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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00년 1월 31일 월요일

「ASUKA」 C파트

  
 
다음 날.
눈을 뜬 나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비는 완전히 그쳤고, 커튼 틈으로 햇살이 들이비치고 있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시계를 봤다가, 기절초풍했다.
벌써 12시가 넘어가고 있다.
지각 정도가 아니야.
벌써 완전히 결석 처리다.
자명종 세트를 보았더니, 어느새 해제되어 있었다.
아마, 나인지 아스카인지 누군가 무의식 중에 벨을 멈춰 버린 것이 틀림없다.
바로 옆에 눈을 돌리니, 아스카가 기분 좋게 숨소리를 내며 동그랗게 움츠리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간밤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 다음에 나는 예전에 다니던 학교 얘기를 했다.
얼마나 시골이었는지, 얼마나 시덥잖은 것들이 유행했는지를
조금 각색해서 자랑하듯이 아스카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듣기만 하던 아스카도, 결국 조금씩 웃게 되었고
결국은 포복절도를 했다.
신나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계속하던 도중, 아스카가 졸려 보인다는 것을 눈치챈 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끊었다.
나는 쿠션을 베개 삼아 카페트에 눕고, 아스카는 그대로 침대에서 잠들었다.
……그랬을 텐데, 어째서?
어느새 내 옆에 왔지?
그래도 정중하게 베개만은 꼭 안고 있다.
아스카, 잠버릇이 나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스카가 눈을 떴다.
「……으음. ……어라? ………아, 그런가……」
나를 보더니, 뭔가를 자기 혼자 멋대로 납득하고 있다.
「좋은 아침, 신지」
「응, 좋은 아침………이라기보다, 벌써 대낮이야」
「에?」
내 말에 아스카는 시계를 보았다.
「……진짜네. 학교 무단으로 빠졌어……」
「어쩌지? 지금이라도 학교 갈까?」
「으으응, 그러지 말자. 게다가 지금 둘이서 학교 갔다간, 같이 사는 거 들킨다?」
「아, 그렇네」
「신지가 그래도 괜찮다면, 학교 가도 되지만」
「아니, 역시 그만두자. 지금 가 봤자 어차피 수업시간 2시간밖에 안 남았고」
「……………응」
나는 일어서서, 아스카에게 말했다.
「일단 아침밥이라도 먹을까? ……아, 이젠 점심밥인가」
「그러게. 목도 칼칼하고」
 
 
태평스레 아침 겸 점심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학교에 관한 얘기를 했다.
「지금쯤 다들 어쩌고 있을까나?」
아스카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조금 두근두근하지 않아? 다들 학교 가 있을 시간에, 우리는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밥 먹고」
「그러게. 뭔가 좀 득 본 기분일지도」
아스카는 시계를 보고 말했다.
「슬슬 점심시간이 끝났으려나. 그 다음은 청소가 있고, 국어가 있고, 수학이 있고……… 아!」
「뭐, 왜?」
「수학, 오늘 숙제 제출일이잖아?」
망했다, 라는 표정의 아스카에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가끔은 괜찮아, 그 정도는. 아스카, 평소에 언제나 열심히 하고 있잖아」
「……그럴려나?」
「그렇대두」
아스카는 잠깐 생각하더니, 테이블에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얼굴을 들었다.
「……그렇구나. 나, 열심히 하고 있구나」
「그치그치, 너무 열심히 하지. 그러니까 오늘 정도는 마음대로 해도 괜찮지 않아?」
「응, 그러자」
아스카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미사토씨 들어오는 게 10시 조금 넘어서였지?」
「확실히 그래」
「그렇지? 그럼, 어디 놀러 나가지 않을래?」
「에? 놀러 나가다니……… 지금부터?」
아스카는 조금 놀란 듯 나를 보았다.
「응. 지금부터. 저녁밥은 외식이라도 하고 말야」
「그래도, ……학교 빼먹었는데 괜찮을까?」
뜻밖의 구석에서 모범생인 아스카.
나는 억지를 부리기로 했다.
「오늘은 마음대로 하자고 했잖아? 그러니까 세세한 건 신경쓰지 말자」
「그렇다고 해도………. 나 이제 용돈 거의 없어? 과자 너무 많이 사서」
「괜찮아. 잠깐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하고 나는 일단 내 방으로 향했다.
목적의 물건을 등 뒤에 숨기고, 아스카가 기다리는 부엌으로 돌아온다.
「뭐야? 왜 그래?」
신기해하는 얼굴의 아스카에게, 흐흐ー응 웃어보인 후, 나는 등 뒤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체크카드!」
도라에몽처럼 과장된 화법으로, 아스카의 눈앞에 그것을 들이밀었다.
「아버지가 용돈 쓰라고 주고 갔거든. 그러니까 오늘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전부 내가 쏠게」
「……괜찮겠어?」
「괜찮아. 제안한 것도 나고」
「…………」
「자, 아스카, 가자?」
「…………응. 그럼 준비해서 나올 테니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아스카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ー 다행이다.
즈어어어엉말로 다행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거절당하면, 상당히 속상했을 거야.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려니, 지치는군…….
익숙하지 않은 줄타기에 신경이 곤두서서, 나는 철퍼덕 테이블에 늘어져 엎드렸다.
 
 
「어디 가려고?」
「아스카가 가고 싶은 데면 어디든 괜찮아」
아스카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가 가장 속 편한 대답을 나는 말했다.
「그럼, 나 유원지가 좋아」
「유원지라……」
유원지……… 어디에 있을까?
제3신동경으로 이사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런 데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애초에 마지막으로 유원지에 가본 기억이, 아마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을 때였다.
「아스카, 어디 있는지 알아?」
「으으응, 몰라」
귀엽게 고개를 흔들어도 곤란하다.
으ー음.
……뭐, 역에 가서 물어보면 알겠지.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우리는 역을 목적지로 집을 나섰다.
역무원에게 유원지와 가장 가까운 역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표를 샀다.
역무원 아저씨는 굉장히 친절하여, 일부러 가장 가까운 역에서 유원지까지의 약도까지 그려 주었다.
아마 아스카가 있어서 그랬겠지.
늙은이 같은 생각을 하며 시각표를 확인해 보니, 전철이 도착할 때까지 앞으로 5분 정도 시간이 있었다.
나는 개찰구를 통과하기 전에, 역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기로 했다.
『5・9・6・3』
지금은 독일에 있는 바보애비가 설정해둔 멍청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화면의 전환을 기다린다.
최소 2만 엔 정도는 있어라…….
핑, 소리와 함께 잔고가 표시되었다.
거기에 뜬 숫자를 보고, 나는 놀라 질겁을 했다.
뭐, 뭐야 이거……?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 상한금액이라는 거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0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2만 엔을 찾고, 나는 지급기를 떠났다.
「왜 그래? 얼굴, 약간 파랗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스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힘없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 아니, 괜찮아. 아무 것도 아니니까 안심하고……」
우리 애비, 뭐야……?
그냥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던 건가?
새삼스럽게 두렵다.
「신지, 슬슬 전차 올거야」
「아, 응. 알았어」
우리는 승강장으로 향해, 잠시 뒤 도착한 전철에 올라탔다.
 
 
평일 만세!
평일 브라보!
나는 마음 깊이 평일에 감사했다.
유원지는 놀랄 정도로 비어 있었다.
이래서 채산이 맞는 것인지 걱정이 될 정도였지만, 노는 입장에서야 그게 불만일 수가 없지.
어트랙션 1일 프리패스권도 샀고, 준비는 만반.
우리는 곧바로 원 없이 진탕 놀기로 했다.
「신지이! 저거 타자, 저거!」
아스카가 가장 먼저 가리킨 것은, 무서울 정도로 높이 솟은 수직낙하형의 그거였다.
보기만 해도 다리가 움츠러든다.
「처, 처음부터 저거?」
「처음이라서 좋은 거잖아」
아스카의 논리에 밀려, 나는 그대로 끌려갔다.
당연히, 대기시간도 거의 없이 그것에 오르게 되었다.
각오를 다질 겨를도 없다.
「너무 두근두근해ー」
정말 두근두근하다ー.
…………위장이.
천천히 천천히, 우리를 태운 그것은 위로 떠올랐다.
30초 정도 걸려서 끝까지 올라왔더니, 저 아래의 직원이 콩알만큼 작아 보였다.
「꺄아ー! 굉ー장해, 높ー다!」
옆에서 천진하게 떠드는 아스카의 목소리도 먼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
「……!!!」
비명지를 새도 없이 단번에 내떨어졌다.
 
 
「우욱ー……」
「정말 신지, 정 떨어지네ー에」
그 말투와는 달리, 아스카는 즐거워 보였다.
「어쩔 수 없잖아……. 내 삼반규관은 델리케이트하다고」
저번에 과학시간에 배운 지식을 들먹였다.
「그거, 평형감각이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뜻이거든」
아스카는 시원히 맞받았다.
「……지당하십니다」
아스카가 너무 늠름한 것이라고 대꾸할 기력도 없다.
그 뒤로 스크류제트코스터를 두 번, 그 밖에 다른 회전계 놀이기구를 세 번 연속으로 탔다.
데드존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 나는, 반쯤 울면서 좀 잔잔한 어트랙션을 요구했다.
「어쩔 수가 없네」
그렇게 말하고 손뼉을 친 것이, 이 유령의 집.
「별로 무섭지는 않네」
「뭐어, 원래 이런 거 아닐까나?」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소리를 하니, 귀신 입장에서는 실례가 되는 손님이겠지만, 실제로 그다지 무섭지가 않다.
「그래도 신지, 귀신 튀어나오면 나 지켜 줘야 해」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분명히」
「뭐. 어째서?」
「아스카 너무 강력해서 귀신이 반대로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을까……」
「………실례네」
아스카는 내 왼손을 잡더니,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아, 아따따따따! 아파, 아스카 아프다고!」
「나는 연약하고 가냘픈 여자아이지?」
끄덕끄덕끄덕!
나는 크게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가 지켜주는 거지?」
「지, 지켜줄게! 지켜드리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훅, 아스카의 손아귀힘이 풀렸다.
「너, 너무한다, 아스카……」
눈물을 머금고 항의하는 나에게, 아스카는 홱 고개를 돌렸다.
「레이디에게 폭언을 했으니, 당연한 업보야」
「레이디는 이런 짓을………」
「뭐어? 뭐라고 했어?」
「아, 아니. 아무 말도……」
아직 내 왼손을 꼭 쥐고 있는 아스카의 오른손에, 나는 떨었다.
 
 
그대로 우리는 유령의 집 깊숙이 들어갔다.
몇 가지 장치가 있기는 했지만, 모두 어린애 속임수라 무섭지 않다.
이걸로 500엔 받아먹어도 되는 거냐 생각하면서도, 아까부터 신경쓰여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저기…… 아스카씨? 슬슬 손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왜? 지켜준다면서?」
「그건 그렇지만…… 전혀 무섭지 않잖아……」
「그런 거 상관 없어. 약속은 약속. ………아니면, 내 손 잡기가 싫다는 거야?」
「다, 당치도 않습니다. ………영광이지요」
벌벌 떨면서도,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왼손에 느껴지는 아스카의 손바닥의 부드러움.
이제 의식은 완전히 귀신보다도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뭐ー어야. 이게 끝? 시시하네」
『요 앞 출구』라는 간판을 발견한 아스카가, 실망한 듯 말했다.
「그, 그러게. 별 거 없었네」
그 간판 탓도 있고, 우리는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이 유령의 집의 으뜸패였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 간판 옆을 지나가려던 그 때.
「우와ーーーーーーー!!!」
눈 앞에 돌연,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린 좀비가 떨어졌다.
「「꺄아ーーーーーーー!!」」
여자다운 비명밖에 들리지 않은 것은 기분 탓이고, 나는 무서움보다도 일단 놀라서 그랬다.
나는 아스카에게 뛰어들었고, 아스카도 나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
「…………」
「…………」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를, 거꾸로 매달린 좀비가 대롱대롱 흔들리며 보고 있었다.
그리고 씨익 만족스럽게 입가를 비틀고, 우리가 바라보는 가운데 스르르 천장으로 돌아갔다.
「……뭐, 뭐야, 방금……」
「……깜짝 놀랐네……」
「……잠깐 있어 봐. 방금 건 반칙 아니야? 출구 간판 있었잖아」
정확히는 『출구 요 앞』이었지만, 별로 아스카에게는 상관 없는 것일까.
「돈이 아까운 느낌이야……. 이런 거에 두근두근하게 하다니 사기라고」
슬슬 침착함을 되찾은 나는, 별개의 이유로 두근두근하고 있다.
「아, 아스카? 이제 가자. 뒤에 오는 다른 손님들이 따라잡을지도 모르니까……」
「그, 그러게……」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몸을 떨어뜨렸다.
떨어질 때, 나는 제대로 아스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유령의 집을 나올 때까지 내내,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ー」
8시가 지났을 무렵, 나와 아스카는 맨션에 돌아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 빨간 하이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레?
복도에 올라서서 거실에 눈을 돌렸더니, 불빛이 켜져 있었다.
「아스카, 미사토씨 돌아오신 거 같아」
「에? 근데 오늘 10시 넘어서까지 일한다고………」
나는 아스카에게 거실을 가리켰다.
「진짜네. 불 켜져 있어」
우리는 그대로 거실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ー」
「……어서 와. 이렇게 늦게까지, 어디를 싸돌아다니고 있었을까?」
미사토씨는 웬일로 맥주도 마시지 않고 팔짱을 낀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 아뇨……. 그게 좀……」
「호ー오. 그게 좀, 이라……. 학교를 무단으로 빼먹고 밤이 될 때까지 싸돌아다니는 게
너희들한테는 그게 좀이구나?」
드, 들켰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서둘러 돌아와 봤더니 둘이 있지도 않고
메모 하나 남겨놓지를 않고……」
「죄, 죄송합니다」
「……납득 가능하게 설명할 수 있겠어?」
 
 
그리고 나의 변명 섞인 설명이 시작되었다.
말하는 내내, 미사토씨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서 제가 아스카를 데리고 돌아다닌 거예요. 잘못했습니다……」
「그게 신지 혼자 탓인 게 아니……」
말을 꺼내려는 아스카를 억누르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미사토씨는 몇 번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눈을 떴다.
「……알았어. 이번에는 용서해 줄게. 그래도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도록 해.
아무 연락도 없으면, 내가 걱정할 수밖에 없겠지? 다음부터 늦게 들어올 때는 전화든지
메모든지 좋으니까 제대로 나한테 알려 주라고. 그리고 학교도 제대로 나가야지」
「……네」
「아스카는?」
「……알았어」
그리고 미사토씨는 우리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나선, 기세 좋게 벌떡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래, 잔소리는 이걸로 끝! 그럼 밥 먹을까? 나 이제 배가 아주 등에 붙겠어ー」
미사토씨가 밝게 말하자 나는 곤혹스러웠다.
「미, 미안해요. 실은………」
미사토씨에게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왔다고 보고했다.
「그, 그런……. 그럼, 나의 이 한 시간은 무엇이었니……?」
덜컥 고개를 떨어뜨리는 미사토씨에게, 아스카가 쏘아붙였다.
「괜찮잖아. 가끔은 미사토 오리지널 카레라도 만들어보는 건? 아무도 흉내 못 낸다는 그거」
「크윽……」
5분 후, 부엌에는 혼자 쓸쓸히 컵라면을 훌쩍이는 미사토씨의 모습이 있었다.
 
 
「아ー, 먹었다 먹었다」
던져 버리듯이 말하고, 남은 국물을 개수대에 쏟아 버린 미사토씨는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거실로 왔다.
「카레 그냥 만들지 왜……」
오도카니 중얼거리는 아스카를 째려본 뒤, 미사토씨는 소파에 앉았다.
「뭐어야? 또 경찰물 보는 거야? 전에 보던 비디오도 그거였잖아? 아스카도 참 질리지도 않나봐……」
음주운전 단속현장을 비추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기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대로 잠시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미사토씨는 입을 열었다.
「너네들, 죄와 벌이라는 말 알아? 오늘 같은 경우에는, 뻘짓無茶과 잡도리お仕置き라고
바꾸어 말하는 편이 맞을까나?」
「뭐야 그게? 무슨 의미야」
「죄를 범한 자에게는 벌을, 뻘짓을 한 너희 둘에게는 잡도리를」
「……뭔가 이상한 거 같지만 뭐 됐어. 그래서 잡도리가 뭔데?」
「신쨩은 부엌 환풍기 교체, 아스카는 편의점에 심부름을 갔다오라는 거지」
엎드려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스카가 목만 돌려서 미사토씨를 보았다.
「어째서 잡도리를 당해야 하는데? ………납득이 안 가. 싫어」
「어머 그래? 됐어, 그럼. 싫으시다면. 다음 달 아스카 용돈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아픈 곳을 찔린 아스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간다고. 가면 되잖아」
「좋아. 그럼 이게 살 물건 리스트고. 다녀와 아스카. 천천히 갔다 와」
미사토씨는 메모용지를 건네며 아스카를 재촉했다.
「좀 있어 봐. 신지가 환풍기 교체하면 같이 갔다 올 거니까」
「안ー돼. 즐거우면 처벌의 의미가 없잖아. 한여름 밤의 찌는 듯한 더위 속
혼자 괴로워야지 처벌의 취지가 서는 거지. 자, 알아들었으면 얼른 가!」
「이런 시간에 혼자 나다니다 습격이라도 당하면 어쩔 거야」
「괜찮아. 너라면 설령 곰에게 습격당해도 걱정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러다 수라장이 개막할까…….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도록 한쪽 다리를 세우고 스탠바이하면서, 다음 전개에 마른침을 삼켰다.
「…………」
「…………」
아스카가 번뜻 나를 보았다.
움찔 하고 내가 떨린 다음 순간,
「신지ー, 미사토가 괴롭혀ー!」
아스카가 갑자기 내게 뛰어들어왔다.
「우와악!」
놀라 굳어버린 내게 상관하지 않고, 아스카는 더욱더 엉겨붙어 왔다.
「아니! 이녀석이! 뭐하는 거야! 중딩 주제에!」
미사토씨가 황급히 아스카를 잡아뜯어내기 시작했다.
「시러ー! 신지 살려줘ー!」
살려주기는커녕, 긴장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미사토씨는 까부는 아스카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떼어내서, 그대로 거실 밖으로 팽개쳤다.
「빨랑빨랑 나가! 발랑 까져가지고 이게!」
「……흥. 하여튼 중년의 질투는 감당할 수가 없다니까」
「크윽……」
아스카는 막말을 퍼붓고 현관을 나갔다.
「…………」
조금 어색해진 공기 속에서, 나는 환풍기를 교체하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자, 현관 쪽을 바라보던 미사토씨가 나를 불러세웠다.
「……신지군. 환풍기는 됐으니까, 거기 앉아」
「네? 하지만……」
「환풍기 전에 교체했잖아? 신지군이 이 집에 처음 온 날에」
「아,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렇다면 미사토씨는 무슨 생각인 걸까?
「그럼, 잡도리는?」
「그건 구실이야. 아스카를 밖에 내보내기 위한. 걔가 들으면 재미 없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일단 좀 앉자」
그렇게 말하고 돌아보는 미사토씨의 얼굴에, 방금 전까지의 장난치는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스카가 들으면 재미 없는 게 뭔가요?」
「기다려 봐. 그 전에 오늘 일부터 좀 들어보자」
오늘 일?
무엇일까…….
「오늘 두 사람이 모두 늦잠을 자서 학교를 빠지게 된 거, 어제 밤에 비가 내린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까?」
「네?」
처음에는 미사토씨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대로 되물으려고 입을 연 순간, 나는 움찔했다.
「아……. 미사토씨는……?」
알고 계신가요?
아스카의 과거를.
「대답해」
「…………관계…… 있어요」
「………그래」
미사토씨는 내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줘. 하나도 숨기지 말고 전부 솔직히」
그 얼굴은,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진지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어젯밤, 부엌에 갔을 때의 일부터 떠올렸다.
어둠 속에 아스카가 앉아 있었던 것, 자기 방으로 데려갔던 것,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차례대로, 가능한 한 자세하게 미사토씨에게 이야기했다.
「아스카가 자기 어머니 얘기를 어디까지 했어?」
「추억 이야기하고, 돌아가셨을 때 상황하고, 그리고……… 트라우마까지요」
그것만 말했을 뿐이지만, 미사토씨에게는 의미가 전달된 듯, 미간에 깊이 주름이 잡혔다.
「그런 것까지……」
「저기, 미사토씨? ……뭔가 있는 건가요, 아스카한테」
스트레이트하게 불안감을 드러내는 내게, 미사토씨는 복잡한 표정을 돌려주었다.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창가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신지군은 아스카를, 어떻게 생각하니?」
「………에?」
「아스카가, 좋아?」
「무, 무슨………」
일순간, 머리가 혼란했다.
어째서 지금 미사토씨가 이런 것을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뭐 됐어. …………어쨌든 아스카는 신지군을 좋아하는 거 같으니」
「거, 거기까지는……」
「나는 알아. 신지군과 같이 있을 때의 아스카는, 전혀 다르거든. 방금 전에도 그래.
적어도 신지군이 이 집에 오기 전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저런 짓 절대 하지 않았어」
저런 짓…….
나를 껴안고 매달린 것 말인가?
「신지군, 지금부터가 큰일인데……」
「……무슨 말씀이시죠?」
「아스카의 『좋아』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좋아』하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것 같아」
『좋아』가 다르다?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애가 옛날에 입은 마음의 상처는 상당한 거였고. 그게 원인이 되어 저애의 타인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이………………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미사토씨는 관자놀이에 손을 짚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내가 감히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
「저………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은 건가요?」
「아아, 그래. 열두 살 때까지 아스카를 담당했던 카운슬러한테.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카운슬러? 독일?」
「아스카가 일본에 온 건 중학교 입학하기 두 달 전 일이야.
그 전까지는 독일에서 대학에 다녔어」
「대학, ……대학이라고요? 아스카가?」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해외에는 월반제도가 있어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은
그 수준에 맞는 학년에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지」
미사토씨는 말을 계속했다.
「아스카는 대학에서도 뛰어난 존재였던 것 같아. 게다가 그 대학이라는 게, 독일에서도
최난관이라고 불리는 데라. 일본으로 치면 동경대 같은 곳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능력도 있는데다가
자기가 들이는 노력도 또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런 명문대에서도 성적은 항상 톱클래스.
대학 측에서도 저애의 장래에 거는 기대가 컸대」
동경대급…….
마치 별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런…… 아스카가 왜 지금은 여기에?」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졸업 직전이던 대학도 그만두고, 갑자기 일본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대. 그때까지 같이 살던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설득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스카가 말을 듣지 않았던 건 그 때가 처음이었나봐. 그 결과 오게 된 게 이 집.
왜 하필 내 집에 오게 되었냐는 건, 지금은 관계 없으니까 생략할게」
「…………」
「원래 주제로 돌아갈까. 아스카는 독일에 있는 동안, 정기적으로 카운셀링을 받고 있었어.
옛날 일들 때문에 이러저러하니까. 그래서 내가 아스카를 맡게 되었을 때, 카운셀러 선생한테
그때까지의 카운셀링 결과를 담은 편지를 받았어. 그 중에, 비 내리는 밤을 무서워한다는
내용도 있었고. 나머지 내용은 대인관계 관련 된 부분이 대부분. 신지군이 아스카에게 들은 것처럼,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것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되었고, 저애를 괴롭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쓰여 있었어.
마지막 종이에는 남에게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알기 쉬운 연기를 하는 아이라고, 그렇게 결론짓더라」
「하지만, 그러면 지금의 아스카는……?」
미사토씨는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처음부터 저런 태도였어. 그 편지를 받아 읽고 며칠 뒤 처음 공항에서
아스카를 만났을 때 당황했지. 처음에는 다른 아이를 착각한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야.
제멋대로에 고압적이고 입이 더럽고……. 편지에 쓰여 있던 아스카와는 전혀 정바대였지」
「그건 또 무슨……?」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자세히 모르니까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어. 그래도 내 나름 생각한 건
있어. ……아마도, 한계였던 거겠지. 모두의 앞에서 자기를 억누르고, 착한 아이를 연기해온 게.
어딘가 분출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신지군은 상상할 수 있어? 다섯살 때부터 열두살 때까지 7년간
아직 한참 어린 아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억누르고 다른 인격을 연기한 거야. 나라면 그렇게 못 살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
다섯살 때부터 열두살 때까지 7년간…….
그 무렵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친구들과 놀거나, 애비한테 장난감을 조르거나…….
언제였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7년간을 아스카는…….
「하지만 분출구로 선택한 나한테도, 아스카는 절대 약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어.
게다가 신지군이 오기 전까지는, 나 이외의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우등생. 언젠가 신지군이 말했던
슈퍼아이돌이라는 거지. 그건 독일 시절의 계속이야」
문득, 미사토씨의 말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학교에서의 아스카에 대해 말했을 때 미사토씨가 놀랐던 건……?」
「모르는 척 해 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모처럼 내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데. 내가 아스카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걸 저애 자신은 모르니」
「……그랬던 건가요」
「그렇게 말하자면, 어째서 신지군에게도 나하고 같은 태도인 건지도 알 수가 없네. 우리 셋이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지? 신지군을 들이받는 아스카를 보고 나는 굉장히 놀랐거든」
……그렇군.
그 때의 미사토씨의 표정의 의미를 비로소 알았다.
「신지군은 뭐 짚이는 게 없어?」
「아뇨, 전혀……」
그래, 라고 중얼거린 미사토씨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아스카가 자기 이야기를 그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건, 신지군이 처음이야」
「……네」
「카운셀러 선생에게도, 7년간 아스카를 보아온 선생에게도, 아스카는 한 번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어. 내가 받은 편지에 쓰여 있던 건 대부분이 그 선생이 추리한 거였고」
「……네」
「이제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좀 알겠지?」
「……왠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겠지만으로는 안 돼. 좀더 제대로. ………라고 말하는 것도, 신지군한테 너무한 걸까」
「아뇨.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과, 아까 미사토씨가 말씀하신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과 특별히 어떤 관계가 있는가요?」
「그건………… 신지군 스스로 알아내 봐」
「제가, 제가요……?」
미사토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다만 동정심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이상 저애의 마음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게 좋아. 서투른 연민은 아스카를 상처입힐 뿐이야」
「…………」
「하지만, 아스카를 진심으로, 진지하게 생각해줄 수 있다면, 이대로 저애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까」
「……진지하게, 인가요……」
「그래, 진지하게. 저애의 마음에 부응해 준다는 건, 그만큼 큰일, 인 거야……」
후ー우, 커다란 한숨이 고요한 거실에 흡수되어갔다.
「………이야기는 이걸로 끝. 아스카도 돌아온 거 같고. 나머지는 신지군이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도록 해. 애매한 태도가 아니라 분명한 태도로」
창밖에 아스카의 모습을 발견한 듯, 미사토씨는 그렇게 말했다.
「한 달 전 신지군이 왔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 ……시간이 별로 없는 걸」
「어째서 일본이었던 거죠? 왜 아스카는 일본에 오고 싶어했던 건가요?」
「그건……. 그건 아마, 아스카의 친어머니가 태어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추억이 있지만 숨이 막히는 독일보다는, 추억이 없지만 어머니의 고향인
여기서 새 출발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네……」
「그런 건가요……」
「………그런ー걸까.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 뿐이야?」
미사토씨는 시리어스한 무드를 뿌리치려는 듯 짐짓 밝게 말하고
이쪽으로 걸어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끝이라니까 끝. 아스카가 돌아왔을 때 신쨩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으면 안 되겠지?
여기서는 바보같아도 좋으니까 큰 웃음을 일발 장전해서 맞아주는 거야」
「그, 그런. 갑자기 무리예요……」
도저히 못 한다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의 내게는 무리한 주문이다.
「어머, 그으ー래? 그럼 내가 손을 좀 빌려 줄까」
……손?
어쩔 생각이냐고 미사토씨에게 되물으려고 생각한 그 때,
「나 왔어ー!」
아스카의 건강한 목소리가 현관에서 울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잠깐, 미, 미사토씨!? 그, 그만……… 아하하하하하, 그만,  하하하하하하하!」
미사토씨의 손이 내 옆구리를 붙잡았다.
「흐흐흐, 어지간히 좋은 웃음소리를 내는구나」
내 저항을 손쉽게 억누른 미사토씨는 더 격하게 손가락을 놀려왔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괴, 괴로워, 미사앟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물로 흐려지는 시야의 구석에 아스카의 모습이 보였다.
「야ーーーーー!! 미사토 뭐 하는 거야! 내 장난감에서 손 떼ーー!!」
그리고 몇 분에 걸쳐, 나는 웃음지옥에 던져졌다.
처음에는 미사토씨를 떼어내려던 아스카도 무리임을 깨달은 것인지, 방향을 전환했다.
즉, 한 사람에서 두 사람으로.
단순 계산만으로도 두 배가 된 간지럼형刑은, 나를 헤븐즈 도어 직전까지 몰아냈다.
 
 
 
 
수업시간 사이의 쉬는 시간.
나는 책상에 턱을 괴고, 창 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여기서 보면, 건너편 교사가 들여다보인다.
까불며 무리를 지어 복도를 내달리는 학생들 누구든 모두 즐거워 보인다.
『학교에 있을 때의 아스카는 독일 시절의 계속이야』
아스카, 학교에 있어도 즐겁지 않은 걸까…….
어제 미사토씨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내 머릿속은 아스카로 가득했다..
교실을 둘러보아도 아스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화장실인지 어디인지 간 걸까.
「뭐꼬, 신지. 와 이리 어둡노」
「설마 그건가? 여름방학의 한가한 일정을 상상하니
조금 앙뉘ennui한 기분이 되었다거나?」
목소리에 돌아보니, 거기에는 이제 완전히 친해진 두 짝패가 있었다.
「아……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두 사람 쪽으로 몸을 돌린다.
「토우지하고 켄스케는 뭐 할 거야? 여름방학」
「내 말이가? 내는 마, 메인은 가족여행일 거 같은디. 그카고 나문 동아리 활동으로 쓰라린 나날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말하는 토우지에게 켄스케는 히죽 웃었다.
「이렇게 더워 죽겠는데, 동아리라니 넌센스지. 모처럼의 방학은 좀 유의미하게 쓰지 않으면」
「시그럽다. ……그러는 켄스케 니는 뭐할 낀데?」
「훗, 짜잔! 여름방학 특별기획・자위대 1주일 체험코너에 참가할 거야. 그것도 무려 해군!」
「………」
「………」
그 이상 무엇도 들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토우지도 켄스케를 무시해 버리고,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신지는?」
「응. 약간 생각하고 있는 건 있는데……. 아직 고민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뭔데? 재밌는 기가? 재밌으면 내도 좀……」
「아, 아니. 그렇지 않아. 그냥 아버지를 찾아가 볼까 하고」
「아버지? ………오오, 그카고 보이 신지네 아부지는 독일에 있다 캤제」
「호ー오……. 독일이라니, 이것 또 대단히 우아하지 않은가. 물론 기념품 선물은
기대해도 좋은 거겠지?」
「어, 어떨까나. 아직 생각 중이라니까……」
디ー잉 도ー옹 대ー앵 도ー옹………….
「아ー아, 종 쳐뿠네. 귀찮아……. 고전문학 그딴 거 도대체 배워가 어따 쓰냐꼬……」
「괜찮잖아. 그 선생, 졸아도 화 안 내니까」
둘이는 종이 치자 자기네 자리로 돌아갔다.
 
 
방과 후, 나는 내 짐을 가방에 정리하면서, 뒷자리를 돌아보았다.
「아스카, 지금 뭐 선약 있어?」
아스카는 신기한 듯 내 얼굴을 쳐다봤다.
「없긴 한데…… 왜?」
「그럼, 오랜만에 같이 하교하지 않을래? ……아, 싫어도 딱히 상관 없고」
「으으응, 그렇지 않아. 잠깐만 기다려」
아스카는 서둘러 교과서를 가방에 쓸어넣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좋아, 가자」
 
 
「신지하고 같이 귀가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네」
교문을 나서며 아스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가?」
주변의 하교중인 학생들이 빤히 이쪽을 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 가운데 라이벌은 몇 명일까…….
「그렇지. 첫 번째는 신지가 처음 저녁밥 만들어줬던 날, 쇼핑하러 갔던 거였고」
「아, 그렇네 그렇네. 아스카 그 때 왜 화났었어?」
그 말을 듣자, 아스카는 고개를 돌렸다.
「………잊어버렸어. 너도 잊어버려」
「아니, 왜?」
「시끄럽네. 질척대는 남자는 미움받아」
「…………」
어쩔 수 없이 더 캐묻기를 포기한 내게, 아스카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것보다도 오늘은 무슨 일이야. 네가 나한테 같이 가자고 그러다니 별일이지?」
「그런가아……. 어제도 놀러 가자고 그랬던 거 같은데」
「다르지 그건. 하교하는 걸 얘기하는 거잖아」
「………응」
「또 어디를 안내해 줬으면 좋겠어?」
「아니, 오늘은 아니야. 그보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무슨 이야기?」
「……아스카는, 여름방학 어떻게 보낼까 해서. 무슨 예정 있어?」
「특별히 없는데.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근데 왜?」
「응, ………그게 있지」
나는 수업 중에 계속 생각하던 것을 아스카에게 말했다.
「독일 가지 않을래?」
그 순간, 아스카의 발걸음이 그쳤다.
「같이 독일 가지 않을래?」
「…………」
믿기지 않는 것을 보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왜 독일이야?」
「내 아버지가 그쪽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래서 모처럼이니까……」
「기다려. 좀 가만 있어」
「으, 응……」
그리고 잠깐 동안, 우리는 말 없이 계속 걸었다.
역시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아스카가 입을 열었다.
「……신지는 나에 대해서 알아?」
「응? ………뭐에 대해서?」
「내 옛날 일을 알아?」
「…………!!」
놀래라.
독일 얘기만 했을 뿐인데, 거기까지 이야기가 미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스카는 내가 독일에 가자고 하는 것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지는 못하는 것일까?
「미사토한테 뭔가 들은 거야? ……그렇구나, 그래서 어제 밤에……」
「그, 그게……」
그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날카로워.
게다가 미사토씨는 자기가 아스카의 과거를 아는 걸 아스카는 모른다고 했는데.
그러자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아스카가 말했다.
「미사토가 독일에서의 나를 알고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거든」
「…………」
이렇게 될 줄이야……
……좀 핀치다.
「무슨 생각이야? 예전의 나에 대해서 아니까, 갑자기 독일에 데려가고 싶어졌어?」
「아, 아니……」
내가 당황하는 기색을 느꼈는지, 아스카의 목소리 톤이 조금 내려갔다.
「……화 내는 거 아니야. 신지라면 내 과거를 알아도 상관 없어.
그러니까, 독일에 가자는 이유를 알려 줘」
「…………」
……어쩐다.
하여튼 나는 급전개에 약한데…….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그럼 독일도 못 가」
으으음…….
여기서는 말할 수밖에 없나…….
「신지?」
나는 정색하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알았어, 말할게. 미사토씨하테 이야기 들었고, 아스카는 혹시 독일을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쭉 혼자서만 열심히 노력하고, 즐거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래서 앞으로는 즐거운 걸
했으면 좋겠다 싶고……, 그러니까 독일에서. 우연히 내 아버지가 저쪽에 있고, 여름방학이고……」
「…………」
「마, 말해두겠지만, 동정심이라던가 그런 게 아니야. 나도 아스카하고 같이 어디 가면
즐겁겠다고 생각했고, 아스카가 싫다면 딱히 독일이 아니더라도……」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아스카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말해둘게」
「……에?」
「나는 독일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야」
「아, 응……」
「즐거운 일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야. 엄마가 있었을 때는 매일이 즐거웠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그건 다섯살 때까지 얘기잖아…….
「그래도……」
거기서 말을 끊었다가, 아스카는 다시 고쳐 말했다.
「그래도 괴로웠다는 의식은 있었을지도 몰라. 독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건, 엄마 이외에는
대부분 공부하는 나 자신 정도여.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따서,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착한 아이가 될 수 없다고. 그런 것만 생각했고. ………그것 자체는 지금도 변함 없어」
거기까지 말한 아스카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나 혼자였다면, 당분간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을 거야」
나는 아스카를 보았다.
「……그 말은, 아스카?」
「응. 신지가 함께라면, 나 가도 좋아. ………데리고 가 줘」
그렇게 말했을 때의 아스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날 밤.
으ー음…….
나는 고뇌했다.
어떡하지…….
무선전화를 한 손에 들고, 고뇌했다.
아스카를 독일에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사실 애비에게는 아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파토나 버리거나 하면, 정말 멋없다.
애비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보자니, 몇 번이나 한숨이 나왔다.
오지 말라 그러면 어쩌지…….
아니, 오지 말라고 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살 때 좀 효도했어야 했다.
……수염손질세트를 선물한다던가.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나는 우울한 기분으로, 메모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애비 따위에게 시차 걱정의 배려는 하지 않는다.
뚜루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 뚜둑.
「이카리다만」
퉁명한 목소리가 전화에서 들려온다.
「아버지? 난데……」
「……누구냐」
「나라고, 신지라고」
「모른다. 아는 사람 중에 그런 투미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다」
「…………」
「……무슨 용건이냐, 바보아들」
「……알면 좀 처음부터 말하라고……」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해라」
「으, 응. 그게, 여름방학 때 말인데……」
「오지 마」
「……엥?」
「뭔진 몰라도 독일에 올 생각은 하지 마라」
「어, 어떻게 알았어!?」
놀라서 되묻자, 애비는 왠지 말이 없었다.
「…………」
「…………」
「………그게 맞았냐?」
「………그냥 맞는 것도 아니고 명중………」
「…………」
전화 너머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침묵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 하지만, 벌써 친구한테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고」
「…………」
「그러니까 부탁이야, 아버지. 제발 좀!」
나는 전화에 대고 머리를 숙였다.
「………얘기가 안 된다」
「그, 그런……」
역시 수염손질세트를…….
「너하고는 얘기가 안 된다」
「에?」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라. 너하고는 얘기가 안 된다고. 카츠라기군을 바꿔라」
「미, 미사토씨하고……?」
「빨리 바꿔라. 안 그러면 끊는다」
「으, 응. 잠깐만 기다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겠지만 일단 전화를 작조 미사토씨가 있는 거실로 향했다.
「미사토씨」
내가 부르자, 한 손에 맥주를 들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미사토씨가 돌아보았다.
일단 보기에는 그렇게 취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애애?」
「저기, 아버지가 미사토씨를 바꾸라고……」
미사토씨에게 무선전화를 내밀었다.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사토씨는 전화를 받았다.
왠지 얼굴이 굳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전화 바꿨습니다, 보스. 카츠라기입니다」
보, 보스!?
보스는 또 뭐야!?
기절초풍하는 나는 개의치 않고, 미사토씨는 신묘한 얼굴로 몇 번 맞장구를 쳤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삑, 전화를 끊은 뒤, 미사토씨는 커다란 날숨을 내뱉었다.
「하ー아…… 긴장했네에」
「저, 저기요, 미사토씨?」
「……응?」
「보스가, ……보스가 뭔가요?」
나는 조심조심 물어봤다.
「에? ……아아. 신경쓰지 마. 그냥 애칭 같은 거니까」
미사토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애칭…….
저 수염아저씨에게 애칭 따위가 필요한 것인가……?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미사토씨가 말했다.
「신쨩, 독일에 간다고? 갑자기 보…… 아버지한테 얘기 듣고 놀랐어」
미사토씨, 방금 또 보스라고…….
「좋겠다아. 요즘 중학생들은 리치rich하구나아……. 그래서, 누구랑 가는데?」
「……에?」
「보…… 아버지가, 신쨩이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얘기도 했는데」
「아, 그거는요……」
말을 꺼내려는데, 그 친구가 거실에 들어왔다.
「어라ー? 밥 아직ー? ……이 아니고 차려져 있잖아. 밥 안 먹어?」
아스카는 부엌의 테이블에 차려진 저녁상을 보고는 내게 물었다.
「잠깐 그 독일 건으로……」
「독일? ……설마, 못 간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아스카가 급발진했다.
「아, 아니……」
「이제와서 그런 말 해봤자 싫어. 나, 기대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그런 말 한 적 없어? 미사토씨하고 그 건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 뿐이야」
「미사토하고? 왜 미사토가 상관해?」
얼없이 우리를 쳐다보던 미사토씨에게 아스카가 눈길을 돌렸다.
「………설마 미사토도 따라오는 거야?」
싫다는 듯이 말하는 아스카를 무시하고, 미사토씨는 나를 보았다.
「신쨩이 말한 친구라는 게…………… 아스카였어?」
「………넵」
「그렇다면, 그거 혹시………… 그런 거야?」
「………그런 것입니다」
나는 부끄러운 것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미사토씨의 의미심장한 주거니 받거니에, 아스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사토씨의 이야기를 듣고 또 놀랐다.
왠지 보스는, 우리의 독일행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1개월 체류를 의무조건으로 세운 것 같다.
게다가 한달짜리 전세를 준비해 주겠다던가 어쩐다던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보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훗, 문제 없다」
라는, 까닭을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미사토씨는 팔불출이야, 라고 웃었지만, 나로서는 납득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생활비품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으로, 나와 아스카는 갈아입을 옷과
방학숙제 정도밖에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 같다.
 
 
 
 
그리고 여름방학에 돌입하고 출발 당일 아침.
「나는 일하러 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공항까지 둘이서만 갈 수 있어?」
걱정스러워하는 미사토씨에게 아스카가 손을 내저었다.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냉큼 일이나 하러 가거라」
「……네가 있어서 걱정인 거야」
「그거 무슨 의미야?」
미사토씨는 아스카를 무시하고, 내게 말했다.
「신쨩, 독일에 도착하면 아버지께 잘 말해줘.
그리고 선물 기대하고 있을게」
「아, 네에」
순간, 미사토씨의 얼굴에 켄스케가 겹쳐 보였다.
「다시 보는 건 한 달 후인가……. 뭐, 내 몫까지 즐기고 와.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미사토씨」
「미사토. 우리가 돌아왔을 때 방이 더러우면 용서 안 해」
미사토씨는 아스카의 한 마디에 얼굴을 찡그리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후우……. 겨우 가버렸네. 정말이지, 쓸데없이 걱정이 많다니까」
아스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문이 열리고 미사토씨가 얼굴만 내밀었다.
「아스카. 독일에서 신쨩한테 마음껏 어리광부리고 와!」
「뭐엇……!!」
새발간 얼굴로 굳어진 아스카에게 히죽히죽 입가를 씰룩이고, 이번에야말로 미사토씨는 진짜로 가 버렸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어. ……그치?」
「엣? ……아아, 그, 그러네」
그치? 라고 말해도……… 그치.
뭔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로, 우리는 출발 시각을 기다렸다.
 
 
몇 시간 후.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나와 아스카는 탑승수속을 끝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좀 두근두근하네. 나, 비행기 처음이라」
「그러니까 너는 아직 애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 탑승경험자인 아스카가 더 많이 떠들고 있는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아까부터 좌석 주변의 이런저런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그리고 공항에서 산 잡지를 잠시 읽고 있자니, 승무원이 기내식을 가져왔다.
이코노미 클래스는 등급이 낮은 거라고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 놓인 기내식을 보고는 놀랐다.
「헤에……. 이건 스테이크인가. 게다가 꽤 두툼하지 않아?」
「그러게. 근데 나는 햄버그가 더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스카는 빠르게 먹어치우고 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스테이크의 절반 가까이가 벌써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 불과 5초.
「……마, 맛있어?」
입을 오구오구 하면서, 아스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저 그런 정도일까」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든 것이 어둠에 묻혔다.
「…………」
………맛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스테이크에 포크를 꽂았다.
그러고 보니 요새 스테이크 같은 거 먹은 적 없지.
잘 먹겠습니다ー아, 하고 한 조각을 입가로 가져갈 때.
「신지」
「……응?」
돌아보니, 아스카가 크게 입을 벌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왜?」
「아ー앙」
「……응?」
「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그러니까 아ー앙」
「부, 부족하다고 해도……. 아직 다른 것들 남아 있잖아」
아스카는 스테이크 외에 다른 것들은 아직 아무 것도 손대지 않았다.
「나는 신지의 스테이크가 먹고파. 아ー앙」
주위 승객들이 낄낄 웃어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아스카는 『아ー앙』을 연발했다.
「아, 알았다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아스카의 입에 스테이크를 넣어 주었다.
아스카는 그것을 먹더니, 자기  포크에 당근을 꽂아 내 쪽으로 돌렸다.
「고마워. 그럼 자, 이번에는 신지 차례네」
「………헤에?」
즐겁게 말하는 아스카의 발언에, 나는 쩌적 굳어 버렸다…….
 
 
 
D파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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