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30일 목요일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데어 몬트』 인터뷰

출전: 사다모토 요시유키 화집 『Der Mond』 한정판(1999년) pp. 163-168

  자료를 공유해 주신 잠자리 선생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번역게재일 2022.10.08

――우선은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화판을 그리게 된 계기를 알려 주세요. 캐릭터디자이너가 만화판도 담당하는 것은 굉장히 진귀한 케이스잖아요.

  실은 『에바』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굉장히 강했고, 그런 의사가 가이낙스 측에도 전달되었습니다. 그런 경위가 있어서, 91년에 「월간 뉴타입」에 『R20』을 그려 연재했던 것이고요. 그 때 「만화가로서도 될 것 같다」는 제 나름의 감을 잡았고, 그 이듬해 다시 「뉴타입」에 『고도의 오니』를 그려 봤다가 「만화도 가끔씩 그리면 재미있구나」 하고 (웃음). 그런 흐름도 있고 해서 아니메 『에바』의 기획이 스타트했을 때, 동시에 제가 만화 전개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디어믹스로서 만화와 아니메의 조합은 진귀한 것이라 할 수 없지만, 저 자신이 만화를 동시전개하고, 새로 창간된 잡지에 연재하는 것은, 이 기획 당초의 세일즈포인트 가운데 하나였던 셈입니다.

――만화판은 신지가 보는 사도와의 싸움이라는 시점에서 묘사되고 있는데요, 이것은 어째서인가요?

  아니메와 만화의 정보량의 문제가 있는데요, 아니메의 이야기를 그대로 만화로 만들면 10년도 더 걸려 버린다고요. 그래서 만화판에서는 잡다한 정보는 제쳐버리고, 어디까지나 제 사견일 뿐이지만 『에바』의 본질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서 신지만의 시점에서 세계를 그려 보자 싶었고. 그러다 보면 세계가 좁아져서 테레비와 동시진행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눈 깜짝할 사이에 못 따라잡게 추월당해 버렸고 (웃음). 제가 그리는 스피드가 느렸던 것 뿐일까나 (폭소).

――그래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림에 들이는 정성도 있었던 것이겠지요.

  만화에서는 캐릭터의 미묘한 표정을 보여드릴 수가 있네요. 예컨대, 웃고 있지만 사실은 웃고 싶지 않은 표정. 그게 진심은 슬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웃는 척만 하는 것인지, 그런 마음의 이면을 어디까지 표정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 그런 부분에 얽매이고 있습니다.

――아니메와 망가의 차이 때문에 고생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불필요한 부분은 걷어낸 세련된 아니메용 디자인의 캐릭터로 만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좀더 캐릭터들의 선(線)을 늘리고 싶은 것이 있네요. 콧구멍이 없는 것도 아니메 캐릭터의 특징이고. 왜 그렇게 되나면, 화면에서 롱을 잡을 때 콧구멍이 있으면 코가 커 보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만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리고 대사의 경우도 아니메 그대로 쓰면 너무 길어져 버리기 때문에, 음미해서 보통 만화와 같은 문자량으로 아니메와 같은 효과를 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 밖에 또 흰색과 검은색의 밸런스도 문제인데요. 톤을 너무 붙이면 안 된다거나, 하얀색 일색이면 안 된다거나, 그런 미묘한 균형을 잡아가고 있네요.

――캐릭터의 등신도 아니메와 똑같이?

  아스카만 조금 등신이 다른데요. 제가 생각하는 아스카는 신지보다 키도 크고 해서 다가가기 힘든 동경의 대상인 여자아이라는 이미지였습니다만, 테레비판에서는 성우를 맡은 미야무라 유코씨의 연기를 작화가 따라갔던 부분이 있어서, 몸집이 아담한 이미지가 되어버렸더라구요. 제가 생각하는 아스카는 어른의 세계를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소녀. 만화에서는 그런 냄새를 풍겨보려 하는데요, 예컨대 카지를 유혹하는 에피소드 같은 것도 넣어보고 싶네요. 여유가 있다면 말이지만요.

――아니메판을 만화로 치환시키는 작업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테레비용 시나리오와 콘티를 보면서 코마(만화 칸)를 짜고 있네요. 우선, 1회분 요소를 써내린 것을 퍼즐처럼 뿔뿔이 찢은 뒤, 만화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씬, 예컨대 대사가 많은 씬이나 액션씬 등을 생략해가면서 재조합합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그냥 다이제스트에 불과하니까 만화판만의 공들인 컷이나 씬을 보태넣고 하면, 처음으로 네임(콘티)작업에 착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다지 앞일을 생각해가며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하게 될지,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도 모릅니다 (웃음). 역으로 말하자면 「질렸으니 여기서 끝이다!!」라고 말해 버리면, 거기가 최종회가 되어버릴 것이고 (폭소). 예컨대 3권 라스트에서 「앞으로도 신지 등의 싸움은 계속된다……完!」 이래버려도 「테레비 아니메의 만화판」이라는 스탠스 덕분에 못할 것도 없어요. 다만, 앞으로 남은 아스카나 토우지의 이야기도 그려보고 싶고, 카오루 이야기나 네르프 탄생 이야기도 하고 싶으니…. 실은 최종회의 마지막 몇 페이지 분량의 아이디어만은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만, 테레비판과는 전혀 다른, 만화판만의 라스트로서 예정하고 있어요. 테레비판 만들 때도 안노씨한테 「라스트는 이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들은 게 있는데, 좀 지나고 나서 안노씨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내가 그랬나?」 이라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더란 (웃음).

――애초에 아니메 『에바』는 초기단계에서는 어떤 이야기였나요?

  아직 타이틀도 결정되지 않았던 극초기 의논 단계에서는, 「신과 인류의 싸움」이라는 테마 정도만 안노 히데아키씨가 내놓았습니다. 저도 안노씨도 세대적으로 나가이 고씨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스케일을 크게 늘리다 보니 『데빌맨』스러운 것이 되었고요. 캐릭터 디자인에 있어서 안노씨가 주문했던 것은 「주인공이 여자아이고, 코치 같은 언니가 옆에 있어준다」는, 『톱을 노려라!』에 가까운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최초에 아스카 타입의 여주인공을 디자인했는데,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이어서 또 주인공이 여자아이라는 것은 저로서는 조금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로봇에 탑승하고 훈련을 받는 인간인데, 우연히 그것이 여성이라면 설득력이 있지만, 어린 여자아이가 로봇에 타는 이유는 알 수가 없어서…. 그래서 「로봇물이니까 주인공은 남자아이로 합시다」라는 이야기를 안노씨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침 그 무렵에 NHK에서 『뇌와 마음』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A10신경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때 팟 하고 떠오른 소재를 안노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로봇 속에 죽은 모친이 있고, 아이와 정신결합을 함으로써 움직인다. 하지만 어릴 때 모친이 죽었기 때문에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고갈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이거는 된다!!」라는 자신감도 생겨서, 그때부터였나, 컷과 설정화를 그리기 시작했던 게. 그 설정화가 이번 화집에도 수록된 기획서의 캐릭터표인 것입니다.

――그 캐릭터표에서 주의했던 점이라면?

  알아보기 쉬운 실루엣이라는 것도 중요했지만, 딱 봤을 때 캐릭터의 성격을 어쩐지 알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예컨대 머리털 색이나 길이 같은 것에서도 성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스카는 『에바』의 세계에서 아이돌스러운 위치를 잡아주고, 신지와는 조금 나디아와 쟝의 관계 같은 느낌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과 반대되는 음(陰)의 부분으로서 레이를 설정했고, 붕대를 감자는 것도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게 미사토네요. 어딘가 있을 법한 언니가 군인을 하고 있다니 재미있군…하고. 사실은 옷을 이것저것 갈아입는 캐릭터로 하고 싶었는데, 제게는 그다지 패션센스가 없어서 할 수 없었고 (웃음). 저로서는 미사토는 좀더 분위기 파악 못하는 가벼운 여자를 이미지했던 것인데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네르프 남자 전원과 관계가 있는. 심지어 그 자신은 그것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인물…. 겐도와 후유츠키는 『수수께끼의 원반 UFO』의 스트레이커 사령관과 부관 프리먼이 모델이었네요.

――『에반게리온』 이외에도, 타이틀로 제안된 것이 있었나요?

  안노씨가 떠올렸던 것으로 「알시온」 같은 것도 있었네요. 하지만 로봇물의 타이틀에는 탁음이 들어가야지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서 한 차례 기각되었던 「에반게리온」 쪽이 더 강해 보인다고 제가 밀지 않았었나 그랬고. 『전설거신 이데온』스러워서 좋다, 그런 이야기도 당초에 있었으니까, 그런 점도 있었던 거 같고. 실은 이야기의 구성도 비슷하지요. 예컨대 네르프는 인류와 버프클랜 쌍방의 적으로 돌려져서 고독한 싸움을 하는 솔로쉽과 똑같다고 할 수 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로봇이 어린이하고밖에 커뮤니케이트하지 않는다던가, 폭주를 한다던가. 『이데온』과 『데빌맨』을 더해서 둘로 나누면 『에바』가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웃음). 그 즈음에는 어떤 매체로 발표할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았었는데, 저는 「OVA 말고 테레비나 극장영화로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네요. OVA는 확실히 퀄리티는 높일 수 있겠으나, 테레비에 비해 마이너한 매체라고 의식하고 있었고, 자기만족적이고…. 늘 동경에만 있으면서 아니메 잡지를 읽다 보면 OVA도 메이저한 것이구나 하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요, 저처럼 37세에 지방에 살고 있으면 비디오대여점에 가도 아니메 상품을 갖춰놓은 구색이 좋다고는 말 못해요. 마이너한 세계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죠.

――아니메판 『에바』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관계하셨던 건가요?

  캐릭터디자인, 그리고 최초단계에서의 구상회의, 스토리면에서는 각본회의 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로봇 메카닉에 관해서는 안노씨와 야마시타 이쿠토씨 사이에서 통역 비슷한 것을 했습니다.

――통역이라니요?

  야마시타씨의 만력은 아니메 업계에서 정점 레벨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나쳐서 자기가 그려낼 수 있는 최대한계의 디자인을 내놓아 버려요. 테레비 아니메에 채용하기에는 선이 너무 많다거나, 형태가 평균적인 만력의 애니메이터가 화면에서 움직이기에는 난해한 부분도 있고요. 그런 문제를 제가 안노씨와 야마시타씨 사이에 끼어서 실제로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해 준다거나 했죠. 그래서 초기 로봇메카닉 디자인스케치 중에는 제가 그린 것도 있어요.

――현재 아이치현에 거주하고 계신데요, 왜 동경에서 내려가신 건가요?

  제 안사람 친정이 아이치입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묵묵하게 만화를 그려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지방에 산다고 해도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고요, 오히려 기분전환하기에 좋습니다.

――현재의 가족구성은?

  저와 안사람, 그리고 7세의 장남과 4세의 장녀 해서 4인입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집이 언제나 어수선합니다 (웃음).

――만화 작업은 아이치현 중심인가요?

  동경의 가이낙스 사내에도 작업장이 있고, 아이치현 자택에서는 네임작업을 합니다. 다만 반드시 예정페이지수를 오버해 버리거든요 (웃음). 그래서 필요없는 코마는 커트하기도 하고, 한 코마 단위에서 축소카피하고, 세로로 했다가 가로로 했다가, 잘라도 보고 붙여도 보고 앞뒤 맞추기에 필사적 (웃음). 원작이 없으면 내키는 대로 그리면 되는데 『에바』는 아니메판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완성품이 있으니까 복선이 깔려 있는 곳은 어김없이 따라서 넣어줘야 하고, 그런데 만화는 또 연재작품이니까 1회분 안에서는 정리되어 있는 에피소드를 보여줘야만 하고…, 그런 쓰라림이 있습니다. 펜선 넣기는 동경에서 하는데, 어시가 2명〜3명 있어서 주로 먹칠이라던가 톤질, 그리고 배경을 담당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주변 공정은 보통의 다른 만화가분들과 똑같아요.

――사다모토씨의 컬러 일러스트는 매우 평가가 높은데요, 그 그리는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팬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능숙한 컬러 일러스트를 그리기 위한 오의는 무엇일까요?

  그건 말이죠,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소재의 특성을 알고 그림을 쳐야 한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그림의 포인트라는 것이, 세일즈포인트를 처음부터 생각하고 그리기 시작하는 편이 잘 됩니다. 또 저번에는 이렇게 했으니까 이번에는 이렇게 해 본다던가, 실패를 했으면 다음번에는 똑같은 걸 안 해본다던가, 그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도중에 책을 칠하는 단계에서 매킨토시 컴퓨터에 넣고 CG 소프트로 완성하는 방법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수정이 간단하니까 효율이 좋아요.

――컬러 일러스트는 어떤 스텝으로 그리는 것인가요?

  우선 밑그림 단계에서 무슨 그림을 그리자는 것은 있지만, 그게 어떤 것이냐 하면 관념적으로 「이런 분위기 느낌으로」라는 생각을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일러스트가 될 거다, 같은 완성형은 머릿속에 없어요. 우선 밑그림 위에 한 가지 색을 놓아 보고, 그 색에 어울리는 것을 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색을 또 놓고…그런 느낌으로. 밸런스를 봐가면서 조금씩 진행되니까, 언제 끝이 날지 나도 몰라요 (웃음). 원래 목표한 분위기, 느낌과 대체로 달라져도 스케쥴상 마감이 다가오면 완성! 계획 같은 거 없고 그냥 되는대로네요 (웃음). 도중에 그림의 프레임을 움직여서 더 그려넣거나, 그때까지 그린 것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 버리거나.

――아이고 아까워라!!

  그치만 필요 없는 걸요. 보통 회화는 습작을 몇 장씩 그려놓고 그 중에서 잘 된 것을 마무리해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피카소 같은 것도 그림 한 장이 있으면 거기에 습작도 여러 장이 있는 것인데…. 그렇게 그리는 방식은 납득가는 작품을 얻을 수 있지만, 시간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커다란 종이에 그려서 프레임을 틀거나 앵글을 바꿔가며 한 장의 그림 안에 습작부터 마무리까지 다 하는 것입니다 (웃음). 계획성 있게 그림을 칠 수 있는 다른 만화가분들이 부럽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취재하게 해 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하는데요, 그리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찢어 버리는 일이 빈번합니다. 3장을 그리면 1장 꼴로 실패해서 버리는 게 나와요.

――이 화집에서도 컬러 일러스트 메이킹을 기획을 했는데….

  메이킹이 안 되는 게 그런 이유거든요 (웃음). 그래도 그림이 완성되면 「의외로 보통이네. 평소와 같은 느낌이구나」하고 (웃음). 다만 새로운 기법에는 매번 조금씩 도전하고 있어요. 번짐을 사용한다던가, CG라면 어디까지 CG처럼 안 보이게 할까, 그런 식으로. 만화도 마찬가지로 이전에 그린 작품의 반동으로서 하고 있다는 부분이 있네요. 스트레스 발산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새로운 작품으로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으면 다음 작품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흔히 「불타오른다」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저는 불타오르면 다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완벽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해요 (웃음). 저로서는 이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공부하면서 해나가나는 거죠.

――회화계에서 좋아하는 화가는?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네요. 어릴 때는 고흐처럼 강력한 그림이 좋았었는데, 고등학교 무렵은 이케다 마스오를 좋아했었고. 그 사람은 미대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화단계를 포기하고, 단신으로 해외로 건너가 이름을 떨치고 돌아온…, 그런 이단자적인 삶의 방식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파울 클레나 호르스트 얀센 같은 평면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화가들의 영향이 컬러 일러스트에도 나타나는 것일까요?

  영향 전혀 안 받았네요 (웃음). 지금의 컬러 그리는 방법은 제 나름의 것이겠지요. 다만 회화가는 아니고 엥키 빌랄의 컬러일러스트에서는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수채화의 얼룩을 좋아하거든요. 얼룩이란 제가 콘트롤할 수 없는 것이니까 의도하지 못한 실패를 하는 일도 있지만, 말도 안되게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CG의 슬픈 점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날로그 수채화를 그만둘 수가 없어요. 앞으로는 CG와 수채화, 양쪽을 사용해 나갈 것 같습니다.

――아니메와 만화, 그 비중은 어느 정도를 이상으로 삼고 계십니까?

  으ー음, 가끔 만화를 하고, 가끔 아니메를 하고, 그렇게 반반이 이상적이라고 최근 생각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오리지널 작품을 하지 않는 한 제 차례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제 안에서는 8대 2 정도로 만화 쪽이 더 크고, 가끔씩 아니메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아니메 현장에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고,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포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 영향을 받은 아니메나 만화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진부한 대답일지 모르겠지만, 초음으로 좋아하게 된 아니메는 『도깨비 큐타로』나 『괴물군』 같은 후지코 후지오 작품들이었네요. 소학교에 입학했을 때 선생이 「이름은?」 하고 묻자 「도깨비 큐타로입니다」라고 대답해버렸던 기억도 있고 (웃음). 그 뒤, 소학교 3〜4학년 무렵에 『선더버드』 등 ITC 작품, 『캡틴 울트라』나 『울트라맨』, 『가면라이더』나 『인조인간 키카이다』 등 특촬물에 빠졌습니다. 특히 『가면라이더』는 오토바이라는 친숙한 탈것에 타는 히어로가 엄청 멋있어서 진짜진짜 흠뻑 빠졌었습니다. 제가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은, 원작판 『마징가Z』와 『전장만화 시리즈』였네요. 낙서장이 전부, 검은 빛으로 번쩎이는 원작판 마징가Z로 뒤덮여버릴 정도로, 코마 분할을 흉내내 그려 보거나, 스크린톤의 점점(点々)은 어떻게 그린 것일까 궁금해 하고 (웃음). 만화의 원(原)체험은 그 시점이었네요. 동시에 마츠모토 레이지씨도 알게 되었고. 마츠모토씨가 그린 무기들은 단연코 너무 근사했지요. 어떻게 해야 G펜의 흐늘흐늘한 선으로 제로센을 그릴 수 있을까 해서 모사도 해보고 막 그랬었죠.

――그림 이외에 어릴 적 취미는?

  전함이나 전차의 프라모델도 자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프라모델 만들기라던가 피규어 만들기라던가 비교적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만 색을 칠하고 말릴 시간이 없어서 사 봤자 만들 수가 없는데…. 노후의 즐거움이 되려나요 (웃음). 근데 생각해 보니 좀 싫은데, 「허허허」하고 웃으면서 세일러문 피규어 깎는 노인이 된다라 (폭소). 제 마음속에서는 그림그리기와 프라모델 만들기를 갈라놓지 않고 있습니다. 캐릭터의 옷을 디자인할 때도, 수영복 입은 여자애의 개라지킷트를 사 와서, 점토를 붙여가며 「앞에 이게 있으니까 뒤는 이렇게 되고…」 그러고 있습니다. 입체로서 만들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게 있으니까요.

――소중학교 시절에는 어떤 어린이였나요?

  보통이었어요. 만화 그린다고 하면 상상되는 내향적인 그런 느낌도 아니었고, 어느 쪽이었냐면 오히려 아웃도어파였네요. 지금은 아이치현에 살고 있습니다만, 태어나 자란 곳은 야마구치현 토쿠야마시입니다. 토일요일에는 집에 앉아 있지 않고 밖에서 놀고 그랬어요. 고도경제성장기였기 때문에 근처에 공사현장이 많았고, 공터에 토관이나 재목이 잔뜩 쌓여 있었죠. 그것들을 비밀기지 삼아 놀고 그랬는데, 엄청 위험한 짓도 막 하고 그랬어요. 공사현장에 집채만한 크기의 모래산이 있어서, 거기 기어올라가서 빌딩 3층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졌다던가 (웃음). 어디까지 하면 위험한지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 계속해 버리는 그런 (웃음). 저한테 다섯 살 위의 형이 있는데요, 그 영향인지 주위 아이들이 자전거라던가 갖고 놀 때 저는 강에서 낚시를 하거나 유선컨트롤 비행기를 날리거나 그랬네요. 전차를 좋아하는 것도 형에게 배운 거 같아요.

――앞서 말씀하신 바 어렸을 무렵 『도깨비 큐』 등을 좋아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소학교 고학년 쯤에는 어떤 아니메 작품을 좋아하셨나요?

  소학교 5〜6학년 무렵에 방영했던 게 『루팡 3세』의 퍼스트시리즈였네요. 당시의 아니메에 나오는 자동차는 다 적당히 그려넣은 것들 뿐이었는데, 『루팡』에 나오는 자동차들은 전부 실제로 있는 것들이었거든요. 분명히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린 것이구나 그렇게 깨달았고, 그 때부터 『루팡』의 크레딧에서 찾아낸 이름, 오오츠카 야스오씨의 이름을 의식하게 된 것 같고, 오오츠카씨가 참여한 아니메는 대체로 다 재미있구나, 하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었죠.

――그 무렵부터 차를 좋아하셨나요?

  만지고 주무를 수 있는 메카니칼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유치원 때도 버스 운전석 옆에서 빠안히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었고. 메카가 연달아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그런 걸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만화의 여성캐릭터를 사랑하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웃음)

  『큐티하니』를 참 좋아했죠. 한때는 학교 공책이 하니 낙서로만 가득찰 정도로 (웃음). 『마징가Z』의 유미 사야카도 좋아했었고, 『파렴치학원』의 쥬베에나 『데빌맨』의 미키, 그리고 아니메에서는 『루팡』의 미네 후지코를 좋아한 게 처음이었습니다. 조금 기가 드세면서 육감적인 타입이 제 취향의 여자들이었군요.

――나가이 고 작품이 많네요.

  그 무렵에 이미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었죠. 중학교 들어가고 나선 한 단계 낮춰서 만화가의 어시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웃음).

――중학교 무렵에는 어떤 작품에 빠지셨나요?

  마츠모토 레이지씨가 감독한 『우주전함 야마토』 테레비 제1시리즈가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당시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라디오카세트로, 전 회차를 소리만이라도 싹 다 녹음해서 학교에 가져가갖고, 학급의 야마토 팬 셋이서 1회분 대사를 모조리 외우는 게 유행하고 그랬는데, 효과음까지 로마네로 넣어갖고 (웃음). 그리고 나서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미래소년 코난』이 방영을 시작해서 「아니메란 건 진짜로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 밖에는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라던가 『은하철도 999』도 보았습니다.

――마츠모토 아니메 이외에 좋아하신 것은?

  동경무비 작품도 좋아해서 『보물섬』, 『감바의 모험』 같은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모험물인데 「모험물은 이래야 한다」는 바이블적인 작품들이고 지금도 아주 좋아합니다.

――그림그리기에 영향을 받은 분들은?

  마츠모토 레이지씨, 나가이 고씨, 오오츠카 야스오씨일까요. 오오츠카씨는 제가 이 업계에서 유일하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분이라, 특히 영향이 큽니다. 지금도 설렁설렁 정신을 빼놓고 그림을 치면 『코난』같은 그림이 되어버릴 정도로요.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공부과목은?

  주로 이과 계통을 좋아했었네요. 물리나 수학이나 현대국어 같은 응용계 과목이 좋았고, 영어나 일본사, 화학, 고전, 한문 같은 암기계 과목은 글러먹었습니다. 전체적인 성적은 뭐 그저 그런 정도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림을 본격적으로 싲가한 고등학교 때는 보기좋게 낙제했습니다.

――고등학교 무렵부터 장래의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시작하신 거군요. 당시에 되고 싶었던 직업은 무엇이었나요?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었으니까, 화가라던가, 학교 미술선생, 자동차 디자이너,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화가를 동경했었지요. 동경의 미술대학에 진학한 것도 만화가의 일이 어떤 건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겁니다. 저는 차남이라서 부모님도 딱히 반대하지 않았고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교직이수도 받기는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 가르치는 게 성격에 맞지 않고, 학교 선생을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되었어요. 사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9세 때 처음 그린 만화를 아키타서점의 『소년챔피온』 편집부에 투고한 게 그만 입상해 버려서, 그게 게재된 후에도 단기집중연재라는 형태로 만화를 몇 번 그렸어요. 대학에 다니면서 혼자 자취방에서 만화를 그리면서 「만화란 고독하고 쓰라린 것이구나」라고 실감을 (웃음).

――그 처음으로 그려본 만화는 어떤 스토리였나요?

  재미 일본인 커뮤니티에서 카레이스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일본인팀 동료들을 배신하고 미국팀에 입단하는 데서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이고요,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고 나서 옛 동료들에게 돌아가 다시 레이스에 도전한다…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거 참 시시한 이야기네요 (웃음). 그것이 『소년챔피온』에 게재된 뒤, 바이크로 고갯길을 정복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1편 그렸고, 그게 호평을 받아서, 속편으로 대학생이 되고나서 이야기를 4회 게재했습니다. 그러면 다 해서 단편이 3개, 4회 연재 1번…인가.

――단행본 1책 분량의 볼륨인데요 (웃음).

  단행본으로 내자고 해도 거절할 겁니다. 옛날 작품이다 보니 무슨 이유를 붙인들 그림이 너무 조잡하니까요. 집중선 그리는 법도 몰랐던 시절이었고, 선 몇 줄 긋다 보면 귀찮아져서 그냥 그대로 게재 (폭소). 펜촉 같은 경우도 프로는 2페이지마다 교환한다는 걸 몰랐으니까, 펜촉 1개로 계속 그려갖고 「뒤쪽으로 갈수록 왜 선이 굵어지지?」 막 이러고 (웃음).

――어째서 그대로 만화가가 되지 않으셨던 걸까요?

  만화가를 동경은 했지만, 이거는 뭐였냐 하면 바이크를 갖고 싶다든가, 이사를 하고 싶다든가, 하여튼 돈이 필요하다는 목적이 있어서 했던 거일 뿐이거든요. 말하자면 아르바이트에 불과했다는 감각. 참 글러먹은 놈이었네요.

――아니메 작품과의 접점은 어디쯤부터였나요?

  만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대학 2학년 때, 학교 만화동아리 후배의 권유로 테레비시리즈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원화를 거들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갑자기 원화였나요 (웃음).

  1초당 몇 장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웃음). 그래서 타임시트 같은 거 쓸 때는 「뭔데 이게?!」 그런 생각 하면서, 곁눈질로 어깨너머 독학 하고 그랬어요. 『마크로스』에는 메카반과 캐릭터반이 있었는데, 저는 캐릭터반이었고, 제9화의 원화를 그렸었죠. 당시에는 움직이는 타이밍도 몰랐어가지고, 그냥 그림만 그리는 건줄 알고 왔던 상태였으니까. 지금 다시 보면 「히이이익!!」 소리가 나오는 그림입니다 (웃음). 원래 담당했던 스태프가 시간에 못 맞춘 파트가 저희한테 돌아온 거였기 때문에 시간도 없었고,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크레딧에 이름도 안 올라갔었죠. 안노씨와 처음 만났던 것도 그 무렵이었네요. 다만 안노씨는 메카반이어서, 이 때는 얼굴만 알았지 대화할 일은 없었지만요.

――아니메 현장은 어떠셨나요?

  그전까지 애니메이션이란 제 마음 속에서 굉장히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 현장에 들어가겠다는 의식은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공동작업이라는 게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저는 다같이 와글와글한 걸 좋아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가 내 천직일지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아예 만화라던지 아니메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해서 대학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학 선생한테 「통신교육생」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제 시기에만 나타나서 과제만 제출하고 사라지니까 (웃음). 그 과제도 3일만에 벼락치기한 건데 어떻게 한 달 걸려서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그런 이상한 테크닉만 익혔네요 (웃음).

――구체적으로는 어떤 테크닉? (웃음)

  이전에 그렸던 과제 그림 위에 덧그리는 겁니다. 그러면 몇 번씩 겹쳐 칠한 게 되니까 시간이 걸린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고, 심지어 캔버스값도 아낄 수 있고 (웃음). 해서, 『마크로스』 아르바이트 이후에 동경하던 오오츠카씨와 미야자키 하야오씨가 있던 텔레콤에 입사시험을 봤는데 덜컥 붙어 버려서 (웃음). 그 때 미야자키씨가 「애니메이터는 2년 후에도 할 수 있네만, 지금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 학교는 촐업하고 오게나」 그러시더군요. 그리고 2년 후 대학 4학년 때 『다이콘 Ⅳ』에 참여했습니다.

――『다이콘 Ⅳ』 참여의 계기는?

  『마크로스』 제9화 연출을 한 사람이 지금 가이낙스의 야마가 히로유키 사장이었는데요, 그 양반이 『다이콘 Ⅳ』 감독을 하게 되었다고, 거들어 달라고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어느 부분의 원화를 담당하셨나요?

  주인공 여자애의 액션 전반이었네요. 바니걸 여자애가 칼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씬이라던가, 파워드슈츠와 싸우는 씬이라던가.

――당시의 인상깊은 에피소드라면?

  동경에서 오사카까지 바이크로 갔는데, 바이크를 도둑맞아 버렸습니다 (웃음). 뭔가 그 이후로 오사카인들에 대한 인상이 안 좋습니다 (웃음). 도둑맞고 3개월 정도 지나서 발견이 되어가지고, 신간선을 타고 오사카까지 찾으러 갔어요. 『다이콘 Ⅳ』에 안노씨도 참여했었는데, 안노씨와 헛소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도 그 무렵이었네요.

――그 무렵의 안노씨의 인상은?

  「나의 이상적인 식사는 앰풀이다」 그런 소리 하면서, 앰풀만 마시고 밥을 먹지 않는 사람 (웃음). 「이상한 인간이네」라는 게 첫 인상이었습니다. 저도 그 양반도 지금보다 밝고 풋사과였어요. 지금은 피차 짊어질 것들이 많아져서, 「또라이같은 그대로의 그 시절이 즐거웠었지」 뭐 그런 생각도 듭니다.

――『다이콘 Ⅳ』를 하다 어떤 경위로 아니메 업계에 아예 들어오게 되었나요?

  『다이콘 Ⅳ』 이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미야자키씨나 오오츠카씨가 이제 오라고 하셔서 텔레콤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입사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또 한 명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야자키씨는 텔레콤 그만두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들러 가 버렸고 (웃음). 게다가 안노씨는 『나우시카』에서 거신병 씬이라던가 맡아서 했잖아요. 엄청 많이 부러웠어요.

――텔레콤에서는 어떤 작품을?

  일미합작 로봇물인 『마이티 오봇츠』라던가, 『명탐정 홈즈』라던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실은요, 텔레콤 연수기간 중에 『마크로스』 극장판 일을 거들었거든요. 낮에는 텔레콤에서 연수, 밤에는 『마크로스』 하는 이중생활로 전혀 잠을 잘 수 없었어요. 텔레콤이 나카노구에 있고, 저는 그 때 하치오지에 살았으니까, 그 중간지점에 『마크로스』 만드는 타츠노코 프로가 있는…. 바이크로 통근을 했었는데, 아침 일찍 코슈가도를 달리면서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죽겠다」 그런 생각 막 하고 (웃음).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크레딧에 걸린 작품은 무엇인가요?

  텔레콤을 사직한 뒤 참여한 것이 오시이 마모루씨가 감독한 『천사의 알』이었어요. 아마노 요시타카씨의 엄청 팬이었기 때문에, 그 분이 오시이 마모루씨와 어떤 섹션을 해서 이미지보드를 그리고 있는지 흥미가 있었고, 일을 도와드릴 테니 현장을 보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아마노씨의 작업장에서 작업을 해 드리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아마노씨는 묵묵히 일만 하는 분이셨는지라, 저는 결국 방해하러 간 것이었을 뿐 (웃음). 지금도 아마노씨의 그림을 엄청 좋아하지만, 『천사의 알』 때는 특히나 마음에 들어서, 컬러잉크 사용법이라던가, 굉장히 영향을 받고 왔었지요.

――그래서, 드디어 가이낙스의 첫 작품 『왕립우주군』의 캐디를 맡게 되신 거죠?

  아뇨. 직업으로서 처음 캐디를 한 것은 『로봇카니발』입니다. 다만 세간에 나온 것이 『왕립』 쪽이 먼저였을던 것이고요. 『왕립』도 디자인을 마치고 나서 「이렇게 세세하게 디자인하면 색을 칠할 수 없잖아」라던가 이런저런 소리들을 들으면서 점점 알아가게 되었다는 느낌이었지요.

――신인이면서 캐릭터디자이너로 기용된 것은 역시 어딘가 빛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으ー음, 글쎄올습니다, 저로선 잘 모르겠네요. 『왕립』 이후로는 애니메이터로서 이런저런 아니메의 원화나 메카설정 작업을 맡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이낙스 작품 『톱을 노려라!』에서 이미지보드 같은 걸 그렸고, 그러고 나서 『나디아』의 캐디를 맡은 거라….

――참여하신 작품들 중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왕립』, 『나디아』, 『에바』 이렇게 세 작품이네요. 이거고 저거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가 일이 서툴었다 생각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빨리 다음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나디아』 이후로 1〜2년간 이것저것 하다가, 그러던 중에 「만화가에 재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이제 처음 얘기했던 『에바』 만화판의 계기로 돌아가게 되는 것인데요….

――그림콘티 같은 일은 안 하시나요?

  『나디아』 제1화 A파트 콘티를 안노씨와 섹션하면서 짜고 그런 건 있었지만…. 저는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 기법을 안 배웠기 때문에, 만화의 코마 분할이면 모를까 아니메의 컷 분할은 못 해요.

――메카설정이라던지는?

  어떤 비디오아니메의 선풍기 설정을 한 적이 있네요 (폭소). 그리고 자동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때때로 하고 있습니다.

――바이크나 자동차를 상당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유치원 무렵부터 좋아하기 시작했고요, 형도 자동차를 좋아했고, 아버지도 소득수준에 걸맞지 않은 외제차를 몰고 다니셨죠. 바이크의 매력은 스릴과 스피드와 가속감일까나요. 바이크는 커브라던지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그것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잘도 안 죽었구나 싶은 타는 법으로 타기도 했었네요 (웃음). 처음으로 탔던 바이크는 형에게 물려받은 GT50이었고, 그 다음은 친구에게 중고로 산 MB50, 대학 신입생 때 만화 판 돈으로 샀던 게 RZ250, 그 뒤로도 제 바이크 편력은 정말 길고 오래되었습니다 (웃음).

――자동차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자동차는,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이 보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예컨대 시트로앵이라는 회사는 회사 전체가 상상력의 덩어리 같은 구석이 있어서요, 딱 보면 보통 차인데, 내용물은 현가장치부터 제동장치까지 모두 LHM이라는 초록색 오일을 사용하고 있고, 그것을 돌리는 펌프가 죽으면 모든 것이 기능하지 않게 되는 터무니없는, 좋게 말하면 독창적인 자동차거든요. 지금은 그야말로 당연한 구동형식인 FF(프론트엔진 프론트드라이브)도 시트로앵이 개척자라고 말할 수 있는 거거든요. 카리스마 있는 누군가가 그 고집을 기술적으로 만들어냈다는 부분을 좋아합니다. 국산차는 시장조사로만 만들다 보니 사상이 희박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쾌적성을 취하면 운동성은 나빠질 텐데, 일본차는 운동성을 버리질 못해요. 평균화해서 모든 걸 다 집어넣으려 하니까, 개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 차가 좋은 차였던 시절도 있기는 했지만요. 저는 기술자가 그 집념으로 만들어내는 차가 좋은 것입니다. 존경할 수 있는 기술자가 자기 삶의 방식을 고찰하는 방식이 황홀하고, 그런 사람이 만든 차에 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브랜드지향적이네요. 혼다로 말할 것 같으면 F1에서 우승한 혼다가 만든 엔진이니까 탄다, 그런 식의….

――자동차는 디자인도 중요하잖습니까.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으신가요?

  그거 참 정말로 해보고 싶네요! 원래 전공도 회화로 옮기기 전에는 산업디자인이었고, 동경에 상경했을 때도 「만화가가 되고 싶지만, 그 이외에는 자동차 디자이너도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유럽의 자동차 디자인을 동경했지요. 일본인들은 신사불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좌우균등하고 밸런스 잘 잡힌 것을 선호하는 반면에, 이탈리아인들은 밸런스가 무너진 것을 좋아하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곡면을 사용해서 전체적으로는 부드럽지만 어딘가 종이접기처럼 찌르르 하고 톡 쏘는 엣지가 서 있다는 점을 좋아합니다.

――그런 디자인에 대한 고집은, 아니메 일과도 링크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렇겠지요. 캐릭터 디자인이란, 예컨대 10체라면 10체를 한꺼번에 발주받았을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오거든요. 각 캐릭터들의 비교대비가 가능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예컨대 색상을 말할 것 같으면, 10체 중 1체씩을 적색 계통, 청색 계통, 확색 계통으로 다르게 배색을 하는 겁니다. 각각을 단체(単体)로 보면 빨간 놈, 파란 놈 해서 밸런스가 나쁜데, 붙여놓고 상대적으로 보면 각 캐릭터가 서로를 돋보이게 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10체의 캐릭터를 1체씩 따로따로 발주를 받게 되면, 각각이 처음의 1체로서 빨강, 파랑, 노란색을 다르게 넣어봤자 10체를 나란히 세웠을 때 다 똑같은 인상의 캐릭터가 되어 버리는 것이거든요.

――전체를 조망하며 디자인한다는 것은 프로만 할 수 있는 생각일까요?

  스토리 가운데서 그 캐릭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디자인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디자인은 밸런스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앞으로 만화나 아니메에서 어떤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싶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소학교 저학년 때 이런저런 아니메나 만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것과 똑같이, 그 세대의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러면서 어른도 즐길 요소도 담아내는, 폭넓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에바』도 그런 작품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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