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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07년 5월 2일 수요일

『신지의 신지에 의한 신지를 위한 보완 Next_Calyx』 제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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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기력 20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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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 2007년 10월 4일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나만 이 날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쁘겠는데…
 

아프다. 아프다 난리를 쳐서 주변을 놀래켰지만, 그런 단계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금은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
아마 뇌내마약이 나왔다던지 그럴 것이다.
그립을 너무 꽉 쥐었는지, 양손에 감각마저 없어졌다. 이런 데 체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데 그만.
감각이 없어졌으면 덜 힘든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아서 속는 기분이다. 통각은 마비되었어도 내장감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오해를 감수하고 말하자면, 이 아픔은 고간을 부딪었을 때의 통증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지만….
덮쳐오는 기세를 견뎌내려다 보니 숨이 막혀온다.
안 되지, 안 돼. 복식호흡을 명심해야.

 
이런 고통을 도대체 얼마나 오래 겪고 있는 것인지, 시간감각은 없어진 지 오래다.

 ……
 
뿌리치는 듯한 느낌으로 돌연 몸이 가벼워졌다.
아니, 아직도 아프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아까와 비교하면 거의 천국과 지옥.
길이 열렸다, 는 얘기들이 들렸는데, 확실히 일단 나오기 시작하면 그 뒤로는 눈 깜짝할 사이였던 것 같다. 초산이었으면 더 힘들었겠지.
 
…후에. 하는 울음소리에 시선을 내려 보는데, 간호사분이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옥처럼 예쁜 여자아이예요」
순한 아이네요. 라며 아프간 모포에 싸인 아기를 내 가슴께에 누인다.
거친 숨, 들뜬 가슴, 기분 좋은 무게. 은은한 온기가 옷감 너머로 스며들고, 왠지 가슴이 저민다. 이 온기가 방금 전까지 이 태내에 있었다니, 거짓말 같다.
지쳐버린 팔을 야단내듯이 들어올려, 그 뺨을 어루만졌다.
분홍색 포대기 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얼굴은 놀랄 만큼 빨갛다. 핏덩이라는 말의 유래를 실감한다. 알비노는 아닌 것 같지만, 머리칼 색이 상당히 옅다. 눈은 아직 뜨지 않았지만, 혹시 빨간색이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바로 곁에 서 있는 겐도씨의 모습. 진통실과 분만실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따라와 버린 것이다. 바쁜 몸일텐데, 도대체 몇 시간이나 옆에 붙어 있었던 걸까. …가슴께에 움켜쥔 가아제로 진땀을 닦아주고 있었나보다. 정신이 없어서 몰랐지만, …고맙다.
「…이름, 정해 두셨나요?」
진이 빠져서 모기소리밖에 내지 못한다.
「아아. 여자애라고 들었으니까 말이지」
슥, 안경을 누르면서.
「…레이」
 
…………
 
여기서 잠시 과거로 돌아가, 다음날 분량의 커피를 준비해두는 것이 자기 전 습관이 되어 있었다.
겐도씨가 사 준, 물로 우리는 식의 커피메이커는 업무용이라, 마음만 먹으면 한꺼번에 30인분을 추출할 수 있다. 하루치를 쳐도 30잔도 마시지 않으니, 물탱크를 한쪽만 넣어 사용하고 있지만.
드리퍼에 유리필터를 세트하고, 오늘 막 갈아온 커피콩을 꺼낸다. 새로 간 원두의 향은 각별하니, 기다릴 수가 없다.
겉봉을 뜯고 커피향을 가슴 가득히 채운. 순간, 숨이 막혔다.
눋는 냄새가 목 안쪽을 자극해, 개수대에 달려가 위의 내용물을 게워냈다.

자기 토사물 냄새에 다시 자극되어, 더 이상 토할 것이 남지 않을 때까지 구토를 거듭했다.
그래도 아직 토기가 모자란지, 위장이 스스로를 짜내고 있었다.
바짝바짝 올라오는 통증에 눈물이 맺혔다.

 ……
개수대를 씻어내리고, 입을 헹구었다.
이 감각은 어머니의 기억에 있었기에,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보았다.
지난 달 달거리가 왔던 것이 1월 중순께. 신지를 낳은 이후로 28일 주기로 안정되었던 이 몸인데, 벌써 3주나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 때문에 무리를 하고 있을 때라던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던가, 한 번 정도는 넘어가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건…
 
이 태내에 깃든 새로운 생명.
이 아이가 아야나미도, 태어나지 못한 여동생도 아닌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 낳아주고 싶었으니까, 버스컨트롤 같은 것 생각해 본 적 없다.
당연히 각오하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 모든 재난 가운데 최초이고, 뿐만 아니라 가장 엄청난 것 ――
…이 출산이라고 꼬집은 희대의 냉소가가 있었지만, 과연 이 말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태어나는 자인가, 낳는 자인가, 아니면 낳게 만든 자인가?
 

****
 

이미 의외도 뭣도 아니었지만, 겐도씨는 기뻐해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 준다. 그런 경험을 나는 해본 적 없지만, 남자에게는 그것이 최대한의 보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뻐해준 것이다.
그 기분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기억을 잃고 한 번 남이나 다름없게 되었던 상대가 다시 자신을 받아준 것이다. 그것도 결정적인 형태로. 겐도씨의 마음에도 좋은 변화가 깃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내 결의가 모자랐기에 불필요한 방황을 거쳤음을 감안하면, 죄책감으로 마음이 아파온다.
 
출산에 불안감이 없다. 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몸은 경험자의 몸이고, 그 기억도 있다.
게다가 어머니가 신지를 낳았을 때는 라마즈법이었다는 것이 한층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현재 주류가 된 소프롤로지sophrology는 라마즈법에 비해 훨씬 쉽게 출산한다고 하니까.
어머니의 기억을 뒤져보면, 라마즈법이 견디기 출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진통촉진제를 투여하며, 장시간에 걸친 진통을 참아가며 출산. 전력으로 배에 힘을 준 결과 전신근육툥으로 기진맥진. 회음절개부를 꿰맨 데가 아파서 도너츠 방석을 써야 하고. 걷는 것도 곤란한데 모자별실이라, 자기가 낳은 아이를 만나러 필사적으로 신생아실까지 걸어갔던 것이다.
기억일 뿐, 그 때의 고통이 재현된 것도 아닌데, 왠지 몸을 떨어 버렸다.
모친교실에서 알게 된 경산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무튼 아이가 태어나면 고통은 순식간에 잊혀진다고 하니까, 이 몸의 특수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소프롤로지는 출산 중에 릴렉스할 수 있는 정신력을 기르는 것으로 그 고통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요가나 참선을 도입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 사전에 분만대에서 리허설을 하기도 한다. 배운다기보다 익숙해진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까.
뜻밖이었지만, 저번 세계에서 정신오염사도에게 당했을 때 떠올랐던, 태어났을 때의 기억이 도움이 되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에서는 아기가 어떤 상태로 태어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기억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좋은 선생을 만나게 된 것도 클 것이다.
모친교실 첫 시간, 강사의 첫 마디, 「출산이 처음인 분이라도, 여성이라면 산통의 아픔을 이미 알고 있을테니 괜찮아요」라는 것이었다.
「생리통과 같은 겁니다」
생리통이란 불필요해진 자궁내막을 제거하기 위해 자궁이 수축하는 통증이다. 출산의 진통도 마찬가지. 아기를 내보내기 위해 자궁이 수축하는 통증이라는 것이었다.
「임신 중에는 생리가 없으니까, 그만큼이 10개월치 쌓인 아픔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이고 오랜만이구나, 그러면서요」
표표한 말투로 그렇게 이야기를 푸니, 참가자 일동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어느 경험자에게 물어도, 산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 미지에 대한 공포로 실제 이상의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이렇게 알고 있는 감각으로 치환해서 설명하니, 왠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 신기하다.
 
임신 중 곤란한 것은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된 것과, 자기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지 때에는 입덧이 심한 대신 정신상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출산은 매번이 다 다르다는 산과의의 말이 실감된다.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공평감이 덮쳐와, 몇 번이나 겐도씨에게 공연한 화풀이를 했다.
실컷 화풀이하고 기분이 풀리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이번에는 그 일로 인한 자기혐오가 찾아와 우울해져 버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위로받으면 분노가 치밀고, 내버려 두면 울음을 터뜨리니, 감당할 수 없었겠지.
마터니티 블루를 긍정적으로 뛰어넘자는 것도 소프롤로지의 일환인데, 어째서인지 그쪽에선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 7개월간 겐도씨는 온몸에 상처가 끊이지 않는 생활을 겪고 말았다. 소장의 위엄을 지켜주기 위해 얼굴은 피해준 것이 내게 남겨진 최소한의 이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つづく
2007.05.02 PUBLISHED
2021.10.10 TRANSLATED
2021.11.24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シンジのシンジによるシンジのための補完 NC 第拾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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