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트업된 카스퍼의 본체 속. 몸부림치듯 기어 다니고 있는 파이프들은 여전히 보일러실에라도 들어온 것 같아서, 이것이 세계 굴지의 슈퍼컴퓨터의 내부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마기 정기검진. 86회차인 이번 검진은 제1사분기 최종검진이기도 하여, 마기의 자가진단 뿐 아니라 각 부품의 목시검사도 겸하는 것이다.
실제 작업은 기술부 사람들과 마기 오퍼레이터가 하고 있지만, 감독으로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발타자르에는 나오코씨가, 멜키오르에는 리츠코씨가 붙어 있다. 이 감독역은 로테이션을 짜두어서, 이번에는 내가 카스퍼 담당이었다.
휴대단말기에 표시된 진행상황을 노려보며, 체크항목을 채운다.
【앉지마! 휜다】라고 쓰여 있는 파이프가 눈에 들어와, 무심코 쓴웃음. 빼곡하게 붙은 메모용지들 뒷면에 코드가 빽빽한 것도 여전했다.
그러고 보니 싶어 탐색한 시야 가운데, 【이카리 바보새끼!】라고 휘갈긴 낙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걸 누가 쓴 것인지도 알 수 없지만, 이번 세계에서는 그만큼 원망을 사지 않은 것일지도.
…아니면, 앞으로 쓰여지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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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력 20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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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본인이 요청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왕따 대책 같은 것은 없었다. 유효한 케어 따위 생각해내지 못한 채 한 해를 넘겨 버렸다.
부모라는 존재가 이렇게 무력한 줄은, 자신이 아이였을 때는 몰랐다. 훨씬 절대적인 존재라고만 느껴졌었는데.
마기의 보고에 따르면, 겨울방학이 지나도 상황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신지가 털어놓지 못하는 것은 역시 부모로서 내가 미덥지 못하기 때문일까….
거실에서는 TV게임을 즐기는 신지의 등에 기대어 레이가 그림책을 펼치고 있다.
「…사람 보다도 커 다란 고양이의 배에 누우어서 책 을 읽을 정도로」
「누워서 책을 읽을 정도로, 야」
「…누워서 책을 읽을 정도로 기 문 좋 은 일 은 없습 니다」
…기문 좋은? 라고 중얼거리는 레이에게, 기분 좋은, 이야. 라고 신지가 대답해 주고 있다.
남매로서 사이좋게 지내는 둘이의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어, 다이닝을 나섰다. 그렇다고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라, 세탁공간으로 도망쳤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코 찬물로 세수를 한다.
타올로 닦으며, 얼굴을 들었다. 최근 몇 년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거울 속 자기 모습.
…진짜 모친이었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을까?
두려움과 기대로, 거울 속 허상을 바라본다.
어머니가 거기 응해주었으면 하는 기대.
죽는 것을 바라만 본 죄를 추궁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
그 죄를 인정하는 것은 두렵지만, 그것이 신지를 위할 수 있다면…, 응해 주셨으면 좋겠다.
…
……
…?
들여다본 거울 속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다. …아니, 다르다. 그동안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주름살 하나 없는, 얼굴. 마지막으로 제대로 거울을 보았을 때와 조금도 변함 없는… 모습.
무심코 손을 갖다 대 확인한다. 팽팽한 뺨은 너무나 싱싱해, 도저히 40세를 앞둔 사람의 피부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
이 몸…, 나이를 먹지 않아?
깨달은 사실이 더럭 두려워져, 거울로부터 멀어진다. 금방 찬장에 부딪혀 더 이상 멀어질 수 없었지만.
도망칠 곳은 얼마든지 있지만, 섣불리 도망치면 거울 속의 내용이 남아 버릴 것 같아, 두렵다. 시선을 돌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젊은 채 그대로인, 어머니의 모습.
…
그렇게 보일 뿐이야.
…그렇게 보일 뿐이야.
…그렇게 보일 뿐이야.
자기를 타이르고자 하는 말이, 공허하다.
카츠라기 미사토였던 시절에는 제대로 나이를 먹었다. 눈가에 생기기 시작한 잔주름이라던지, 나름대로 신경쓰고 그랬다.
어째서 이 몸은, 나이를 먹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일까.
…
혹시…
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의 그대로 더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이 모습은, 어머니의 규탄이 아닐까?
이 몸을 빼앗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저주가 아닐까?
지난 10년간, 거울 너머로 계속 원망의 말을 던져온 것이 아니었을까?
…
무릎에서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는다.
시야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사라지고, 안도한 나머지 눈물샘이 풀린다.
한숨이 길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
「어머니?」
내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찾아다니는 듯한 신지의 목소리.
안 된다. 타올을 움켜뒤고 눈가를 훔쳤다.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은 아이에게 보일 수 없다.
…
「어머니, 왜 그래?」
「신지?」
방금 알아차렸다는 듯이 연기하며, 적당한 이유를 꾸며낸다.
「거기에 바퀴벌레가 있었어. 어머니, 깜짝 놀랐네」
엣 어디? 라며 찾는 모양새. 자연히 나를 감싸는 위치로 온다.
「도망가고 없나 봐」
돌아본 신지를, 낚아채듯 뜰어안았다.
「어머니? 괜찮아. 바퀴벌레 이제 없어」
바둥바둥 몸부림치는 것은, 놀람과 쑥스러움 때문일 터.
문득 기척이 느껴져 옆을 본다. 신지의 뒤를 쫓아온 듯한 레이의 모습. 왼팔을 열어 주니, 아무 말도 없이 품 안으로 들어와 준다.
…
조심조심 올려다본, 거울. 이 각도에서는 천장밖에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무엇을 겁내는 것일까. 자신은 언제나, 갚지 못할 죄를 등에 짊어지고 있지 않았나.
…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아이들을 지킬 거야.
아무리 추궁해 와도, 멈춰서지 않을 거야. 무엇을 적으로 돌린다 해도, 망설이지 않을 거야.
품 속의 온기를 확인하듯이, 팔에 힘을 실었다.
가슴 속에 용솟음치는 사랑스러움이, 모든 것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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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데도 노트북 퍼스컴을 켜놓고 있다.
캘린더에 상관 없이 일하는 직원이 부지기수였고, 그런 직원들이 기다리는 결재사항도 많다. 대개 겐도씨나 후유츠키 부사령이 대응하고 있지만,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는 항상 산더미였다.
전자우편 교환 및 결재 등, 틈틈이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으니까.
케이크 밑바탕용 스펀지가 다 구워지기까지 시간이 있다. 패스워드를 입력해 서스펜드를 해제한다.
아오바씨로부터 콘솔의 개장을 요망하는 신청서. 인터폰을 4개로 증설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귀에는 자신이 있다고 했던가. 발령소 비품에 대해서는 내게도 권한이 있으니, 재가한다.
이어서, 초호기 정식 개장의 개시. 인테리어 최종 레이아웃 등의 기술부 E계획반, 마야씨로부터의 보고. 이미 리츠코씨의 재가를 받은 서류의 사도대책실 란에 전자서명. 올해 안으로 초호기는 낯익은 모습이 될 것이다.
제3신동경시의 요격시스템 구축 진척도 보고는 휴가씨. 놀랍게도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각종 테스트의 실행방안까지 제출되어 있다. 휴가씨다운 치밀하고 낭비 없는 제안이지만, 그런 만큼 요격시스템에만 쓰기에는 아깝다. 사령부와 제휴해서 제3신동경시와 지오프론트의 기능테스트의 일환으로 붙여 놓도록 지시한다. 다행히 겐도씨도 부사령도 아직 훑어보지 않은 것 같으니, 아오바씨가 열람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것만으로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열어 본 품의서를 읽고 눈살이 찌푸려진다. 제목에 【 국지전용 D형장비 및 내열 플러그 수트 개발의 필요성 】이라고 쓰여져 있었기 때문. 기표자는 물론 리츠코씨.
극한환경에서 사도가 나타날 가능성을 시사해 두었기에, 당연한 대비책으로서 제안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해하겠지만, 쓸데없는 장비의 제작은 역시 피하고 싶다.
허가 서명들이 늘어난 가운데, 이것만 기각에 체크해서 전자서명. 이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드는 제안이라면, 한 사람만 반대해도 즉각 리젝트시킬 수 있다. 되도록 조용히 어둠에 묻어버리고 싶어서, 굳이 이유는 달아놓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리츠코씨가 내게 물어보겠지. 그 때 설득하면 된다.
회의라인에 되돌아가도록, 결재완료 폴더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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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전부리는 우엉 초콜릿 케이크. 저번 토마토 쇼트케이크와 마찬가지로 레시피는 추측의 산물이지만.
레이의 뺨에 묻은 초코크림을 신지가 닦아주고 있다. 그 자연스러운 동작에, 오라비 된 연식이 드러난다.
만일 자신에게 레이 같은 누이동생이 있었다고 해서, 이렇게 바지런하게 돌볼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자, 즉각 부정한다.
신지는, 모든 의미에서 과거의 자신과 다르다. 상냥하고, 굳세며, 눈치도 빠르다.
아까도 자연스럽게 나를 걱정하며, 실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감싸왔다.
전생의 자신과 같은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감각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지금도 또, 슬픔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웃는 얼굴로, 레이의 컵에 주스를 채워주고 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왕따에 괴로워하며 고뇌하느라, 여동생의 뒷바라지 따위 신경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나 다른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생각이 미쳤다. 신지의 내면에.
자신을 기준으로 괴로우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다른 신지가 똑같이 느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착오가 아닐까?
따돌림이란 마음의 문제다.
따돌림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하는 쪽의 마음가짐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 심각성이 달라진다.
자신과 비교해서, 괴로움을 감출 줄 아는 신지는 굳세고 의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괴로움 그 자체를 견딜 수 있는 정신력을, 신지는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봤자 아직 소학생이다. 괴로움을 숨길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노트북 퍼스컴을 끌어당겨, 전자우편 클라이언트를 연다.
나오코씨에게 보내는 전자우편의 서면은 간단하게, 【신지가 따돌림을 신경쓰지 않을 가능성은?】이라고만 쳤다.
계속 つづく
2007.06.25 PUBLISHED2021.10.25 TRANSLATED
2021.11.25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シンジのシンジによるシンジのための補完 NC 第廿伍話
“에바의 주박”(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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