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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오니론: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오니로서의 에반게리온

에바로 시작해서 호러만화, 원령공주, J호러, 양들의 침묵까지 종횡무진 꼬치구이 해보려다 중도에 포기하고 결론이 붕뜬 잡문

 회빙역행계 에바 팬픽의 최고 금자탑인 『신지³』 제십이화를 보면 에바 초호기의 모습을 「귀면鬼面」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사실 에반게리온이 메카물의 주인공 기체답지 않게 흉악하게 생겼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이루어진 바고, 그것이 사실 악마의 포지션인 에바의 정체를 암시하는 것이라는 해석들도 많이 있었다.

 안노가 1996년에 했던 인터뷰(오른쪽 gif의 발언의 출처이기도 한)를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 에바의 특이한 외모에 대한 것인데, 거기에 대한 안노의 대답도 “오니(鬼)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다.

On the unique appearance of the Evangelion Units...

ANNO: There is a monster in Japan called the oni, which has two horns sticking out of its head, and the overall image of the EVA is based on that. I wanted also to have an image that beneath the image of that robot monster is a human. It's not really a robot, but a giant human, so it's different from other robot mecha such as those in Gundam.

그러면서 「에바는 건담과 다르다」고 주절대면서 끝나는데, 정말로 에바는 건담과 다르다. 이소 미츠오가 강조했던 기계 ↔ 생체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다. 에바가 올라타고 있는 문화적 계보가 건담과는 다른 것이다. 에바는 건담이 아닌 마징가 계보에 올라타고 있는 메카고, 근래 들어 이것을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은 메카(?)가 바로 『진격의 거인』의 「거인」이다. 마징가도 고전이고 애니판이 유치해서 정겨운 것이지, 선입견 빼고 면상을 딱 보면 삐죽하게 뻗친 뿔, 상어이빨을 연상케 하는 입가리개가 에바 못지않게 흉악하게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뿔이 중요한데, 마징가~에바~진격쿄진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오니 그 자체의 뿔 난 도깨비 이미지와 가장 직접적으로 유사하기 떄문이다.

 그래서, 에바가 계승한 마징가의 모티브가 된 오니란 무엇인가? 잠깐 다른 장르로 눈을 돌려서, 호러만화계 대부인 히노 히데시의 내한 인터뷰의 한 대목을 먼저 보자.

―공포 만화의 매력은….

“일상을 부수는 파격의 미가 아닐까. 호러 만화에서 괴물, 귀신들은 사람들의 손에 죽는데 이는 소외된 사람들의 가련함, 슬픔과 연결된다. 인간 차별, 소외를 말하고 싶다. ‘조로쿠의 기묘한 병’의 경우 잔인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본질은 다르다. 한국 초등학생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주인공이 너무 불쌍해 책을 껴안고 잤다는 것이다. 이게 휴머니즘이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초등학생은 왜 울었을까? 사람들을 해치는 위험한 존재라서 퇴치당하는 괴물, 귀신, 도깨비, 오니 같은 것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가련함과 슬픔과 이어지는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민속에서 오니가 어떻게 해석되고 위치지어지는 존재인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문예평론가 바바 아키코는 오니를 다섯 가지 종류로 분류했다.
민속학적인 오니(オニ): 조상령(祖霊) 또는 땅의 영(地霊)
산악종교의 야마부시계 오니: 텐구 등.
불교계 오니: 사귀, 야차, 나찰.
인귀(人鬼)계 오니: 도적이나 흉악한 무법자.
원한이나 분노로 오니가 된 변신담 계열의 오니.
한자 귀(鬼)는 일본어 음독으로 키(キ)라 읽으며, 그 한자의 원래 뜻은 “죽은 사람의 넋”(人鬼)이다. 예컨대 굶주린 망자의 넋은 아귀(餓鬼)이며, 망자의 넋이 울부짖는 것을 귀곡(鬼哭)이라 한다. 현대 일본어에서도 “鬼” 라는 한자가 원래 뜻인 망자의 넋을 의미하는 용례가 남아 있다. 예로 해외에서 죽는 것을 “이국의 귀가 되었다”(異国の鬼となる)고 표현한다.

바바는 원래 사령을 의미하던 중국의 “귀”가 6세기 후반 일본에 수입되어 일본의 고유한 “오니”(オニ)와 혼합되면서 鬼라고 쓰고 오니라고 읽는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가타카나로 쓰는 오니(オニ)는 조상령이자 땅의 영으로, “눈이 하나”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는 애꾸눈이 신의 인표이며 그것을 가진 오니는 신의 권속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눈이 하나”가 산신의 모습이라는 설(고라이 시게루)도 있다. 외눈의 오니는 사령이라기보다 민족적인 신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일본서기』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악한 신”을 “사악한 오니모노(鬼もの)”라고 하고 있어서, 정체 모를 “카미”나 “모노”가 오니로서 관념화되고 있다. 설화의 흉포한 식인귀로서의 오니의 이미지는 “카미”, “모노”가 불교의 지옥귀, 괴수, 요괴 등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헤이안 시대의 도인(都人: 수도 거주민)이 어둠에 느꼈던 공포가 어떤 것인지 엿보인다.

한편 오카베 다카시는 오니란 안정된 “이쪽 세계”를 침범해오는 “이계의 존재”라고 한다. 오니의 이미지가 다양한 것은 사회나 시대에 따라 무엇이 이계인지 이미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법의 “경계” 밖을 “이계”로 본다면 조정에 공순하지 않는 백성이나 법을 어긴 반역자 같은 존재들이 오니라고 불렸고, 산속을 “이계”로 본다면 산에 살면서 대장장이 일 같은 직능을 갖춘 사람도 오니라고 불렸으며, 현실의 “이계”로서 환상을 정의할 경우 원령, 지옥의 나찰, 불교의 야차, 산 속의 요괴 등이 모두 오니가 되어 오니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진다고 한다.

헤이안 시대부터 중세에까지 형성된 설화들에 등장하는 오니는 원령의 화신,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이다. 수도인 헤이안쿄 서북쪽의 오에산에는 슈텐도지라는 오니의 두목(親分)이 있어 산속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이바라키도지를 비롯한 수많은 부하(子分)들을 통솔하고 있었다고 한다. 슈텐도지는 머리터럭이 붉고 뿔이 있으며, 수염과 머리카락, 눈썹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손발은 곰과 같아, 수도(京)에서 납치해온 젊은 여자의 인육을 매 끼니로 먹었다고 한다. 『이세모노가타리』 제6단에 여자와 야반도주하던 도중 오니를 만나 오니가 한입에 여자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위난을 당하는 것을 “오니 한 입”(일본어: 鬼一口)이라고 한다. 오카베 다카시는 이것을 전란・재해・기근 등의 사회불안 속에서 빈발하는 사망이나 행방불명을 “이계가 이 세상에 출현하는 현상”으로 해석한 것이며, 사람의 몸이 사라지는 리얼한 시연을 이 세상에 나타난 오니가 잡아가 버린 것으로 여겼다고 추측하고 있다. 오카베는 오니란 이계의 내방자이며, 사람을 저쪽 세계로 납치해가는 악마이며, 복을 남기고 떠나는 신(예: 일촌 법사나 혹부리 할아버지의 오니)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계와 환상의 영역으로 특정되는 지명으로 슈텐도지의 오에산이 저명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수도 바로 옆에 붙은 오에산이 수도에 있어 이계인 산이었기 때문이며, 평지인들에게 “이계”였던 산에 접한 지역에는 어디나 오니 전승이 많다.

고야마 사토코는 헤이안 시대에는 불교 경전의 귀, 모노노케나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사령으로서의 귀, 역병신으로서 등장하는 귀들 사이에 특별한 구분이 없이 커다란 신체, 외눈, 큰 입, 뿔, 붉은 샅바, 손발가락이 세 개 등의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불교 경전에 묘사된 귀의 도상의 영향이 큰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노노케로서의 오니의 경우 『산해경』 등 다른 서적의 도상의 영향을 받은 다른 계통의 도상도 존재하지만, 모두 당시 사람들이 공포를 느낀 도상의 이미지가 겹쳐진 것이라는 점은 공통된다.

한국어 위키피디아 「오니 (귀신)」 항목에서 인용

 요컨대 이런 것이다. 안전하다고 규정된 「경계」가 있다. 그리고 그 경계 바깥의 영역은 「이계」이며, 위험한 곳이다. 사후세계라던가, 무법지대라던가, 으슥한 산속이라던가.

 특히 산이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정의되는 것이 재미있는데, 일본 민속학의 태두인 야나기타 쿠니오가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함경도급 낙후지역인 동북지방의 산촌에 보존된 괴담들을 채록해 정리한 『토오노 모노가타리』에서 “원컨대 이 이야기로써 평지인들을 전율케 하라”고 한 적이 있다. 이 토오노는, 달빠들이 아는 그 토오노와 한자마저 같다(遠野). 그리고 달빠 세계관에서 토오노 가문에 무엇의 피가 섞여 있는지도 달빠들은 알 것이다.

 고대 일본인들은 일상과 비일상을 철저히 나누어 사고했고, 일상을 「케(ケ)」, 경조사와 같은 비일상을 「하레(ハレ)」라 했다. 그런데 일상 가운데 돌연 예상치 못한 비일상이 발생하면 그것은 「케」가 말라죽은 상태, 즉 「케가레(ケ枯れ)」라고 해서 기피의 대상이었다. 이후 「케가」에 한자로 “오염(汚染)”할 때의 汚 자가 붙어서, 마치 한국에서 「부정 탄다」고 하듯이 죽음이나 질병 같은 꺼림칙한 비일상을 「케가레(汚れ)」라고 했다(*이상의 일본 민속 개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호러작가 배씨(梨さん)에게 제공받았습니다). 즉 경계 너머의 위험한 「저쪽 세계」, 「비일상의 세계」가 「이쪽 세계」로 침범해와서 사람을 「부정 태우는」 것이 일본적 공포의 근원인 것이며, 그 담지자로서 비일상의 거주자인 「오니」가 있는 것이다. 히노 히데시가 말한 “일상을 부순다” 함은 장난이 아닌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에바』와 동시기에 만들어진 일본 공포영화들도 거의 이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경계를 누가 지웠고 경계 밖에 실제로 있는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자연은 연속적이고, 모든 경계는 인위적이니까. 이계로 보이는 것은 사실 현세의 일부이고, 이계에 속한 도깨비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사람인 것이다.

 미나모토노 요리미츠가 퇴치한 츠치구모는 원래 거미 요괴가 아니라, 야마토 조정의 치천하대왕(천황의 전신)에게 공순하지 않은 지방호족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역시 요리미츠가 퇴치했다는 주탄동자도 그 실체는 교토 코앞의 오오에산에 산채를 세우고 조정을 위협하는 산적 오야붕이었을 것이다. 많은 오니담이 중앙 조정에서 파견한 용사에 의해 오니가 퇴치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이런 군소 독립세력들이 정리되고 야마토 조정의 인신지배가 확립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그 「선」을 규정하고 그은 것은 조정, 즉 「권력」이었다.

 그렇다면 선 밖의 존재들은 누구였을까?

 
중앙 권력의 정복 대상이었던 토호, 「오랑캐(蝦夷)」, 정착되지 않은 화전민, 부락민, 「죽음」과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돌림병 환자, 장애인들. 『원령공주』의 주인공 파티는 사실 백귀야행이었던 것이다!

 선 안의 존재(都人)의 안전을 위해 선 밖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들이 오니=귀신이라고 불린다. 귀신, 즉 망자는 「저 세상」 에 속한 존재이고, 저 세상의 존재인 오니=귀신이 경계를 넘어와 「이 세상」 사람을 끌고 가려는 것이 일본에서의 공포의 근원이라는 이야기는 좀 전에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 세상인 줄 알았던 것(적어도 물리적 죽음을 제외한 나머지)은 사실 이 세상의 일부였고, 귀신인 줄 알았던 것들도 사실 사람이었던 것이 아닌가? 「이 세상」 위에 인위적으로 그은 「경계」 밖에 살기에, 「이 세상」이 이미 「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말하자면 생지옥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다가올 때, 「귀신은 물러가라!」고 쫓아내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선 밖의 저 세상의 존재는 선을 넘어와 「케가레」 하지 말고, 즉 더럽게(리터럴리) 부정 태우지 말고, 병을 옮기지 말고, 저 세상에 머물러 있으라는 권력자의 언어이며, 미개한 고대인의 관념을 지배했던 주술적 세계관의 무의(巫醫)의 언어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귀신을 쫓아내지 말고 「음복」하여 하나가 되라는 통찰, “귀신이 너를 죽이려 들면 죽어라, 귀신이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네 몸에 받아들이고, 너도 귀신이 되어 하나가 되어라.” 그것이 앞서 인용한 인터뷰에서 히노 히데시가 말한 「호러의 휴머니즘」이다. 여기서 음복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기도 한데, 히노의 다른 작품 「백관괴물」 을 보면 「라쇼몽」(영화 말고 소설)스러운 막장시절에 형제자매들을 먹이기 위해 뚱땡이 잠만보가 오니 탈을 쓰고 도적질을 하다가, 겨울에 눈으로 고립되어 도적질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곰을 사냥해 왔다가 부상으로 죽으면서 곰고기가 떨어지면 자기 시체를 먹으라고 유언을 남긴다. 말 그대로 오니가 사람의 피와 살로 화한 것이다.

 간혹 한국인들 중에 양기가 지나쳐서 왜 일본 귀신은 원한 품을 대상에게만 핀포인트로 복수하지 않고 무작위로 마주치는 사람마다 동티(祟り[타타리])를 입히냐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와 같은 사항을 새김으로써 비로소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링』을 보면, 주인공 김규리 마츠시마 나나코는 영화 내내 저주를 풀겠다고 여기저기서 개삽질을 한다. 그리고 끝내 야마무라 사다코의 유골을 찾아내 장사지내줌으로써 사다코의 「원한」을 풀어주어 자기는 이제 살 수 있다, 즉 「선 이쪽 세계」에 계속 머무를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사실 「선 이쪽 사람」이 「선 저쪽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 말고는 원한을 완전히 풀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한 풀어준 줄 알고 희희낙락 하고 있던 김규리 전남편은 결말에서 냉큼 죽어버렸고, 저주의 테이프를 복사 뜸으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저주의 확대, 즉 「저 세상의 오니」가 「선 이쪽」으로 침범해오는 것에 일조하게 된 김규리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게 진짜 무서운 부분인데, 왜냐하면 「선 이쪽」의 도인(都人)들은 고작 장례식 정도로 「선 저쪽」의 사다코가 더는 넘어오지 않도록 달래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제사고 나발이고 아예 선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것 말고 「선 저쪽」을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는 거다. 이 씨발 좆같은 세상이 사람 죽여놓고 제삿상 차려주면 다야?

 그리고 대개의 도인들은 끽해야 헤이안쿄 성벽 밖의 소외된 존재들을 불쌍히 여길 뿐,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성벽이라는 선을 허물고 그 밖의 존재들과 진짜로 하나가 되기는 원하지 않는다. 『링』에서 김규리는 안와에 고인 물이 눈물을 연상케 하는 사다코의 두개골을 마치 어머니처럼 껴안는데, 그렇다고 김규리에게는 사다코의 엄마가 되어서 저승까지 따라가 줄 마음은 전혀 없다. 왜냐면 자기는 어디까지나 진짜 아들내미하고 같이 이 세상에서 계속 살기 위해 이 지랄염병을 하는 거니까.

 그러한 도인(都人), 도성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말로 고쳐 부른다면, 그것은 바로 부르주아지(bourgeoisie)가 된다.

 범주(계급, 성별, 국적 등등)에 따라 누구나 어떤 측면에서는 도인이고 오니가 된다는 이야기는 교차성의 쉰내가 나니까 굳이 하지 않겠지만, 원한을 품고 귀신=오니가 되는 것은 항상 상대적 약자라는 것을, 동시대의 다른 호러영화의 압도적 음침함에 비하면 귀신들의 유쾌한 반란에 가까운 『주온』 시리즈의 귀신들(여자, 아동, 노인)을 보면 또한 알 수 있다.

 히노 히데시의 이런 「호러의 휴머니즘」 기획은 예수적이기도 한 것인데, 예수의 사상이 혁신적이었던 것은 구약 시대의 주술적 금기가 그어놓은 「선」을 부정하고, 돌림병 환자의 집에 쳐 놓은 「금줄」 을 서슴없이 넘어가 그 너머의 비일상으로 「더럽혀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기 떄문. 물론 기독교의 실천은 그것을 일상과 비일상의 완전한 합일이라기보다 비일상에 더렵허진 존재를 정화하는 것에 그쳐 버렸지만 말이다.

 『링』 원작자의 다른 소설을 각색한 영화 『어두컴컴한 물 밑에서』는 내 최애 일본 영화다(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정발 제목을 『검은 물 밑에서』라고 번역한 것은 치명적인 오역이다!). 이 영화에서는 「선 이쪽」의 일상을 침범해오는 「선 저쪽」 존재를 천장에서 누수해 오는 물이라는 심상으로 미려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자식을 살리기 위해 엄마인 주인공이 취하는 액션 역시 오니=사다코의 엄마가 되는 시늉만 적당히 했던 『링』과는 전혀 달라진다.

 
『레미제라블』에서 이야기되는 바,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은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가? 그것은 바로 도성의 귀문방을 열고 오니를 맞아들임으로써, 죽고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히노 히데시의 「호러 휴머니즘」이고, 신약에서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에바』와는 어떻게 결부되는 것인가?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다. 어릴 적 양목장에 살다가, 도살당하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너무 가여워서 새끼양을 숨기던 가난한 백인 여자아이가, FBI 수사관이 되어 미치광이 살인마로부터 다른 여자를 구해내는 이야기. 에세이스트 현종희さん이 지적한 것과 같이, 서양에서 양은 그냥 예수다. 인류를 대신해 죽은 희생“양.” 동시에 사회에 희생당하는 약한 존재. 사회적 약자. 그런데 『양들의 침묵』을 그냥 “어렵게 살다 자수성가한 여자가 성차별까지 이겨내면서 다른 여자를 구해낸다” 이런 감동적인 페미니즘적 영웅담으로만 매끈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여러모로 거시기한 부분이 많다.

 일본적 도식에서 양들의 침묵을 다시 한번 보면 이것은 한미한 출신의 용사――예컨대 사카타노 킨토키――가 도성 밖의 오니를 잡아 죽이고, 오니에게 납치당한 「히메」를 구출해 오는 이야기다. 클라리스 스탈링이 구출해내는 여자애는 그냥 여자애가 아니라 국회의원 딸. 비유적이든 실질적이든 히메가 맞다. 그리고 여자가 되고 싶어서 여자들 가죽을 벗겨 뒤집어쓰는 버팔로 빌은 악마화=오니화된 트랜스젠더다. 작가와 영화 제작진은 버팔로 빌은 트랜스젠더가 아니고 그냥 미친새끼라고 우겼지만, 그는 아무리 봐도 만기발병성 트랜스젠더가 확실하다. 설사 작가진의 변명을 수용한다 할지라도 그럴 경우에는 역시 “미친 사람,” 즉 정신질환자를 오니화한 것이니 오십보백보 도찐개찐이다.

 결국 약자도 급이 있다. 적어도 성벽 안에는 사는 도시빈민과, 성 밖에 살며 아예 사람 취급을 못할 도깨비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하층민이 상층계급――도성의 지배자인 조정――에게 인정받는 것은 그 오니를 직접 퇴치하는 용사가 됨으로써 자신이 성벽 안에 속하는 존재임을 입증받는 것 되시겠다. "양들의 침묵" 소설판에서, 히메를 구출하고 출세한 클라리스 스탈링은 더이상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꿀잠을 잘 수 있게 된다. 도인으로 인정받은 그녀에게 더이상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닿지 않게 된 것.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배드엔딩이다.

 『진격의 거인』도 어찌 보면 이 고전적인 도식의 반복인데, 여기서는 오니인 줄만 알았던 거인의 정체가 사실 동포였고, 주인공 스스로가 거인화하면서 오니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는 것처럼 기출변형을 보여주었다. 그래놓고 성벽 안의 도인의 삶이 사실 감금사육당해온 거라고 안팎을 까뒤집어 버리면서 기묘한 정치성을 띠게 되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하나의 장문을 쓸 만한 주제이니 각설하자. 생체메카 속에 들어가서 조종하는 『진격거』의 거인은 사실 『에바』의 에반게리온에서 유래한 거고 (시조 위미르는 아야나미의 파쿠리고) 에반게리온은 마징가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이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롭게도, 하층계급 출신인 클라리스 스탈링, 근본이 식인 괴물인 『진격거』의 거인, 그리고 “흉악한 주인공 기체”로서 오니의 얼굴을 가진 마징가와 에바. 이것들은 모두 귀살의 수단이면서, 그 퇴치의 대상인 오니의 속성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 또는, 원래 오니인데, 도성의 존재들이 길들인 것이다. 또는, 에바의 경우처럼, 사람이 만든 것(人の造りしもの: 『에바』 TVA 7화 제목)이다. 오니에게 대응하기 위해, 사람이 포섭하거나 만들어낸 오니들인 것이다.

 일본에서 오니는 일상의 세계에 비일상을 끌고 오는 공포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힘”을 가진, 인간에 비하면 거의 전능한 존재로 표상된다. 오니로 표상당했던 현실의 존재들에 대하여 이것은 사실이다. 아이누는 타가성책 진수부가 세워진 724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저항했고, 도성 밖의 성난 백성들의 사생결단 봉기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갈아끼우는 혁명까지 되지는 못하더라도, 임금의 목 정도는 노력하면 갈아끼울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돌림병 환자 한 명이 도시를 몰살시킬 수도 있는 것이고. 하다못해 미치광이의 묻지마 살인 같은 아닌밤중의 홍두깨 같은 재난도 그 표적이 된 사람은 확실하게 죽는다. 성곽 안의 주류사회의 안온함에 젖은 「사람」에게는 없는 강대한 포텐셜이 「오니」에게는 있다. 그래서 사람 중에 오니스러운 존재나, 오니이지만 사람에 가까운(비주류성이 옅은) 존재가 오니를 잡는 「용사」가 된다. 미국 사회는 미치광이 살인자라는 오니를 잡으라고 클라리스 스탈링을 FBI 수사관이라는 오니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육성했다. 그는 20세기 미국의 사카타노 킨토키다.

 오니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 『에바』의 사도는 이 점에서 리터럴리 오니다. 그리고 「사람」의 조직인 게히른-네르프는 사도라는 오니를 잡기 위해 사도의 카피로서 인조 오니, 에바를 만들었다. 이 시대의 큰 스승 김민하 선생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게 있다. 마징가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비록 여기서 악마는 일본어로 아쿠마지만, 오니라고 읽어도 거의 무방하다. 그리고 “신”은, 기독교의 유일신(God) 같은 절대자가 아니다. 이 신은 일본 민속의 「카미(神)」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마징가는 카미도 오니도 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오니나 카미나 그게 그거기 때문이다. 뭔가 뒤가 구린 행방불명을 카미카쿠시라고 부르던, 오니카쿠시라고 부르던, 본질은 똑같은 거다. 오니(鬼, 귀)와 카미(神, 신)을 합치면 걍 귀신(鬼神)이 된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신사들을 보면, 동네 마츠리 같은 게 있어서 참배로 좌우에 포장마차가 들어서는 와중에도, 배전(돈 넣고 소원 비는 곳) 너머 신체가 모셔진 본당 쪽은 어두껌껌한 것을 볼 수 있다. 한번 확인해 봐라. 본당 쪽이 밝은 애니가 하나라도 있는지. 카미=신 역시 오니=악마=귀신과 마찬가지로 경계선 너머의 존재들이고, 그 경계를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이다.

 오니와 카미가 표리일체라면, 인조 오니들은 달리 말하면, 인조 카미, 즉 인조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러나 사람이 만든 힘. 그것이 오니이며 카미인 것이다.

 그런 것이 무엇이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것은 「권력」이다. 이 속성은 인조 오니들 가운데서도 클라리스 스탈링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에바를 만들고 운용하는 초법적 특무기관 네르프 역시 오니로서의 권력이라 할 수 있겠다. 앞서 오니와 도인의 경계인 도성 성벽을 세운 것이 권력이라고 말했는데, 이 권력과 그 권력은 다른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같은 것(즉 그 구분을 강요하는 권력 자체가 식인귀와 다름없는 인조 오니)일 수도 있다. 애초에 권력에게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복종하는 동의가 없다면 권력은 권력으로 기능할 수 없다. 그냥 도적떼나 마찬가지. 사람들이 모시기로 동의한 오니가 카미(神이라고 쓰면 “신”이고, 上이라고 쓰면 “높으신 분”)가 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리라.

 물론 권력만이 오니이자 카미인 것은 아니다. 다른 것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핵폭탄 역시 “사람이 만들었으나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힘”의 정의에 완벽히 들어맞는다. 역사상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은 『고지라』에서 시작하는 이 계보의 문화적 맥락이 매우 풍부하고, 『에바』 역시 그 맥락 위에 있는 작품이다. 다만 부족한 내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이것들 뿐이다. 어떤 것들이 인조 오니이며, 사람으로서 그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살면서 생각해 볼만한 질문이다.

결 론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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