내셨네요. 어 음, 『러브&팝』 완성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만, 곧바로 들어가셨죠? 이 작품에. 굉장히 놀랐었는데.
안  노­ ­엥?
타케쿠마­ ­여름 『에바』(『THE END OF EVANGELION』) 한참 만드는 도중에, 벌써 이쪽 준비에 들어가 계셨잖아요. 용케도 그렇게 하셨다 싶어서.
안  노­ ­예에, 아니, 이 작품은 찍으려면 올해 여름밖에 없으니까. 원조교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상, 올 겨울쯤 개봉하는 게 아마 소재로서 한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하달까. 1년 뒤면 이거 할 의미가 없어.
타케쿠마­ ­아니, 왜 이런 질문을 했냐면요, 지금까지의 안노씨 패턴대로라면, 한 번 혼신의 힘을 다 짜내서 영화를 만들면, 한 2, 3년 간격을 두고 그런 게 있었잖아요.
안  노­ ­아아, 이제 그 짓 그만 하고 싶어요. 계속이, 이번 영화의 목적이지요. 아무튼 계속 하려고. 어차피 저도 앞으로 5년이니까…….
타케쿠마­ ­에?
안  노­ ­벌써 5년이니까요.
타케쿠마­ ­무슨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계신 것처럼 말씀을 (웃음).
안  노­ ­아니, 그렇잖아요. 35에서 40 사이예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건. 누구나 그렇다니까요. 예외가 있다면, 그전까지 아무 것도 안 하던 사람이 40 넘어서 뭘 해서 확 잘 된다던가. 그런 일은 있습니다만, 그냥 계속 해온, 그 사람이 가장 잘 하는 일을 하는 건, 35에서 40이예요. 그러니까 지금밖에 없어.
타케쿠마­ ­영화감독은 50대에 일 잘하는 사람이 잔뜩 있는데요.
안  노­ ­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니까.
타케쿠마­ ­그럼 40세 정도를 일종의 데드라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그럼 40 넘으면 어쩔 거예요.
안  노­ ­그 뒤로는 프로듀서업이라는 것도 있고. 그 뒤로는 뭘 만들어 봤자 하강곡선의 경사를 가능한 한 완만하게 유지하려는 것 뿐. 뭐어, 그런 소리 듣지 않게 분발한다던가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만.
타케쿠마­ ­으ー음. 이번에 저는 안노씨가 서둘러 만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요.
안  노­ ­아아, 그건 제 힘이 미치지 못했을 뿐입니다. 한정된 시간밖에 없었으니까.

여고생은 알 수가 없다

타케쿠마­ ­여기저기서 듣기로, 안노씨가 「이거는 『에반게리온』 파트Ⅱ가 아니야」 막 그러고 다니신다면서요.
안  노­ ­파트Ⅱ 아닙니다.
타케쿠마­ ­근데 보면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안  노­ ­아니, 그거는 같은 인간이 계속 만든 거니까요. 그거는 물론 그렇지요. 여기서 『에바』가 완전히 끊어진다면 대단한 일이겠는데요.
타케쿠마­ ­실은, 시사회 전에 촬영용 대본을 읽었거든요. (대본에 있던) 첫머리에 「기분 나빠」라는 대사, 완성본에서는 컷트당했지요.
안  노­ ­그거는 사츠카와씨의 마음이 담긴 거지요. 연결되어 있는 것은 확실히 연결해 두는 편이 좋다는 거지요. 그치만, 역시 이런 건 아니다 싶어서.
타케쿠마­ ­각본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원작에 충실하네요.
안  노­ ­예에. 방법론도 시간도 없었으니까요.
타케쿠마­ ­아니, 그래서 말인데요. 여름 『에바』는 「기분 나빠」라는 거절의 대사로 끝났잖아요. 그리고서 바로 『러브&팝』을 만든다고 하니까, 과연 그렇구나 싶었거든요. 대상이 코갸루지요. 저희들 연령에서는 보통 접할 일이 없는. 그래서, 굳이 자신에게서 가장 먼 존재(타자)를 찔러보려는 것인가 싶었고.
안  노­ ­으ー음. 하지만 원작의 여자애는 갸루도 아니고요. 평범한 여고생이니까요. 오디션에 혼모노 갸루가 왔었는데. 역시 띵 하고 오는 게 없더라고요.
타케쿠마­ ­지극히 평범한 아이를 골랐지요. 그래서 되게 당겨서 찍은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이번 영화는.

[83]
촬영: 스즈키 니시鈴木 西  
[84]
안  노­ ­예에. 당겨서 찍었어요.
타케쿠마­ ­구도가 문제가 아니고, 뭔가, 대상에 대해서 당기고 있구나 하는 느낌인데요.
안  노­ ­아아, 물론 그렇지요.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아무 것도 찍을 수 없으니까요. (여자애들의 심리는) 읽을 수도 없고, 알 수 없는 건 알 수가 없네요.
타케쿠마­ ­여자애들하고 접해 보니 어떻던가요?
안  노­ ­아아, 하나도 모르겠어요.
타케쿠마­ ­그 뭐, 촬영 전에 함께 유원지에 갔다던가 (웃음).
안  노­ ­예에. 그 때 확신했습니다. 세대차이라는 말이 싫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그런 거겠지요. 자라난 환경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고, 거의 접점이 없지요.
타케쿠마­ ­처음에는 좀 더 접점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려고 생각했다거나?
안  노­ ­아니,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 게 막 하루이틀만에 친해지고 그럴 리도 없고 (웃음). 촬영기간이 한 달 반인데, 친해질 턱이 있나. 그거는 표층적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건 물론 할 수 있는 거지만. 그런데 노력을 해 봤자 너에 대해서 전부 알게 되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럴 때, 얘는 왜 이런 연극을 하지, 이런 거 눈대중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자. 그냥 딱 잘라서.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얼른 제작이나 하자.

다큐멘터리는 단념

타케쿠마­ ­원작을 읽으셨을 때, 이 부분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는데 뭔가 보이콧을 받았다던가, 여기를 그림으로 만들고 싶었다던가, 그런 일 없었나요.
안  노­ ­아니, 그런 거 없었어요. 뭐어, 다큐멘터리라는 느낌이네요.
타케쿠마­ ­응. 그래서 거의 전체 촬영을 디지털카메라로.
안  노­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비디오 작품이었는데요. 테레비 심야방송에 방영할 생각이었고. 그래서 방송국에 물어봤더니, 심야시간대 제작비가 맥이 풀릴 정도로 쌌어요. 상한선이 이 정도밖에 안 나온다고 해서, 이러면 찍을 수 있겠다. 그런데 원작의 권리만 받아내면 독립영화로도 되겠따. 1000에서 1500만 정도면 제가 돈을 모아서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으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타케쿠마­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다큐멘터리인가 싶긴 한데 다큐멘터리는 아니었지요.
안  노­ ­철저한 다큐멘터리는, 지금은 찍을 수 없어요.
타케쿠마­ ­이건 들은 얘기입니다만, 맨 처음에 제로고라는 것이 있어서, 그거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던 것 같던데요.
안  노­ ­예에. 전혀 달랐죠. 최초의 제로고는 그쪽(다큐멘터리적인 것)을 전제로 했던 것인데, 다큐멘터리인데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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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기도 했고.
­ ­그래서 짜고치는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가능은 합니다만. 예컨대 『개를 문 사나이』 같은 거 있잖아요.
타케쿠마­ ­그거 본 적 있어요. (원주/어떤 살인광 남자를 쫓는 델레비전 크루가 남자의 광기에 물들어 간다는 내용의, 유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걸작)
안  노­ ­잘 나온 작품이죠. 그만한 물건은 이 정도 기간으로 택도 없다. 게다가 똑같은 짓 해 봤자 의미 없다. 저쪽은 살인마가 피사체고, 이쪽은 원조교제. 이 임팩트의 차이에서 이미 패배한 겁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방향성은 싹 갖다 버렸어요.
타케쿠마­ ­그건 그렇다 치고, 아직 미련은 남아 있다는 것일까요?
안  노­ ­하고는 싶은데, 짜고치는 다큐멘터리 말고 진짜를 해야지.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동경하는 게 아니라, 다큐 자체를 동경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이거는 그냥 평범하게 찍는 수밖에 없구나.
타케쿠마­ ­근데 카메라워크가 평범은커녕 끈적했잖아요. 『열렬투고熱烈投稿』가 생각났는데 (웃음). 판치라 구도 같은 거.
안  노­ ­아니, 빤쓰 나오는 컷 다 잘라냈거든요. 결국 낯선 그림을 되도록 잘라내다 보면 그런 그림이 되는 거죠. 평범한 그림은 재미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되어갔던 것 같고.
타케쿠마­ ­화면 사이즈가 시시때때로 변하잖아요. 스탠더드에서 갑자기 비스타사이즈가 되거나. 그거 법칙성이 있는 건가요?
안  노­ ­법칙성?
타케쿠마­ ­네에. 드라마 부분은 스탠더드 텔레비전 사이즈고, 풍경만 있는 씬에서는 비스타가 되기도 하잖아요. 어라, 혹시 이거 만화의 코마분할을 구현하려고 했던 건가. 방금 떠오른 건데.
안  노­ ­아아, 그거에 가깝지요. 뭐어, 역으로 가로로 좁고 세로로 길쭉한 화면도 마찬가지.
타케쿠마­ ­히로미가 친구 여자애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혼자 원조교제를 하기로 결심하는 그 씬 말이죠. 화면이 갑자기 세로로 길어지면서, 여자애 네 명이 거기 밀어넣어지는. 그 장면, 굉장한 긴장감이 있었어요.
안  노­ ­예에. 만화의 코마분할에 가까운 기법이죠. 말씀대로입니다. 만화에서 세로로 긴 코마라던가. 아니메 할 때 그게 엄청 부러워서, 부러워서.

무의미한 것을 무의미하게

타케쿠마­ ­원작을 읽어 보면, 굉장히 리믹스적이라고 할까, 편집적이잖아요. 특히 동네의 소음과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믹스되는 듯한 묘사. 읽어 보고, 아아, 이거 안노씨가 하면 확실히 재미있겠다 싶었고.
안  노­ ­재미야 있지만, (영화로 만드는 것은) 어려웠어요. 뭔가 다른 방법론이 없었나 생각하게 되는데요. 정보의 병렬화는 문자매체 쪽이 심플하고 좋습니다. 그림도 아직 심플하잖아요. 영화가 되면 4차원이 되어 버리니까. 4차원적인 복잡한 것에, 정보의 병렬화는.
타케쿠마­ ­수신자 측의 정보처리능력의 문제도 있고.
안  노­ ­그런 것입니다. 뭐어, 저도 미숙하고, 관객도 미숙하다는 것이지요. 말인즉슨, (화면에) 비치는 것에서 의미를 찾잖아요. 무의미한 컷이라는 것이 관객에게는 존재하지 않아.
타케쿠마­ ­그렇지요. (역주: 관객의 눈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고.
안  노­ ­반드시. 가령 전신주가 비치고 있으면, 전신주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거죠.
타케쿠마­ ­근데, 그건 인간의 심리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요.
안  노­ ­어쩔 수가 없지요. 거기에서 무의미를 발견할 수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미숙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지요. 앤디 워홀의 그림처럼 무의미한 것들이 영상으로 만들어져도 이거 굉장해 하고 생각해 버리는 겁니다. 뭐어, 무대 이런 거라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 그래서 관객이 싫어하지만 않으면 말이지.
타케쿠마­ ­워홀도 그렇고, 60년대의 팝아트는 그런 것을 지향했잖아요. 그런데 반드시 의미가 거기서 파생되어 버리죠. 제작자 의도와 상관없이.
안  노­ ­파생되고, 그래서 또 좌절이 있고.
타케쿠마­ ­무의미한 짓을 했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반드시 의미를 읽고 취한다. 그래서 그 낙차로 장사하는 거잖아요. 팝아티스트라는 게.
안  노­ ­예에. 원작의 정보의 병렬화에는 그에 가까운 것이 있었지요.
타케쿠마­ ­그게 맛있는 부분인데요. 그치만 안노씨는 그거를 『에바』에서 실컷 맛보았다고 생각됩니다만. 아무 것도 아닌 컷에 대해서 팬들이 온갖 억측을 한다던가.
안  노­ ­예에. 그거를 역으로 이용했다는 측면도 있는데요. 『에바』에서는 말이죠.
타케쿠마­ ­그렇구나. 제가 좀 착각한 것일 수도 있는데요, 작년에 안노씨하고 같이 『간류섬厳流島』(미타니 코우키三谷 幸喜 작) 연극 보러 갔을 때, 무대에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계셨지요.
안  노­ ­예에. 지금도 있는데요.
타케쿠마­ ­그 말을 듣고 제가 생각했던 게, 무대 일이라는 건 인간관계의 축도縮図 아니겠어요. 아니메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 그대로의 연기자와 1개월 정도 연습을 함께하는.
안  노­ ­그렇지요.
타케쿠마­ ­응. 그래서 날것의 연기자와의 관계성을 만들어가면서, 작품에서도 인간관계를 파고드는 그런 부분에서 안노씨의 관심이 있는 것인가, 하고 제 멋대로 생각했거든요. 더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다큐멘터리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무의미」라는 것에 포인트가 있어서.
안  노­ ­아아, 그거는 기획 나름인 거죠. 『러브&팝』으로 그 짓 해 봤자 소용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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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팝이 될 수 없어요. 그런 질척질척한 건 『에바』에서 다 쏟아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것이 싫었던 사람이, 이번에는 시원시원해서 좋다고 말해 준다던가. 다만 그 내용이 농밀할 것을 기대했던, 타케쿠마씨라던지, 그런 사람에게는, 이번 영화는 너무 담백하고 맛이 부족하다 그럴 수 있죠.
­ ­뭐어, 이 방법론으로는, 그거는 무리라고.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겨우 도착한 데가 이거니까. 이거는 영화의 신이 말해주는 대로 하다 보면 이렇게 되는 거네요. 그 흐름만은 거스르려고.

매번 되는대로 합니다

타케쿠마­ ­그렇다면 이 작품은, 안노씨에게 있어 프라이빗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안  노­ ­전혀 아니에요. 그런 거 『에바』로 충분해요. 이미 다 했어. 『에바』는 타인들의 프라이빗까지 침식하고 있으니까요.
타케쿠마­ ­너무 지나쳤다?
안  노­ ­지나쳤다고 해야 하나,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여자애들 소재 같은 거, 거의 다 써 버렸기 때문에. 『에바』에서. 그러니까, 이제 없어요. 가게 문을 닫았달까 (웃음). 폐점 대바겐세일이라는 것.
타케쿠마­ ­그러면 이번에는 오히려 재고가 없는 지점에서 시작했다는 것인가요?
안  노­ ­재고를 남의 집에서 떼어 온 거죠. 제 가판대가 비었으니까, 다른 가판대에서 받아와서 그걸 팔아먹은 거지. 유통이란 그런 거죠. 그러고 나선 들여온 소재를 처리해서 만드는 거.
타케쿠마­ ­그치만 전에 『러브&팝』에 관한 인터뷰를 했을 때는, 안노씨가 원작을 읽고, 여자애 캐릭터가 재미있어서 의욕이 생겼다, 그런 말씀 하지 않으셨던가요?
안  노­ ­으ー음. ……그런 기사들은 아무 것도 체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읽어도, 아아, 아닌데.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었을 텐데. 내가 말을 잘못 했었나.
타케쿠마­ ­아니 뭐, 그거는 역시 영화를 봐 달라는 것으로 감독으로서의 답은 다 하신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의 안노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아무튼 지금 하고 싶다는 말, 지금 해야만 한다는, 곧 마흔이 되어버린다는 그런 조조함 같은 것은 굉장히 잘 알겠는데요, 그 이외에 작품을 만드는 동기를 모르겠거든요.
안  노­ ­동기…….
타케쿠마­ ­이런 거 하고 싶다, 이 소재가 아니면 안 된다, 이렇게 찍는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 거.
안  노­ ­아아, 그런 거. 전 항상 없어요. 매번 되는대로 합니다. 되는대로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타케쿠마­ ­되는대로 인생.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매번 구애되게 되잖아요.
안  노­ ­뭐어, 그런 거죠. 동기에 연연해서 뭐 어쩌자고. 그런 거 어딘가 있기야 하겠지만, 딱히 그게 뭐냐 그런 건 상관없다, 그런.

봄의 영화는 지옥이었다

안  노­ ­그런데 딱 한 번 그렇지 않았던 게, 봄의 영화입니다.
타케쿠마­ ­『DEATH&REBIRTH』?
안  노­ ­봄 영화가 그랬네요. 이거를 해야만 한다는 동기가 있었고. 동기부여 해 봤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타케쿠마­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만들어버렸다?
안  노­ ­그래서 봄 쪽은 인생 최대의 패전. 그렇게 처절하게 패배한 건 처음이예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품을 드랍했으니까요. 드랍한 적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었는데요. 텔레비전 방영 당시에도, 아무리 봐도 이거는 못한다는 아슬아슬한 시추에이션에서도 방영에 펑크는 내지 않았으니까요.
타케쿠마­ ­작년이었던가요, 안노씨, 한 번 끝낸 작품을 다시 한 번 자신을 몰아붙여 만드는 것은 괴롭다고 하셨었죠. 그 괴로움의 절정이 올 봄이었던 것?
안  노­ ­아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하지 말아야 했었다고. 그것을 봄에 느꼈던 것이고요. 애초에 하지 않아야 했을 짓에 스태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은, 괴로움이죠. 이젠 고개 들 면목도 없어. 그런데 업무상 거기 있어야 해. 그거는 지옥입니다.
타케쿠마­ ­그거는 여러가지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여름 『에바』에 관해서는, 끝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굉장한 퀄리티였잖아요.
안  노­ ­스태프들이 굉장하니까 당연하지요. 거기까지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거는 애써 냉정하게 했어요. 테레비판 쪽이 뜨거웠지요. (여름 『에바』에 관해서는) 저렇게 깨는 걸 만들어본 게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
타케쿠마­ ­그래서 이번에는 안노씨가 굉장히 릴렉스해서 찍은 것 같다는 인상이 드네요. 『러브&팝』에서는.
안  노­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타케쿠마­ ­이게 『에바』로부터 회복하는, 일종의 재활치료가 된 것인가요.
안  노­ ­아니 재활이라고까지 해야 하나? 『에바』가 끝나고 나서 저는 그걸로 됐어요. 끝내기만 하면 이제 OK니까. 그런 의미에서 여름 『에바』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끝내 버리겠다는 목적이. 제발 좀 끝나라. 스태프들의 후련한 얼굴을 보고 싶으니까. 이런 내가 만든, 시작부터 엉망진창인 것에 말려든 사람들을…….
타케쿠마­ ­후련한 얼굴, 다들 보여줬나요? (웃음)
안  노­ ­보여줬어요. 다행이었죠. 그 얼굴들을 보고 뭔가, 아아, 하길 잘 했구나. 과정으로서의 봄 영화를 포함해서 『에반게리온』을 어떻게든 계속하길 잘했구나.

타케쿠마 켄타로竹熊 健太郎●1960년 동경 출생, 편집가. 안노 감독과는 『스키조 에반게리온』, 『파라노 에반게리온』(폐사 간행)에서부터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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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낙스 응접실에서. 인터뷰를 촬영하는 백시시 야마시타씨의 등짝.

AV의 AV를 찍고 싶다

안  노­ ­뭐랄까, 이렇게 하는 인터뷰에도 군데군데 날조와 거짓이 있는데요.
타케쿠마­ ­에?
안  노­ ­아니, 이런 인터뷰에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영화만은 그렇지 않으니까.
타케쿠마­ ­이거 당해버렸군요 (웃음).
안  노­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전부 영화로 가 버렸으니까요. 인터뷰는 아무리 노골적으로 말해 봤자 결국 홍보를 위한 문구니까요.
타케쿠마­ ­음. 그러니까 저도, 오늘 들은 게 없는 거고 (웃음). 말씀하신 대로 작품을 본다는 것은 좋은 것이고. 『에바』는 다르지만요. 그거는 작품이라기보다 현상이랄까, 사건이랄까, 그런 거니까요. 『러브&팝』은 작품이거든요. 그러면 사실 물어볼 게 없어져 버리고. 뭐어, 오늘은 왠지 이런 카메라도 돌고 있고 (웃음).
안  노­ ­(옆에서 카메라를 돌리는 백시시 야마시타씨를 바라보고) 실은요, 다음에는 백시시 야마시타씨와 컴퍼니 마츠오씨를 따라다녀 보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있거든요. AV촬영장에.
타케쿠마­ ­아, 야마시타씨나 마츠오씨의 다큐멘터리를?
안  노­ ­예에. 찍는 쪽이 찍힌다는 것이 (웃음). 하지만 마츠오씨한테는 취재 거부당할지도 모르겠네요. 하메도리는 두 사람의 세계니까, 제3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디다. 그러니까 저는 그 때 공기가 될 테니까 (웃음). 아니, 그 방의 단순한 오브제가 될 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둘이서 하실 거 하라고. 여배우분하고는 일절 말을 섞지 않고. 그냥 카메라만 돌리는 거야.
­ ­그리고 역하메도리를. 3P를 말이죠. 3P를 서로 촬영하는 하메도리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뭐어, 마주보고 있는 남자들이 둘 다 같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묘한 영상이라서 좋겠다 생각합니다만.
타케쿠마­ ­그거 참 좋겠네요 (웃음). 백시시씨도 한번 해 보시죠. 어쨌든 저 양반은 항상 간사한 입장인 셈이니까. 이상한 사람들한테 터무니없는 행위를 시키고, 그거를 관찰일기처럼 찍어.
안  노­ ­그치. 그렇지. 그래서 내가 카메라를 들고 거기 발을 들여놓으면 (웃음). 아니, 백시시씨는 조금 (본인의 내면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재미있어요.
야마시타­ ­제 현장이라면, 언제라도 괜찮습니다.
안  노­ ­이쪽이 좀 여유가 생기면, 뭔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방해하러 가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저도 AV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더 생각하다 보니 AV 자체를 찍고 싶은 게 아니고, AV를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을 찍어보고 싶다. 그런 거라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아서.
타케쿠마­ ­아아, 말 나온 김에 그거 메이킹을 맡겨 주시죠, 저한테 (웃음). 백시시 야마시타를 찍는 안노를 찍는다. 아니면 찍지 않고 글이라도 괜찮은데.
안  노­ ­다만 그걸 발표할 매체가 없어 (웃음). 그래도 연내에 가능하다면. 올해 제 감독작품이 네 편이에요. 봄, 여름, 가을 이렇게 감독했으니까, 그래서 연내에 한 편 더 할 수 있다면, AV의 AV밖에 없다. 백시시 야마시타씨의 하루라던가.
타케쿠마­ ­근데 백시시씨가 하루종일 잠만 자면 어떡할 거예요.
안  노­ ­그 때는 자는 꼴을 찍는 거지.
타케쿠마­ ­무슨 앤디 워홀입니까 (웃음).


­ ­약 한시간 반만에 인터뷰 종료.
­ ­예정조화와 유도심문으로 가득한 이쪽의 질문을 한결같이 빗겨가는 안노 히데아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속되게 인터뷰어 울린다インタビュアー泣고 하는데, 이거는 그런 질문밖에 준비하지 못한 인터뷰어의 탓이다.
­ ­반성하면서 귀가하던 도중, 문득 「아, 그거를 물어볼 걸 그랬나」 하며 질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멋대로 상상해 본, 라스트씬이 어디서 따온 것인가 그것이었는데……. 안노씨는 「관계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씬에 그 원본 소재의 「기분」을 들어맞춰 보면, 내 안에서 『러브&팝』은 상쾌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그래도 뭐, 만일 그게 맞다고 해도, 퀴즈가 아니니까, 작자에게 그것을 대답할 의무는 없다.
­ ­그런데, 이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예언해 두자. 「자신의 감독생명은 앞으로 몇 년」이라며 페시미스틱한 언사를 내뱉는 안노씨지만, 40대, 50대가 되어도 이 사람은 「앞으로 몇 년」이라고 계속 말하지 않을까.


영화 『러브&팝』은 ’98년 1/9부터 시부야 파르코파트3(1/9는 종일 흥행, 1/10부터는 레이트쇼), 1/10(토)부터 마루노우치 샹젤리제 등 전국의 양화계洋画系 영화관에서 로드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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