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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광복이 뭐냐: 역사광복이 민족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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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14일 토요일

참 광복이 뭐냐: 역사광복이 민족광복

출전: 『중앙일보』 1999년 8월 14일자

 오늘 아침 길에서 무궁화를 보았다.
 내가 무궁화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뚜렷한 이유는 별로 없다.
 서푼짜리 애국심 때문은 더욱 아니다.
 매혹하지 않는 그 꽃이 어디가 좋은지, 그 뜨겁던 몇해 전 여름 병원에 가기 위해 해남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원주로 뛰어달리던 고달픈 나날, 길가에 핀 그 꽃모습들이 내 가슴에 외롭고도 기이한 어떤 독특한 영상을 깊이깊이 새겨놓았다.
 이름은 왜 하필 무궁화인지…. 사무실에 들어와 신문을 읽는다.
 최근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 기사가 눈을 파고 든다.
 야스쿠니 신사 특수법인화나 재무장을 위한 법률 통과, ‘스즈란’ 이나 ‘프라이드’ 같은 군국주의 찬양영화 기사보다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기사 하나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지난달 10일 사이타마현 방위의과대학에는 조잡한 사제폭탄과 칼로 무장한 15세 고교생이 인질극을 펼쳤다. 소년의 주머니에선 ‘평화헌법을 파기하라’, ‘미국・한국・러시아에 침략당한 국토를 탈환하자’ 는 등의 내용이 적힌 성명서가 발견됐다.” 일본소년의 나이는 15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번 광복절이 54회째다.
 54년이라면 짧은 세월이 아닌데 우리는 그동안 참으로 광복이 되었는가? 이 생각에 이어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내 막내 아들 방의 사방 벽에 빈틈없이 붙어있는 ‘에반게리온’ 이니, ‘원령공주’ 니 하는 일본 대중문화의 숱한 캐릭터들이다.
 막내의 나이가 18세다.
 생각은 이어진다.
 내 나이는 그럼 얼마인가?
 내후년이 환갑이니까 지금 59세다.
 디지털 식자처럼 숫자가 뛴다.
 59, 54, 18, 15.무슨 뜻일까?
 박정희가 비밀리에 핵폭탄을 만들어 일본에 투하한다는 내용의 언필칭 민족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가 근 2백만부나 팔린 적이 있다.
 얼마 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날렸을 때 인터넷 위에 남한 10대들의 반응이 떴다.
 ‘통쾌하다!’ 통쾌하다? 바로 그 통쾌 직후, 바로 그 통쾌의 자극을 거꾸로 타고 오늘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와 재무장이 폭발하듯 가속되었다.
 미국은 이를 보고도 뒷짐만 지고 있고 중국은 날마다 민족주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은 또 다시 대포동 타령이고 미국.일본은 여기에 초강경 대응인데 남한정부는 보다시피 지리멸렬이다.
 통쾌하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오늘 아침 내가 길에서 본 바로 그 무궁화꽃이?
 내 생각이 정리된다.
 문제의 핵심은 부자지간에 있다.
 우리 막내의 방 사방 벽에 붙어있는 일본의 저질 대중문화의 숱한 캐릭터들과 지금 내가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왜곡된 조선 상고사 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이라는 타이틀의 조금은 구닥다리 역사주의자・민족주의자・문자주의자 냄새가 나는 책자 사이의 문제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해결의 길은 올해 27세된 내 맏아들의 독특한 삶에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애는 내가 단군과 상고사에 눈을 돌리기 훨씬 전인 4~5년 전에 이미 컴퓨터게임인 ‘단군의 땅’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불출인가보다.
 한가지는 아들 험담이요, 한가지는 아들 자랑이니 갈데없는 불출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지금 일본 우파의 재무장 난동이 오갈 데 없는 반인류적 악당짓임엔 틀림없으나 그것을 원천적으로 극복하기보다 도리어 그것을 자극하는 북한의 대포동모험주의를 통쾌하다고 보는 태도 역시 문제라는 것.
 15세 일본소년이 ‘한국에 의해 침략당한 제영토를 탈환하자’ 고 인질극을 벌이도록 만든 일본의 악질적인 국수주의 교육문화, 그리고 그들의 저질 대중문화에 오염되도록 18세 소년을 방치해둔 한국의 엉터리 역사교육과 제대로 된 청소년문화의 부재, 이것이 문제라는 것.
 그런데 이 중에도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해결하자는 한국의 기성세대가 가진 극히 편협한 국수적 민족관념, 그리고 그에 연속되는 낡은 문헌주의.문자주의 그리고 근대에 갇힌 역사주의의 한계다.
 이 한계는 어쩌면 바로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한번 그윽히 생각해 보자. 제 자신의 정신과 민족역사를 잃어버리거나 왜곡당한 채 서구의 사상과 문화를 마치 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저 숱한 지식인들, 지도자들의 오류를 생각한다면. IMF에 이은 최근의 동아시아 격동 속에서 새로운 지구시대의 열린 민족주의를 포괄하는 큰 이야기, 담론의 필요성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 역시 고대의 팬터지, 상상력에 연결된 생태학과 전인류적인 새로운 문명론의 시각, 새로운 시간관, 새로운 멀티미디어적 세계인식과 통합되지 않으면 안 되고, 정치나 경제가 아닌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인식의 틀에, 그리고 정부나 시장이 아닌 새로운 민중연대적 시민운동의 공세적 역할에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래서 내겐 내 맏아들의 컴퓨터 게임 '단군의 땅' 이 귀중한 한 문화적 돌파구로 생각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강연에서 나는 단군의 이미지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과 같은 안호상식의 국가주의적 단군이 아닌 ‘멀티단군’ 이어야 한다고. 제1대의 단군왕검만이 아닌 47대의 ‘멀티단군’ 이요, 그야말로 멀티미디어시대의 ‘멀티단군’ 이요, 이 민족 하나하나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저마다의 집단무의식의 표상으로서의 다양한 ‘멀티단군’ 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은 근엄한 고대의 군장(君長)이 아니라 춤추고 노래 부르는 새 세대의 ‘새 단군’ 이어야 한다고.
 이제 54회 광복절을 맞아 내건, 그리고 우리가 밀고 가야 할 새로운 역사교육과 문화개혁에 관련한 몇 가지 생각을 요약하고자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 말씀대로 ‘역사광복이 곧 민족광복’ 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엉터리 상고사와 상고사 교육은 즉시 중지되어야 하며 그 대안으로서 바른 상고사 찾기와 바른 상고사 교육운동이 다양하게, 다단계적으로 전 민족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전문명사의 일대 전환과 담론부재의 오늘 같은 적막강산 속에서 광복을 현실화하며 남북을 통일하고 민족을 다시 일으키는 데 있어 결정적이고 창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같은 다원(多元)사회가 해체되지 않고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도 민족문화와 그 정신의 구심점인 단군은 그 역사적 실체가 철저히 복원되어야 하며 그 사상인 홍익인간 (弘益人間) 이화세계 (理化世界) 의 명제는 현대에 알맞게 창조적으로 재해석되어 민족통일과 세계의 미래에 크게 기여할 새로운 철학적 담론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고조선 5천년에 대한 총체적 탐구가 일어나 농경정착적이면서 유목민적인 그 독특한 이중적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전인류문화의 현재와 미래가 요구하는 바 다양한 ‘정착적 노마디즘’, 즉 농경적 유목주의의 비전을 이끌어내는 일이 크게 주목되어야 한다.
 5천년 이전 우리 민족의 공동체 ‘신시(神市)’는, 이제 그 수명이 몇십년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만한 ‘호혜시장(互惠市場)’의 오묘한 경제인류학적 씨앗을 품고 있다는 연구가 이미 나오고 있고, 다수결 민주주의의 패권적 결함과 정당명부제 따위의 어설픈 절충을 뛰어넘어 전자민주주의 시대의 복합적인 직접민주주의, 전원일치제적인 새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화백(和白) 안에 들어있다는 보고도 이미 나와 있다.
 더욱이 전지구 정보화와 전 사이버 영역의 오감통합적 완성 및 전면적 디지털화 속에서 지상과 천상, 인간과 우주, 초자연과 자연, 과거와 미래, 주관과 객관, 환상과 현실, 주체와 타자를 넘나들며 나아가 두뇌 중심과 신체 중심을 통합하는 새로운 미학적 창조력에 가득 찬 콘텐츠웨어의 근원이 고대 풍류문화의 우주적 휴머니즘 안에 뚜렷이 살아있으며 그것은 또한 현대 생태학과 환경운동 및 시민권익운동을 통합완성할 우주사회적 공공성이라는 새 원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이렇게 문화.정치.경제.사회.자연 등에 관한 통합적 새 담론의 씨앗에 대한 탐구열풍이 일어나 우리만 아니라 전 아시아와 전 인류가 함께 미래 건설을 위해 그것을 재창조하는 비전의 길을 우리가 먼저 열어야 한다.
 나는 이 탐구 열풍이 바로 참다운 역사광복이요, 진정한 민족광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이 민족의 오랜 집단적 서원(誓願)인 ‘마고(麻姑) 복본(復本)’을 기억하고 추진해야 한다.
 마고는 1만4천년 전 파미르 고원에 있었던 인류시원의 문명이며 그 문명을 가꾼 우리 조상도 에덴과 같은 인류 원형이요, 반드시 ‘복본’, 회복해야 할 인류의 원형적 삶이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비록 낮은 차원 제한된 범위에서라도 실현해야 할 내면적인 삶의 우주적 자기실현의 길이다.
 우리 민족의 보편적 세계관인 ‘한’, ‘’의 내용이자 그 주체인 홍익인간, 즉 신인간의 모습이며 그 활동인 이화세계, 즉 율려 자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참 광복이다.
 ‘마고를 찾아서’ 는 이제부터의 우리 운동의 메타포가 될 것이다.

김지하 <시인・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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