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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3일 수요일

에바 코어 설정에 대한 의식의 흐름

 흔히 초호기 폭주할 때마다 유이가 폭주해서 날뛴다고 짐승녀라고들 놀리곤 한다. 나도 꽤 오랫동안 그걸 당연스럽게 여겨왔는데, 『자양화』를 번역하면서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되어서 그 생각(『자양화』에서의 해석과는 또 조금 다른)을 정리해 보았다.

  일단 파일럿 모친의 영혼이 봉입된 곳은 코어다. 에바의 몸(뇌)이 아님. 게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에 동봉된 설정집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코어는 교체할 수 있으며, 코어와 코어가 탑재되는 에바 사이에 필연성이 있는 건 아니다. 삼호기 때 대충 적당히 준비된 토우지 모친을 코어로 썼다는 언급, 그리고 아스카의 싱크로율이 떨어지자 이호기의 코어 교체를 고려하는 리츠코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한편, 코어와 별개로 에바는 생명체로서 감각기관이 있다. 2화부터 “재생하는 초호기의 눈”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감각기관과 근육의 신경신호를 중계하고 통할하는 기관으로서 뇌가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EOE에서 이호기의 뇌가 드러난 처참한 모습으로 이 가설은 증명된다.

  즉, 코어 속의 파일럿 모친과 에바의 뇌신경은 일체화된 것이 아니다. 영혼을 뇌의 작용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코어 속의 파일럿 모친의 영혼과 뇌 속의 에바의 영혼(?)은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이걸 명시적으로 인정한 게 사다모토의 만화판. 제루엘전 이후 LCL에 녹아버린 신지를 샐비지할 때 “초호기 몸뚱이 자체의 영혼”이 나온다. 이 “초호기의 영혼”은 신지를 흡수해 합체하려 하지만 “유이의 영혼”이 그것을 막아선다.

  마기 인공지능과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유추가 되는데, 각자의 인격을 가진 인공지능인 마기는 사실상 세 개의 “인조 영혼”과도 같다. 그리고 세 대의 마기 유닛은 “나오코의 뇌 그 자체”라고 리츠코는 말한다(마기의 내부는 전자제품이라기보다 배관처럼 되어 있는데, 인간의 뇌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기의 OS는 에바의 작동에도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에바의 “뇌”에도 마기의 카스퍼・발타자르・멜키오르 같은 “영혼”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에반게리온 2』 설정집에는 “에바는 영혼이 없다”고 잘라 말하지만, 이 고찰에서 그쪽은 채택하지 않기로 한다. 후술할 내용을 다 읽어보면 에바 몸뚱이에 독자적인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지금까지의 논의와 정합적이다. 어쩌면 에바에 마기와 같은 것이 주입되었는데 이 설정집에서는 그것을 "영혼"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에바에는 영혼이 없다고 말한 것일까? 또는 에바에 처음에는 영혼이 없다 해도, 몸을 움직이는 경험의 누적, 그것을 위한 뇌의 작용이 거듭 누적되면 인공지능이 그러하듯이 영혼 내지 그에 준하는 것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네르프 특성상 에바 작동에 무슨 기술을 사용했다는 말 자체가 개뻥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나는 일단 이 문제에서는 후자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아무튼 에바의 뇌에 탑재되어 에바의 몸을 움직이는 "무언가"는 존재한다. 그것이 영혼이든, OS든, 고스트든.

  그렇다면 코어 속에 있는 모친의 영혼은 그 자신이 에바와 일체화되는 것이라기보다, 파일럿과 에바(를 직접 움직이는 에바의 영혼)의 사이를 중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에바에 영혼이 없다 하더라도, 코어의 모친의 영혼은 에바의 육체를 파일럿이 움직일 수 있게 중계하는 것이지 그 자신이 에바의 영혼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소재지부터가 에바의 뇌가 아니라, 에바의 육체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유사시 교체도 가능한 코어에 소재한다.

  영호기의 코어에 누구 영혼이 들어 있냐는 것은 오랜 떡밥인데, 아예 비어 있기 때문에 영호기의 통제가 불안정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1대 레이의 폭력성을 분리해서 넣었다는 해석은 “그래서 영호기가 폭력적”이라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 지금 내 해석과는 맞지 않다. 그게 아니더라도 2대 레이와 영호기가 자폭해서 죽은 뒤, 굳이 그걸 다시 3대에게서 하나로 합치는 위험한 짓을 할 이유도 없다.

  코어가 비어 있기 때문에 영호기는 자기 영혼(또는 주입된 인공지능 OS)만으로 움직일 것이며, 리츠코가 “그녀”라고 부른 것이 그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호기가 겐도와 아야나미(리츠코의 추측으로는 리츠코 자기를)를 패죽이려 하는 것은 영호기의 “영혼”(코어가 아닌 뇌에 위치함)의 의지일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제14화에서 영호기가 또 지랄이 났을 때 리츠코는 “그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며, 영호기가 신지를 집어삼키려 한다고 독백한다.

  즉 영호기의 발광은 파일럿에 대한 침식과 함께 발생하는데, 영호기가 유독 파일럿에 대한 침식이 자주 발생했던 것도 코어가 비어 있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에바는 사도의 카피이고 인간에 대한 침식을, 마치 아라엘이나 아르미사엘처럼 시도할 수 있다. 이건 위험한 상황이고 대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파일럿 ↔ 코어 ↔ 에바의 중계에서, 코어는 파일럿이 에바를 통제하는 것을 돕는 한편, 에바 쪽에서 파일럿을 침식하는 것을――사다모토 만화에서의 장면에서처럼――막아주는 역할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호기는 코어가 비어 있기 때문에 이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

  위와 같은 추측이 참이라면, 폭주는 무엇이고 폭주의 주체는 누구인가?

  기존 통설처럼 에바와 파일럿 모친이 일체화된 것이라면, 자식을 지키기 위해 모친이 폭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다고 보기엔 폭주라는 것의 양태가 필요 이상으로 폭력적이고(사키엘 파운딩, 제루엘 먹방), 어머니가 없는 아야나미의 영호기가 가장 많이 이유도 없이 폭주했던 것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폭주란 코어의 모친의 영혼이 (아마 파일럿을 지키기 위한 의도로) 에바에 대한 억제를 일부 풀어서 에바가 짐승(The Beast)의 본능 그대로 날뛰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본다. 그래서 폭주 중에는 파일럿에 대한 침식의 위험도 동시에 커지는 것이고, 정도가 극심하면 파일럿이 녹아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짐승의 본능은 바깥의 타자 뿐 아니라 내부의 이물질(파일럿)에게도 향하는 것.

  폭주가 에바의 구속을 해제하는 것이라면 전원이 고갈났을 때 에바가 폭주하면 움직이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뇌의 활동과 몸의 움직임이란 신경세포의 전기신호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에바의 등짝에 꽂힌 콘센트와 5분짜리 조루 배터리는 그 전기신호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또다시 상식적으로, 생물체(또는 시체)의 몸에 전력을 주입한다고 해서 그게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잘린 개구리 뒷다리도 아니고. 신경 펄스나 컴퓨터 신호처럼 정교한 신호가 아닌 강력한 전력의 주입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그렇다면 에바는 사실 이 전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게 아닐까?

  초호기의 폭주는 모두 S2기관을 얻은 제루엘 먹방 이전이었기 때문에, 전력이 끊겨도 움직일 수 있는 에바의 동력원은 S2기관이 아니다. 몸 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원은 그냥 그 몸을 여느 생물처럼 움직이는 것일 터다. 그렇다면 에바의 내외부 전원은 에반게리온이라는 생명체 그 자체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에바에 파일럿의 신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의 전원인 게 아닐까?

  자세히 보면 엔트리플러그는 에바의 연수 부분에 삽입된다. 뇌와 나머지 전신의 신경을 가로막는 딱 그 위치. 에바의 뇌가 신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신호가 엔트리플러그가 수납되는 기계부위를 거쳐가야 하는 것이다. 에바의 외장전원과 내장전원은 딱 저 부위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아닐까?

  그림으로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될까?
  • 평소는: 파일럿 ↔ 코어 ↔ 에바
    파일럿이 입력하는 신호가 코어의 중계를 거쳐서 에바로 전달됨
  • 밧데리 오링: 파일럿 -/- 코어 ↔ 에바
    코어와 연결이 끊겨서 파일럿이 에바에 명령을 내릴 수 없음. 이 상태에서 코어는 스스로 판단으로 에바의 억제기를 풀어 폭주시킬 수 있다.
  • 밧데리 오링났는데 폭주: 파일럿 -/- 코어 -/- 에바
  • 밧데리 오링이 안 났는데 폭주: 파일럿 ↔ 코어 -/- 에바
    대표적인 경우가 삼호기 때 더미시스템 사용했을 경우. 전원은 멀쩡한데 강제폭주했었다. 이 경우에도 더미시스템이라는 것과 코어의 관계를 위 도표상에서 생각해봄직하다.
이상과 같이 가설을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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