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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00년 1월 31일 월요일

「ASUKA」 B파트

 
 
「이카리 신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나는 담임선생이 가리킨 자리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에 긴장하며 잰걸음으로 걷는다.
뒤에서 둘째 줄, 꽤 좋은 자리다.
창가라는 점도 기뻤다.
다만 내게 주어진 자리의 뒷자리에, 또다시 아스카의 모습이 있다.
처음 교실에 들어섰을 때도 아스카를 보고 조금 놀랐지만, 자리까지 바로 근처가 될 줄은…….
누군가의 음모인가, 아니면 무언가의 저주인가?
자리에 가까워지는데, 아스카가 내 얼굴을 보고 흥 코웃음을 쳤다.
「………뭐, 왜」
「아무것도. 그냥, 미간의 훈장이 너무 보기 좋아서………, 푸풉」
「……시끄럽네, 진짜」
작은 목소리로 아스카와 대화를 주고받으니, 근처의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아스카와 이카리군, 원래 아는 사이?」
「그렇다고나 할까, 들어 봐, 히카리. 어제 펭귄한테 습격당한 이카리군을 우연히 내가 도와줬거든.
봐봐, 미간에 빨간 점이 있지? 펭귄 부리에 찔린 거야」
그치 이카리군, 이라 말하고 나를 히죽히죽 쳐다보는 아스카.
「끄응………」
나는 무슨 말로도 받아칠 수 없었다.
「펭귄? ………이카리군, 정말이야?」
그럴 리가 있겠냐, 라고 생각하면서도, 추한 진실을 입 밖에 낼 수도 없다.
「뭐, 뭐어, 대충 그 비슷한 일이었을 수도 있나……」
한심하게 웃으며 얼버무리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헤ー, 역시 아스카는 굉장하네에.
펭귄한테서 남자애를 지켜내다니 쉽게 할 일이 아니야」
당연하지 그건.
지켜내고 자시고 이전에, 동물원 바깥에서 펭귄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내가 마음 속에서 아무리 딴지를 걸어도 그것을 눈치챌 리 없는 여학생은 자꾸 감탄하고 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조금 어이가 없어서 여학생 쪽을 보는데, 아스카가 몸을 일으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야 너, 히카리한테 집적거리기만 해 봐, 가만 안 둔다」
나는 놀라서 아스카를 돌아보았다.
「집적거린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 그대로 의미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퀄, 죽음」
아스카가 정색을 해서 나는 물러갔다.
혹시…….
혹시 아스카, ………너란 사람은……….
머릿속에 어지러운 세계가 전개된다.
「아스카는………… 그ー으러ー언 사람이었구나…………」
「……하아?」
의아한 얼굴의 아스카에게, 나는 말을 계속했다.
「아, 아니, 괜찮아. 그런 건 다 사람 나름이지.
우리 아버지도 엄청 이상한 사람이야」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그, ……방해하거나 하지 않아. 오히려 응원할게, 열심히 해. ……하, 하하」
「너, 너어어!」
내 마른웃음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아스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뭘 생각하는 거야, 바보신지!」
「아, 아스카, 목소리 크다고……」
「닥쳐! 이 변태! 죽어, 죽여버릴 거야!」
「꾸에엑……」
아스카가 내 목을 졸라온다.
교실 한 구석만 갑자기 부산해짐에 따라 동급생들의 시선이 쏠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아스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힘껏 조르는 손가락이 점점 내 목에 착 달라붙는다.
결국 선생이 무슨 일이냐며 소란을 멈추러 개입하기 전까지, 공개사형私刑은 계속되었다.
 
 
「으으, 아직도 기분 나빠気持ち悪い……」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목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렇게 격하게 손가락이 잠식했는데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에 우선 안심했다.
미간의 멍도 새 것인 지금, 또다른 훈장 따위 필요 없다.
어쨌든, 거기서 목을 졸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응원한다고 그랬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을까?
납득할 수 없는 기분으로 목을 쓰다듬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범생センセ. 머 이런 데 처박혀 있노. 찾았구마」
그 스스럼없는 말투에 돌아보니, 거기에는 저지맨이 서 있었다.
……기억한다.
아까 인사를 위해 교단에 섰을 때, 그의 모습은 내 의사 따위와 상관 없이 폭력적으로 내 눈에 날아들어왔다.
혼자 저지를 입은 수수께끼의 남자라니, 그가 내게 준 임팩트는 헤아릴 수도 없다.
곁에는 또 한 명,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안경을 쓴 놈도 있다.
「첫날부터 갑자기 저 소류를 공깃돌처럼 흔들다니, 자네 보통이 아니군」
「대단타. 가 그만치 빡치게 만든 거는 아마 니가 처음일 끼라. 도대체 뭔 짓을 한 기고?」
둘이는 히죽히죽거리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소오류우?」
처음에는 감이 오지 않았지만, 곧바로 아스카의 성씨구나, 깨달았다.
그런가, 소류 아스카라는 것인가.
그렇다 쳐도 공깃돌처럼 아무리했다니, 그런 기억은 추호도 없다.
도대체 뭘 봤으면 그걸 그렇게 기억할까?
나는 단지, 영문도 모르고 살해당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러니까……」
「아하, 미안미안. 내는 스즈하라다. 스즈하라 토우지」
「아이다 켄스케야. 잘 지내보자」
「아, 응. 잘 부탁해, ……스즈하라군, 아이다군」
「뭐꼬, 서먹서먹하구로. 토우지 카문 되는 기라, 토우지. 마 벌써 오줌도 튼 사이 아이가」
펑펑 내 등을 두드리며 토우지가 말했다.
「아, 알았다고. 토, 토우지……」
나는 소변 보러 온 게 아니지만…….
「그런데, 신지는 어디서 전학 온 거야?」
세 명 모두 화장실을 나오자 켄스케가 물어왔다.
내가 지명을 대답하자, 둘이는 히ー익, 반응하기 곤란하게스리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가……. 뭐, 뭐랄까. 물 같은 게 맛있을 거 같고……」
「그렇나……. 무논 같은 것도 있고 공기도 깨끗하겠구마……」
큰 오해를 품은 둘이를, 나는 쓴웃음으로 포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 전입하는 건 드물지. 부모님 일 때문이라던가?」
「………일단은, 그런 셈이 될려나?」
「일단은, 이라니. 뭐꼬 그기」
「응. 아버지가 독일로 전근이 결정되었거든. 나는 따라가기 싫다고 했더니 느닷없이 제3신동경으로
이사당하게 되어서. 나는 싫었는데 그 애비가 지 멋대로 집을 팔아치운 뒤 독일로
도망가 버렸고, 그래서 이사온 집은 돼지우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한 명은 주정뱅이에 한 명은 사디스트인데, 변태펭귄한테
고등어를 빼앗기고………. 아아! 막상 생각하니 뭔가 복장이 뒤집히려고 해!」
화장실에서 사귀게 된 뜻밖의 친구들에게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았다.
「마, 마, 뭐라카는지 잘 모르겠지만, 알았으이 좀 가라안치라」
갑자기 화를 터뜨린 나를 토우지가 달랬다.
「흐ー음, 독일이라………」
「그래, 그래 맞아 켄스케! ……도대체 왜 지금 와서 독일? 거기 뭐가 있어서 독일?
나도 확 가 버릴 거야!」
「마, 알았다, 신지. 일단 진정부터, 잉?」
「확실히 소류가 독일인이었어. 맞지, 토우지?」
「어? ……오오, 그라고 보이 그런 얘기 들은 거 같기도……… 신지, 워워워」
「씨익, 쒸익……」
일방적으로 쏟아내 깔끔해진 내 머리에, 켄스케의 말이 문득 걸려들었다.
「……그런데 독일인인 건 그렇다 쳐도, 이름은 일본인 같은 걸. 왜 그렇대?」
켄스케에게서 답이 나왔다.
「혼혈인 거 같아. 그래서 풀네임은 소류・아스카・랭글리. 두뇌명석・용모단려・성격온후의 삼박자를 갖춘, 제1중의 슈퍼 아이돌이시지」
내 다리가 딱 그 자리에 달라붙는다.
……지금, 뭐라 그랬어?
용모단려야, 뭐 그렇다 쳐.
나도 그건 이견이 없어.
두뇌명석도 잘 모르겠지만, 뭐 그런 걸로 하자고.
그런데…….
성격온후?
저 선천적 사디스트의 어디에 그런 표현이 들어맞는단 말인가?
「……미안, 켄스케. 잘 못 들었어. 두뇌명석・용모단려 다음에, 뭐라 그랬어?」
「아아, 성격온후?」
잘못 들은 게 아닌가벼.
「…………어떤 면이 성격온후?」
「어떤 면이냐고 물어본다 해도……. 대인관계 좋지, 누구에게나 상냥하지…….
신지도 곧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말을 들어봤자, 절대 알게 될 일 없을 것 같다.
내가 목이 졸리고 있던 장면은 그럼 얘네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었던 걸까?
「그럼, 그럼 나는 왜 아까 목졸린 건데?」
「그거를 우리가 우예 아노. 니가 머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는 거 아이가」
「맞아, 소류한테 뭐라고 한 거야? ………싫어ー잉 같은 그런 느낌을 준 건가?」
싫어ー잉 같은 느낌은 또 뭐야, 아무튼 뭔가 이상하다.
이 둘이 말하는 아스카상像과, 내가 실제로 본 아스카는 전혀 다르다.
이게 도대체 어ー떻ー게 된……?
의문으로 목을 비틀며 교실로 돌아온 내 눈에, 그 광경은 날아들어왔다.
「아스카, 미안하지만 숙제 좀 보여주지 않을래? 어제 좀 바빴어서」
「괜찮아, 자」
여학생의 부탁에 미소로 대답하는 아스카.
뿐이랴.
「소류양, 이 단어 무슨 뜻인지 알아?」
「보자, 이거는…… 발견이라는 의미네」
남학생의 질문에 상냥하게 대답하는 아스카.
내 눈 앞에 패럴렐 월드가 펼쳐져 있었다.
「…………」
……믿을 수가 없어.
저게, 그 아스카라고?
아연하여 서 있는 나의 어깨를 켄스케가 두드렸다.
「자, 알겠지? 그것보다 곧 수업 시작하니까 자리에 앉는 게 좋아」
그 말을 따라 자리에 착석했지만, 뒷자리에 앉은 이차원異次元녀의 존재가 섬뜩했다.
오싹오싹 느껴지는 압박감은 기분 탓일까…….
최대한 의자를 앞으로 당긴 나의 등에, 툭툭, 손가락이 닿았다.
「힉……!」
몸을 활처럼 젖히며 황급히 뒤돌아보니, 아스카가 히죽 웃고 있었다.
「……화장실 타임이 참 길기도 하네에. 기다렸거든, 쭈ー욱……」
나한테밖에 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뭐, 뭐 하러?」
「에에……, 여기저기 안내를 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우후후……」
그 요사스런 웃음을 보자, 내 얼굴에는 쥐가 났다.
「그, 그거 참 황송하여라. 그래도, 괘, 괜찮습니다. 학교야 어디든 다 비슷비슷한 것이고……」
「어ー머나, 학교 아닌데」
「………아니면?」
「지・옥・에」
「………지옥에?」
「그래, 지옥구경. 아까 일 때문에 내 이미지가 무너지게 되면 다 너 때문이니까.
그러니까, 지옥구경을 시켜준다고. 그래도 안심해도 돼. 오늘까지는 지옥 3정목 정도에서 봐줄 테니까」
「…………」
그리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악몽도 시작되었다.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아스카의 진정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절감했다.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그 처사는 그야말로 지옥구경이라고 불릴 만했다.
대략 한 시간 동안 3정목까지 가이드를 받고 종이 울릴 때 쯤에는
눈앞에 꽃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에 들어간다.
「어ー이, 신지. 우리 매점에 빵 사러 가는데, 너는?」
「아, 나도 오늘은 그럴까나」
「그럼 빨리 가자. 서두르지 않으면 맛있는 건 다 나가고 없거든」
나를 꾀어 준 둘이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셔츠의 등 복판이 덥석 잡혔다.
「히이익……!」
「아이다군과 스즈하라군, 잠깐 이카리군과 할 얘기가 있으니까, 미안하지만 먼저 가 주면 안될까?」
겁먹어 얼어 있는 나를 놓고, 등 뒤의 데빌은 제멋대로 지껄인다.
「마, 그래. 소류가 할 얘기가 있다 카문 그런 거겠지. 야 신지, 우리 먼저 간데이」
지, 기다려줘…….
마음의 외침도 헛되이, 켄스케 등은 그대로 교실에서 나가 버렸다.
「야, 계속 서 있을래? 앉아라?」
「네, 넵……」
분부하신 대로 몸을 낮추고, 조심조심 아스카의 얼굴을 보았다.
「하, 할 이야기라는 건 뭘까나……. 소류양」
「뭐야 그거. 하지 마, 기분 더럽네」
아스카가 얼굴을 찌푸렸다.
「엥?」
「……너한테 소류양,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가방을 부스럭거리기 시작한다.
「뭐하는 거야?」
내 말은 무시한 채, 아스카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 이거」
「………이거가, 뭔데?」
내민 것은 봉투 가득 담긴 빵이었다.
「맘에 드는 거 꺼내 가」
「……내가? 그래도 돼?」
「당연하지. 이거 어제 미사토하고 네가 사 온 것들 아니야」
그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낯익은 빵들이 여럿 있다.
「진짜네……. 그럼 아스카 거 먼저 골라 가」
「됐네요, 네 거부터 고르세요」
「그래도 돼? 그럼 사양하지 않고……」
적당한 빵을 두세 개 킵하자, 아스카가 말한다.
「말해 두는데, 널 위해서가 아니야. 주변에서 보기에 나는 전학 첫 날이라 불안해하는 새끼양에게
자애를 베푸는 마음씨 상냥한 소녀로 보이겠지? 그러니까 이건 나 자신을 위한 거라고」
묻지도 않은 것을 떠드는 아스카를, 나는 신기하게 여기고 떠 보았다.
「그렇게 점수 따서 어디에 써?」
그러자 나머지 빵을 가방 속으로 되돌리던 아스카의 손이 순간 멎었다.
「…………딱히, 너하고는 관계 없어」
 
 
「키야ー! ………그래서, 신지군. 학교는 좀 어땠어ー?」
귀가하자마자 맥주를 까는 미사토씨를 흰 눈으로 바라보며 나는 대답했다.
「에에, 깜짝 놀랐지 뭐에요」
「응? 뭔 일이 있었어?」
이틀째의 레토르트식품에 젓가락을 뻗치며, 옆의 의자에 앉아 있는 아스카를 의식해서 대답했다.
「아스카는 집에서하고 학교에 있을 때하고, 진짜 지독하리만치 다르더라고요」
「다르다니……… 뭐가?」
미사토씨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
……미사토씨도 모르는가 보구나.
「학교에서의 아스카는요, 굉장했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 아주 완벽 그 자체라는 느낌으로.
두뇌용모성격 삼박자를 갖춘 제1중의 슈퍼아이돌이랍디다」
「…………거짓말이지?」
미사토씨는 아스카를 보았다.
「뭐, 당연하지. 못 푸는 문제가 없고, 일주일 중 러브레터가 오지 않은 날이 없고,
나는 여신처럼 상냥하기까지ー……」
아스카가 득의양양 입을 놀린다.
「……어디가」
「보면 몰라. 전부야」
「백보 양보해서 머리와 얼굴은 인정한다 쳐. ………성격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어.
네가 여신이라면, 이 세계는 이틀만에 망해 버릴 거야」
내가 응응 소리까지 내며 고개를 크게 끄덕임으로써 미사토씨에게 동의했다.
「너희들…… 말이면 다인 줄 알어」
「아이를 잘못된 생각에서 구해내는 것도 보호자의 일이니까. 고마워해도 좋아」
오늘도 아스카의 젓가락이 착 멈춘다.
「…………흥. 뭐 됐어.  삼십 줄 곶이 가까워 시들어가기 시작한 잡초와 정신연령이 낮은 어린애 상대로 신의 위대함을 이해시키는 게 무리지」
………음?
처음 건 그렇다 쳐도, 다음의 어린애라는 건 나 말인가?
「그도 그렇지. 신과 악마의 경계도 이해 못 하는 데빌 아스카는
평생이 걸려도 이해할 수 없겠지」
말꼬리를 잡아주고, 나는 언제라도 도망갈 태세를 취했다.
「오옷! 심드렁한 얼굴로 신쨩 독설」
「시, 시끄러워! 바보신지 주제에 주제넘은 소리 하지 마!」
「시끄러운 것은 어느 쪽인가. 자네에게는 진정이라는 것이 좀 필요한 게 아닐까?
칼슘을 많이 섭취하세요, 랭글리 군」
「풉!」
내 까불거리는 한 마디에 미사토씨가 뿜어 버렸다.
아스카의 이마에 혈관이 돋치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래……랭………」
주먹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어, 위험………… 말이 지나쳤나?
「펭귄 이하 주제에…………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야아악!!」
나는 질주로 부엌을 뛰쳐나갔다.
「거기 서! 도망치게 둘 거 같아 바보신지!」
서란다고 서는 바보가 어디 있냐.
그러니까 나는 바보가 아니야.
내 방으로 도망쳐서, 급히 자물쇠를 잠갔다.
그리고 시계의 초침이 다섯 바퀴 정도를 도는 사이.
그치지 않는 문의 비명 덕분에, 나는 공포영화 주인공의 기분을 마음껏 체험하게 되었다.
 
 
 
 
다음 날 방과 후, 나는 아스카와 함께 하교하고 있었다.
도중, 전혀 모르는 남학생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유는 대충 이해한다.
자네들 모두 속고 있는 거야…….
하교 중에도 아스카의 슈퍼아이돌 가면은 벗겨지지 않았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실컷 나를 두들겼기 때문인지, 학교에 있을 때는 훨씬 얌전했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아스카를 놀리지 말자』
그것이 오늘 아침 내가 얻은 교훈이었다.
아직도 통증이 남아 있는 옆구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아스카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너, 뭐 사러 가는 건데?」
우리는 이틀 전 미사토씨가 나를 데리고 갔었던 쇼핑센터로 가고 있다.
가는 길을 몰랐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라고 아스카에게 길안내를 부탁했더니 담백하게 OK했다.
「응. 아무래도 저녁식사 재료라도 좀 사볼까 해서」
「저녁? 아직 레토르트 잔뜩 남아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흘 내리 레토르트로 때우는 건 쓰라리다.
이제 한계에 도달한 나는, 적어도 내 몫만이라도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가끔은 평범한 요리가 먹고 싶어지고 그러니까」
「흐ー응……. 평범한 요리, 라고……」
 
 
쇼핑센터에 도착하자 나는 식료품 매장으로 직행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 아스카 그동안 어쩔래?」
「나도 사고 싶은 게 있을지 모르니까, 같이 갈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가까이 있던 대파를 바구니에 넣었다.
「……잠깐만 신지. 너 파 같은 거 사서 어쩌려고?」
아스가는 신기한 것을 본다는 듯 대파와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기는…… 말했잖아? 요리할 거라고」
「요리해? 네가? 요리를? ……할 수 있어?」
「응」
「그치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말 한 적 없었잖아」
「할 수 있다고 말한 적 없지만, 할 수 없다고 말했던 적도 없어」
「………뻥치네ー. 허세 부리려고 뭔 짓을 못 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약간 정색해 볼까.
「실례네 진짜…….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아스카 몫까지 만들어 줄테니까」
「그ー렇다고 해도, 너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거 맞아?」
「가정요리라면 대충 만들어본 적이 있으니까,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리퀘스트라도 있냐고 아스카에게 물으며 돌아보았다.
아스카의 시선은 정육코너의 한 점을 향하고 있었다.
「응? 뭔데? …………간고기?」
「………햄버그」
「에?」
「햄버그가 먹고 싶어」
「호오, 함박을, 그렇구나……」
별 생각없이 말한 건데, 아스카가 과민반응했다.
「뭐, 왜, 뭐! 상관 없잖아, 별로!」
「아니, 상관 없긴 한데, ………왜 흥분을 하고 그래?」
「다, 닥쳐!」
아스카는 간고기를 장바구니에 던져넣고,
「나 과자 보러 갈 거야!」
어깨를 으쓱이며 가 버렸다.
……뭔데 진짜?
 
 
그리고 적당한 식재료들을 고르던 끝에, 과자 코너에 죽치고 있던 아스카와 합류했다.
「또 온통 단 것들만……」
완전히 주부의 감각을 되찾은 내 입에서 아줌마스러운 말이 튀어나온다.
「너하고 관계 없잖아」
「살찐다? 여드름 나도 난 몰라?」
「………알았다고」
웬 일로 내 말을 들은 아스카는 판초콜릿 한 장만 매대로 되돌렸다.
………거의 변한 게 없잖아……….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나는 아스카를 데리고 계산대로 향했다.
 
 
사흘만의 요리는 즐거웠다.
들어간 기합도 리듬도 평소와 다르다.
하는 것 자체는 예전 집에 살던 때와 다를 것 없지만, 오늘은 달리 목적이 있다.
아스카 입에서 내 요리가 맛 없다는 소리만 안 나오게 하기.
어차피 성격이 그 모양이라, 만약 내가 일류 주방장 뺨치는 요리를 만들어도
맛 있다는 소리는 못 들을 것이다.
그러니, 맛 없다는 소리만 안 하면 내가 이기는 것으로 했다.
처음으로 남을 먹일 요리를 만든다는 것은 긴장되지만 어딘가 기쁘기도 했다.
 
 
콩콩.
원숭이 마스코트가 걸려 있는 방문을 노크한다.
곧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문이 열렸다.
방에서 나온 아스카를 보고, 나는 씨익 웃었다.
「후우…… 다 됐어」
「호오, 자신만만하네」
「글쎄? 어떨까. ……그럼, 이쪽으로 오십쇼, 손님」
내가 웨이터 흉내를 내는 장난을 치자, 아스카도 덩달아 어울려 주었다.
「고마와요. 가장 좋은 자리로 부탁할게요」
「분부대로 합죠」
내가 먼저 부엌에 들어가 아스카의 의자를 빼주고 기다린다.
아스카가 앉은 것을 확인하고, 나도 내 의자에 앉았다.
컵에 내 몫과 아스카 몫의 차를 따르고, 하나를 아스카에게 건넸다.
「………먹어볼까?」
눈앞의 요리를 그저 쳐다보고만 있는 아스카에게 재촉했다.
「아, 응. 잘 먹겠습니다……」
「부ー디」
「…………」
「…………」
「…………」
아스카는 말없이 요리를 먹기만 하고 있다.
도중에 참을 수 없어진 내가 어때? 어때? 물어 보아도,
「잠깐 있어 봐」
라고 말할 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아스카는 요리를 전부 깨끗이 비웠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복잡한 듯한 표정으로 빈 접시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어땠어?」
근질근질하던 나는 아스카에게 평가를 구했다.
그러자 아스카는 팔짱을 끼고 몇 번 고개를 끄덕인 뒤,
「……뭐어, ………나쁘지 않았어」
라고 조용히 말했다.
아싸!
테이블 아래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정도로 기뻤다.
「……너, 이거 어떻게 배웠어?」
「응?」
「요리 말야. 어떻게 요리할 수 있게 되었냐고?」
「아아. 우리 집, 어머니 안 계시고, 애비는 밤늦게 귀가하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어.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까?」
나는 약간 들떠서 설명했다.
그 순간, 접시를 보던 아스카가 얼굴을 들어올렸다.
 
 
「너…… 어머니 안 계서?」
아스카가 눈을 부릅뜨고 물어온다.
「그, 그런데………. 왜, 왜?」
방금 전까지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르다.
「그거…… 어떤 느낌?」
「엥?」
「어머니가 안 계신 거, 어떤 느낌? 어머니 언제부터 안 계셨어?
어머니의 기억은 얼마나 있지?」
단숨에 질문들을 몰아치는 아스카를, 나는 그저 놀라서 보고 있다.
「야, 대답을 하라고!」
「아, 알았어. ………근데 왜?」
「됐으니까 대답이나 해!」
「으, 응. 보자…… 어머니가 안 계시게 된 건 내가 4살 정도 때였나?
기억은 거의 없어. 사진도 안 남아서 얼굴도 몰라.
기억나는 것이라면………… 손을 잡고 다녔다는 것 정도일까」
「어머니 지금, 어떻게 지내?」
「죽었어. 나 4살 때」
「신지는 슬프지 않아?」
「……어떨까나. 지금까지는 딱히 생각해 볼 일이 없었는데. 안 계신 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렇구나」
그러고는, 아스카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스카가 방으로 돌아간 뒤, 곧바로 미사토씨가 귀가했다.
내가 만든 요리에 기절초풍을 하며 맛도 칭찬을 받았지만, 솔직히 기뻐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스카, 왜 저러는 걸까……?
어머니 안 계신다는 말을 한 순간, 갑자기 느낌이 확 변했었지…….
미사토씨에게 말해볼까 싶었지만, 좀더 생각해본 결과 그만두기로 했다.
그다지 뒷담화에 적당한 화제 같지가 않다.
그 날은 결국 아스카가 다시 방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카츠라기가에 이사온 지 3주가 지났다.
새로운 환경에도 제법 익숙해지면서, 처음의 그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방과 후에는 토우지와 켄스케를 따라다니며 놀 만한 곳들을 배웠다.
아스카하고도 변한 것은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스카와 대화할 때 실수로 이름을 부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아스카가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남학생의 암살기도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아스카라고 부르지 않는 대신 소류양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아스카는 내가 장난삼아 소류양, 소류양 그럴 때마다 왜인지 반드시 불쾌해했다.
예의 저녁식사 때 일은 좀 신경이 쓰였지만, 정작 아스카 본인이 다음날 태연했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의문도 날짜가 흐르면서 내 속에서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토요일.
 
 
이것만 마치면 하교인 종례 학급회의 때의 일이었다.
학급위원장 호라키씨의,
「각 위원회에서의 연락사항은 없습니까?」
라는 말에 아스카가 손을 올렸다.
「앨범위원입니다만, 졸업앨범 제작 건으로 좀……」
아스카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단으로 향했다.
「느닷없이 죄송하지만, 오늘 누구 한 명만 남아서 조수를 해 주세요.
앨범 편집작업이 있고……」
아스카의 말에 교실은 침묵했다.
동급생들 모두 황급히 얼굴을 돌리고, 누구도 아스카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꽃 같은 토요일.
사생활을 깎아가면서까지 학교에 남고 싶어할 녀석은 일단 없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앨범위원은 제1중의 슈퍼아이돌.
혹시 아스카를 목적으로 남고 싶은 남자는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여기서 입후보했다가는, 자기 마음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것이 된다..
다들 그런 부분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결국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학급위원회라는 것도 참 못할 짓이군.
남의 일처럼 책상에 턱을 괴고 있는데, 나와 아스카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면, 조수는 이카리군으로」
갑작스러운 아스카의 횡포에, 나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자자, 잠깐만 기다려요! 어째서 내가!?」
「눈 마주쳤으니까」
「그, 그런 이유로……」
「달리 중요한 용무라도 있습니까?」
「없지만요, 그래도 그렇지……」
「문제가 없는 것 같네요. 이 제안에 이의가 있는 사람? ………없네요. 그럼 찬성하는 사람, 박수 부탁드립니다」
만장일치로 울리는 박수 속에, 내 의지는 묻혀 버렸다.
너, 너무해…….
다들 남고 싶지 않은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조수는 이카리군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뭐가 민주주의야.
다수의 폭력 아니냐…….
나는 힘없이 앉아, 책상에 철퍼덕 엎드렸다.
 
 
그리고 방과후.
억지춘향으로 조수로 선출된 나는, 모두들 차례차례 나가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망할…… 아스카 녀석, 나를 길동무 삼다니…….
「마 우린 간데이, 신지 닌 열심히 하그라ー」
「토요일인데 운도 없지. 그래도 저 소류와 단둘이 있을 수 있다니, 좋게 생각해」
친구라는 것들의 시덥잖은 위로를, 손만 흔들어 쫓아 버렸다.
웃으며 떠나는 두 사람과 엇갈려, 아스카가 교실로 돌아왔다.
「기다렸지. 그럼 시작하자고」
직원실에서 가져온 듯한 사진다발을 책상에 내려놓고, 아스카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
놀리는 보람이 있는, 나라는 장난감을 확보했으니…….
「여기는 내가 할 테니까, 신지는 그거네」
나는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지시에 따랐다.
애초에 전학와서 한 달도 안 된 내가 앨범 편집을 돕는 것 자체가 뭐하자는 짓인지.
사연을 알 수가 없는 사진들과 눈싸움을 하면서 적당히 분류해 나갔다.
「나하고 단 둘이 남을 수 있다니, 행운아네 그치」
「…………」
「지명해 준 거, 감사하도록 해」
「…………」
「어차피 넌 다른 일정은 없었을 거 아냐?」
「…………」
「……야, 무시하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라?」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아스카의 작업하는 손이 멈췄다.
「……됐으니까, 빨리 하고 빨리 끝내자」
완전히 썩어 있던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화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스카는 그대로 조용해졌다.
「…………」
「…………」
「…………」
개의치 않고 그대로 침묵 속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내가 뽑아준 게, 그렇게 싫었어?」
아스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엥?」
「나하고 같이 남아서 이러는 거, 그렇게 싫었냐고?」
질문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당연하잖아? 오늘 낮부터 기대하던 텔레비전 프로가 있었는데……」
또, 아스카의 손이 멈춘다.
「그렇구나………. 그럼 신지, 가도 돼. 나 혼자 할테니까」
「에에?」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드니, 아스카는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속을까보냐.
어차피 또 놀리려고 우는 척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아스카를 무시하고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 뒤, 아스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미안」
「엥?」
귀에 들어온 낱말의 의미에 놀란 나는 얼굴을 들었다.
아스카는 아까와 다름없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아스카?」
「미안해. 신지가 그렇게 싫어할 거라고는, 나는 생각 못 했으니까……」
……아뿔싸!
아무래도 장난이 아닌 것 같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 아니……… 아니야, 아냐아냐. 그럴 생각이 아니었고……」
아이 씨, 어떡하지!?
「또 아스카가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그러니까 아니라고.
싫어하는 거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내게, 아스카는 얼굴을 들었다.
「……진짜? ……화 안 나?」
「화, 화 안 났어. 진짜로」
라고 말은 했지만, 실은 조금 화가 나긴 했는데…….
「그럼, 나랑 같이 해 줄래?」
「무, 물론이지. ……………저기, 미안. 내 태도 너무 나빴지」
내가 사과하자 아스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으응. 나야말로 억지 부렸고……」
「아니, 내 쪽이……」
「아니야. 내가 먼저……」
거기까지 말하고, 우리는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뭔가, 아스카답지 않네」
「그렇네……… 가 아니고, 그거 무슨 의미?」
「아스카는 좀더 이렇게, 의젓ー한 자세를 취해야지」
히죽히죽거리며 내가 말하자, 아스카는 미간에 주름을 띄었다.
「그러면 내가 아주 자기중심적인 것 같잖아」
「그렇게까지 말은 안 했는데……………… 그러게, 역시 그럴지도」
「아악!? 신지 주제에!」
「으왁!」
아스카가 번쩍 손을 치켜들자, 나는 요란스럽게 머리를 움츠려 보였다.
역시 이래야지…….
곁에 있는데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라니, 너무 허전하잖아.
아스카의 화난 듯한, 그러면서도 웃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 시시덕거린 뒤, 우리는 사진 편집을 재개했다.
좀전까지와 같은 침묵은 이제 없다.
「그러고 보니, 신지가 보고 싶다던 텔레비전 프로 뭐야?」
「그거 있잖아. 『춤추는 가정부의 밀착 경찰 24시, 오늘밤 당신도 밀레니엄』 재방송.
저번 회차 방송 때 나는 역에 있었으니까 못 봤어」
그 대답에 아스카가 팟 얼굴을 들었다.
「그거, 나 오늘 녹화예약 해 놨어!」
「진짜!?」
아스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그러니까, 집에 가서 같이 볼래?」
「어…… 그, 그래」
같이, 라는 말에 움찔했다.
아스카의 웃는 얼굴도 묘하게 눈부시다.
솔직하다고나 할까, 가시가 없다고나 할까…….
오늘 방과후의 아스카는 어딘가 색달랐다.
여느 때와 미묘하게 다른 공기 속, 작업을 마칠 때까지의 두 시간을
나는 마음이 들뜨는 것 같은 기분으로 보냈다.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아스카는 내 앞에서 자주 웃게 되었다.
집에 있을 때도, 뭐든지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내 방에 놀러 왔다.
한 번은 수학 숙제 때문에 아스카 방을 찾아갔는데, 방 안으로 끌려들어가서
그대로 세 시간 가까이 게임이라던가 말상대를 하고 나왔다.
식사 때도, 미사토씨가 섬뜩해할 정도로 아스카는 부루퉁한 일이 없어졌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내 방 들여다 보면, 죽여 버린다!』
라고 말하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스카와 나누는 대화는 시덥잖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화제가 떨어질 것 같으면
꼭 내 어머니에 관해 물어왔다.
정확하게는, 어머니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한 감상을 요구했다.
왜 이렇게까지 어머니 이야기에 매달리는 걸까?
쭉 마음에 걸렸지만, 물어봐도 좀처럼 알아낼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여름방학까지 1주일 정도 남은 어느 날 밤.
그 날은 가랑비가 내리면서 무더워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개더워ー……….
더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티셔츠가 땀에 젖어 기분 나쁘다.
내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게다가 이 집에는 선풍기도 없다.
창문을 열어 봤자, 축축하게 젖은 공기가 들어와 더욱 불쾌해질 뿐이었다.
디지털 시계는 1시 반을 표시하고 있다.
……이러다 오늘 밤 못 자겠는데.
나는 잠을 포기하고, 뭔가 마실 것을 찾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옆방의 아스카가 깨지 않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복도를 걸어,
천천히 거실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사토씨, 오늘은 일 때문에 안 들어온다고 하셨던가…….
그런 것을 떠올리면서, 별 생각 없이 부엌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
놀라 펄쩍 뛸 뻔했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부엌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공황상태가 되어서, 진짜 도망가야 하나 생각하던 그 때,
「신지?」
그 무언가가 말을 했다.
귀에 익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뭐, 뭐야……. 아스카였어. ………깜짝 놀랐잖아」
「왜 깼어? 이런 시각에」
「목이 좀 말라서. ……아스카야말로, 뭐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벽의 스위치에 손가락을 뻗는데,
「불 켜지 말아」
아스카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왜?」
「됐으니까 켜지 말라고」
잘 모르겠지만, 아스카가 하라는 대로 했다.
충분히 어둠에 눈이 익자, 걷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차를 꺼내, 컵에 따르고 단숨에 비웠다.
아스카는 앉은 채 움직임이 없다.
「………안 자? 1시 반이야」
아스카 방에는 에어컨이 있었을 텐데.
더워서 잠 못 이루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신지는 일찍 안 자? 그러다 늦잠 자버려」
「나는 무리. 방이 무더워서 도저히 눈을 못 붙이겠어」
「………그렇구나」
나는 컵을 싱크대에 넣고, 아스카의 옆 의자에 앉았다.
「뭐 하고 있었어?」
「………응, 그냥 좀」
대답이 분명치 않다.
그 대신, 한참 있다 내게 말했다.
「내 방…… 올래?」
「에?」
「내 방에는 에어컨 있으니까, 안 더워」
「아니…… 그래도」
거실에도 있잖아,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가자」
아스카는 일어서더니,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아, 아스카?」
여전히 급전개에 약한 나는,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아스카의 방은 시원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쾌적한 온도.
좋구나아, 내 방에도 에어컨 놓았으면 좋겠다아…….
따위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나는 쿠션에 앉아,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고 고민하고 있었다.
아스카는 방에 들어와서도 불을 켜지 않는다.
엷은 어둠 속, 침대 위에 무릎을 안고 쪼그려, 가만히 있다.
창 밖에서는, 가랑비 뿌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으ー음…….
거북할 것까지야 없지만, 그렇다고 할 일도 없다.
내 방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들어오자마자 돌아가는 것도 참
실례가 될 것 같다.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가 없어.
그런데, 아스카가 입을 열었다.
「잠깐, 얘기 안 할래?」
「얘기? ………괜찮지만, 무슨 얘기?」
「……엄마 얘기」
또야…….
그것 자체는 상관 없지만, 달리 문제가 있다.
「하지만 내 어머니 얘기라면 할 만큼 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틀려. 지금은 우리 엄마 얘기, 들어줘……」
「아스카의? ……음, 그러지 뭐」
아스카는 무릎을 안은 자세를 허물고, 벽에 기댔다.
 
 
그리고 나선,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스카는 어머니와의 온갖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내게 캐물었던 것과 똑같이, 무엇을 했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하나하나 자세하고 정중하게.
얼마나 예쁜 분이었고, 얼마나 상냥한 분이었고, 얼마나 어머니를 좋아했는지, 끊임없이 계속 이야기했다.
내리 한 시간 동안 아스카의 회고담은 계속되었고, 나는 그저 맞장구를 쳐주는 것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아스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 있지, 이상해」
「……이상해?」
「어떻게 됐거든, 머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무심코 아스카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비가 내리는 밤이면, 못 살겠어」
아스카는 창문에 떨어지는 비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없어졌을 때와 같은, 이런 비 내리는 밤은 싫어……」
「없어지셔?」
「우리 엄마, 사고로 죽었거든. 내가 다섯 살때. 비 내리는 밤에 운전하다가
트럭하고 정면충돌해서」
「…………」
「내 탓이었어」
「………무슨 소리야?」
「엄마가 그 날 차 몰고 나간 건, 내가 열이 나서, 그래서 약을 사러 간다고…….
너무 빨리 달렸대. 도로에 생긴 물웅덩이에 타이어가 미끄러져서
반대차선으로 넘어가서, 그래서……」
「그건 아스카 탓이 아니야……」
내 말에,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안 괜찮아. 내가 열이 나는 못된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는 죽어 버렸어.
내가 좀더 착한 아이였다면, 엄마는 절대 죽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가 않아……」
내가 놀라서 부정하려 들자, 아스카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괜찮아, 아무 말 안 해도. 신지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그래도 안 되는 거야.
아무래도 내 탓인 게 아니면 안 되는 거야. 납득할 수가 없는 거야」
「…………」
「신지한테 그렇게 끈질기게 어머니에 대해 물어본 거, 나하고 비슷한 경우였으니까.
나랑 똑같이,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신지가
그걸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가 알고 싶었어」
「…………내가, ……도움이 되었어?」
아스카는 말하기 곤란한 듯 고개를 수그렸다.
「……알게 된 건, 역시 신지는 신지고, 나는 나라는 거……」
방은 침묵에 휩싸였다.
뭐라고 말을 해 줘야 좋을까…….
내가 모자란 머리를 풀회전 시켜 생각을 짜내고 있는데, 아스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젠가 신지가 그랬었지, 그렇게 점수 따서 어디에 쓰냐고」
「에? ……아아」
여기에 막 이사왔을 무렵, 왜 그렇게 주변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건지
신기하게 생각해서 물어봤던 적이 있었지.
그 때 이야기인가보다.
「아마, 트라우마라는 거, 그거라고 생각해. 내가 못된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어.
그러니까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모두가 알아주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가 봐. ……바보 같지? 그래봤자 엄마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트라우마…….
어릴 때 입은 마음의 상처가 원인이 되어, 어른이 되어서까지 시달리는 마음의 병.
그렇게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진짜 내가 아니야. 그래도,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그래도, 그러면, 이 집에 있을 때는? 미사토씨나, 나하고 이야기할 때의 아스카는 뭐야?
그 때도 아스카는 무리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지만…… 그치만……」
「그치만, 뭐?」
「모르겠어. 진짜 나란 무엇이었는지, 벌써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고개를 수그린 아스카의 얼굴은,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
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흔해빠진 위로의 말이야 몇 가지 떠오르긴 했지만, 그딴 것으로 어찌 될 일이 아님을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 줘야 좋을까?
한심스러운 스스로에게 초조함과 비슷한 조바심을 느낄 때, 아스카가 말했다.
「비……… 더 강해졌네」
아스카의 말대로, 굵어진 비가 격하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쏴ー아, 비 내리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있다.
「신지, 아침까지 여기 좀 있어……」
「에?」
「비 내리는 밤에 혼자 방에 있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아」
「…………」
「웃기지……. 내가 말하고도 웃기다고 생각해. 그래도, 웃기다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같이 좀 있어……」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스카를 웃기다던가, 이상하다던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절대로」
아스카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 신지는 상냥하구나」
「……그런 말 들은 건 처음인데」
나는 쓴웃음으로 반응했다.
「으으응. 역시 신지는 상냥해……」
「아, 알았다니까. 이제 됐다고」
그런 얼굴로 연발해대면, 어떻게 반응할지 곤란해.
「……신지의 그런 부분, 좋아……」
「……!!」
폭탄발언이다.
좋아라니 좋다고 해도 어떤 좋아라는 것인지, 아니면 언제나 하는 놀림 모드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를 혼란에 빠뜨리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지나치게 큰 폭탄이었다.
「노, 놀리지 마! 돼, 됐으니까, 뭐지……… 그, 그래. 다른 얘기 하자.
내, 내가 전에 살던 동네 얘기」
허둥거리는 나를, 아스카는 조용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C파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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