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메 제작회사 「가이낙스」의 사장이 준강제추행 용의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에 관하여 『에반게리온』의 이름을 거론하는 보도가 많이 있으며, 이에 대하여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해서 이번에 새삼스럽지만 안노 감독의 특별기고를 연재하게 되었다. 제1회에서는 지금까지의 가이낙스와의 관계, 서로 갈라질 때까지의 경위 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가이낙스」의 사건 보도에 대하여
체포당한 사람은 『에바』와 전혀 무관계
전혀 면식도 없고 경력도 모르는 인물이, 제가 예전에 재적하고 있던 애니 제작사 「가이낙스」의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형사사건 피의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온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앞서 피해를 입으신 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설립에 참여하여 오랫동안 제작의 현장으로 삼고, 한때 이사도 맡았던 가이낙스라는 회사가 이런 식으로 보도되기에 이른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가이낙스는 극장판 애니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를 제작할 목적으로 1984년에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저는 그 당시 작품지상주의를 내세웠고, 경영과 창작활동은 이율배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원으로서 재적하면서도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 형태로, 우리들의 작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였습니다.
당시의 가이낙스는 작품의 퀄리티를 중시하는, 우리들 제작자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에서 이상적인 스튜디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코스트 관리능력이 부족했던 것도 같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중시, 현장 중시의 체제가 설립 당초부터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줄타기 채산으로 제작을 계속하던 중, 1995년에 저를 비롯한 사람들이 가이낙스에서 제작한 텔레비전 애니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히트하였습니다.
전에 없던 큰 돈이 들어오고, 회사는 전례없던 이익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가이낙스는 밸런스가 무너져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 20여년 후에 「대표이사가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되는 회사」가 되어 버린 것이라 생각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에반게리온』의 이름을 거론한 언론보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굳이 유명한 작품과 연관지어 주목을 끌고자 하는 언론매체의 심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체포당한 인물은 불과 몇년 전에 가이낙스에 들어온 인물로, 『에반게리온』에는 전혀 관여한 바 없습니다.
더구나 현재의 가이낙스에는 『에반게리온』 제작에 관계했던 인간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번의 언론보도 자세에 대하여
제작자들을 대표해서 강하게 항의한다
현재 『에반게리온』을 제작하고 있는 것은,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주식회사 카라」입니다.
「에바 제작회사 사장 체포」라는 제목이면, 체포당한 것이 저라고 해석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러한 보도는, 마치 이 사건이 『에반게리온』과 관게된 것과 같은 오해를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예전에 가이낙스가 에바를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니 거짓말이 아니다」는 식의 오도를 노리는, 그러한 보도 자세에는 제작자들을 대표하여 강하게 항의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이미 결정된 『에반게리온』 관련 기획들이 철회되는 등,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가 나오고 있다는 보고가 현장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저는 가능한 침묵을 지켜 왔습니다.
그랬지만, 지금까지 애매한 정보를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20년 전에 제작된 작품을 아직도 지금의 가이낙스와 관련짓는 보도가 나오게 되고, 이와 같은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저에게는 카라의 대표로서, 『에반게리온』의 원작자이자 감독으로서, 작품과 스태프를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가이낙스」나 『에반게리온』의 이름을 악용하는 인간이 나오지 않기를, 거기에 휘말리는 사람들이나 조직, 행정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제가 가이낙스를 떠난 경위, 새로 시작한 회사 카라와 가이낙스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관계를 제대로 기록해 두고자 합니다.
「가이낙스」를 제작장소로 삼은 것은
「옛 보금자리에 도리 정도는 다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저는 원래 「가이낙스」 아닌 다른 제작사에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메인 스폰서가 되어 제작위원회를 만들어 준 킹레코드의 분도 그렇게 하기를 요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옛 보금자리에 도리 정도는 다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당시 사장이었던 사와무라 타케시(澤村武伺)씨에게 이야기했더니, 「우리 쪽에서 만들었으면 한다」는 회답이 있어서, 저는 가이낙스를 『에반게리온』의 제작장소로 하였습니다.
다만, 당시의 가이낙스의 제작능력으로는 한 회사에서 TV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 너무 무리였기 때문에, 다른 애니 회사에도 협력을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행히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히트하였고, 한때 회사를 접는다 어쩐다 지경까지 와 있던 가이낙스에 돈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돈이 들어온다」고는 해도, 가이낙스는 경영진 판단으로 제작(위원회) 출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초에는 『에바』라는 영상 작품으로부터 받은 리턴은 저의 각본 인세와 감독 인세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킹레코드의 선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최초 수입은 회사와 상담하여, 낮은 개런티로 무리하게 작업해주었던 메인 스태프들에게 분배하여 환원했습니다.
해서, 가이낙스 자체는 『에반게리온』 관련 CD롬이나 PC게임 소프트웨어로 큰 이익을 냈다고 합디다. 「합디다」라고 표현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그 당시 저는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서 그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바』라는 작품으로써 회사에는 예기치 못했던 큰 돈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닥치는 대로 「낭비」가 상시화
고액 탈세사건도 발생
가이낙스라는 회사 전체에 사업계획도 없고 코스트도 무시하는 닥치는 대로의 「낭비」가 상시화되어 버린 것이 이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1997년에는 『에바』 제작위원회의 호의로, 상품화 창구를 가이낙스로 옮기고 수익배분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에바』로 인한 가이낙스의 수입은 한층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많은 돈과 사원을 투입하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미궁에 빠져 손실만 남은 기획과 사업이 아주 많았습니다. 경영진이나 담당책임자는 몇 번이나 실패해도 반성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돈이 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작품 제작에서 가장 노고가 많았던 스태프들에게 환원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타 부서에서 『에바』의 이름을 사용해서 스스로 돈을 벌고 그 돈을 스스로에게 쓰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수익을 상회하는 낭비가 격심했고, 『에바』 덕분에 수익이 올랐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옆에 놓고 『에바』의 이용을 계속하는 경영으로 회사가 시프트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에바』 방송 이후 게임이나 관련 상품으로 이익이 급격히 커진 가이낙스에서는, 1999년 사와무라 사장(당시)이 고액 탈세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저도 사원이자 감독이었기 때문인지, 『에바』를 방영한 테레비동경에 불려가서 사죄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전혀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서는 사후에 들은 것밖에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탈세사건으로 사와무라 사장이 퇴임한 후, 또 한 명의 대표이사였던 야마가 (히로유키)가 사장을 이어받습니다. 그 야마가 사장(당시)로부터 직접 「아무래도 안노의 이름이 이사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신용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름만이라도 좋으니 임원을 해 달라」는 말을 들어서, 「경영에 흥미도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이름만 걸어놓는 거라면 뭐 괜찮겠지」 하여 이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에바』의 신통력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방만경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경영이 기울어서 「다음달은 쇼트한다」는 말을 매달 듣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그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지경이 되고 나서야 저도 이사다운 일을 해보고자 사내 상황을 서류나 숫자로 확인하였습니다만, 그 내용에 대경실색하였습니다.
예컨대, 급여에 큰 편중이 있었고, 거의 일을 하지 않는 인물들에게 급여가 계속 지급되고 있었습니다. 실적을 올리고 있지도 않은 일부 사원들에게 『에바』에 진력한 스태프들보다 훨씬 높은 급료가 지불되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재적 중에도, 퇴직 이후에도, 일관되게 급여 체계나 사내 시스템의 개선을 경영진에게 진언하였습니다만, 거의 들어준 것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현장으로
「가이낙스」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몇 번이나 위기에 처한 가이낙스의 경영은, 거래처인 대기업 2사로부터의 증자와 『에바』 파칭코화 수입으로 2004년에 회복됩니다. 그리고 흑자로 전환되자 다시 낭비벽이 나옵니다. 경영진은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 사업을 시작하고, 무리해서 계속 중인 사업을 동결하지도 않고 추진하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제 의견은 사내회의에 올라가지도 않으니 이사를 계속하는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되던 무렵, 제 작품으로서 독자적으로 진행하던 오리지널 기획을 동결하고, 『에반게리온』을 다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오리지널 기획을 해 봤자 『에바』의 아류밖에 되지 못하니, 그렇다면 다시금 『에반게리온』을 극장판으로 만드는 편이 스트레이트하고, 정체되어 있는 애니 업계를 위해서도, 저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 현장으로 저는 「가이낙스」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작과 같은 스튜디오에서는 새로운 공기가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 당시 가이낙스에서는 별도의 TV 시리즈가 기획되고 있었다는 점, 제가 스튜디오에 계속 있으면 차세대 스태프들이 나서지 못하고 사양할 것이라는 점 등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를 관리하고 스태프, 사원에 대한 복리후생이나, 작품이 잘 되었을 때 공로자에 대한 환원을 제대로 실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 자신의 생각을 직접 반영하고 책임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회사로서 「주식회사 카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설립 당초에는 저와 조수 두 명 뿐인 작은 사무소였습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는 다른 애니 스튜디오에 세들어 제작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도움이 있어서, 그 흐름대로 제작스튜디오를 가진 영상제작회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2006년 일이었습니다.
카라 설립 전에 이사는 사임
2007년에는 일반사원으로서도 퇴직
가이낙스를 떠날 때는, 도리상 카라 설립 전에 이사를 사임했습니다. 야마가 사장(당시)에게 「인연은 남기고 싶으니 사원으로서는 남아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들어 그 때는 일반사원으로서 이름만 남겼습니다만, 2007년에는 남아 있을 의미도 없어져서 일반사원으로서도 퇴직하였습니다.
제가 가이낙스 바깥에서 『에반게리온』을 만드는 것은, 「에바는 안노의 것이니까」라고 하여 즉석에서 인정받았습니다. 『에반게리온』의 원작자가 저라는 것도 명확히 하고, 상품화 로열티의 수익배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논의로 결정하였습니다.
『에바』의 판권 관리와 상품화 창구는 그대로 가이낙스에 남겼습니다.
당시의 카라에는 일손이 부족했고, 당시의 가이낙스의 판권담당자는 작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이낙스에도 상응하는 로열티 배분과 수수료가 들어가니, 서로 윈윈하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뒤, 카라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를 자사출자로 제작・배급하였습니다. 두 번째 작품을 제작 중인 2008년경, 회사 간의 관계도 변화했습니다. 가이낙스 사내의 방침 전환 등이 있어서, 『에바』 수익 배분에서 가이낙스 측의 비율은 줄어갔습니다. 그런데도 『에바』로 버는 돈은 창구인 가이낙스에 계속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부터 카라에 대한 로열티 지불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분할지급 상담이 있었습니다. 가이낙스의 경영이 다시 악화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마가 사장(당시)과 타케다 (야스히로) 이사가 직접 방문해와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참고로, 가이낙스가 카라에 지불하는 로열티는 제가 중심이 되어 제작한 『에바』에 관한 것 뿐이었습니다. 제가 감독한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대해서는 인세도 배분도 인정받은 바 없고, 가이낙스 아닌 제작사에서 감독했던 『러브 앤 팝』의 로열티는 지금도 가이낙스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이 되어, 이번에는 융자를 부탁받았습니다.
「이제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듣고
황급히 1억 엔을 융통해 주었다
아직 큰 금액이 변제되지 않은 상태인데, 타케다씨가 「앞으로 3일 안에 1억 엔만 빌러달라」고 갑자기 간청하였습니다. 그 돈이 없으면 「이제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기에, 황급히 1억 엔을 마련했습니다.
경영 상태가 그 지경인 회사에 『에바』의 권리를 계속 맡겨두는 것에 위험을 느껴서, 가이낙스에 맡기고 있던 『에반게리온』 상품화 창구나 로열티 분배 업무 이양을 1년 앞당기는 것을 조건으로 빌려주었습니다.
원래부터 단계적으로 카라에 넘겨주기로 했던 것인데, 가이낙스 측의 희망으로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조건 이외에는, 계획대로 변제만 된다면 무이자・무담보인 것으로 융자해 주었습니다.
그런 조건으로 회사 돈을 빌려주다니, 저 스스로도 「경영자로서 뭐냐」 싶은 어처구니 없는 판단입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고, 애니메이션 업계의 일원으로서 어려운 회사를 지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해 준 융자였습니다. 오랫동안 신세를 진 회사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경영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 같아서, 2014년에는 카라의 주요 스태프들의 기여가 큰 『톱을 노려라!』, 『톱을 노려라 2!』, 『프리크리』의 원작권 매입을 야마가 사장(당시)과 타케다 이사에게 신청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있는 가이낙스에서 신작 제작은 어려울 것이고, 작품의 장래도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야마가 사장도 기꺼이 그 이야기를 진행시켜서, 매입 조건도 확정되어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당초의 6배에 달하는 고액을 매입가로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납득할 만한 가격 인상의 이유 설명도 없이, 이쪽에서 곤혹스러워하는 사이 이야기가 유아무야되어, 2015년에는 세 작품 모두 우리 모르게 다른 회사에 권리가 매각되어 있었습니다. 그해 5월에 가이낙스에 은행이 개입하여 대규모 인원정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그들은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해서 더 높은 값에 사는 회사에 팔았던 것입니다. 작품의 전개나 제작스태프의 마음보다 금액을 우선시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관여하지 않은 작품들도 2014년에 원작권이 다른 회사에 매각되었습니다.
작품 권리의 산일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경영상태의 파악이 필요하다고 느껴 가이낙스에 경영상황의 설명과 변제계획의 제시를 몇 번이나 요구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불유예나 경영지원도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경영상황에 문제가 없으며, 예정대로 변제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가이낙스로부터의
지불과 변제가 돌연히 밀렸다
그런 상황 중이었던 2015년 11월에, 「주식회사 후쿠시마 가이낙스 (현재의 주식회사 가이나)」가 저희들 몰래 설립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원래 가이낙스의 완전자회사였으나, 어느새 아사오 (요시노리) 사장에게 모든 주식이 양도되어, 자본관계가 해소된 별도 회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에바』와 전혀 무관계한, 가이낙스라는 이름만 씌운 별도 회사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가이낙스는 사사건건 주위 사람들에게 『에바』와 관계 있는 듯이 보이는 행동거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가이낙스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후쿠시마 가이낙스(당시)는 「가이낙스와는 자본관계가 없고, 완전히 독립운영하고 있다」고 코멘트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회사로부터 독립했을 때 가이낙스의 간판을 내리는 것이 맞지 않았겠냐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지금은 한층 더 무관계한 기업의 산하에 들어가서 「주식회사 가이나」라는 미묘한 사명으로 변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4월, 가이낙스로부터의 지불과 변제가 돌연히 밀렸습니다. 설명을 요구해도 저쪽에서 응하는 일이 없었고, 야마가 사장(당시)에게 제가 직접 메일을 해도, 전화를 해도, 일절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일본 각지에 가이낙스의 이름을 내건 회사들이 늘어갑니다.
후쿠시마 가이낙스가 설립되기 얼마 전인 2014년 5월에는 「요나고 가이낙스」가 톳토리현에 설립되었습니다. 2016년 4월에는 「주식회사 GAINAX WEST」가 효고현에, 동년 7월에는 「주식회사 가이낙스 니이가타」가 니이가타현에, 저희들에게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설립되었습니다.
참고로, 언론보도와 관계자들의 이야기로만 알 수 있었던 것인데, GAINAX WEST에 이사로 들어가 있던 인물이 2017년에 자기가 프로듀스한 코베시의 애니 관련 시설에서 문제를 일으켜 거래처와 행정에 다대한 민폐를 끼친 끝에, 입주해 있던 그 애니 관련 시설 자체가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가이낙스의 이름을 사용해 활동하며 이와 같은 사태를 일으키는 인물을 끌어들인 것은 당시의 가이낙스 관계자들인데, 문제 발각과 동시에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온
작품자료의 보전이 걱정이었다
당시 가이낙스 경영진이었던 사람들이 「가이낙스」 이름을 건 회사를 잇따라 설립하던 중, 정작 「가이낙스」(본사)는 외국 기업에 팔아먹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진상을 캐고 있는데, 그 가이낙스 매입을 고려 중이라는 외국 기업으로부터 우리 (카라) 쪽에 「가이낙스를 매수하면 안노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주나요?」라는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가이낙스로부터의 변제를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가이낙스에 남아 있는 작품의 권리나 제작자료가 저희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매각되어 산일할 위험이 높아져 왔습니다.
빌려준 돈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자주제작 시절부터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온 작품자료의 보존이 걱정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자료의 산일을 막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회사채권 가압류를 2016년 8월 1일에 신청하여 8월 26일에 집행됩니다. 당시의 가이낙스 경영진으로부터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도, 야마가 사장(당시)로부터의 연락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후, 가압류 집행 이후에도 카라의 채권과 관련된 변제계획 등이 제시되지 않아, 가이낙스에 맡겨진 귀중한 제작자료나 권리가 이 이상 산일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부득이 2016년 9월 9일에는 대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소송도 채권회수를 위한 수단으로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건이 표면화되지 않도록 가이낙스를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저쪽 경영진이 연락을 취하여 합의에 응했으면 내밀한 대화로 끝났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가이낙스가 재판에서 싸우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이것이 뉴스를 타고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재판 자체는 2017년 6월 23일, 당사 카라의 전면승소로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희들이 깊게 관여했던 복수의 과거 작품들의 중요 자료가 대량으로 후쿠시마 가이낙스(현 주식회사 가이나)에 매각되었던 것이 밝혀집니다. 이것도 작품 관계 각사(各社)나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 몰래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이 자료들은 사람과 품과 시간과 돈을 들여 카라가 입수하여, 작품 관계 각사의 양해를 얻어 지금은 「ATAC」(특정비영리활동법인 아니메특촬아카이브기구)의 관리 하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형사사건 피의자가 된 인물을
사장으로 취임시킨 것이 당시 경영진
2016년 9월 30일에는, 가이낙스의 애니메이션 제작부문 스태프들이 전원 해고되고, 그 직후에 설립된 「후쿠시마 가이낙스 동경스튜디오」(현 스튜디오 가이나)로 이적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가이낙스를 지원해온 의미가 없어지는 사태였습니다. 그해 11월에는 「가이낙스 경도」가 경도부에 설립됩니다.
가이낙스가 카라에의 변제를 미루어 온 지 벌써 3년 반 이상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당시의 사장이나 경영진으로부터는 연락도 설명도 사죄도 없습니다.
그리고 2019년 10월에, 전혀 면식도 없고 경력도 모르는 인물이 「가이낙스」의 최대주주로서 사장이 되었고, 지난 12월에 형사사건 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인물을 가이낙스에 끌어들여 주식까지 양도하고 사장에 취임시킨 것은 다름아닌 당시 경영진입니다.
회사 경영 뿐만이 아니라, 이런 사태가 되도록 당시 경영자들은 제게도 사원들에게도 스태프들에게도 작품에도 사회에도 상응하는 책임을 질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채권회사의 경영자로서가 아니라, 대학 시절부터의 친구로서 유감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에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감독・프로듀서 안노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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