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세 히로미, 『여성학연보』 제18호(1997년) pp. 5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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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여신따위 될 수 없는 채 나는 살아간다」
이것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SF 애니의 주제가의 한 소절이다. 주인공이 29세의 여성(카츠라기 미사토)과 14세의 남아(이카리 신지)라는 설정으로 내 눈길을 끈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1995년 10월부터 1996년 3월까지 테레비도쿄 계열에서 방영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다.(1) 집필 시점에서는 극장판 제작이 계속되고 있고, 지금도 다양한 연구서들이 출판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주로 TV판을 텍스트로 하여, 에반게리온 가운데 묘사되는 여성상에 대하여 분석을 가해보고자 한다. (이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에바」로 약칭한다.)
「에바」는 서기력 2000년의 세컨드 임팩트로 유발된 천재지변에 의해 인류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후의 이야기다. 「에바」의 직접적인 무대인 2015년에는, 인류가 그 아픔으로부터 막 벗어나려는 참이다. 그런 시점에 세컨드 임팩트를 일으켰다는 「사도」라는 적들이 내습해온다. 인류멸망으로 이어질 서드 임팩트를 회피하기 위해, 인류는 「사도」를 쓰러뜨려야만 한다. 「사도」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정체불명의 물체다(형상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거대로봇 같은 것, 정신체 같은 것, 마이크로머신으로서 생체컴퓨터를 침식하는 것 등 다양하다).
「사도」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14세의 아이들이 탑승해서 정신력으로 조종하는 인조인간 에반게리온 뿐이다. 「사도」를 쓰러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특무기관 네르프의 총사령관 이카리 겐도는 남에게 맡겨 놨던 자기 아들 신지를 파일럿으로 호출한다. 「도망치면 안 돼」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자신을 타일러 에반게리온에 탑승하는 신지. 그런 신지를 전술작전부의 카츠라기 미사토가 보호자로서 맡게 된다. 거기에 독일에서 돌아온 소류 아스카 랭글리라는 천재아가 가세한다. 또 한 사람의 파일럿 아야나미 레이는 감정표현이 결핍되어 있고 남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아야나미 레이의 과거는 말소되어 있으며, 아무도 그녀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야나미 레이가 이카리 신지의 어머니이며 이카리 겐도의 아내인 이카리 유이의 클론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암시된다.
그런데, 작중에서 「사도」의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또 특무기관 네르프의 목적인 「인류보완계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불분명한 채로 맞이한 최종회는(2) 「실험작」이라는 평가와 「시간부족으로 인한 태작」이라는 혹평(3)을 동시에 받고 있다. 마지막의 2회차는 주인공 신지의 내면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져, 지금까지 보여준 장대한 세계관이나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최종화의 「축하해」라는 뭔가 알 수 없는 결말과 함께 어둠 속에 내팽겨쳐진 것과 같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나 문제가 많은 최종화였지만, 「에바」는 영화제작이 결정되며 공전의 붐을 일으켰다. 영화는 당초 예정이 변경되어 2부작 전후편으로 97년 여름에 후편이 공개된다.(4) 최종회를 화제로 삼는 사람들이 이미 많지만, 나는 「에바」 가운데 표현된 여성상이 「여성의 사회참여로서의 전쟁」과 「모성」을 둘러싼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애니 역사상 획기적인 것임에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제작자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는데 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도 고찰하고자 한다. 최종화를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은 분명히 매력적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가 아직 완결되지 않은 현재로서, 「시간이 없어서 못 만들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인 최종화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논평을 피하고자 한다.
1. 싸우는 여자아이
에반게리온에 탑승하는 것은 14세의 아이들이다. 피냄새가 나는 액체 속에 자리잡고 아이들은 「사도」와 싸운다. 이 싸움에서 필요한 것은 전투 테크닉이나 체력 같은 것이 아니다. 에반게리온이라는 인조인간에 깃든 혼과 얼마나 싱크로할 수 있는지 그 정신의 능력이 요구된다.
에반게리온에는 아무래도 어머니의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협소하고 어둑한 조종실은 양수를 연상시키는 액체로 충만하다. 에반게리온에 전원을 공급하는 것은 「엄빌리컬 케이블」. 탯줄이라는 의미다. 위기에 처했을 때 파일럿 이카리 신지가 보게 되는 환상 역시 어머니의 이미지다. 그러나, 어머니의 이미지를 받아들여 몇 번이나 위기를 벗어나는 신지와 달리, 아스카나 레이에게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5) 아스카는 어머니를 거부한다. 레이는 어머니의 클론이지만 어머니가 아니며, 정작 자기 어머니는 없다. 「에바」 속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는 어머니와의 갈등에 의해 만들어져간다. 그것은 신지가 어머니의 보호를 받으면서 아버지(이카리 겐도)와 갈등하는 가운데 성장해가는 것과 대조적인 것이다.
싸우는 여자아이와 월경: 소류 아스카 랭글리
에반게리온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언제나 성적이 좋던 아스카의 에반게리온과의 싱크로율이 떨어진 것을, 카츠라기 미사토는 월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스카, 오늘 상태 안 좋아. 둘째 날인 걸」. 과학자인 아카기 리츠코 박사는 「싱크로율은 표층적인 신체의 부조에 좌우되는 게 아니야. 문제는 보다 심층의식에 있는 거야」라며, 월경을 신체만의 문제로는 파악하지 않는다. 사실 아스카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과 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신체를 저주한다. 「여자라고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냐고. 아이 따위 절대 필요 없는데!!」 (제이십이화 「적어도, 인간답게」)
일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서 「싸우는 여자아이」란 필수 아이템이며, 이야기 세계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6)의 나우시카가 그렇고, 「미소녀전사 세일러문」(7)의 츠키노 우사기가 그렇다. 오래된 작품 중에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모리 유키(8)도 전함 야마토에 탑승해 싸우는 여성이라 하겠다. 그러나, 「싸우는 여자아이」의 「성」은 부풀은 가슴이나, 여자아이를 상징하는 긴 머리칼이나 속눈썹, 높은 목소리 따위의 「여자다움」으로 나타날 뿐, 월경이라던지, 성에 대한 호기심이라던지, 실제의 성욕 같은 것은 표현되어오지 못했다. 낳는 성으로서의 여성을 나타내는 「월경」, 그리고 성에 있어서 여성 자신의 주체성이 묘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해도 좋다.
아스카는 달랐다. 아스카는 그러한 「싸우는 소녀」들과는 이질적인 존재다. 월경 때문에 고뇌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호기심으로 「키스해 볼까. 심심하니까」라며 신지를 꾀어도 보고, 미사토의 연인인 카지 료지를 「어른 남자」로 보아 「카지씨 하고라면 저런 것도 이런 것도」라며 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스카는 선택받은 아이이며, 우수한 파일럿이다. 그녀는 스스로의 발로, 성이라는 미지의 세계의 앞에 서려고 한다. 거기에는, 장식물 인형으로서의 「싸우는 여자아이」가 아니라, 성장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아스카는 자신의 월경을 저주한다. 「낳는 성」으로서의 자신을 저주하고, 완고하게 부정한다. 시리즈 후반에서 밝혀지는 것이지만, 아스카는 유아기 때 자기 모친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아스카의 모친은 정신이 병들어, 어린 아스카와 동반자살을 기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머지않아 아스카가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으로 선발되어 의기양양 돌아왔을 때, 모친은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지 마 엄마! 엄마를 그만두지 마! 나, 엄마가 좋아하는 착한 아이가 될게!」
「그러니까 나를 봐 줘!」 「나를 죽이지 말아 줘!」
「싫어! 나는 엄마의 인형이 아니야!」 (제이십이화 「적어도, 인간답게」)
그 「어머니」에 대한 부정으로 인하여 아스카는 에반게리온과의 싱크로에 실패한다. 그리고, 아이덴티티의 중핵인 「파일럿」이라는 길이 닫혀 버린다. 「싸우는 여자아이」에게 있어서 「싸우는 것」은 사회참여이며, 자기실현이다. 이야기 작중에서 에반게리온에 타는 것의 의미가 등장인물의 입으로 집요하게 이야기된다. 아스카는 「스스로 내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기 때문」에 에반게리온에 탄다고 말한다(제십육화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하지만, 「모성」을 부정한 채로 에반게리온에 타는 것은 「싸우는 것」=사회참여가 막히는 것을 의미했다. 어머니에게 거절당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거절하게 된 것임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아스카는 에반게리온을 조종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것은, 계속 숨겨오고 있던 자신의 여림이 폭로당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아스카는 망연자실하여 병원에 수용당하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극장판(「사도신생」)에서 아스카는 부활한다. 에반게리온 속에서, 태아처럼 팔다리를 웅크린 채 잠들었던 그녀는, 꿈 속에서 이미지로 나타난 「모친」과 매듭을 짓는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어머니」를 알아차리고, 「어머니」를 받아들임으로써 각성하여, 에반게리온으로 최후의 「사도」인 「인간」과 싸우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어머니인 것」으로부터의 자립과, 다시 「어머니인 것」과 화해하여 성장하는 여성이라는 모델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에바」를 누군가의 성장 이야기라고 한다면, 「신지의 성장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바」는 기본적으로 신지라는 남자아이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모색하며 성장하는 고전적인 성장물이라 할 수 있다.(9) 사실, 신지는 출산의 이미지를 따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10) 한 번 에반게리온에 흡수당한 뒤, 자신이 태어날 때 부모의 대화를 의식중에 듣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함으로써 신지가 부활하는 제이십화는 상징적이다. 제작진은 「에바」를 남자아이의 성장 이야기로 만들었을 뿐, 여자아이의 성장을 묘사할 생각은 전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바」의 재미는 제작자로서는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여자아이의 성장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심지어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스카라는 캐릭터는 일견 일면적(적극적, 고압적, 자신가)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현명하기만 하면, 능력만 있으면 그대로 세계와 예정조화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피하고, 또한 모든 등장인물에 대하여 정성스러운 인물조형을 의도한 결과, 그녀의 성장 이야기도 묘사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이것이 제작자 측의 의도 속에 존재하는 「현대의 여자아이의 리얼」이 반영된 것이라면, 「현대의 여자아이의 리얼」이란 즉 「성욕을 가지고 있고, 성적으로 주체적인 여자아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자아이의 성장 이야기인 「에바」는 그 복잡함으로 인하여 여자아이의 성장 이야기로서도 독해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묻지 않은 그릇으로서의 여성: 아야나미 레이
아야나미 레이는 「과거 내력은 말소」되어 수수께끼로 가득한 14세다. 그녀는 사실 클론이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그녀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모르는 것일 뿐」(11)이다. 텔레비전판에서는 최후까지 명확히 언급되지 않은 것이지만, 그녀가 또다른 파일럿 이카리 신지의 모친(=이카리 겐도의 아내) 이카리 유이의 클론이라는 것이 여기저기서 암시된다.
아야나미 레이가 태어난 곳은 수조 안이고, 자라난 곳은 어두컴컴한 지하의 살풍경한 방이다. 레이를 만들어낸 기술은 에반게리온을 만들어낸 시스템과 동일한 것이며,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총사령 이카리 겐도와 과학자 아카기 리츠코 박사 뿐이다. 이카리 겐도는 레이에 대해 깊이 마음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12) 아야나미 레이는 이카리 겐도에게만 살짝 마음을 열고 있다. 무엇보다, 그 이카리 겐도와 아야나미 레이를 이어주는 것은 「에반게리온을 타고 사도와 싸운다」는 행위 그 자체다.
어떤 의미에서 아야나미 레이는 가장 서러운 존재다. 타자와 관계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불행이나 월경 같은 것은 그녀를 위협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흥미가 없으므로 성에 대한 관심도 희박하고, 타인과 경쟁하려 들지 않으니 월경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13) 「어머니」의 클론이면서도, 레이 자신은 「어머니」를 가지지 못한다.
「나한테는 [에반게리온 외에] 달리 아무 것도 없는 걸.」
「내가 죽어도 대신할 게 있는 걸.」
「잘 있어.」 (제육화 「결전! 제3신동경시」) []안은 필자
레이에게 죽음이란 가까운 것이다. 내가 내가 아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유(레종 데트르)」가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어도 제2, 제3의 아야나미 레이를 수조에서 꺼내올 것임을 눈치채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이미 두 번째 클론이다.(14) 그러나 그녀는 이카리 신지에게 도움을 받고, 자신이 무사함에 눈물을 흘리는 신지를 보고 듣는다. 「또 울고 있어. 왜 울어?」 「아야나미가 무사하니까 기뻐서 우는 거잖아.」 「이럴 때,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 미소짓는 레이. 그 때, 때묻지 않은 인형이었던 인형이었던 그녀에게, 확실히 감정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제육화).
하지만, 인격이나 감정은 레이에게 기대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레이를, 에반게리온 초호기는 거절한다(제십구화 「남자의 싸움」). 「때묻지 않은 그릇」이었던 레이는, 구토감이 치밀면서 탑승을 계속할 수 없다. 에반게리온 초호기에는 이카리 유이의 인격이 이식되어 있다. 억압적인 「어머니」(=이카리 유이)는 「딸」(=그녀의 클론으로서의 레이)의 감정의 획득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레이는 신지에게 있어 「어머니」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청소할 때, 아야나미가 걸레를 짜는 걸 보고 있으니까, 뭔가 『어머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신지의 말을 듣고 뺨을 붉히며 당황하는 레이(제십오화 「거짓과 침묵」)는 마치 「어머니」와 「딸」이라는 라벨을 한몸에 부여받아 혼란스러워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제이십삼화 「눈물」에서 레이는 적 「사도」에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침식당해간다. 레이는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사도」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마음의 「쓸쓸함」을 깨닫는다. 하나가 되자고 유혹하는, 레이의 얼굴을 한 레이 마음 속의 「사도」. 그러나, 「나는 나. 네가 아니야」라며 레이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녀는 「사도」에게 말한다. 「혼자인 게 싫어서 그러지?」. 그 말이 「사도」를 향한 것만으로, 자기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음을 깨닫는 레이. 그녀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레이와 융합되어가던 「사도」가 신지가 타고 있는 에반게리온을 향해 가는 것을 보고, 레이는 자기 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내 마음? 이카리군과 함께하고 싶어?」 아야나미 레이는 그를 지키기 위해 자폭한다. 그리고, 세 번째 레이는 두 번째 레이의 기억을 이어받지 못한다.
감정을 가지려고 하는 인형에 대한 「징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에피소드는, 그러나 또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던 아야나미 레이는, 「사도」의 침식으로 인해 억눌려 있던 「쓸쓸함」, 「서러움」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영상의 이미지대로 정신적 강간이기도 하다.(15) 정신의 강간이 가져오는 것은 정신의 해방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기도 하며, 스스로 키워가던 「자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외부에서 불러들인 자아는 의지와는 달리 폭력적으로 타인을 갈구하고, 신지에게 향했다. 「사도」와의 융합=파멸의 길에서 신지를 구하고자, 레이는 자폭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머니」로서의 레이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2. 성인 여성들
「에바」의 이야기 가운데서 싸우는 성인 여성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세계 속에서 「싸운다」 함은 어떤 것인가. 앞서 썼다시피 「싸운다」는 것이 사회참여라면 「에바」 세계에서 여성의 사회참여율은 높은 편이다. 허나 멈추어 생각해 볼 지점들이 몇 가지 있다.
한 가지는 싸울 때의 코스튬이다. 싸운다고 해도 그 싸우는 방법은 각인각색이라, 이 이야기에서 전선에서 싸우는 것은 거의 항상 14세의 아이들이다.(16) 29세의 카츠라기 미사토는 에반게리온을 직접 지휘해서 싸우고, 30세의 아카기 리츠코는 컴퓨터를 구사하며 과학의 힘으로 에반게리온을 서포트함으로써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 때의 코스튬은 에반게리온을 조종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상당히 제멋대로이고 개인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대부분 미니스커트를 입고, 신체의 선이 또렷하게 떠올라 「여성성」을 강조하는 듯한 옷을 즐겨 입는다.
또 한 가지는, 「어머니」인 여성이 그려지는 방식이다. 유일하게 행복한 듯한 「어머니」는 이카리 겐도의 죽은 아내 유이 뿐이고, 다른 「어머니」들의 삶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에바」의 메인 테마로서 「어머니」의 중함은 무시할 수 없다. 「어머니」를 일방적으로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어머니」의 혼이 깃든 에반게리온이 인류를 구한다. 이 모순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엘리트 여성의 「여성성」: 미사토와 리츠코
엘리트 커리어 여성이 「남자처럼」 패션을 지향하던 것은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제정 전의 이야기다. 어깨뽕을 넣은 신사복으로 몸을 감싸고 씩씩하게 걷는 커리어 여성의 이미지는 80년대를 절반 꺾을 무렵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와 평행하게, 애니메이션에서도 적극적으로 싸우는 여성들의 복장이 달라져 갔다. (현실에 비해 애니메이션의 표현이 10년 정도 뒤처진 것이었다.) 팔다리에 휘감기며 귀여움 말고는 불편할 뿐인 여성복이야말로 미니스커트 등 당대의 유행 패션이다. 반면 남장을 하고 싸우는 여성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17) 그 뒤, 남성팀의 홍일점으로서 버티고 있는 여성에게는, 형태는 거의 남성의 것과 같지만 분홍색이나 빨간색으로 「여성성」을 마킹한 전투복이 주어졌다. (이것은 에반게리온에 타는 14세 아이들에게도 해당한다). 그리고 시대는 흘러, 「여성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싸우는 것이 애니메이션에 있어서의 싸우는 여성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세일러문」의 미소녀전사는 미니스커트로 몸을 감싸고, 「폭렬헌터」의 티라와 쇼콜라는 싸울 때의 SM본디지 풍의 코스튬으로 화제가 되었다.(18) 이러한 현상은 「여성성」을 긍정하며 싸운다는 평가 이전에, 「보여지는 성」으로서 이야기에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내게 느끼게 한다. 「에바」에서 그 현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19)
에반게리온의 지휘를 직접 담당하는 전술작전부의 「군인」인 카츠라기 미사토가 사복으로 즐겨 착용하는 것은 바디컨셔스한 미니스커트가 많다. 신지에게 전달한 사진에는, 자기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여기에 주목!!」이라는 글자가 가슴골 사이를 가리키는 화살표에 붙어 있다(제일화 「사도, 내습」). 일상생활에서는 14세의 신지 앞에서도 탱크톱에 핫팬츠라는 러프한 모습이다. 여기에서는 남성으로서 신지를 성적 위협으로 느끼지 못하는 미사토의 릴렉스한 모습이 그려진다. 그것은 그녀의 29세라는 애니 등장인물 치고 높은 연령설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만, 그녀들의 복장에는 그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것일까?
그녀들의 노출도 높은 복장이, 남성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구경거리인 것도 사실일 것이다. 제작자의 의도로서는, 귀엽고 섹시한 등장인물은 애니메이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성의 「성에 있어서의 주체성」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해보고자 한다.
「에바」는 TV 애니메이션 최초로 베드씬이 묘사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제이십화 「마음의 꼴 사람의 꼴」).(20) LD(레이저디스크)판의 부록으로 수록된 인터뷰에서,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필연성이 없는 섹스씬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연성이 있는 섹스씬은 어린이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거 아닐까.」(21) 그렇다면, 어째서 미사토를 묘사함에 있어서 섹스씬이 필연이 되는가?
카츠라기 미사토는 아카기 리츠코와 마찬가지로, 자립한 전문직의 엘리트 여성으로 묘사된다. 젊음을 판 것도 아니고, 귀여움을 판 것도 아니다. 그녀가 14세였을 때, 세컨드 임팩트가 일어난 남극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부친은 죽었고, 그녀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미사토는 「지옥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후로, 그녀는 가능한 한 타인과의 관계를 가볍게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미사토의 처세술인 것이다. 그러나, 죽어버리고 만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남성과의 관계만은 가벼울 수가 없다. 대학시절의 애인의 앞에서 술기운을 빌려 토로하는 미사토의 말은, 삶에 번민해온 그녀 자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버지를 증오했던 내가, 아버지와 닮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어」
「결국, 나는 사도에게 복수하려는 것일 뿐 모두를 속여 왔다고」
「신지군에게 아무 말도 할 자격 없어, 결국 어린애인 걸. 게다가 형편 좋을 때만 남자에게 매달리는 교활한 여자야!」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절망한다고」 (제십오화 「거짓과 침묵」)
연인에게서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미사토는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재회한 후 그와 재결합하게 된다. 아버지와의 갈등을 자각한 이상 자신에게 「절망했으니까」, 남성과 교제하는 미사토. 거기서, 베드씬이 등장한다. 베드씬은 미사토의 「성에 있어서의 주체성」의 상징과 같다. 베드씬 중에 미사토는 남자의 아래에 깔려 있지 않고, 위에 올라타 있다. 자기 속의 갈등이나 허탈함을 안고 어른이 된 그녀가 성에 대해 취한 스탠스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성」을 주체로서 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것이 베드씬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즉, 미사토의 노출도 높은 복장(일상복인 핫팬츠도 포함해서)은 그녀의 「성에 대한 주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녀는 남성본위의 구경거리이지만, 동시에 그러한 그녀야말로 성적 주체성을 체현하고 있다는 전복이야말로 내가 평가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한편, 30세의 아카기 리츠코는 어떠한가.
과학자인 아카기 리츠코는 군속이 아니기 때문에 제복을 입지 않는다. 그녀는 백의 아래에 딱 달라붙는 하이넥, 노슬리브, 미니스커트, 팬티스타킹이라는 차림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백의 앞섶은 열려 있고, 소매는 대체로 걷고 있다. 그녀는 네르프의 컴퓨터시스템을 완성한 과학자 아카기 나오코 박사의 딸이며, 과학자였던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다. 그리고, 모친의 불륜 상대였던 이카리 겐도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헤비스모커인 그녀의 꽁초에는 빨간 입술연지가 언제나 끈적이게 묻어 있다. 그 광경은 추악하기까지 하다. 쿨하고 이성적인 자립한 여자를 연기하면서, 모친을 이용했던 남성과 리츠코는 관계를 이어나간다. 시리즈 후반에서 아카기 리츠코는 애인인 이카리 겐도에게 끔찍한 취급을 당한다. 대리인으로서 「인류보완위원회」 앞에 전라로 세워져 심문을 받게 된 것이다(제이십삼화 「눈물」). 이 씬은 어린애 같은 미사토와 비교해서 「자립한 어른인 여성」인 것처럼 뵤사되어 온 리츠코가, 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 멀지 않은 머래인 2015년에 이런 식으로 여성을 능욕하는 것이 공적으로 용납될 리가 없는데, 어째서 리츠코는 그것을 받아들인 것일까? 그리고, 이 굴욕적인 심문 이후, 리츠코는 겐도를 위해 만들었던 「더미 시스템」(=클론 배양조)을 파괴하고, 독방에 들어가게 된다.
「여성인 것」이 능욕을 당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팩터라면, 리츠코는 과잉한 「여성성」을 가득 처넣은 결과 파탄이 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요하게 그려지는 입술연지가 묻은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인 재떨이라던가, 염색한 노랑머리, 폭이 좁은 펌프스. 모든 것이 「여성인 것」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로서 지성을 무기로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악의가 느껴진다.
미사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리츠코의 경우도 「여성성」은 단순히 「보여지는 성」으로서만 묘사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보여지는 성」을 가진 인간은 그것에 주체적이지 않으면 비극을 부른다. 미사토와 리츠코의 차이는, 「성에 있어서의 주체성」이었던 것은 아닐까. 「내 몸을 마음대로 해보는 게 어때요? 그 때처럼……」이라며 독방에서 겐도에게 호소하는 리츠코에게는 「성에 있어서의 주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바」에 있어서 「여성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복장이 여성의 「보여지는 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카츠라기 미사토는 이것을 역이용하여 「성에 있어서의 주체성」으로써 「여성성」을 자기 손에 탈환하려 했다. 한편 리츠코 쪽은 「보여지는 성」으로서 이야기에 연결되는 것의 불행을 체현한 것이라고 독해될 수 있다.
「어머니」들의 이야기: 아카기 나오코와 이카리 유이
「에바」에는 어머니들이 몇 명 등장한다. 신지의 어머니인 이카리 유이, 아카기 리츠코의 어머니인 아카기 리츠코,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어머니인 소류 쿄코 체펠린. 하나같이 이야기의 주무대인 2015년 시점에서는 사망한 상태다. 이카리 유이는 에반게리온의 기동실험 중에 에반게리온 속에서 소멸했다. 사체조차 남지 않았다. 아카기 나오코는 첫 번째 아야나미 레이를 살해한 후, 자책에 사로잡혀 몸을 던졌다. 소류 쿄코 체펠린은 정신이 병들어 교수자살했다. 이와 같이 「에바」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비장하기까지 한 최후들을 맞는다.
그러나, 「에바」의 이야기 가운데서 「어머니」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에반게리온의 조종석부터 그렇고,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키워드들에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넘쳐흐른다. 그런데도 실체로서의 어머니의 불행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에바」에서 실체로서의 어머니가 불행한 것은 어째서인가? 회상씬 속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이카리 유이는 이야기의 키가 되는 인물이기도 한데, 어째서 그녀가 「에바」의 키가 되는 것일까?
아카기 리츠코의 모친인 아카기 나오코는, 여자 혼자서 딸을 키워냈고,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서 과학자의 명성도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제2동경대학에 진학한 리츠코는 「(카츠라기 미사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저를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이름의 무게를 깨닫게 되는 느낌」이라고 나오코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제이십일화 「네르프, 탄생」). 실제로 나오코가 개발한 생체컴퓨터는 특무기관 네르프의 사북이 되어 「사도」 영격, 더 나아가 인류의 수호라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이 나오코가 만든 이 생체컴퓨터 시스템이다. 나오코가 만든 컴퓨터는 MAGI(마기)라고 한다. MAGI는 「인격이식 OS(오퍼레이션 시스템)」으로 구동되는 컴퓨터이며, 「카스퍼, 발타자르, 멜키오르」라는 3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컴퓨터들 각각은 나오코 자신의 인격이 이식되어 있다. 나오코는 딸인 리츠코에게 말한다. 「MAGI는 세 명의 나야. 과학자로서의 나, 너의 모친으로서의 나, 그리고 여자로서의 나. 그 셋이 서로 싸우고 있어」(제이십일화). 과학자로서 일류라 할지라도, 어머니됨과 여자됨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로 통합되지 않고, 때때로 대립하는 것이다.
그 모순을 살아온 나오코는, MAGI가 완성된 그 당일에, 아직 유아인 아야나미 레이(제1의 레이)가 던진 악의 있는 말에 격분해, 그녀를 교살해 버린다. 그리고 자책감에 사로잡혀 자살하고 만다. 겐도의 죽은 아내 유이와 꼭 닮은 레이는 나오코를 향해 말한다. 「그야, 소장님(이카리 겐도)이 그렇게 말한 걸. 당신에 대해서. 할망구는 끈질기다던가, 할망구는 쓸모없다던가」(제이십일화). 연하의 이카리 겐도와 관계를 가져온 나오코는 「여자」 부분을 공격받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러한 생생한 삶에 대하여, 딸 리츠코는 「내가 모친이 될 수 없을 것 같으니, 엄마로서의 어머니는 모르겠어. 그래도, 과학자로서의 그 사람은 존경도 했지. 그치만 있지, 여자로서는 증오하기까지 했어」라고 회고한다(제십사화 「사도, 침입」).
「증오하기까지 했다」는 이 대사가 과거형으로 말해지는 것은, 리츠코 자신이 「여자」로서의 문제에 직면하는 가운데, 모친에게 공감하게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MAGI의 프로그램을 손보기 위해 처음으로 MAGI 속에 들어간 리츠코는, 벽면에 쓰여있는 「이카리 바보새끼!!」라는 어머니의 낙서를 알아보고 미소짓는다. 또한, 제십사화에서 컴퓨터바이러스 같은 「사도」가 MAGI의 핵(탈취)를 시도했을 때, 최후까지 남아 역핵으로 「사도」를 절멸시킨 것은 「카스퍼」=나오코의 「여자」로서의 인격이었다. 그 때, 「어머니답네요」라고 말하는 리츠코의 가슴에 퍼지는 것은, 같은 「여자」로서 갈등하는 모친에 대한 공감대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의 「여자」로서의 부분을 딸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어머니」와 「딸」의 이해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22)
나오코의 인생은 과학자로서의 영예는 불편이 없었지만, 그로 인하여 「어머니됨」 그리고 「여자됨」과 갈등이 생겨났다. 이 갈등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여성에게는 친근한 것으로서, 너무나도 리얼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여자」, 「직업인」, 「어머니」라는, 좀 정형적이지만 한 사람의 여성 안에 있는 인격들의 갈등을 언급한 것은, 종래의 애니메이션 작품들 가운데서 획기적인 것이었다고(23) 평가할 만한 것이다.
한편, 「에바」에는 아카기 나오코와 대조적인 모친이 또한 그려진다. 그것은 행복한 웃음이 인상적인 이카리 유이다. 그녀에게는 「여자됨」과 「어머니됨」의 갈등이 거의 없어 보인다. 대학에서 장래의 진로에 대한 질문을 받아 답하는 유이에게는 「취직」, 「대학원 진학(연구자)」 이외에 「제3의 길」이 있다. 「가정에 들어갈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좋은 사람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요」(제이십일화 「네르프, 탄생」).
그리고, 10세 정도 연상인 로쿠분기 겐도(후의 이카리 겐도)(24)와 결혼하여, 아이도 하나 낳는다. 그것이 신지다. 그 겐도를 평하기를 「굉장히 귀여운 사람」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유이는,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상냥하면서, 갈등도 가장 적은 인물로 묘사된다. 어머니로서도, 여자로서도, 그리고 직업인으로서도. 과학자로서 에반게리온의 개발에 관계하여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2004년 에반게리온의 기동실험 중에 사고로 에반게리온에 흡수당하고 만다. 그 실험에 인류의 미래를 걸고 있던 유이는, 「이 아이에게는 맑은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제이십일화)라며 신지를 일부러 실험장에 데려왔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어린 신지의 눈앞에서 유이는 영원히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사고가 고의로 일어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에반게리온 초호기에는 유이의 혼이 깃들게 되었다.
신지는 몇 번이고 위기에 빠질 때마다 에반게리온 속에서 어머니의 이미지와 만나고, 기적적으로 궁지를 벗어난다. 모유를 마시는 신지의 물렁한 영상에 덧입혀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는, 신지에게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 아이는. 이 지옥을」 「어머, 살겠다는 생각만 있다면 어디든 천국이에요. 왜냐면 행복해질 찬스는 어디에나 있는 걸요」(제이십화 「마음의 꼴 사람의 꼴」). 이 대화 이후, 신지는 삼켜졌던 에반게리온에서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많은 논자들이 이미 지적하고 있듯이, 그것은 출산의 이미지를 강하게 환기한다.
유이의 에피소드는 그리 많지 않으나, 「상냥한 모친」, 「품어주고 받아들여주는 모친」의 측면만 강조되어 리얼리티가 희박하다. 유이는 고뇌하지 않으며, 항상 적극적이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에반게리온에 깃들어서 계속 자기 아들을 구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에바」를 모성찬양의 이야기라고 보는 것도 가능은 할 것이다. 「어머니」를 받아들임으로써 「어머니」=에반게리온의 혼과 일체화될 때, 에반게리온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25)
「에바」의 등장인물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또는 회복을 지향하며 변혁을 거듭해 나가는데, 유이만 아니다. 유이는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캐릭터로서, 다른 인물들과는 선을 긋고 있다. 불행한 어머니, 「어머니」로만 머물 수 없는 여성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는 「에바」인데, 유이만 등장하면 「어머니」 역할을 척척 다 잘 해내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재편되어 버린다. 유이는 전 오이디푸스적인 「모자일체 감정의 지복」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묘사된다. 「인류보완계획」이 「고슴도치의 딜레마」(26)의 최종 해결책이며, 「허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시작으로 되돌리는 것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뿐이다」(제이십오화)라는 겐도의 말이 액면 그대로 사실이라면, 분명히 유이는 「잃어버린 어머니」 그 자체다. 그러나, 공들여서 여성의 내면을 묘사해온 「에바」의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분명하게 파탄을 일으키고, 신지의 내면으로 이야기가 침잠해 버린다.
「에바」를 「모성찬양」의 이야기라고 잘라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유이=「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 부상하는 이러한 모순에 주목한다면, 그것은 「모성」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리얼한 여성을 묘사해온 「에바」는 리얼한 유이의 이야기는 그려내지 못했다. 그것을 그려낼 때야말로 「모성」이 제대로 음미될 수 있을 것이다.(27)
결론. 「에바」가 비추는 것
인류가 구원되었는지 아닌지 그것조차 알 수 없는 결말. 「모성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바」. 이야기의 파탄이나 「모성」에 대한 집착, 「여성성」을 이래저래 전시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코스튬 등을 이유로 「에바」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에바」를 지탱해 온 여성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접근했을 때, 일본 애니메이션이 경유해 온 길고도 긴 길의 한 도달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있으나마나 의미가 없는 귀엽기만 한 여자아이로부터 시작하여, 마법소녀의 계보를 따라, 남장미녀를 거쳐, 비로소 애니메이션이 등신대의 「나」에게 호응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28)
「「에바」를 들여다보면 「에바」도 나를 들여다본다」(29)는 말도 있듯이, 지금 미사토나 리츠코와 연배를 공유하는 나는 그녀들의 삶을 리얼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아스카나 레이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됨이라는 것의 복잡함을 리츠코(역자 ― 나오코의 오기인 듯)나 유이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에바」를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그 안의 여성상을 분석해 보았다. 「진짜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서라면, 진심으로 무서워도 좋지 않겠냐」(30)는 결의가 있어서, 그 리얼한 세계를 뒤에서 든든히 받치고 있었을 것이다. 「에바」는 「모성」을 둘러싼 표현에 대하여, 텍스트로서 다양한 독해가 가능한 작품이다. 그것이 제작자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텍스트로서의 「에바」에 있어서의 여성상의 혁신성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了)
주 석
- ^ 스태프는 이하와 같다. 기획・원작: 가이낙스 기획: 프로젝트 Eva 게재: 카도카와서점 월간소년에이스 캐릭터디자인: 사다모토 요시유키 메카닉디자인: 야마시타 이쿠토, 안노 히데아키 부감독: 야마구치 마사유키, 츠루마키 카즈야 미술감독: 카토 히로시 색채지정: 타카기 하루미 촬영감독: 쿠로다 요이치 음향감독: 타나카 히데유키 음향제작: 오디오 타나카 음악: 사기스 시로 음악협력: 테레비도쿄 뮤직 애니메이션 제작: 타츠노코 프로, 가이낙스 프로듀서: 코바야시 노리코(테레비 도쿄), 스기야마 유타카 감독: 안노 히데아키 제작: 테레비도쿄, NAS 홍보: 사토 유우키 (참고 『에반게리온 오리지날 1』: 후지미서방 1996년)
또한, 극장판 「사도신생」은 97년 3월 개봉. 극장판 후편이자 완결편이 될 「Air/진심을 그대에게」의 개봉은 7월 19일 예정. - ^ 「인류보완계획」은 최종화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개개인의 「마음의 보완」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수수께끼가 아직 많다.
- ^ 「이야기가 전혀 수습되지 않은 채 끝났고, 작화도 처음 몇 화는 레벨이 높았지만, 십오화 쯤부터 급속히 조잡해져서, 마지막 2화에 이르러서는 눈 뜨고 봐 줄 수 없는 지경이었다. …… (중략) …… 정열만이 공회전하다가 자멸해 버린 작품, 「에바」를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 (사토 켄지 「당신은 「에바」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스튜디오 보이스 1997년 3월호 p. 37) 사실, 최종화는 셀화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극태명조의 텔롭만 지나가는 선, 색칠도 안 한 러프스케치 상태의 등장인물들, 대본을 그대로 화면에 상영하는 등, 애니메이션의 상식을 초월해서 만들어졌다.
- ^ 본고의 집필 시점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 ^ 영화판에서는 아스카가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씬이 있다. 만, 신지의 경우처럼 기적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년 3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원작, 감독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
- ^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1992년 3월〜1993년 2월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대히트하여 「R」, 「S」, 「SS」, 「스타즈」 등 시리즈화가 되어 1997년 2월까지 계속되었다. 원작은 타케우치 나오코.
- ^ 「우주전함 야마토」 일본의 애니메이션 붐을 선도했던 작품. 극장판은 1977년 8월 개봉. 원작은 마츠모토 레이지.
- ^ 아사리 요시토오 「「잘 먹겠습니다」의 그 앞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2 카도카와서점 p. 171)
- ^ 제십육화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제이십화 「마음의 꼴, 사람의 꼴」
- ^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아야나미 레이 역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3』(사다모토 요시유키・가이낙스 저: 카도카와서점: p. 170)
- ^ 제오화 「레이, 마음의 저편에」에서 이카리 겐도는 자기가 화상을 입어가면서까지 제어불가능 상태로 폭주하는 에반게리온에서 아야나미 레이를 구출한다.
- ^ 제1의 레이는 아카기 리츠코 박사의 모친에게 교살당했다. (제이십일화 「네르프, 탄생」)
- ^ 또한, 레이의 독백 가운데는 「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제십사화 「제레, 혼의 좌」)라는 대사가 있다. 이것이 그녀 자신을 말하는 것이라 보고, 레이는 월경이 없다고 고찰하는 논고도 있다. 실제로 클론생물이 생식능력을 가지는지 어떤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 ^ 「영호기와 레이의 신체를 파고드는 사도. (강간의 이미지로)」라고 시나리오에 지시되어 있다. (「에반게리온 오리지날 3: 후지미서방 1996년)
- ^ 아이들은 평소에는 중학교 교복, 싸울 때는 플러그수트라는 신체에 달라붙는 전투복을 입는다.
- ^ 마츠모토 유우코 「베르사이유의 장미 해설 「남장미녀」의 죽음」 (집영사문고 1994년: 367-275)
- ^ 「폭렬헌터」 1995년 10월〜1996년 3월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아카호리 사토루 원작. 물론 예외도 있다. 예컨대 「건담 W (윙)」(1995년 4월〜1996년 3월)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리리나 피스크라프트라는 여자아이는 싸우는 것에서 자기실현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싸움을 부정하는 지점에 그녀의 사회참여가 있다.
- ^ 「에바」에서 설정된 2015년은 천재지변으로 인해 일본의 기후가 만년 여름이 되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살을 노출하는 복장이 많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 ^ 섹스씬은 다수의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에서 표현된 바 있다. 개중에는 그것만이 목적인 「포르노 OVA」도 존재한다. 그런 가운데 직접적 영상표현이 일체 존재하지 않는 「에바」의 베드씬이 얼마나 모노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다.
- ^ 「신세기 에반게리온」 LD판 해설
- ^ 극장판 「사도신생」에서는 독방에 들어가 있던 리츠코가 MAGI의 외부로부터의 해킹을 막아내기 위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그 후 리츠코는 더이상 그려지지 않지만, 굉장히 흥미롭다.
- ^ 예컨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는 「어머니」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는 있지만, 그 「모성」은 나우시카와 같은 여자아이로 체현되거나(「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한결같이 적극적이고 원기넘치는 만삭의 임산부(「마녀배달부」 1989년 7월)처럼 묘사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어머니 이전의 여성의 마음과 행동을 묘사한 것으로는 「추억은 방울방울」(1991년)이 있는데, 이 작품은 27세의 타에코와 소학교 시절의 타에코가 묘사된다.
- ^ 이카리 겐도의 구성은 로쿠분기 겐도다. 결혼 후에 겐도가 아내의 성을 따랐다.
- ^ 모성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은 영화판에서 더욱 현저하다. 영화판의 주제가 「혼의 르프랭」에서는 「나에게로 돌아오세요」라고 노래하며, 듣는 이에게 「나=어머니에게로 돌아가라」는 연상을 환기시킨다.
- ^ 쇼펜하우어의 우화. 작중 리츠코가 「고슴도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온기를 전달하고 싶어도, 몸을 기대면 기댈수록 온몸의 가시 때문에 서로가 다치게 되지. 인간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라고 제삼화 「울리지 않는, 전화」에서 설명한다. 또한 「에바」는 정신분석학에서 가져온 단어들를 작중 도처에 잔뜩 박아넣어 놓았다. (예컨대, 제십육화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의 영어 타이틀은 「Splitting of the Breast」(분리불안)이다.)
- ^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믹스 작품으로서 「에바」의 미간행 LD 비디오 완성판, 그리고 영화판 후편(1997년 7월 개봉)이 기대되는 것이다.
- ^ 「남장미녀」에 대해서는 앞 주석의 마츠모토 유우코의 논설을 참고하기 바란다.
- ^ 신세기복음협회 저 「신세기 에반게리온 완전공략독본」(삼일서방) p. 218 니체의 경구의 패러디.
- ^ 에반게리온 CD2 해설. (테레비도쿄 프로듀서 코바야시 노리코) p. 10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서 논문을 복사해 보내 주신 잠자리 선생님, 그리고 논문의 존재를 제보하며 번역자를 모집한 에반게리온 갤러리의 “언제나피곤한사람” 유저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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