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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07년 8월 15일 수요일

『아스카의 아스카에 의한 아스카를 위한 보완』 제십오화


「…어데고, 여는?」
혼수상태였던 바보토우지가 눈을 떴나 보다. 실은 한밤중에 한 번 눈을 떴던 것 같은데, 그거야 뭐 아무래도 좋고.
「네르프 의료부야」
잡지를 읽던 얼굴을 들고, 신지가 바보토우지의 의문에 답한다. 이렇게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수발을 들어주고 있었다.
「…뭐꼬, 범생이 아이가」
제대로 읽지 않고 활자를 눈으로 쫓을 뿐이었던 가십지를 접어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 간호사 대기실에 비치되어 있던 읽을거리는 거의가 이런 종류거나, 업계지, 아니면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통신판매 카탈로그 정도라 재미가 없다. 시간때울 용도가 아니었다면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아픈 데 있어?」
으응~? 하고 신음한 바보토우지는 손을 들어 보거나, 목을 틀어 보거나, 가슴을 두드려 보거나 하는데, 딱히 신경쓰이는 부분은 없는 듯.
「…딱히 없는 거 같다. 내 도대체 우예 된 기고?」
「타고 있던 에바가 적에게 탈취당했어. 기억 안 나?」
암것도. 라며 고개를 젓는다. 뭐어, 그런 꼴을 당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편이 다행이다.
「아무튼 선생님 불러올게. 이것저것 검사를 해야 할 테니까」
「…그래, 좀 부탁한다」
 

 ……
「그런데 참, 사람이 배가 고파 죽겠다는데 이래 뺑뺑이를 돌리쌌고, 네르프는 참 자비없는 데구만」
「공복이 아니면 안 되는 검사도 있으니까」
바보토우지가 눈을 뜨고 2시간, 삼호기 기동 이래 3일간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 당연히 배가 텅 비었겠지.
뭐, 거기에 실수는 없을 거다.
 
 
「신지. 히카리 데려왔어」
「고마워. 아스카」
병실 문을 열어젖히고, 아스카가 히카리를 밀어넣었다.
「뭐꼬, 반장 아이가…」
「스즈하라, 괜찮아?」
「아 뭐, 우째저째 팔다리 멀쩡하게 살아는 있는거 같다야」
퉁. 하고 가슴을 두드려 보인다. 정말이지, 진짜 바보네.
「…그래서, 정말로 괜찮은 거야? 이카리군」
손에 든 부적 주머니를 감추듯이, 히카리가 침대 건너편을 바라보아 왔다.
「방금 간호사한테 음식물 반입 엄금이라고 못박혔는데?」
라고 말하면서, 아스카는 닫힌 문 앞에서 인왕상처럼 우뚝 섰다. 이러니저러니 말해도, 바보토우지에게 히카리의 도시락을 먹일 생각으로 만만했구나. 저기 버티고 선 건, 언제라도 문을 잠글 수 있는 위치니까 그렇겠지.
「히카리양이 손수 한 요리로 토우지가 배탈이 날 리 없으니까, 괜찮겠지」
음식물 반입 엄금이라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겠지만, 그래서 신지가 납득한다면 그걸로 됐지 뭐. 거짓말도 방편이라는 걸까.
 
「이, 이카리군!? 내가 여기 온 건 학급위원장으로서, 공무로 온 거야! 그 이외에 다른 건 아무 것도…」
「아아, 알겠구마…」는 얼어죽을. 하나도 이해 못 하는 주제에 아무말로 대답하지 말라고.
「…알긴 뭘 알아」
이거 봐, 히카리가 풀이 죽어 버렸잖아. …신지, 부탁 좀 할게.
『…』
「토우지. 호라키양이 걱정해서 일부러 병문안을 왔는데,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되지 않을까.
 토우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호라키양 특제 수제 도시락, 내가 먹어 버릴 거야」
히카리에게서 낚아챈 두루주머니를 보란 듯이 흔들어 보인다. 근데 이거 무겁잖아. 아무래도 2인분 무게가 아닌데?
「뭐라꼬! 오오옷! 먹을 거 아이가♪」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저 바보』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
「이야아♪ 역시 반장이구마. 이래까이 신경을 다 써주고. 고맙다 고마워♪
 내는 반장이 맹글어 주는 도시락이 인생 최대의 낙이라 카이」
어째 볼이 아련히 물든 히카리에게 주머니를 돌려주면서,
「…그렇다는데?」
라며 일어나서는, 얼굴의 홍조가 더해지는 히카리에게 자연스럽게 의자를 권하고…. …신지. 너, 이런 거 익숙해졌구나. 그게 좋은 일인지 어떤지 판단은 안 되지만. …왜냐면 저 봐, 아스카가 수상쩍다는 듯 보고 있잖아.
 
『잠시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게 어때』
『그러자』
마실 것 좀 사올게. 라며 신지가 문으로 향하자, 그 의도를 헤아린 아스카가 먼저 복도로 나갔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인데. 아스카도 뭐 마실래?」
『저~요 저요 저요 저~요! 나는 오렌지 쌕쌕♪』
『…앙제한테 물은 거 아냐』
므으.
「…너 혹시, 오늘 밤에도 옆에서 수발들 거야?」
그럴 생각인데, 왜? 라고 대답하자, 아스카가 고개만 돌아보았다.
「너도 미사토도 없으니까, 내가 펜펜을 돌보고 있어야 하잖아!」
 
사도 각성 당시 다쳤다는 미사토는, 첫 날은 경과관찰을 위해 입원. 둘째 날 아침에 얼굴을 보이더니 이제부터 현장 뒷처리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작업의 목표는 마땅치 않은데 불만은 산적해 있으니, 앞으로 2-3일은 못 들어갈지도, 라던가 뭐라던가.
「뭐냐고 그 펭귄. 내가 구운 생선은 탔다고 안 처먹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리고, 그러면서도 멀쩡한 속도로 걸을 수 있다니, 이애도 참 재주가 좋지.
「…펜펜은, 생선 굽는 정도에 대해서만큼은 까다로우니까」
덕분에 생선구이만은 내가 오히려 호라키양에게 가르쳐줄 정도야. 라며 쓴웃음. 애초에 펜펜이 생선을 구운 정도에 트집잡게 된 것은 신지가 오냐오냐 기른 결과인데. 일일이 구운 정도의 감상을 물어보고 그걸 피드백하니까. 동물 주제에 사치에 익숙해진 거야. …무엇보다, 통째로 삼키는 주제에 왜 굽는 정도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의문인데.
그러는 사이 자판기 코너에 도착. 잔돈을 꺼낸 신지가 고민 없이 바로 오렌지 쌕쌕을 구입. …어라? 지오프론트와 벤더vendor가 다른가. 이쪽은 홀쭉한 유리컵 같은 것에 금속 캡이 붙어서, 마치 カップ 같다는 느낌? …인데, 포도 쌕쌕이 있어!?
『신지, 신지! 포도ブドウ 포도葡萄 포도ぶどう! 포도 쌕쌕이라는 거 마셔보고 싶어!』
어, 방금 뭔가 몰래 한숨쉬지 않았어? 신지.
「아스카는 뭘로 할래?」
「…뭐야, 그거?」
오렌지 쌕쌕. 귤 과립이 낱알로 들어 있어. 라며 신지가 유리병을 흔들어 보인다. 투명감 있는 오렌지주스 속에서 귤 과립들이 흩날리는 모습, 마치 스노우글로브처럼 예쁘다. 캔에 든 것보다 신경을 더 썼네.
「그거 마시고 싶어」
이걸로 좋아? 라며 손에 든 유리병을 건네자, 응. 하고 아스카가 받아들었다. 분명히 네 마음에도 들 거야.
신지가 잔돈을 한 번 더 꺼내, 이번에는 포도 쌕쌕을 샀다. 오렌지 쌕쌕과 같은 유리병에, 이쪽도 투명한 포도주스. 바닥에 가라앉은 포도알은 제대로 껍질을 깐 것으로 10알 정도인가.
「…왜 넌 딴 거 샀어?」
「사려다 보니 이게 있는 줄 알았어. 처음 보는 거라 시험해볼까 해서」
아 그래. 라며 고개를 돌린 아스카가 긴의자에 주저앉아 캡을 열었다. 입을 대고 홀짝거리나 싶더니, 유리병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기분 잘 알지. 그리고 다시 한 모금. 목을 넘어가는 느낌이 재미있을 거야.
포도는 알을 씹었을 때 과즙이 터져나오는 것이 재미있지만, 목넘김은 시시하네.
 
오렌지주스를 쭉 들이킨 아스카가 미간을 찌푸렸다. 곁눈질로 살펴보니, 귤 과립이 병 바닥에 조금 남아서 그런 것인가. …아무래도 잘 마시는 요령이 필요하겠어.
건져내서 먹을 수도 없는 노릇, 미묘하게 시무룩해진 아스카가 유리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래서, 들어오는 거지? 저 버르장머리 없는 펭귄한테 계속 생선을 구워주라니, 절대 사양이야!」
「들어가도 되지만, 아스카는?」
「나, 나는 물론 히카리네 집에서 묵을 거야. 애초에 어제도 갈아입을 옷 가지러 돌아갔던 것 뿐이니까」
…그렇구나. 라며 신지가 긴의자에 주저앉았다.
「뭔데….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분명히 말하라고」
아스카가 시선만 내려다보는 기척.
신지가 내려다보는 유리병 속에서, 포도 과립이 가라앉아갔다.
 …
「…밤이라던가, 별로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뭐어?」
 
에바 삼호기와 싸웠던 그날 밤 일이었지.
검사입원으로 개인실에 들어온 신지는, 밤중에 몇 번이나 눈을 떴다. 대략 3시간에 4번 꼴로 눈을 뜬 신지는, 결국 잠자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제12사도에게 삼켜졌던 후유증이겠지. 잠들면 피냄새가 난다고 했으니까. 물론 그것은 기분 탓, 신지의 마음의 문제겠지만.
 
제12사도로부터 구출된 그날 밤에 입원했을 때, 신지는 혼수상태였다.
그 뒤로도 집에는 미사토가, 또는 카지씨가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혼자 보내게 된 밤, 그것이 삼호기와 싸운 그제 밤이었다.
 
그래서 어젯밤 신지는 바보토우지의 병실에서 자기로 한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카지씨가 묵고 간 밤에도 같이 자자고 했었고…
 
예전에는 어땠더라? 하고 생각해 보니, 생각 이상으로 정보가 적은 것을 깨닫고 놀랐다. 그토록 신지를 라이벌시했으면서, 그 상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구나.
어찌저찌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동거인이 이런 트라우마를 안게 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믿어져?
 
「성적우수, 용맹과감, 싱크로율 넘버원의 사나이가, 혼자 자는 게 외로워. 라는 거야!?」
진심으로 경멸하는 시선이 주스의 수면을 거쳐 노려보아 온다. 분명, 신지가 제3신동경시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의 나와 똑같은 기분을 느낀 것이겠지.
스스로 칠드런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신지를 증오했었다. 전적은 고사하고, 싱크로율까지 나를 앞질러 놓고 그 지위를 방기하다니. 내가 희구하는 것이 모두 무가치한 것이라고 멸시당한 것 같아 적의까지 느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신지가 없었던 제14사도전에서 그렇게 기를 썼다. 무모한 특공까지 저질렀다. 내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 신지에게 싱크로율을 추월당했을 때라고 한다면, 멈출 수 없는 내리막을 타고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신지가 칠드런을 때려치웠을 때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거기까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상념과 충격을, 도망친 신지가 어처구니없다고만 받아들였다. 다 타 버리기 직전의 촛불이 유난히 밝게 달아오르듯이, 신지도 도망치기 직전 불난리의 바보력으로 싱크로율이 올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속였다.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헤아릴 수 있었다면, 적어도 싱크로율이 제로가 될 지경으로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서, 이 내가 곁에서 같이 잠이라도 자라고?」
「…그런 게 아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잖아!」
나부껴온 손등이 신지의 손에서 유리병을 쳐 날려 버렸다. 병은 자판기로 날아가, 부딪혀, 깨진다.
「테스트 결과 좀 잘 나왔다고, 혼자 사도를 쓰러뜨렸다고, 기세등등해서 우쭐거리는 거 아니야!」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야. 라고 말을 이으며 일어서려던 신지의 뺨을, 아스카의 오른손이 후려쳤다. 무릎에 힘이 풀린 신지가, 맥없이 긴의자에 쓰러진다.
 
「너 같은 게, …너처럼 나약해 빠진 게, 어째서 칠드런이야!」
가는 김에 한 발 더 따귀를 올리고, 아스카가 도망쳤다.
신지가 한심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역설적으로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잘못된 것에 매달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아스카는, 그 굴욕을 견딜 수가 없는 거겠지.
그 기분 잘 알아.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신지의 기분도 잘 알아. 원하지도 않던 힘이 주어져서, 그것 때문에 남들에게 거부당하는 마음의 아픔 말이야.
 …
신지가 열이 오르는 뺨을 누른다.
「…나는」
눈꺼풀을 굳게 닫고,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신지. 넌 잘못한 게 없어. 아스카가 아직 자신이라는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네가 강하든 약하든, 전향적이든 소극적이든, 어떻든 간에 들이받으려 들 거야.
그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야기해 줄게. …네가 좀 진정되고 나면.
 

****
 

무사히 바보토우지를 구출해냈기에, 이번의 신지는 하이잭이라던가 벌이지 않았다. 그 결과, 경질당하는 일도 없었고, 이렇게 멀쩡히 출격하고 있다.
 
 
이호기와 함께 지오프론트의 천정을 바라본다. 사도의 진공은 이제 곧이다.
옆에 보이는 이호기는, 무기를 산더미처럼 챙겨나와서 마치 산미치광이 같다. 이 즈음의 내가 얼마나 초조하게 몰려 있었는지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것 같아, 조금 괴롭다.
영호기와 레이는 대기. 에바 삼호기와의 전투에서 입은 손상이 아직 수복되지 않았다.
 
초호기의 플러그 안에, 지금 진공 중인 사도의 모습이 표시된다.
『어떻게 생각해?』
『…잘 모르겠지만, 저 광선 같은 걸 조심해야 할 것 같아』
확실히 그 광선은 성가시지. 하지만,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저 사도의 무서움은, 공격력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흐늘흐늘한 줄자 같은 저 팔로 불의의 기습을 가하는 데 있다. 저것을 갑자기 지근거리에서 얻어맞게 되면, 절대 피할 수가 없어.
『그렇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사용해 보였다는 건, 그게 비장의 패는 아니라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제3사도나 제4사도처럼 다른 무기를 숨기고 있을지도 몰라. 방심하면 안 돼』
『아, 으응. 그렇네』
 
올려다보는 시선 너머, 천정이 폭발하며 장갑판이 폭삭 무너져 떨어졌다.
『왔구나』
 
≪너 따위 없어도, 저딴 건 나 혼자서도 식은 죽 먹기야. 밤에 혼자 잠 못드는 어린애는 거기서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어!≫
아스카는 일방적으로 통신을 열었다가, 순식간에 통신을 끊어 버렸다.
 
천천히 하강하는 사도에게 이호기가 팔레트 라이플을 제사한다. 아스카니까 이 거리에서도 맞힐 수 있겠지. 신지의 출발이 늦은 건, 아직 멀어서 자기는 맞힐 수 없다고 자각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신지, 라이플을 2정, 건네줄 준비를 해 둬』
『함께 공격하는 게 낫지 않아?』
『방금 들었지? 섣불리 아스카 앞에 나섰다가는, 등에 총 맞을 거야』
…상상이 되는 듯. 신지가 몸서리를 쳤다.
 
사도의 착지와 거의 동시에 총알이 떨어진다. 탄창교환을 하지 않고 라이플째로 내버린다.
초호기가 내민 라이플에, …한 순간의 주저함.
빼앗다시피 낚아채자마자, 허리춤에 갖다대고 난사. 거리가 가까워졌기에, 저런 식으로 쏘아도 집탄율이 괜찮게 나온다.
『다음, 로켓런처 2정이야』
이번에는 주저없이 런처를 받아들었다.
『소닉 글레이브, 준비해』
초호기가 소닉 글레이브를 뽑아들고, 자세를 잡는다.
『아스카는 지금 주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사도의 동향에 주의하다가, 만약의 경우 이호기를 지킬 수 있는 건 신지. 너 뿐이야』
『응』
이호기가 로켓을 발사하고, 사도를 덮고 있던 폭염이 걷힌다. 역시, 상처 하나 나지 않는구나.
 
 
후드득후드득, 사도의 양 팔이 풀려난다. 길게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이쪽에 닿을 만큼은 아니야. …그래서 방심했는데. …저게, 저기서 더 늘어날 수 있다니, 누가 그걸 상상이나 했겠어.
『신지, 저거!』
「! 읏…」
리듬체조의 리본처럼 넘실거리는 양팔이, 이호기를 들이받은 초호기를 덮친다.
…! 「끄으윽!!」 
왼팔과 오른다리를 가져갔다.
사지 가운데 절반을 한꺼번에 잃은 것 치고, 신지의 비명은 억누른 듯 소극적이다. …너무한 통증에, 나조차 순간 정신이 나갈 뻔 했는데. 즉시 통각을 차단했다.
   ≪ 신지군!! ≫
『바보! 소닉 글레이브는 장식으로 들고 있어!』
몸을 던져서까지 지켜낼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한쪽 팔만 무사하다면――최초의 기습만 넘길 수 있다면, 아스카는 어떻게든 해내 보였을 테니까.
   ≪ 신지군, 일단 후퇴해! ≫
「이 자식…, 너무 강해!」
신지의 목소리는 경악과 고통으로 전율한다. 하지만, 단언하는 그 말에, 무언가 결의가 엿보인다.
「크윽!」
발목 아래가 날아간 오른다리로 지면을 짚고, 초호기가 버티고 선다.
≪신지!≫
다시 열린 【FROM EVA-02】 통신창 속에서, 아스카의 목소리. 하지만, 신지에게는 거기 대답할 여유가 없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신지의 절규에 호응하듯, 초호기가 악부장갑을 찢는다. 우렁차게 내뱉은 외침에 맞부딪히듯이, 자기 왼팔을 앗아간 흉기를 물어뜯었다.
『신지이! 너 도대체 뭘 하려는 생각이야!』
   ≪ 신지군, 명령을 들어! 퇴각이야! 신지군! ≫
미사토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너무 아파서 미처 신경을 쓸 수가 없는 거야.
다른 한 쪽 리본을 오른팔에 휘감은 초호기가, 그것을 끌어당기듯이, 왼다리 하나만으로 도약했다.
그 거리를 일거에 좁혀 숄더shoulder 차지charge. 사도의 팔이 여전히 감겨 있는 오른팔로 지체없이 사도의 얼굴을 잡고, 비틀어 올린다.
「…아스카, 빨리 숨통을!」
≪숨통을 끊으래도, 초호기가 가리고 있어서 코어가…≫
 
초호기가 물어뜯었던 리본이 초호기의 머리에 감겼다. 오른팔에 휘감은 리본도, 역으로 오른팔을 되졸라 온다.
「나 같은 건 상관 없어! 빨리, 더 버틸 것 같지 않아!」
≪…어떻게, 그런≫
무심코 이호기를 보려 한 것일까. 뒤를 돌아본 신지에 맞추어 초호기도 돌아보았다.
「빨리! 이러다가는 개죽음이야!」
≪죽음이라니, …그런 건 못 해≫
메인카메라가 가려져서, 플러그 내부 영상의 해상도가 떨어진다. 배부背部 카메라의 거친 화상 속에, 엉덩방아를 찧은 모습의 이호기.
『미안.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과할 테니까…』
「소류 아스카 랭글리! …너는, 칠드런이잖아!」
내게는, 누군가를 희생해서라도 이기겠다는 각오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다고, 근거도 없이 생각했다.
「너의 사명으은!! …」
통신창 안에서, 아스카가 싫어싫어 고개를 흔들고 있다.
…!
「크하악!!」
마침내 초호기의 오른팔이 으스러졌다. 즉각 방사된 괴광선이 오른손목 아래를 날려 버린다.
제3사도전을 훨씬 뛰어넘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을 텐데, 신지는 기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초호기도 폭주하지 않는 걸까?
「그으으으윽! …아스카!!!」
≪시, 싫… 싫어いやぁ…!≫
신지의 절규에 튕기듯이, 아스카가 벌떡 일어난다. 시야의 아슬아슬한 가장자리에서, 이호기가 초호기가 떨어뜨린 소닉 글레이브를 주워드는 것이 보인다.
망석중처럼 어색하게 일어나더니, …튕기듯이 뛰쳐나오기 시작한다.
이야い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초호기의 등 뒤, 사도에게는 사각지대가 된 위치에서 뛰어들어온 이호기가, 초호기를 꿰뚫었다. 그대로 초호기의 배를 뚫고 나온 날끝은, 그 감촉으로 보아 깔끔하게 사도의 코어에 미끄러져 들어갔을 것이다.

 ……
밀려오는 빛의 격류에, 플러그가 새하얗게 도색되었다. 뒤이은 폭압에, 초호기가 날았다.
앗, 아니다. 무언가가 받아내서 지탱해준 것 같은데. …분명 이호기겠지.
≪신지, 신지!≫
『…신지?』
   ≪ 신지구운!! ≫ 
이를 악문 채로 신지가 더듬더듬 신경접속을 끊었다는 것을 알았다.
 

****
 

「아, 싫다. 또 이 천장이야」
『신지, 정신이 들어!?』 「신지, 정신이 들어!?」
초호기를 대파 직전까지 몰아붙인 신지는, 싱크로를 끊자마자 기절했다. 곧바로 의료부로 실려간 신지를 아스카가 따라온 것은 솔직히 나부터 놀랐다.
「아스카…?」
「착각하지 마. 나는, 너를 좀 패주려고 기다리고 있었거든」
신지가 무심코 뺨에 손을 올린다. 의료부에서 아스카에게 따귀를 맞았던 것이 불과 어제의 일이니까. 당연할지도 모르겠네.
「어째서 그딴 짓을 한 거야? 답변 여하에 따라, 두들겨 패는 정도로 안 끝날 수도 있어」
신지가 몸을 일으킨다. 통증도 없고, 특히 후유증 같은 것도 없는 것 같다.
「…」
잠시 정면을 바라보던 신지가, 아스카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스카는…, 그 사도한테 혼자서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
「당연한 거 아냐. 그딴 건 나한테는 식은 죽 먹기…」
끝까지 큰소리를 치지 못하고, 아스카가 말을 머뭇거린다. 신지의 진지한 눈길이 아팠겠지.
「…까지는 아니고 조금 고전했을지도 모르겠네…」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지경이 되면, 인간으로서 끝장이야.
「…상당히 고전했을지도…」
자신의 관찰안이나 분석력을 부정해야 지킬 수 있는 자부심 따위…
 …
아니지, 지키기는 커녕,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 것밖에 안 되었잖아.
 
 
「…쓰러뜨리지 못했을 거야」
마른 걸레를 비틀어 물을 찾듯이. 아스카의 목소리는 심하게 잠기고, 메말랐다.
「…하지만, 이제 두 번 다시 질 수 없다고, 이 나는」

「…무엇에?」
무엇보다 먼저, 주먹이 날아왔다.
「너한테지!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아 아파라~.
신지가 알면서도 시침을 떼고 있다고, 바보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래서 손이 올라갔고, 자신의 말의 창끝이 신지를 향해 있다고 생각하겠지.
아니 뭐, 완전한 착각은 또 아닌가. 혼자서 사도를 쓰러뜨리겠다고 집착한 것은, 역시 신지에 대한 대항심 때문이었으니까.
「나!? …나, 아스카한테 이긴 적 없어」
「너 진짜 적당히」
좀 해! 라며 멱살을 잡고 아스카가 신지를 끌어당겼다.
「삼호기 때도, 그 전에도!」
거의 박치기를 할 기세로 얼굴을 들이댄다. 치뜨고 노려보는 푸른 눈동자에는, 살기마저 형형했다.
「삼호기 때는 더미 플러그인가 하는 놈으로 사령부가 쓰러뜨린 거고, 그 전의 건 초호기의 폭주야!」
에…? 하고 굳어버린 아스카를 부드럽게 떼어내고, 신지가 뺨을 눌렀다.
「아스카가 온 뒤로, 나 혼자서 사도를 쓰러뜨렸던 적은 없어」
「…그랬어?」
「그랬어」
시선을 떨어뜨린 신지가, …라고 해야 할까. 라며 말을 이었다.
「…뭐랄까, 사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 혼자서는 쓰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고 그딴 식으로 싸워!」
미묘하게 피한 시선을, 아스카를 향해 돌렸다.
「그럼… 아스카는. 같이 싸워 줬어?」
「그건…」
신지의 상냥함. …알겠어?
신지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덕에, 너는 지금 개의치 않고 고개를 떨굴 수 있잖아.
그것이 약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면, 강하든 약하든 아무렴 상관 없잖아.
 
「…삼호기와 싸웠을 때, 더미 플러그라는 게 작동되더니, 초호기가 마음대로 싸우기 시작했어」
무엇을 생각해낸 것인지, 신지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대 조금 아프다.
「나는 에바가 무섭다고 생각했어. 에바가 싫었어. …하지만, 리모컨처럼 조종되는 초호기를 느끼고, 뭔가 다르다고, 이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어」
발령소에서 그렇게 세세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거야 뭐어, 아무래도 좋나.
「만약 우리가 사도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사령부는 다시 더미 플러그를 쓰겠지」
이해의 빛을 눈동자에 실어, 갑자기 아스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래. 누가 이기고 지고 그딴 소리 하기 이전에, 파일럿 그 자체가 용도폐기될지도 모른다고. 신지와는 다른 이유겠지만, 더미 플러그의 사용을 용납할 수 없는 건 너도 마찬가지인 거야.
「…그게 싫었던 거야」

신지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아스카의 표정을 딱딱하다. …하지만, 쓸데없이 신지를 적대시해온, 지금까지의 아스카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
  …인지. 라고 끝맺어 부르지 못한다.
「와라, 이카리 신지군. 총사령관이 찾는다」
느닷없이 문을 연 검은 양복 2인조가 문답무용으로 신지를 데려가고 말았다.
 
계속 つづく
2007.08.08 PUBLISHED
2008.08.10 REVISED
2021.11.10 TRANSLATED
2021.11.28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アスカのアスカによるアスカのための補完 第拾伍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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