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전: 『KINO (키노)』 1997년 2월호 (통권 23호) pp. 58–67.
출처: http://animate.kr/ 바탕으로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대조해서 교정함. 고유명사 오류는 원본 그대로 유지.

갑작스러운 ‘에반게리온’ 현상은 지금 동경-LA-런던-뉴욕-
서울을 하나로 연결한다. 지금 여기서 저패니메이션의 새로운
창세기가 시작된다. 인간 자아에 대한 내밀한 고찰과 신화적
요소와 SF적 세계관 위에 성립되어 새로운 세기를 꿈꾸는 2015년의
전사 에반게리온으로부터 97년 저패니메이션의 반동과
혁명을 꿈꾸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 창조와 혁명적 저항으로
우리들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네오 사이버 그룹 가이낙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단숨에 우리를 세기말로부터 새로운 밀레니움의
‘창조의 순간’에 개입시킨다. 당신이 지금 거리에 나서면
마주치는 바로 그 이미지들, 거리의 풍경이 되어버린
주인공들에 대한 모든 것. 이미 ‘에반게리온’은 우리를
포위하였다. 그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난다.
서울을 하나로 연결한다. 지금 여기서 저패니메이션의 새로운
창세기가 시작된다. 인간 자아에 대한 내밀한 고찰과 신화적
요소와 SF적 세계관 위에 성립되어 새로운 세기를 꿈꾸는 2015년의
전사 에반게리온으로부터 97년 저패니메이션의 반동과
혁명을 꿈꾸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 창조와 혁명적 저항으로
우리들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네오 사이버 그룹 가이낙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단숨에 우리를 세기말로부터 새로운 밀레니움의
‘창조의 순간’에 개입시킨다. 당신이 지금 거리에 나서면
마주치는 바로 그 이미지들, 거리의 풍경이 되어버린
주인공들에 대한 모든 것. 이미 ‘에반게리온’은 우리를
포위하였다. 그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난다.
어떻게 해서 80년대 저패니메이션을 끝냈는가, 또는 새로운 시작
신세기 저패니메이션
에바, 안노 히데야키, 가이낙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논쟁 선언
거리로 나가보라. 그 거리가 동경이건 서울이건, 뉴욕이건 LA이건, 런던이건 홍콩이건, 파리이건 상관없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지금 폭풍의 핵이다. 이 단 한편으로 80년대 저패니메이션의 전통과는 완전히 작별이다. 95년 10월 6일에 시작하여 26편의 텔레비전 방영을, 그리고 97년 영화에로까지 끊임없이 자기증식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무엇보다도 혁명적이다. 지금 당신이 미처 모르는 사이에 저패니메이션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놀라운 폭탄 같은 선언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신세기 에반게리온」 현상을 읽는다.![]() |
| 인류보완계획의 책임자인 겐도오 박사와 이카리 신지의 외디푸스적인 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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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프의 또다른 여성 책임자 레이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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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對) 사도 전투 책임자 미사토 현대 일본 직장여성의 페르소나 |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95년 10월 6일부터 96년 3월 27일까지 텔레비전 동경계(5국 네트)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반부터 7시까지 방영되었다. 텔레비전 시리즈 작품으로 전 26회로 구성되었다. 기획, 원작, 애니메이션 제작은 제작회사 가이낙스가 담당하고, 그 중 핵심 멤버인 안노 히데야키(庵野秀明)가 총감독했다. 스토리는 만화원작물이 아니라, 가이낙스 내의 그룹 ‘프로젝트 에바’에 의해 기획된 원작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스토리 설정, 캐릭터 설정, 각본, 연출 전반에 걸쳐 안노 히데야키 자신이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텔레비전 아니메로서는 이례적으로 작가성이 높고 일관된 경향을 지닌 작품으로 완성되어 있다. 상당한 화제작으로 아니메 전문지에 의한 앙케이트에서도 인기가 굉장히 높고, 방영 종료 후인 현재에도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두 회가 통상의 텔레비전 아니메에서 생각될 수 없는 결말이었기 때문에 오츠카 히데시의 「요미우리」신문에서의 코멘트(5월 20일 석간)를 시작으로, 찬반이 서로 교차하는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2회는 97년 2월 발매 예정인 LD와 비디오테이프에서 전면 재제작될 것이라는 것과 97년 여름에는 오리지날 스토리로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이 발표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현재로서는 이 작품이 완전히 종료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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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욕이 강하고, 공주병 기질이 있는 에바 2호기의 조종사 아스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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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카는 레이를 견제하지만, 레이는 아무 생각이 없다 |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총화로서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적어도 오토모 카츠히로의 「아키라」(88) 이래의 충격적 작품이라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후 보다 넓게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유수의 걸작으로서 평가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지 않겠다. 여기에서는 이 작품의 이미지의 매력이 아니라, 오히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 자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무엇을 문제삼아야 하는 것인가?
안노 히데야키와 가이낙스는 상당히 치밀한 작업을 했다. 이 작품에서는, 80년대 일본 아니메의 최선의 요소가 거의 다 들어가 있다고 말해도 좋다. 그들은 우선 이 작품을 위해 (1)미야자키적 세계관(대파국 후의 세계, 멸망한 인류, 거신병, 천사)을 작품세계의 기본적 틀로서 채용하고, (2)이야기는 신화(구약, 그노시즘, 카발라)를 근간으로 채용하고 소년 주인공의 그 아버지와의 외디푸스적 갈등과, 인류와 사도의 전쟁을 유기적으로 대응시킨 메인 스토리를 구축했다. 한편으로 시대설정을 근미래로 하고, (3)오토메틱 장치(신경계 인터페이스로 조종되는 거대생체 로보트,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의 등장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4)거대 로보트 애니메이션으로서 전투 씬도 도입되고, 밀리터리계의 메카닉 묘사의 충실함도 잊고 있지 않다. 주인공은 (5)「건담」의 아무로를 전용하였으나 90년대적으로 보다 섬세하고 내향적, 자폐적인 소년으로 설정되어, 최근의 (6)심리, 철학 붐에 편승한 내면세계 중시의 영상작품으로 마무리짓는 방향성도 확보되어 있다. (7)미소녀, 미소년계 캐릭터를 각각 여러 타입 준비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특히 제24화에서 동성애 미소년의 등장은 명확히 특정 동인지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8)배경의 설정을 방영 당초부터 수수께끼투성이로 하여 일종의 추리소설적 즐거움을 팬에게 선사한 것도 크다. 문제가 된 TV시리즈의 마지막 2회는 (9)오시이 마모루적인 메타픽션적 요소까지 발견된다. 또한 이 작품은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에바 조종석의 디자인 컨셉트부터 맥주의 상표까지) (10)과거의 소설, 만화, 아니메, 영화, 음악으로부터의 철저한 인용, 참조의 묶음으로 만들어져 있다. 코드웨이너 스미스, 필립 K 딕, 이치가와 콘, 제임스 카메론으로부터 무라카미 류, 칸바야시 쵸헤이, 나리타 미나코, 오츠키 켄지 등의 80년대 작가들로 이어지는 그 참조 리스트는, 방대한 고유명을 담고 있다. 20대 이상의 팬 대부분이 그 장치를 즐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어떤 의미에서 80년대 애니메이션의 완성형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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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의 남색 초호기, 아스카의 빨간색 2호기, 레이의 노란색 제로기와 파괴된 3호기 등 4대의 에바가 있다. |
▶저패니메이션의 새로운 출발, 또는 자기회의의 반영으로서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미국의 온라인 아니메 매거진 「AM Plus(http://www.jurai.net:80/amplus/) 제2호는 장문의 소개기사와 안노 히데야키의 연보를 담은 본격적인 「신세기 에반게리온」특집을, 아직 그것이 일본에서 TV방영 중인 시점(96년 2월)에서 실었다. 특집 자체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아직 미국에서는 미공개이지만, ‘아니메’의 세계화는 예상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 아니메는, 다양한 통로로 거의 동시에 외국의 팬들에게도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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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는 훌륭한 조종사지만 폐쇄적 성격을 갖고 있다. |

84년에 다이콘 필름은 다이콘 필름의 프로듀서 오카다 토시오(후에 ‘오타킹’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는 오타쿠계의 프로듀서이자 평론가)와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의 기획을 세운다. 그 제작을 위해 조직이 재편되고 설립된 것이 가이낙스이다. 반다이를 스폰서로 해서 이 기획은 실현되어 87년 〈오네아미스의 날개-왕립우주군〉(감독 야마가 히로유키)이 극장 공개되었다. 안노 히데야키는 이 작품의 작화감독을 맡았다. 이 작품은 영상과 스토리가 모두 뛰어났고, 또한 홍보도 대대적으로 행하여졌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적으로 실패했다. 이 시기는 메이저/오타쿠의 분할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다른 차원의 세계를 무대로 한 SF이면서 미소녀도, 로보트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 작품은, 그 분할선의 소위 경계에 위치해 버린 것이다. 80년대의 SF대회에서 출발한 가이낙스는 욕망 회로의 시대적 추이를 잘못 읽었던 것이다.
이 실패 이후, 가이낙스는 타겟을 오타쿠에게 한정한다는 의미에서 ‘오타쿠화’로 방침을 전환하였다. 가이낙스가 게임 소프트웨어 업계로 진출한 것은 이 무렵이다(이것은 후에 미소녀 육성 소프트웨어 ‘프린세스 메이커’(91)로 결실을 맺는다). 동시에 안노 히데야키는 가이낙스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의 중심이 된다. 그의 첫 번째 감독 작품 「톱을 노려라!」(OVA, 전3권, 88-89)는 가이낙스의 방향성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었다. 미소녀와 로보트를 ‘여하튼간에’ 등장시키고, 과거의 여러 아니메 작품 및 SF의 인용과 패러디로 가득찬 이 작품에는 이미 스토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백히 일부 오타쿠만을 타겟으로 한 작품이고, 실제 안노 히데야키는 이 작품에서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에로틱한 새로운 기법(소녀의 유방이 몸에서 독립하여 흔들리는 ‘가슴 흔들림 작화’로 불리워지는 것으로 당시는 혁명적이었다)까지 고안해낸 것 같다. 이 작품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OVA의 명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안노 히데야키는 애니메이션을 향한 사람들의 기대가 유형화된 것(미소녀를 그리면 잘 팔린다) 및 그것에 의지하는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를 향해 위기감을 강조하고 있었다. 즉 이미 그는 「톱을 노려라!」의 제3권에서 기묘한 연출을 시도하고 있다. 거기에는 무의미하게 찬란한 음악이 울리고, 무의미하게 스케일이 큰 전투 씬이 전개되며, 무의미하게 화면이 흑백의 비스타 사이즈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당시 안노 히데야키가 처해 있던 폐쇄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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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프는 써어드 임팩트를 불러 일으킬 사도의 침략에 대비한다.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이후의 침묵에 대해, 안노 히데야키는 “4년 동안 파괴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죽어 있을 뿐이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이 긴 침묵으로부터의 극히 의식적인 복귀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 비판인 것은 처음부터 운명지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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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 레이 아스카는 어머니의 혼이 투입된 에바를 조종하면서 자기 자신과 싸운다. |
▶아니메계의 ‘약속’과 문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그것을 파괴한 「신세기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 장르에 있어서는 내용(스토리)과 표현(작화)이 밀접하게 연결된다. 만약 3등신의 등장인물을 그린다면, 이미 그 작품은 미소녀물도 SF액션물도 될 수 없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의 애니메이터는 스토리 내용으로부터 역산하여 작화경향을 선택한다. 눈과 얼굴의 크기와 비율, 머리카락 색깔, 손발의 길이 하나하나가 스토리를 한정한다. 팬층의 세분화를 필연적으로 끌어내는 이 부자유스러움이 80년대 후반 이후의 애니메이션 장르의 전체적 폐쇄(한편으로 이것은 세련화의 귀결이다)를 낳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의 경우,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2〉에서 중후한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유키 마사미와 타카다 아케미가 만든 TV, OVA시리즈의 「패트레이버」를 지탱하고 있던 ‘아니메 그림’적 등장인물의 작화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은 그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극화조의 작화를 선택하면, 확실히 중후한 스토리의 전개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수용자층을 한정시키기도 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폐쇄성은 변하지 않는다.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이 광범위하게 보여질 리는 없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출현이 진정으로 사건이었던 것은 이 점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안노 히데야키는 놀랄 만큼 잡다한 작품을 만든 것이다. 거기에는 80년대 일본 아니메의 대부분의 ‘약속’이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아무도 그것들을 다른 요소들과 동시에 병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약속’의 종류를 각각 구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미야자키 아니메와 「소녀전사 세일러 문」은 같은 장르에 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안노 히데야키에게는 조바심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여는 (안노 히데야키와 가이낙스의 이력이 명백히 드러나듯이) 80년대 전반의 틈새 산업적 추이성의 연장으로서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는 메이저/오타쿠의 분할선을 아직 모른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는 확실히 모순되는 설정과 요소가 채워져 있다. 우리들은, 이 애니메이션이 극히 무거운 테마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면서, 동시에 동인지 시장을 석권하는 종류의 ‘미소녀/로보트 아니메’일 수 있었던 것에 놀라야만 한다.

▶오타쿠적 세련미와 폐쇄성을 가진 80년대 아니메의 악순환의 종언; 「신세기 에반게리온」 과거 작품의 집요한 인용, 패러디라는 형태를 띤 메타장르적 시도는 아니메계에서 넘쳐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결정적으로 뛰어난 것은, 이 작품이 그 표현상의 어긋남을 작품의 내용적 수준으로 반영시키는 스토리 구조의 설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18회(토지를 향한 에바의 공격)와 제22회(아스카를 향한 사도의 침입)의 충격과 절박감은, 명백히 시리즈 전반에서의 ‘코믹 터치의 학원드라마적’ 토지/아스카의 존재에 의해 증폭되어 있다. 거기에서는 작품에 대해 메타 레벨에 있을 터인 표현상의 어긋남이 오히려 객관적 내용을 직접적으로 지탱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색다른 구조를 채용한 작품을 진정한 메타픽션이라고 한다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극히 양질의 메타픽션이다. 그리고 이러한 규정은 조금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스토리가 뛰어나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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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형 사도 카오룬은 레이와의 우정으로 자폭하는 길을 택한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등장은, 일본 아니메가 유치한 세련됨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오타쿠화를 탈피하고, 겨우 어떤 성숙에 들어왔음을 알리고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방영 종료 후에 행해진 안노 히데야키의 인터뷰를 인용해보자. 그는 여기에서 마지막회에 사용된(실제는 마지막회뿐 아니라 다른 회에서도 보여진) ‘실험적’ 영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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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오룬, 신지는 서로 비슷한 성격을 갖고 상호공감한다. |
그럼 그는 앞으로 실사로 가는 것일까(예전의 오시이 마모루처럼)? CG로 가지 않는다면, 그런 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셀 애니메이션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은 오히려 80년대 일본 아니메가 다듬어온 (그리고 80년대 후반부터는 폐쇄적이 된) 여러 장르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스토리에서 마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그 상황을 우선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실제로 안노 히데야키는 상당한 일을 해치웠다. 그의 자유로움은 확실히 성공을 거두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후도, 이 작가는 셀 아니메를 계속 만들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다. 세련미와 폐쇄의 악순환을 체현하고 있던 ‘80년대 아니메’는 겨우 끝난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종언은 단순히 애니메이션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1년의 저패니메이션에 관한 예고편 「신세기 에반게리온」 마지막 두 화에서 안노 히데야키는 작품세계 내의 스토리 진행을 돌연 포기하고 신지의 독백과 내면세계의 묘사만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 TV시리즈를 종결했다. 제24화까지 뛰어나게 구축되어 온 일체의 서비스는 제25회 시작부터 아무 코멘트도 없이 명백히 무시되어 버려진다. 특히 마지막회에 삽입된 또 다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장면(거기에서 에바는 존재하지 않고, 신지를 비롯한 인물들은 행복한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다)은, 작품 자체를 메타픽션화함과 동시에, 일부 팬들의 욕망을 조소한 명확한 장르 비판이었다. 이 종결 방식은 아니메 팬 사이에 상당한 동요를 불러 일으켰고, 통신상에서는 한때 안노 히데야키를 향한 비난이 횡행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이 ‘에바 마지막회 쇼크’는 일본 아니메사(史)에서도 특이한 사건이며, 그것은 그것대로 고찰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본질적인 중요성은 여기에는 없다. 특히 TV판의 마지막 두 회의 어디까지가 본래의 기획이었는지 애매하고(오리지날 각본이 처참하다고 방송국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 더욱이 LD/비디오테이프판에서 스토리상의 완결이 다시 만들어진다고 보고되고 있는 이상, 그 너무도 적나라한 메타픽션적 전략을 안노 히데야키의 최종적 의도로 간주할 수는 없다. 확실히 TV판 마지막 두 회의 전개는, 안노 히데야키의 방향성을 직접적으로, 즉 내용의 레벨에서 나타냈다. 하지만 그 두 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이중성은 표현의 레벨에서 명백하며, 그 급진적인 비평성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마지막회는 오히려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은폐해버린다. 그리고 결말의 메시지를 긍정하는 의견도 부정하는 의견도 우리에게는 동등하게 ‘작가’의 관점이 배제된 불충분한 독해/감상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은 오히려, 왜 안노 히데야키는 그러한 결말을 거기에 두었던 것인가라고 묻지 않으면 안된다. 거기에는 왠지 기묘한, 게다가 박력있는 위기의식이 있다. 그 마지막회에서 놀란 것은 그 점이다. 메시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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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는 아니메 오타쿠들의 자기 폐쇄적 성격을 반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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