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31일 월요일

「ASUKA」 D파트

  
 
그리고, 독일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받고 공항에서 한 발짝 나오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천적이었다.
우리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펴보는데, 투박하고 길쭉한 새까만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경계하며 보고 있는데, 그 뒷좌석에 내린 것이 누구인고 하니 바로 내 부친 되시겠다.
「아, 아버지……」
이 무슨 취향 고약한 차에…….
「변함없이 멍청한 상판때기구나, 신지」
최대한 몸을 뒤로 빼던 나를 흘끗 쳐다보고는, 애비는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 달만에 만난 친아들을 보고 하는 첫 마디가 그거냐고……」
애비는 내 말은 깔끔히 무시하고, 아스카에게 얼굴을 돌렸다.
내가 데려온 사람이 아스카라는 것을 알고도, 애비의 철가면은 흔들림이 없다.
「바보아들이 신세를 지고 있는가 보군. 폐를 끼쳐 미안하다」
아스카는 당황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처, 천만의 말씀이세요. 오히려 제가 항상 신세를 지고……」
붉어진 얼굴로 정중한 인사를 하는 아스카를 보자니, 방금 전까지의 야생마 같은 말괄량이가 거짓말 같았다.
「앞으로 한 달이나 이 바보와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아무쪼록 부탁한다」
「아뇨,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애비는 흠, 이라고 한 마디 중얼거리고 나를 꼬나보았다.
「너한테는 과분한 아가씨구나. 꼬리를 말고 혼자 일본에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 신지야」
「……시끄럽네.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안내나 해 줘. 이쪽은 긴 여행으로 피곤하거든」
「……흥. 건방진 놈 같으니」
애비는 그렇게 말하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
「타라」
「타라니……… 이거를?」
「달리 뭐가 있냐, 바보아들. 아니면 역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돌아갈 거냐?」
「……안 돌아가. ……그리고 바보 바보 좀 붙이지 마」
어쩔 수 없이 차에 오르니, 그 안은 영화에서나 본 호화로운 내장이었다.
자동차전화는 물론이고, 텔레비전, 냉장고, 그리고 세탁기는 없지만 왠지 마이크가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안에는 빈티지 같은 와인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내 애비라는 사람은 도대체……?
애비에 대한 의혹이 재점화되기 시작하려는 내 뒤를 이어 아스카가 차에 탔다.
「우와, 굉장해ー애. 영화 속에 들어온 거 같아. 앗, 마이크 있다」
아스카가 나와 똑같은 소감을 말하는데,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대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레? 아버지 안 타는 건가?」
「자, 잠깐만…… 괜찮은 거야?」
아스카는 당황한 듯 말하고, 운전석과 뒷좌석을 나누는 유리를 콩콩 두드렸다.
그러자 유리가 스르르 내려갔다.
아스카가 운전수에게 무언가 말을 걸었다.
당연히 독일어.
대단하다, 아스카…….
한동안 계속된 주거니 받거니 대화는, 무슨 주문呪文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스카가 뭔가 말하자, 운전사는 웃었다.
내가 얼이 빠지려 하는데, 아스카가 일본어로 돌아왔다.
「차가 한 대 더 있대. 신지 아버지, 그거 타고 돌아가는 거 같아」
「헤에…… 그렇구나」
「그리고 이 운전수분,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듣고 싶어하는데.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좋을까, 라는 말을 해도…….
「독일어 전혀 모르니까, 아스카한테 다 맡길게」
「그래?」
아스카는 운전수 쪽을 보고, 다시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운전수는 휴우ー, 하고 휘파람을 불더니, 왠지 내 쪽으로 힐쭉거리는 얼굴을 돌렸다.
「뭐, 뭐야? 왜 이래? 이 사람」
조금 무섭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아스카는 시치미를 뚝 떼고, 운전수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듯 차가 멈추자, 운전수가 굳이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 주었다.
왜 이런 VIP 대우를……?
슬슬 애비에 대한 의혹이 깊어진다.
아스카가 독일어로 감사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린다.
따라하려고 히어링해 보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일본식으로 감사를 표하기로 했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운전수도 덩달아 나를 따라했다.
잘못된 일본 문화를 심는 데 성공한 나는, 기분 좋게 차를 배웅한 뒤
앞으로 한 달을 생활하게 될 집에 눈을 돌렸다.
「이거 독채 아니야?」
독일의 건축물 사정에 밝지 않은 나는 아스카에게 물어보았다.
「……그러게. 이런 데를 한 달이나 빌리다니, 신지의 아버지 돈 괜찮은 걸까……」
「그으……. 아마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모르겠네」
애비가 평범한 샐러리맨이 아닌 것 같다는 정황이 최근 싫을 정도로 드러나고 있다.
걱정스러워하는 아스카의 등을 밀면서, 나는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거실 같은 방에 짐을 내려놓고, 우리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대충 구경이 끝난 뒤, 거실로 돌아온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스카를 풀네임으로 불렀다.
「소류 아스카 랭글리씨」
방 안을 살펴보던 아스카가 나를 뒤돌아보았다.
그 표정은 불만스러워 보였다.
「하지 마, 그거. …………똑바로 아스카라고 불러」
「그럼 아스카씨」
「씨도 싫어」
「아스카」
「……왜?」
「앞으로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아스카가 얼굴을 찌푸렸다.
「……기분 나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괜찮을까?」
「오자마자 갑자기. 뭐어, 내용에 따라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독일에 있는 동안은 망설이지 말자? 서로」
「그, 그런 거! ……나는 별로…… 망설이는 거 없어……」
「그러면 된 거고. ……모처럼 왔으니까, 귀찮은 거 전부 잊어버리고
바보처럼 뛰어놀다 가자. 미사토씨처럼」
마지막에 붙인 농담에 웃지도 않고, 아스카는 지이ー잉 나를 쳐다보았다.
「너………… 혹시 날 신경써서 그런 거야?」
「그럴 리 없잖아. 방금 말했잖아, 망설이지 말자고. 그러니까 신경쓰고 그러지도 않아」
「흐ー응……」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나를 노려본 뒤, 아스카는 말했다.
「알았어. 네가 말한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그래그래. 그게 첫째야. ……뭐랄까, 그 이상 제멋대로가 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지만」
농담조로 한 말에, 아스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오늘은 너무 기세가 좋은 거 아니야, 신지? 일본을 떠나서 머리에 나사가 풀린 걸까?」
처음 보는 벽난로에 눈을 빼앗겼던 나는, 아스카의 목소리 톤이 미묘하게 변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거 아니야. 아스카야말로 요즘 너무 얌전해진 거 아냐? 예전의 짐승 같은 박력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림자가 벽난로를 덮었다.
얼레?
나는 돌아섰다.
「……박력이, 뭐가 어쨌다고?」
거기에, 짐승이 서 있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망설이지 않는 아스카가 하고 싶은 대로 당한 나는, 빈사의 중상을 무릅쓰고 저녁을 만들어 아스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아스카가 목욕하는 동안 신문을 펴놓고 텔레비전을 켰다.
신문은 전혀 읽을 수 없었지만, 운 좋게 텔레비전에서는 막 일기예보가 시작되는 참이었다.
일기예보사가 영창하는 주문은 무시하고, 일기도에만 집중했다.
으ー음.
그 결과, 당분간은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도.
일기예보가 끝나고 잠시 후, 아스카가 욕실에서 나왔다.
「신지, 욕조 비었어」
「오늘은 일찍 나오네. 늘 하던 것보다 시간이 절반 정도 짧잖아?」
「………그런가」
아스카가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털자, 샴푸 냄새가 방에 퍼졌다.
조금 두근두근한다.
「그것보다, 신지도 목욕해야 하지 않아?」
「으, 응. 좀 있다가 들어갈 거야」
「너, 텔레비전 봐도 내용 알아들어?」
「아니, 전혀. 그래도 어떤 프로그램을 하나 해서」
「무리무리. 너 같은 어린애는 이해할 수 없는 고상한 것들 뿐이네」
아스카는 리모컨을 주워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네 심심풀이 상대는 나밖에 없어. 알아들었으면 얼른 씻으러 들어가.
내일 일정이 있으니까」
아스카는 내 팔을 잡더니, 체중을 실어 일으켜세웠다.
「자, 다녀오라고」
「……네이」
 
 
욕조에 몸을 가라앉히고, 후ー우 크게 숨을 내쉰다.
「…………」
여기는 독일이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은 지금 몇시일까?
미사토씨는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토우지나 켄스케는 어떻게 지낼까?
「…………」
……이건 향수병 같은 것일까…….
머리에 떠오른 것들을 뿌리치고, 기세 좋게 욕조에서 일어났다.
액체샴푸를 손에 짜고, 머리카락에 묻혀, 박박 조금 세게 감는다.
그대로 몸까지 비누칠을 하고, 샤워로 단번에 씻어낸 후
입욕은 거의 형식만 한 채로 얼른얼른 욕실에서 나가기로 했다.
토탈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파자마를 입고 거실로 돌아오자, 소파에서 뒹굴던 아스카가 히죽히죽 웃으며 나를 보았다.
「……뭐야. 왜 그래?」
「딱히ー. 신지도 평소보다 목욕 시간이 짧구나 싶어서ー」
……그러게요.
아스카가 빨랐던 이유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됐으니까, 내일 뭐 할지 결정하자. 어디 갈까? ……라고 말해도 나는 아는 게 없으니까
아스카가 결정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어디라도 좋아?」
「아스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거기로 좋아」
「그렇구나……」
아스카는 팔짱을 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데면 괜찮아. 어차피 시간이 한 달이나 있으니까, 고민하지 않아도 대충 갈 데는 다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해도……. 나도 이 주변 지리에 밝지 않아서」
「에? 아스카 이 주변 잘 몰라?」
「당연하지. 내가 예전에 살던 곳은 여기서 200 킬로 이상 떨어진 데야」
「그, 그렇구나……」
조금 불안.
「그럼 이렇게 하자? 내일 하루는 걸어다니면서 이 주변을 탐색하자. 뭔가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그리로 가보거나 하는 식으로. 나머지 시간은 적당히 여기 생활에 필요한데 부족한 것들을 사러 다니고 하면 되겠지」
「……그렇네. 그럴 수밖에 없겠다」
나는 수긍하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시곗바늘은 이제 막 9시를 가리키는 참이었다.
「이제 뭐 하지? 아직 잘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고」
일단 방학숙제를 가져오긴 했지만, 첫날부터 숙제를 할 정도의 기력은 또 없다.
요컨대 한가하다는 것이다.
「뭘 해도 좋아. 이야기를 해도 좋고, 신지가 보고 싶다면 텔레비전을 켜도 좋고」
텔레비전이라…….
아스카의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 아스카가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 통역해 주지 않을래? 드라마가 아니라도, 뭐라도 좋으니까」
거절당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스카는 씨익 웃었다.
「흐흥, 재미있겠네」
텔레비전을 켜자, 마침 드라마 같은 것을 방영하고 있었다.
시작한다, 라고 내게 선언하고 아스카의 통역은 시작되었다.
배우의 입의 움직임과 아스카의 통역 사이에는 시간차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감탄하면서 듣고 있던 나도, 어느 사이 영상과 아스카가 통역하는 대사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음을 깨달았다.
이상하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듣고 있다 보니, 어느 한 장면에서의 대사가 내 웃음지뢰를 건드렸다.
「아하하하하하! ……근데 이거, 웃기는 드라마야?」
화면만 봐서는, 오히려 시리어스계로 보인다.
「글쎄 어떨까?」
아스카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통역을 계속했다.
그 뒤로도 나는 몇 번이나 납득할 수 없는 장면들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드라마가 끝난 뒤에야 통역받은 대사 전부가 아스카의 애드리브였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전부 즉석에서 생각낸 거야?」
「뭐 그렇지. 신지도 많이 웃겼고, 내 유머감각도 시들지 않은 걸 확인했으니」
아스카는 가볍게 말했다.
「아니, 대단했어. 잘도 생각해 냈구나, 그런 걸」
역시 독일 최난관 대학의 정점에 군림하던 지성.
그 실력의 편린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신지도 할 수 있어. 예컨대 신지가 영어를 마스터한다고 쳐 봐?
그러면 미국인에게 일본 텔레비전 프로를 보여주고, 적당히 떠오르는 대로 떠들면 되니까.
대단할 것도 없어」
「……그, 그게 될려나……」
아무래도 아스카의 상식과 나의 상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스카, 몇개국어 하는 거야?」
내 질문에 아스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에……. 칠개국어, 정도일까?」
「…………」
도대체 나는 아스카에게 어떤 식으로 보이고 있을까?
그런 걱정을 품지 않을 수 없는 독일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이런저런 곳들로 다리를 뻗었다.
처음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를 우왕좌왕할 뿐이었지만, 날을 거듭할 때마다
점점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페이스의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시내 중심지에 나가서 아스카의 윈도쇼핑을 거들기도 하고
통속적인 관광스폿에 가자고 제안했다가 아스카의 기막히다는 시선을 받거나
아무도 없는 공원 잔디밭에서 둘이서 뒹굴다 현지인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아스카와 둘이서, 머리를 비우고 매일 놀러 다녔다.
딱 한 번,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시야가 좋은 전망대에 갔을 때
아스카의 말수가 묘하게 적었던 적이 있었다.
자꾸 주위를 둘러본다거나, 그러는가 싶었더니 다음 순간 한 벤치를 응시하고 있거나.
예전에 들었던 아스카의 추억 이야기 가운데 전망대와 관련 있는 것이 있었음이 떠올랐다.
아마 이 전망대는, 아스카와 어머니의 추억의 장소인 것일까.
오랜 시간 거기를 떠나지 않는 아스카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식사에 관해서는, 아침은 빵, 점심은 외식, 밤에는 자취,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결정되어갔다.
당연히 혼자서는 저녁 식재를 살 수도 없으니까, 아스카에게 통역을 맡겼다.
아스카는 자주, 내가 독일어를 모른다는 것을 이용해, 일부러 가게 사람들이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말들을 섞어 통역하곤 했다.
그것을 곧이듣고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 나를 보고, 가게 사람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하고 그랬다.
아스카가 요리를 배우고 싶다면서, 저녁식사 준비를 거들어주기 시작한 것은
독일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매일이 즐거웠다.
미사토씨까지 셋이서 시덥잖은 장난을 치며 사는 것도 좋았지만, 아스카와 단 둘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땅에서 생활하는 것은 그 몇 배로 즐거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중학생이기에, 언제까지나 그런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다.
방학숙제에 손도 대지 않고, 요일도 잊어버릴 정도로 즐거운 하루하루 흐름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있는 사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날은 착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간은 흘러흘러,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체류기간 마지막 날의 전날.
그날 저녁, 그때까지 쾌청한 날씨만 이어지던 독일의 하늘을, 짙은 구름이 덮었다.
 
 
「아스카, 여기 좀 가르쳐 줄래?」
나는 수학 숙제와 눈싸움을 한 끝에, 백기를 들고 아스카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에? 아, 뭐라고?」
「아니, 이 문제 좀 가르쳐 달라고……」
「으, 으응. 보여줘 봐」
아스카는 당황한 듯 내 숙제를 들여다본다.
아스카가 문제를 살피는 사이, 나는 창밖에 얼굴을 돌렸다.
이따금 뇌명이 우릉거린다.
하늘도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스카가 하고 있던 국어 숙제에 눈길을 던졌다.
아까 들여다보았을 때와 똑같고, 페이지는 전혀 진척이 없다.
역시 불안한 건가…….
「신지, 문제 풀었어」
아스카가 얼굴을 들었다.
「아, 고마워」
우리는 서로의 숙제로 돌아갔다.
「…………」
한참 있다가, 흘끗 아스카를 훔쳐보았다.
아스카는 창을 바라보며 멍때리고 있었다.
나는 샤프펜슬을 내려놓고, 얼굴을 들었다.
「비, 안 내렸으면 좋겠다」
내 말에 아스카가 돌아보았다.
「…………미안해. 쓸데없이 걱정 끼쳤지?」
나는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쓸데없는 게 아니야」
「……고마워. 그래도 괜찮아. 숙제 빨리 끝내자?」
아스카는 웃으며 말하고, 숙제에 눈을 향했다.
무리하고 있음이 내가 보기에도 티가 난다.
그만큼 아스카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
눈을 떴을 때, 한순간 여기가 어디인지 몰랐다.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파슷
등을 받치고 있었던 것 같은 시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아…… 그렇지.
생각났다.
저녁식사의 뒷정리를 하고, 의자에 앉고…….
아무래도 그 뒤,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버린 것 같다.
시트는 아스카가 덮어준 거겠지.
계속 머리가 베고 있던 팔이 찌릿찌릿 저려왔다.
시계를 보니, 오전 12시 조금 전이었다.
오늘은 저녁식사를 마친 것이 8시 조금 전이었으니……… 4시간 정도 자 버린 건가.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개운치 않다.
테이블에 턱을 대고 눈을 감으니,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귀가 맑아졌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
「…………응?」
………비?
핫,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큰일났다!
아스카…… 아스카는!?
황급히 부엌을 뛰쳐나갔다.
거실에 아스카의 모습은 없었다.
……자기 방에 있나?
나는 아스카가 침실로 쓰는 방으로 서둘렀다.
문 앞에 서서 불러본다.
「아스카? 일어나 있어?」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아스카……」
다시 한 번 불러보려 한 그 때,
찰칵
문이 조용히 열렸다.
「일어나 있었어……」
「응. ………저기, ……괜찮아?」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셔츠를 꽉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괜찮아. 무서워, 신지……」
「미안……」
그대로 서 있다 보니, 아스카가 내 셔츠를 끌어당겼다.
「……들어와. 혼자 두지 말아 줘」
이끌리는 대로 방에 들어가서, 등 뒤로 문을 닫았다.
방 안은 바깥의 가로등의 근소한 빛이 스며들어, 어렴풋이 윤곽을 구분할 정도로만 밝았다.
「아스카, 누워. 잠들면 비가 무섭지 않아」
침대에 앉은 아스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신지는?」
「나는 방금까지 잤으니까 괜찮아. 아스카가 잠들 때까지 여기 있을게」
아스카는 고개를 수그리고, 지그시 자신의 양손을 바라본 후, 꾸벅 수긍했다.
「알았어. ……그치만 내가 잠든 뒤에도, 신지는 여기 있어야 돼. 어디 가면 안 돼」
그렇게 말하면서 아스카는 예비용 모포를 내게 내밀었다.
「신지도 졸리면 무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수긍하면서 모포를 받아들고 곁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침대에 누운 아스카는, 잠시 후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의자에서 자면 아프지 않아? 이 침대 넓으니까, 내 옆에 와도 괜찮아?」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돼, 됐어. 아무렇지도 않아. 아프거나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
 
 
그러고 10분 쯤 지났다.
아스카의 얼굴은 반대쪽을 향하고 있어서, 이쪽에서는 자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숨소리를 들어서 알아보려 해도, 빗소리가 방해해서 무리였다.
……잠들었나?
말을 걸어볼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만약 잠들었는데 말 걸어서 깨웠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
그대로 잠깐 아스카의 기색을 살폈는데, 호흡으로 등이 오르내리는 것 외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좋아.
나는 결심이 서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양손을 깍지끼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으응」
크게 기지개를 쳤다.
군데군데 따닥따닥 하며 관절이 울렸다.
솔직히 말하면, 아까부터 등이 아프고 다리는 저리고 엉망이었다.
의자가 너무 큰 게 원인이었다.
밤새도록 이래서야 힘들지 않을까…….
저린 오른다리를 안마할 수도 없어서, 별 수 없이 의자에 다시 앉으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아스카의 자세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뒤척이기라도 한 것일까 생각하고, 이쪽을 향하게 된 아스카의 얼굴을 보니
그 눈은 되록이 뜨여 있었다.
「어, 어라? 혹시 나 때문에 꺴어?」
「……으으응. 처음부터 잠들지 않았어」
「그렇구나. 움직임이 없어서 잠들었을까 생각했어」
아스카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내게 말했다.
「신지, 역시 의자는 무리야. 이리로 와」
「아, 아니, 그치만………」
「겨우 10분으로 그 지경인데, 아침까지는 절대로 멀쩡히 못 있어」
「…………」
의자가 안 되면 바닥이 있잖아, 라고 말할 수가 없다.
「여기 온 첫 날, 망설이지 말자고 약속했던 건 누구?」
……그것은 접니다요.
「자기가 한 말은 제대로 지켜야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아스카와 한 침대에 들어간다니, 기쁘지만 긴장된다고.
거절하면 긴장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 경우 밤새 허리 아픈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
바닥에서 자는 선택지는 이 경우 무시하기로 했다.
어째야 한단 말인가…….
내 안의 격심한 갈등에 결착을 지어준 것은, 이어지는 아스카의 한 마디였다.
「………그렇게 고민될 정도로 싫어? 신지는 내가, 싫은 거야?」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그런 말까지 듣고 거절하는 남자가 어느 세계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결국, 나는 바짝바짝 긴장하면서도 아스카의 곁에 실례하게 되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아까부터 심장이 숨돌릴 새도 없이 바쁘다.
내 눈앞에, 코앞에 있는 아스카를 의식하니, 호흡하는 방법마저 잊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왼팔을 밑으로, 아스카는 오른팔을 밑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형태로 누웠다.
견딜 수가 없어서 한 번 돌아누우려고 했지만, 어깨를 붙잡혀 차단되었다.
「얼굴, 보고 싶으니까」
그런 스트레이트한 일격을 날리는데, 내가 어쩔 도리가 있을 리가 없다.
별 수 없이 눈을 감고, 내가 먼저 잠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아스카는 아직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눈을 뜬 것을 알아채고, 소리 없이 웃었다.
「저기, 잠 안 자?」
「……조금만 더 깨 있으려고」
「비……… 비는 괜찮아?」
「응. 이러고 있으니까, 굉장히 차분해. 안심할 수 있어」
「그, 그렇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으으…….
아스카가 안심했다니 기쁜 일이지만, 이쪽은 벌써 머릿속이 성게다.
이런 지옥 같은 천국의 상태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나는 아스카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듯이 눈을 감았다.
「…………」
………신경 쓰여.
눈을 덮은 어둠이, 많은 것을 내게 상상시켰다.
쿳바람이 너무 거칠지 않을까?
자는 얼굴이 멍청해 보이지 않을까?
심장 고동이 들리지 않을까?
아스카에게 내가 보인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신경 쓰여서 어쩔 수가 없다.
눈을 뜨건 감건, 내가 도망갈 곳은 없다.
「……신지, 이제 자……?」
눈을 감고 1분도 안 되었는데, 잠들었을 리가 없지.
「아, 아니. ……왜?」
눈을 뜨자마자, 똑바로 나를 꿰뚫어보는 푸른 눈동자에 허둥댔다.
「……졸려?」
「그, 그렇진는……」
혀가 제대로 돌지 않는다.
아까부터 말을 더듬거리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나는 전혀 잠이 안 오는 거 있지」
「아, 그래………」
당분간 내가 산송장 상태가 된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저번처럼, 뭔가 이야기하지 않을래?」
「이야기?」
「응. 뭐든지 좋으니까, 신지의 이야기 들려줘」
아스카가 베개 위에서 머리의 위치를 낮추자, 그때마다 샴푸 냄새가 내 코를 간질였다.
같은 것을 사용했을텐데, 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 걸까…….
성게에서 해파리로 변한 머릿속 한 구석에서, 생뚱맞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라고 해도…… 전에 다니던 학교 이야기는 이미 했고,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제 없어?」
아스카는 고개를 흔드는 것 같은 움직임을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도 좋아. 뭐라도 좋아」
「뭐, 뭐라도 좋다고 해도……」
………어쩐다지.
어쩔 거야? 어쩔 거야?
아아…… 진짜, 어ー째야 좋아?
아스카는 뭐든지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말해버려도 좋은 거 아냐?
아까부터 억누를 수도 없이 가슴 속에서 울컥여 나오는 이 마음을 말해버려도 좋은 거 아냐?
「신지라면, 무엇이든지 좋아……」
속삭이는 듯한 아스카의 그 목소리가, 내 마음 속 대항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음 순간, 내 입이 제멋대로 열렸다.
「………좋아해」
「에?」
「아스카를, 좋아해」
아스카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더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해」
「시, 신지……?」
그대로 아스카의 머리를 양팔로 끌어안아, 가슴 속에 가두었다.
말해버리자 마음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만나고 나서 이제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스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신지……」
「무서운 것도, 짓궂은 것도, 강한 것도, 약한 것도……… 전부 합쳐서
아스카의 모든 것이 너무 좋아」
「나, 나아……」
아스카가 뭐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말을 계속했다.
「미사토씨가 그랬어. 아스카를 좋아하게 되는 건 큰일이라고.
그래도, 이제 그런 거 신경쓰지 않을 거야. 큰일이라도, 아스카와 쭉 함께이고 싶어.
아스카의 모든 걸 내가 다 받아 줄테니까」
「…………」
그치지 않는 빗소리만 방 안에 울린다.
나는 아스카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아스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신지………… 손」
「……에? ……왜?」
「손 좀 떼」
「……………아 ……………미안」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었다.
나를 기다린 것은 거절이었다.
그렇게 느낀 순간, 미사토씨가 했던 또다른 말이 떠올랐다.
아스카의 『좋아』는, 우리들의 『좋아』와 전혀 다르다고…….
나는 아스카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는 것일까?
아스카가 내게 말한 『좋아』는, 내가 아스카에게 말한 『좋아』와 다른 것이었나……?
아쉬움과 슬픔에 젖어, 나는 아스카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미안. 기분 나쁘게 만들었지. ……미안」
사과하는 내게, 아스카는 왠지 미소지었다.
「오해하지 마, 신지. 손 떼라고 한 건, 신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야……」
「……에?」
「제대로 얼굴을 보면서 듣고 싶었어. 좋아한다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신지의 얼굴이 보고 싶었어」
「아스카……」
「……또 불러 줘」
「…………」
「신지?」
「………아스카」
「왜애?」
「………좋아해」
「나도 신지를, 아주 좋아해……. 쭉 옆에 있어 주면 좋겠어……」
다시 한 번, 나는 아스카를 껴안았다.
이번에는 아스카도 나를 마주 안아 주었다.
「……나를 좋아하는 건 큰일이야. …………알고 있어?」
「몰라. 하지만 큰일이라도 상관 없어」
「……좋아, 그럼 가르쳐 줄게」
그렇게 말하고, 부둥켜안은 자세 그대로 아스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마음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구멍?」
「그래, 구멍. ……엄마가 죽었을 때 뚫린, 커다란 구멍」
「…………」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싶었어.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었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마음의 구멍이 메워질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되지 않았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칭찬을 받아도
그래도, 마음의 구멍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대로 다 흘러나갔어……」
아스카는 거기서 힘든 듯 말을 끊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들어」
「……알았어」
아스카는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알게 되었어. 아무도 내 마음의 구멍을 메워줄 수 없다고. 그래서 나는 포기했어.
남들에게 기대하는 건 이제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어」
……그렇지 않아.
남에게 매달리는 건, 나약한 것 따위가 아니야…… 분명해.
내가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근데 있지」
아스카가 조용히 고했다.
「근데 있지, 신지가 있어 주었어. 나를 계속 봐 주었어. 내 마음의 구멍이 메워지지 않았는데
신지가 언제나 거기에 끊임없는 따스한 마음을, 가득 채워 주었어.
아직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 신지는 다른 누구와도 달라」
「…………」
「신지가 곁에 있어 주니까, 엄마가 없어졌을 때 생각이 떠올라도 무섭지 않아. 신지가 이대로
내 옆에 계속 있어 주면,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진짜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응」
「그러니까 신지. 나를 좋아하는 건 큰일이야. 계속 나만 바라보지 않으면 안 돼.
그 마음이 끊어지면 안 돼. 평생, 내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있을게. 쭉……」
「약속할 수 있어? 나 이제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마음에 브레이크가 빠져 버릴 거야?」
「약속할게」
「정말로? 나, 지금도 마음을 억누르고 있어. 그게 없어지면, 신지에게서 떨어질 수 없어?
신지를 속박하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독일에서 한 달 아스카와 지내면서 알게 되었어.
나 역시 이제 아스카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래도……」
아스카는 아직도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떻게든 이 끝없는 불안을 없애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 줘야 아스카는……….
이래서야 무슨 말로 답해 봤자, 마음의 구멍은 메워지지 않는다.
팔에 안고 있던 아스카의 머리를, 살짝 떼어냈다.
「……신지?」
울음기 섞인 목소리의 아스카에게, 나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아스카에게 입을 맞추었다.
「……………」
「……………」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고, 아스카와의 거리를 조금 벌렸다.
「……믿어도 좋아. 쭉 좋아할 테니까. 쭉 곁에 있을 테니까」
아스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 한 방울이, 베개에 떨어졌다.
 
 
 
 
「좋은 아침, 신지……」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뛰어들어온 아스카의 미소가,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좋은 아침. ……아스카, 안 잤어?」
「으으응, 잤어. 그래도 일찍 일어났어」
「……혹시 나, 계속 자는 얼굴 보였다던가……?」
「응. 쭉 봤어」
「………멍청해 보이지는 않았어?」
우후후, 하고 웃을 뿐, 아스카는 대답하지 않는다.
……역시 멍청해 보였음에 틀림없다.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니, 비는 아직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치지 않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딱히 괜찮아. 공항으로 출발할 때까지 어차피 여기 있을 거니까」
가볍게 말하는 아스카가 의외라, 나는 살짝 놀랐다.
「아스카, 아침의 비는 괜찮아?」
「무섭지는 않았지만, 싫어하기는 했어」
「그랬어? ……뭔가, 과거형 같은데?」
「맞아. 지금은 괜찮아」
「그럼, 지금은 어떤데?」
「……좋아할 수 없지만, 싫어하지도 않게 되었어」
그렇게 말한 아스카의 얼굴은, 왠지 기뻐 보였다.
「헤에……. 잘 모르겠지만, 다행이다」
「………바보」
왜인지 발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가 싶더니, 다음 순간 나와의 거리를 제로로 좁혀왔다.
「아, 아스카?」
아스카는 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어젯밤 말했던 거, 이제 다시는 취소 못 해.
생각해 보니 역시 못 하겠다거나 그런 말, 안 되니까」
「그, 그런 말 하지 않아」
말은 하지 않지만…….
……으으, 아침부터 자극이 강하다.
오늘은 아침의 생리현상이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좋아해. 너무 좋아해. 쭉 나만 봐 줘야 해……」
「으, 응」
「하루에 한 번은 신지의 마음을 들려줘.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 이름도 불러 줘」
「이름?」
「그래. 제대로 아스카라고 불러. 소류라던가, 랭글리라던가, 허락하지 않을 거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저기, 내가 『아스카』 이외의 호칭으로 부를 때,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야?」
「내 이름은, 아스카니까」
「하지만 소류나 랭글리라고 해도……」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신지 앞에서의 나는 그냥 아스카로 좋아. 소류양, 그렇게 불러도 괜찮은 건 신지 이외의 사람들만」
사랑의 표현이라는 건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스카가 내 얼굴을 보고 미소지었다.
「나를 아스카라고 불러도 좋은 건, 신지 뿐이야……」
그대로 내 셔츠에 데굴데굴 이마를 비벼온다.
「아, 아스카……」
귀, 귀여움이 지나쳐……….
강렬한 일격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성게로 만든다.
………응?
그런데, 잠깐 있어 봐……?
「……아스카라고 부르는 사람들 꽤 많지 않아? 미사토씨라더가, 호라키양이라던가
그리고 반 여학생들도……」
라고 말하자마자 등을 꼬집혔다.
「아얏!」
「……사소한 거 신경쓰지 마. 다른 남자들이 못 부르게 하는 그걸로 좋은 거니까」
「그, 그렇습니까……」
「그래. ……나한테는 신지 뿐이야……」
「………지, 지금이 몇 시지?」
쑥쓰러움을 숨기기 위해, 나는 상반신을 일으켜 시계를 보았다.
「벌써 오전이네……. 아스카, 슬슬 집 챙겨야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공항이 어디 도망가거나 하지 않아」
「하지만 비행기는 도망치지 않을까……….
게다가 아직 밥도 안 먹었지. 이후로는 뭐 먹을 시간 없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스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 왜?」
「……신지는 지금 배가 고파?」
「응? ……뭐어, 어느 정도」
「내가 잘 못했구나. 내 탓이야」
「무, 무슨 소리신지……?」
「내 사랑이 부족한 거야. 분명히 그래. 틀림없어」
「자, 잠깐 아스카씨……?」
블루아이즈가 반짝 빛났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떠밀려 눕혀졌다.
「으왁! ………아스카!?」
패닉에 빠진 나를 내려다보며, 아스카는 훗 하고 웃었다.
「내 사랑으로 배를 가득 채워 줄게.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그, 그렇게 마구잡이로………」
그대로 입이 틀어막혔다.
………이러저러하여 독일의 마지막 날 아침,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말 그대로 출발시각 직전까지 나를 괴롭힌 아스카는, 빗속이라도 만족하고 있었다.
공항까지 가는 차 안에서도, 자꾸 내 얼굴을 보고 히죽히죽거렸다.
저번의 그 운전수가 아스카에게 뭐라고 말을 걸자, 아스카는 기뻐하며 대답했다.
아스카의 대답을 들은 운전수는, 이번에도 힐쭉거리며 내 얼굴을 보았다.
 
공항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마피아 두령(Don)이 기다리고 있었다.
까닭을 모를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차 옆에서, 검은 우산을 들고 있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의아하다는 듯이 두령(돈)을 보고 있다.
「……아, 아버지」
우산을 들지 말고 차라리 공항 안에 들어가지 왜…….
「여전히 성장하지 않았구나, 신지」
훗, 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흘끗 보았다.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당연하잖아……」
확실히 저번에도 이런 식의 대화였던 것 같다.
애비는 이번에도 나를 무시하고, 아스카에게 얼굴을 돌렸다.
「어땠나? 바보아들과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던가?」
아스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런 멋진 집까지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의 말을 하고, 느닷없이 아스카는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놀라서 보는 앞에서, 아스카는 진지한 표정으로 애비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아스카의 이야기를 다 들은 애비는, 흠, 이라고 외마디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신지야. 이쪽의 아가씨는 이미 레이디시다.  
너 따위와 비교하면 여자 쪽이 훨씬 아깝지만, 각오는 되어 있겠지?」
「아, 아버지는 독일어도 할 줄 알았어?」
「닥쳐라 바보아들. 각오는 되어 있냐고 묻고 있다」
「……각오라니, 무슨 각오?」
「흥. ……그런 것도 모르다니 한심스러운 놈」
애비는 그렇게 막말을 내뱉고, 아스카 쪽으로 돌아섰다.
「……이와 같이 구제불능의 바보아들인데, 정말 괜찮겠나?」
그 물음에,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향후, 이 바보는 자네에게 맡기는 걸로 하지.
삶던지 굽던지 팔아치우던지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가…… 감사합니다!」
아스카는 황송하다는 듯 머리숙여 절했다.
……뭐야 이거?
아까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아스카, 무슨 일이야? 아버지하고 무슨 얘기를 했어?」
물어본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아야! ……무슨 짓이야 아버지!」
애비는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거다. 조금은 자기 머리를 써라」
「……모르니까 묻는 거잖아……」
뭐냐고, 도대체가…….
「신지야. 나는 당분간 일본에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서 지내는 게 마음이 편하거든.
네 얼굴을 보지 않는 것도 그 매력 중 하나인데, 이번에 네가 와 버리는 바람에
내 기분은 엉망이다」
「……나도 아버지 얼굴을 봐서, 충분히 지긋지긋했어」
「그러냐. 그러면 앞으로 10년은 보지 말고 살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게 되었군」
「……뭐냐고, 그 거슬리는 말투는」
「몇년 후에 한 번, 일본에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용무가 생겨버렸다는 거다」
「몇 년후에…… 왜?」
「모른다. 스스로 생각해라」
또냐…….
확실히 좀 해 달라고…….
「그럼 꺼져라. 너한테는 이제 볼일이 없다」
「시끄럽네……. 안 그래도 갈 거라고」
그때까지 잠자코 나와 애비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스카가 입을 열었다.
「저기…… 벌써부터 그런 부탁을 드려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저, 적당한 마음가짐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한 아스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해 봐라」
「고맙습니다……」
아스카는 어째선지 또 눈물을 글썽였다.
……또야.
또 나만 모기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
석연찮은 기분으로 있는데, 아스카가 돌아보았다.
「신지, 갈까?」
「아, ……응」
걷기 시작하자마자, 아스카는 다시 한 번 애비를 보았다.
「그러면 이만…… 아버님おとうさま, 신세를 졌습니다」
「음. 건강해라」
…………아버님?
「아스카, 방금 뭐야? 아버님이라 안 그랬어?」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스카에게 캐물었다.
「그랬어. 깊은 의미는 없어. 하지만 신지의 아버지니까
그렇게 불러도 이상할 거 없잖아?」
「그으……런가아?」
잘 모르겠다.
「신경쓰지 마. ……………조만간 알게 될 테니」
중얼거리듯이 흐려버린 말꼬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에필로그
 
 
「재학생 여러분은, 졸업생들을 박수로 보내 주십시오」
사회 선생의 말을 신호로, 졸업식이 열리고 있는 체육관에 박수소리가 울렸다.
졸업생들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학급 순서대로 오와 열을 맞추어 나간다.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주는 음악을 들으며, 나도 체육관을 나갔다.
「아ー, 끝났다 끝났다. 졸려ー……」
「교장 말 너무 많ー아……」
「고등학교는 갈라졌지만, 꼭 전화해야 해……」
「노래방이라도 가지 않을래? 다같이 가자고 모아서……」
약간 흐린 하늘 아래, 중학교 생활의 마지막이 될 친구들과의 교류로, 주위는 떠들썩한 소란에 휩싸였다.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인지, 누구나 평소보다 더 많이 떠들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으로 그것을 보는데, 누가 뒤에서 등을 두드렸다.
「야아, 범생. 막 울고 그카지는 않았제?」
돌아보니, 토우지가 웃고 있다.
「무슨 소리야. 그쪽이야말로 눈 좀 붉지 않아?」
「뭐라카노, 그럴 리가. ………얼레? 켄스케는 어디 갔노?」
토우지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얼레? 없네? 분명히 내 옆에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이상하게 생각하며, 사람들이 모인 쪽을 보는 순간,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으왁……」
눈부심에 얼굴을 찌푸리며 빛이 발한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켄스케가 히죽히죽 웃으며 서 있었다.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다.
「좋구만, 좋아. 따끈따끈하게 갓 찍은, 약간 우울한 졸업생. 그림이 되네」
「켄스케……. 어디 갔었어」
「마 내비 둬라. 이 학교에서 찍는 마지막 사진 아이가」
토우지가 어이없다는 듯 켄스케를 보았다.
「결국 니는 마지막까지 사진이가. ……마, 됐다. 모처럼이니까, 내도 함 찍어 도」
「예에, 그럽죠」
그리고 근처에 있던 동급생들까지 가세해서, 미니 촬영회가 시작되었다.
평범하게 찍히려는 나에게는 야유가 쏟아지고, 기묘한 포즈를 잡은 토우지에게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사진을 다 찍고 필름을 꺼낸 뒤, 켄스케가 오도카니 중얼거렸다.
「이걸로, 이 학교와도 작별이구나……」
웃는 얼굴과 달리, 그 말의 울림에는 쓸쓸함이 감돌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릏네. ……오늘로 끝이구마」
「……그러게」
「…………」
잠시 침묵이 이어진 뒤, 토우지가 무언가를 뿌리치듯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 됐다! 그라문 인제 하교하자. 우예, 졸업 축하 오코노미야키라도 무러 안 갈래?」
토우지의 제안에 켄스케가 쓴웃음을 지었다.
「졸업 축하로 오코노미야키라니 정신이 어질어질하네. ……뭐, 괜찮겠지」
「신지 니는 우짤래?」
나는 토우지를 향해 두 손 모아 사과했다.
「미안. 나는 아스카하고 약속이 있어서……」
「뭐꼬, 또 소류가. 느그덜 한 세트로 댕기는 것도 참말로 징하데이……」
「시끄럽네. 너한테 이러쿵저러쿵 그런 소리를 내가 왜 들어야 돼」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돌아보니, 바로 뒤에 아스카가 서 있었다.
「니, 니, 언제……」
뒷걸음질치는 토우지를 상큼하게 무시하고, 아스카는 내게 얼굴을 돌렸다.
「신지, 기다렸지」
「응. 근데 지금까지 어디 가 있었어?」
「………좀 일이 있어서」
미묘한 미소를 띤 아스카를, 켄스케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소류, 변했어. 1년 반 전까지의 그 모습은 어디 갔냐는 느낌이야.
덕분에 나는 그 뒤로 사진 매상이 떡락했다고?」
그 말에 아스카는 흥, 코웃음을 쳤다.
「나는 신지를 위해 존재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이야, 그런 징그러운 대사를 우째 그리 태연하게 칠 수가 있노……. 이 봐라 봐, 신지 보라꼬.
귀까지 새빨개졌다 안 카나. 니도 좀 부끄러운 줄 좀 알고……」
얼굴을 찡그리는 토우지를 아스카가 째려보았다.
「네 설교 따위 딱 질색이야. ……그런 것보다, 히카리가 너한테 볼일이 있대.
체육관 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튀어 가」
토우지는 순간 지겨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또 와? 졸업까지 했는데 아직도 잔소리할 게 남았나…….
불리갈 만한 저지레를 한 기억은 없……」
「아 됐으니까! 빨리 튀어 가라고!」
아스카가 몰아내자 토우지는 떨떠름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알았다꼬 좀……. 켄스케, 미안한데 쪼매만 기다리레이」
그렇게 말하더니, 체육관 뒤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끌며 사라졌다.
아스카는 그것을 지켜보던 켄스케에게 말한다.
「……그럼, 넌 이제 집에 가. 볼일 없으니까」
「엥? ……무슨 소리야? 토우지를 기다려야……」
「어치파 스즈하라는 당분간 안 돌아와. 히카리의 볼일은 간단히 끝날 게 아니라서」
「무슨 볼일이길래?」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알아들었으면 냉큼 꺼져」
아스카가 팔짱을 끼고, 엉뚱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아, ……그런 건가」
켄스케는 납득한 것처럼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뭐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보았다.
「그럼 신지, 나 간다. 나중에 전화할 테니까, 그 때 놀러 나가자」
「알았어. ………어째 좀 미안하네, 켄스케」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만 비참해질 뿐이잖아? ………그럼. 소류도 건강해라」
쓴웃음을 지은 채, 켄스케는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켄스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스카에게 물어 보았다.
「호라키양의 볼일이라는 게 뭐지? 나하고도 상관없는 거야?」
아스카는 나를 보더니, 살풋 웃으며 말했다.
「……당사자들끼리밖에 모르는 일이야」
「흐ー응……」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니 별 수 없다.
그리고 잠시 둘이서 주위를 바라보다가, 우리도 집에 가기로 했다.
 
 
교문을 나올 때, 아스카가 교사를 돌아보았다.
「이제 여기에 올 일도 없구나……」
어딘가 허전한 듯한 그 옆얼굴에, 나는 물었다.
「……아스카, 학교는 재미있었어?」
아스카는 잠시 교사를 바라본 후, 내게로 돌아서서 말했다.
「즐거웠어. 신지가 함께 있어 주게 된 이후로, 줄곧 쭉 즐거웠어」
「……나도 아스카와 함께라서 즐거웠어」
내 말에, 아스카는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왠지 그거 이별의 인사 같잖아. ……하지 마, 그런 말투」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게다가 고등학교도 같은 데로 가고, 사는 것도 같이 살잖아」
「그건 당연하지. 쭉 옆에 있어주겠다고 말한 건 신지였으니까」
그렇구나, 라고 동의한 후, 나는 계속 신경쓰이던 것을 물었다.
「그래도…… 정말 괜찮겠어? 아스카라면 더 수준이 높은 고등학교에 가도 될 텐데……」
「무ー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런 데 가 봤자, 신지가 없으면 의미 없잖아.
아니면 뭐야? 신지는 내가 없어도 상관 없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그렇지 않아!」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 내게, 아스카는 미소지었다.
「그럼 신경쓰지 마. 신지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
「아스카……」
「……나를 쭉 계속 사랑해 줘」
「……………」
아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기가 졸업생들로 가득한 교문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나는 아스카의 손을 잡았다.
「가자, 아스카」
「응. ………아」
아스카가 뭔가 떠오른 듯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왜 그래?」
「……으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쓰이게……. 말해 줘」
「……응. ……있지?」
「뭐가?」
「오늘, 아직 말해주지 않았는데……」
「말해주지 않아?」
「있잖아, 언제나 하는 그거………」
언제나 하는 그거…….
「…………아아」
그건가…….
이제야 깨달은 내 얼굴을, 아스카가 들여다보았다.
「……들려줄 수 있어?」
나는 끄덕이면서, 아스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맑디 맑게 트인 파란색에, 빨려들어간다.
세상이 좁아져 간다.
「정말 좋아해……」
마음을 실어, 그 이름을 부른다.
 
「아스카」
 
 
 
 
FIN. (← 댓글은 목차 쪽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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