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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1996년 6월 30일 일요일

안노 집담회

Anno's Roundtable Discussion


     이것은 『아니메리카』Animerica의 안노 히데아키에 대한 인터뷰 비슷한 것으로서, 1996년 아니메 엑스포를 비롯한 행사 자리들에서 다소 짧은 “집담회”가 진행되었다. 질의응답 형식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 및 질문을 제시하고(아마 패널들이 정리해서 제시한 듯함), 그에 대한 안노의 답변을 받는대로 지면에 인용했다. 때문에 내용을 정리해서 재발행하기가 다소 힘들었지만, 어쨌든 시도는 해 보았다. 출전은 『아니메리카』 vol.4 no.9이고, 허락 없이 무단 재발행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다시 허락 없이 무단 번역했다)



최근 행사장에서의 안노 히데아키(여기 인용된 행사는 아님).

    에반게리온의 특이한 생김새에 관해서…….

안노: 일본에는 오니라는 머리에 뿔이 두 개 난 괴물이 있습니다. 에바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그 오니에 기반해 있어요. 또 그 로봇 괴물의 이미지 아래에 사람이 있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에바는 로봇이 아니라 거대한 인간이니까, 건담 같은 다른 로봇 메카하고는 다른 겁니다.

    『건버스터』의 대체역사에서는 러시아가 최고 강대국인 건가요?

안노: 일본제국도 있어요. 서기 2000년에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함 떠서 일본이 하와이를 먹었다는 설정이네요. 거 미안하게 되었수다.

    『건버스터』의 마지막회를 흑백으로 연출한 것에 대해서…….

안노: 색상은 그 자체가 여분의 정보차원입니다. 블랙홀 폭탄을 묘사하고 싶은데 색이 있으면 우리가 의도한 스케일 감각을 방해했을 겁니다. 그전엔 아무도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었죠.

    『건버스터』와 『에반게리온』은 모두 배경이 2015년인데…….

안노: 제가 어릴 때 좋아했던 옛날 쇼에서 차용한 연도입니다. 『철완 아톰』의 배경이기도 하죠.

    좋아하는 미국 애니메이션은 있으신지…….

안노: 텍스 에이버리와 톰과 제리. 디즈니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감을 받은 일본 애니 제작자는…….

안노: 우리 스태프들 이외에는, 토미노 요시유키=상이 있네요. 토미노=상의 『기동전사 건담』과 『전설거신 이데온』은 제가 『우주전함 야마토』 다음으로 좋아하는 아니메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상이 『나우시카』를 만들 때 제가 거신병 작화를 했는데, 미야자키=상도 제 멘토이십니다.

    컴퓨터 게임에 관해서…….

안노: 개인적으로 게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은 애니메이션 제작용으로만 관심이 있어요.

    『에반게리온』 주인공은 얼마나 안노 자신을 투영한 것인지…….

안노: 신지는 제 성격의 반영입니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양면 다요. 『에반게리온』을 만들면서 저는 제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바보라는 것을 인정했죠.

    종교관에 대해서…….

안노: 저는 어떤 종류의 조직적 종교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가지론자라고 말해도 좋겠네요. 일본 전통종교에서는 만물에 카미(신령)가 깃들어 있다고 하는데, 제 개인적인 신앙은 그런 것에 가깝습니다.

    나디아나 레이가 그렇듯이 본인도 채식주의자이신지…….

안노: 두부 좋아해요. 육고기든 물고기든 육식은 그냥 싫습니다. 종교적 이유 같은 건 아니고 그냥 편식.

    애니메이션을 통한 자기표현에 대해서…….

 안노: 애니메이션은 사람들이 그것을 시청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제 테마에 혼란을 느끼거나, 또는 전체적인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므로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겠죠. 그런 사람들에게는 (연결이 이루어진 사람들에 비해) 내 작품의 의미가 적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의 시청자와 애니메이션 내부적으로 등장인물이 말하는 것 사이에 관계맺음이 있어야 합니다.

    『패트레이버 2』와 『공각기동대』를 어떻게 보셨는지…….

안노: 『공각기동대』는 아직 못 봤습니다. 『패트레이버』는 진짜 좋다고 생각해요. 극장판 2탄이 더 좋았습니다.

    『에반게리온』의 성공에 대해서…….

안노: 캐릭터 장사 하는 거 얘기라면, 그냥 경제논리일 뿐입니다. 『에반게리온』이 이렇게나 히트한 건 솔직히 좀 이상하죠. 거기 나오는 애들 죄다 정신병자들인데!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안노: TV 아니메 하나 새로 하겠죠. 아마 우주모험물 아닐까 싶네요.

    『오네아미스의 날개』에 대하여…….

안노: 『오네아미스』 감독 야마가 히로유키는 상당히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그래서 관객과 타협할 생각을 하지 않죠. 그러니 야마가의 입장에서 『오네아미스』는 딱히 급진적인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속편 비슷한 게 있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중단이 됐네요. 야마가는 그 속편을 “금세기 최후의 아니메”로 만들고 싶어해요. 진지하게 그걸 실현시키고 싶어하죠.

    일본 아니메 산업의 미래를 어찌 보시는지…….

안노: 아니메 엽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창작자들이 마음가짐을 바꿔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일본에서는 그게 잘 될 거 같지 않아요. 지금 아주 심각한 상황에 있어요. 밝은 미래가 없어 보여요. 그건 아니메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고 있질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니메를 보는 사람들한테도 문제가 있어요. 아니메를 만드는 사람들, 아니메를 보려는 사람들, 모두들 항상 같은 것만 원하고 있죠. 지난 10년간 비슷한 것들만 만들어내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위기의식도 없어요. 다시금 이 바닥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이 타성 밖으로 내몰아야 합니다.

    최근 소설 원작 애니들이 나오고 있는데…….

안노: 요즘에는 처음부터 애니화될 것을 의도하고 쓰여지는 소설들이 많죠. 그러니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닙니다. 『은하영웅전설』은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도 원작이 원래 그런 소설이잖아요.

    일본의 역사에서 만화 및 애니 소재를 찾는 최근 경향에 대한 감상은……….

안노: 나는 관심 없어요. 그냥 각자 주제를 찾는 것일 뿐이죠.

    개인적인 취미와 관심사는…….

안노: 제 취미는 스쿠버다이빙입니다. 그리고 독서의 경우 공상과학물 외에도 여성작가들의 연애소설을 읽곤 해요. 저는 남자라서 여성의 감정을 도무지 알 수가 없거든요. 여성들의 느낌을 이해하고, 보다 리얼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비를 털어가며 아니메 굿즈를 사는 미국 팬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십쇼.

안노: 바보들 아닙니까. 공부나 하세요. 만일 제가 시간여행을 해서 대학 시절의 제 자신에게 뭔가 말해줄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공부나 하라고 할 겁니다.

    여행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안노: 우주를 보고 싶네요. 외우주요.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여러 곳들 중 하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제가 어른이 될 무렵이면 우주로 나갈 수 있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커보니 그런 거 없네요. 그래도 여전히 달에 가 보거나, 우주왕복선을 타 보고 싶습니다.

    아니메 업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안노: 아니메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창작자로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애니메이션 이외의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선 바깥을 내다보세요. 대부분의 아니메 제작자들은 기본적으로 자폐적입니다. 좀 밖으로 나와서 타자와 진실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자체가 아니메가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DDITIONAL CAPTIONS:


    가장 좋아하는 『에반게리온』 캐릭터는 누구인지…….

안노: 아스카요. 귀엽잖아요.

    미국 시청자들이 미사토를 많이 좋아하거든요…….

안노: 사실 좀 놀랐습니다. 일본에서는 레이의 인기가 압도적이거든요. 아무래도 일본인들은 미사토나 아스카 같은 강한 여성을 상대할 수 없는 게 아닐지.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두 회차 때문에 많은 팬들이 화가 났는데…….

안노: 제가 보기엔 아무 문제도 없는데요. 문제가 있다면 다 님들이 문제인 거죠. 애석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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