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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07년 8월 13일 월요일

『아스카의 아스카에 의한 아스카를 위한 보완』 제십사화


 
리츠코가 시켜서 로비까지 미사토를 부르러 가는데, 도중에 카지씨가 따라왔다.
남아도는 여유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카지씨에게 헌팅당해서, 이렇게 지오프론트의 벤치에서 차를 마시게 된 것인데.
이 오렌지 쌕쌕은 목을 넘어가는 느낌이 재미있네. 내 몸이 있을 때 마셔보면 좋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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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씨는, 좀더 성실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요」
「마음을 놓은 상대에게는 가차없구나. 이카리 신지군」
「아, 죄송합니다!」
저기요, 카지씨. 이놈의 본성은 시건방지고 반항적인 빈정꾼이야. …의외로 자기 부친을 빼닮았다니까.
「아니, 이쪽이야말로 미안하다. 기분 나빠서 한 소리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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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선 카지씨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지. 한가지 좋은 걸 너한테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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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 인가요?」
쭈그려 앉은 신지가 수박을 들여다본다. 작고 노란 꽃이 큐트하네.
 
「아아, 귀엽지. 내 취미야. 남들한테는 비밀이지만」
흐~응. 나한테는 안 가르쳐 준 주제에, 신지한테는 보여줬다 이거지. 남자들끼리 치~사~해.
「무언가 만들고, 무언가 기르는 건 좋은 거야. 여러 가지 것들이 보이고 또 이해할 수 있거든」
카지씨가 물조리로 물을 뿌린다. 으~응…, 이런 저녁에 물을 줘도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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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이라던가. 라며 이쪽을 살피는 기척이 조금 상냥하다.
「…괴로운 일도요」
 
느닷없이 그런 말로 받아친 신지의 마음이, 어쩐지 너무나 잘 이해되었다. …그러니 나도 신지와 함께 수박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수박의 줄무늬가,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니까. …신지에게는, 16시간의 압박감을. 내게는, 16시간의 무력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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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게 싫은가?」
「…좋아하지 않죠」
「즐거운 일은, 찾았나?」
신지가 침묵한다. 역시 카지씨도, 미사토와 같은 세대구나. 사춘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것도 괜찮아. 하지만, 괴로운 것을 아는 인간은, 그만큼 사람에게 상냥해질 수 있는 거야. 그건 약함과는 다른 거니까」
카지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괴로운 일의 도중에 있는 인간에게, 그런 어드바이스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신지가 원하는 것은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당장의 구제인데.
일반론에 지나지 않은 말은, 거리를 두고 있기에 꺼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카지씨도 미사토와 같은 세대구나. 우리를 부서진 물건처럼 다루어, 건드리려 하지 않는구나.
…우리는 절대 유리 세공품 따위가 아니야. 확실히 상처입기 쉽지만, 그래서 강해질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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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호출음.
「네, 여보세요?」

「카츠라기네. 지금부터 싱크로 테스트를 한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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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싱크로 테스트에서 신지의 싱크로율이 낮았던 것은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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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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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요코스카横須賀 갔다온 거, 어땠어?」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 신지가, 난간 건너편에 앉아 있는 바보켄스케 쪽을 바라보았다.
「죽여줬지! 그런데, 조금 신경 쓰이는 정보를 입수했거든…」
모두들 점심식사를 마쳐가는 참인데, 바보토우지는 아직 옥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좀전의 호출 방송, 저것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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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삼호기?」
「그래. 미국에서 건조 중이라는 녀석 말야. 완성되었지?」
「모르겠는데」
그보다, 이런 기밀정보를 왜 바보켄스케가 알고 있는 거야.
「숨길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야, 좀 가르쳐 주라!」
「정말 들은 거 없어!」
「마츠시로 제2시험장에서 기동시험한다는 소문, 정말 몰라?」
「몰라」
…보통 새어나간 게 아닌데.
「파일럿은 아직, 결정 안 되었겠지?」
「모른다고, 그런 거…」
지금쯤, 교장실에서 통지를 받고 있을 텐데.
「나한테 시켜주지 않으려나, 미사토씨. 야, 신지 네가 어떻게 좀 부탁해 주라! 타고 싶어, 에바에!」
「진짜로 모른다니까…」
바보켄스케는 신지가 모르는 척 시침을 뗀따고 생각하나 보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걸.
「그럼, 사호기가 결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몰라?」
「뭐야 그건?」
「진짜 이것도 모르는 거야? 제2지부가 통째로 날아가서, 우리 아빠가 일하는 데서는 난리가 났었어」
아빠? 네르프 관계자인가? 가족에게 그런 얘기를 하다니, 시큐리티 의식이 낮으시구만.
「진짜야?」
「아마도…지만」
「 미사토씨한테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
신지의 중얼거림을 듣고, 바보켄스케가 미간에 준 힘이 풀린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신지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이해한 거겠지.
「역시, 말단 파일럿하고는 관계 없으니까. 말하지 않았다는 건, 몰라도 상관없다는 거 아니겠어? 신지한테는」
바보켄스케의 팔로우도, 지금의 신지에게는 닿지 않겠지. 눈의 초점이 멀어.
『…어째서, …미사토씨는,』
미사토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네르프 전체가 비밀주의가 심한 곳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신지. 미사토는 너를 일부러 무시하고 감추고 그럴려는 건 아닐 거야. 왜냐면 그 세대의 사람들은, 사춘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아니지, 미사토만은 적어도 그걸 자각은 하고 있어. 오히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안하다, 이상한 걸 물어봐서. …그런데, 토우지 이 새끼는 왜 이리 늦어」
­ 

****
­ 

 
신지가 등교하는 무렵에 미사토가 출근 준비를 마쳐놓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베레모까지 쓰고 있으면, 드문 걸 넘어서 희대의 사태라는 느낌? 언제였더라, 예복 입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네.
오늘 마츠시로에 간다니, 나름대로 차림을 신경썼겠지.
­ 
「아스카, 돌아왔니?」
방금 막 현관을 나서려던 애를 불러세워놓고, 하필이면 꺼낸 화제가 그거야? …정말이지 미사토 너란….
「…아직, 인 것 같네요」
불편함에 두 사람 모두 얼굴을 숙인다. 너희들, 그러고 있는 걸 보면 무슨 남매 같아.
「저기요」
「그건 그렇고」
이거 봐. 사이 참 좋으시잖아.
「아하하, …먼저 말해」
「사호기가 결번이라는 소문, 진짜인가요? 무슨 사고가 나서 폭발했다던데…」
「아아, 진짜야. 사호기는 네르프 제2지부째로 소멸했어. S²기관 실험 중에」
신지의 시선이 떨어진다.
「여기는 괜찮아. 3체 모두 멀쩡히 움직이고 있잖니. 파일럿도 스태프도 우수하고」
그게 아니야, 미사토. 신지는 지금 질문이 부정당하길 바랬던 거야. 바보켄스케의 정보가 잘못된 것이기를, 바보켄스케도 아는 정보를 미사토가 가르쳐주지 않았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미국에서 삼호기가 온다고도. 마츠시로에서 한다면서요, 기동실험」
「으ー응, 그래서 한 4일 정도 외박할 거 같은데, 그동안 카지가 와서 집을 봐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그런데 실험은…」
이거 봐. 신지 치고 집요하잖아. 바보켄스케의 정보가 틀린 것이길 바라니까, 계속 묻고 또 묻는 거잖아.
「리츠코도 입회할 테니까, 문제 없어」
「그런데 파일럿은…?」
「그, 파일럿이 말인데…」
역시, 말 꺼내지도 않고 마츠시로에 갈 생각이었구나.
…♪~♪♪~
「응? 네ー에!」
초인종 소리에 정신이 팔린 신지가 시선을 돌린다. 미사토의 어깨에서 힘이 빠진 것이 보인다.
그나저나, 이런 꼭두새벽에 누가 찾아온 거야?
­ 
 
열린 문 너머로, 등이 보일 정도로 90도 인사를 하는 사람의 모습.
「안녕하십니까!」
들어올린 얼굴에는 안경이 빛나는… 바보켄스케!!
「오늘은, 카츠라기 소령님께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성큼성큼 현관으로 들어온다.
「저를, 저를 에반게리온 삼호기 파일럿으로 써 주세요!」
「…헤에?」
­ 

****
­ 

「미사토씨도 차갑네, 정말이지」
바보켄스케 때문에 포스 칠드런 얘기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게다가 교실에 도착할 때까지 이 새끼가 옆에서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니.
내가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너 벌써 지옥행이다?
「의욕이라면 내가 일등이고, 예비라도 좋으니 써주셨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 토우지?」
「어? 마 그래…」
바보토우지는 대답이 건성이다. 이 녀석, 신지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니, 자기가 심상치 않은 입장에 몰리게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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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을 방해하는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아스카가 들어왔다.
신지가 시야를 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예전에 나도 그랬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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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었어? 호라키양은 아까 왔는데, 꽤 늦었잖아」
아스카는 신지를 무시하려 한다..
「뭐꼬, 오늘은 부부싸움 없는 기가…」
바보토우지의 중얼거림에 과민반응한 아스카가 가방을 책상에 내동댕이치며 바보토우지를 노려본다. …그렇지. 이 때 이미 나는 바보토우지가 포스 칠드런이라는 걸 알고 있었었지.
 
「너희들 얼굴이 꼴보기 싫어서 늦게 왔다! 이 3바보트리오!」
이 때의 나는,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자기보다 우수한 인간이 칠드런으로 선발되면 입지가 위태로워지는데, 바보토우지 같은 게 선발되는 것 역시 용납할 수 없는 그런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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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게 아니지. 이네 와서 자신을 속이려 해 봤자 소용 없어.
솔직히 말하자. 나는 새로 등록되는 칠드런이 무서웠던 거다. 그리고 그게 모자란 바보토우지 따위였다는 것이, 오히려 공포에 박차를 가했지.
언뜻 보기엔 시원치 않지만, 신지는 엄연한 전적을 자랑한다. 특히 가용한 에바가 초호기밖에 없던 시절에, 초호기 1기만으로 제3신동경시를 지켜낸 실적은 크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 상황에서 신지 이상으로 시원치 않은 바보토우지가 만약 이호기를 능가하는 움직임을 보이거나 한다면…. 에바 파일럿은 엘리트라고 믿고 그것을 기반으로 삼은 내 아이덴티티가 흔들리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였던 싱크로율마저도 바짝 추격해오는 신지의 기척이 바로 등 뒤에 느껴지고, 아직 들리지도 않는 바보토우지의 발소리가 겁난다. 내 마음은 의심암귀로 미쳐가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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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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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ー아, 밥… 어라? 토우지는?」
과학실에서 매점을 경유해 돌아온 바보켄스케가, 비닐봉지를 뒤지던 손을 멈춘다.
「없어」
도시락을 꺼낸 신지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밥도 안 먹고? 그 자식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교실을 바라보는 바보켄스케의 시선에 이끌려, 신지도 교실을 둘러본다.
평소 같으면 부리나케 교실을 나섰을 히카리가, 왠지 흐린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 히카리가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히카리의 시선 너머에는 바보토우지와 레이가 있지 않을까?
『어라? …아야나미?』
보통 레이는 신지가 도시락을 건네줄 때까지 자기 자리에서 기다린다. 그 레이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눈치챈 것 같다.
「음… 이상하네, 요즘」
…모두들. 이라고 잘라 말하지 못하고 집어 삼킨 말은, 불쾌한 듯 교실에 들어서는 아스카의 모습을 지켜보는 신지의 가슴에 물리적 경도硬度를 가지고 얹혔다.
일직으로 과학실 뒷정리를 맡았던 아스카는, 교과서를 자기 책상에 내버려 두고 이쪽으로 걸어온다. 히카리에게 아스카 몫의 도시락은 만들지 않도록 부탁하고 있으니, 아스카는 신지가 만든 도시락을 받으러 올 수밖에 없다.
아스카가 말을 꺼낼 유일한 기회를, 신지는 아침부터 쭉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내 놔」
반사적으로 내놓으려던 도시락 곽을 직전에서 멈추고, 억지로 비틀어 열듯이 입을 연다.
「저기, 아스카…」
「뭐」
불쾌함이 최고조에 달한 아스카의 동공이 압축된다. 푸른 눈동자의 압력에 신지가 시선을 돌리지만, 여기서 도망칠 정도로 지금의 신지는 약하지 않아.
「…오늘 밤부터, 카지씨가 우리 집에 자러 오거든」
「카지씨가?」
순간 목청을 높인 아스카가, 태도를 바꾸어 의아하다는 듯이.
「어째서?」
재촉하는 듯 아스카가 몸을 꼼짝하자, 신지가 시선을 되돌린다. 고압적이던 아스카의 눈동자는, 순수한 의문을 가장자리에 두르고 지금은 훨씬 부드럽다.
「…오늘부터 미사토씨가 출장이니까」
그거 혹시 마츠시로? 라며 끼어들어오는 바보켄스케를, 아스카가 한 번 노려봄으로써 침묵시켰다. 그 시선의 날카로움을 사고의 날카로움으로 전환시킨 아스카가 입을 다문다.
예전에 카지씨가 묵으러 왔던 4일간. 나는 그것이 즐겁지 않았다. 포스 칠드런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나는, 오히려 그 모습을 보는 것에 고통마저 느꼈다.
그 때 나는 도망칠 수 없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의 이애는….
「그래. 그럼, 카지씨한테 안부나 전해 줘」
쌀쌀맞게 말을 내뱉고, 어리둥절해하는 신지의 손에서 도시락을 낚아챈다.
그렇지. 나라도 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결단을 했을 거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진 상대에게, 자신의 싫은 면을 보여 주려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히이카리ー! 도시락 먹자♪」
발길을 돌린 아스카가, 창가에 선 히카리에게 달려들었다. 신나하는 어조는, 조금 무리해서 텐션을 올리는 것임을, 나는 알지.
설마 카지씨를 걸고 넘어졌는데 이렇게 딱잘라 거절당할 줄은 생각지 못했겠지. 즐겁게 뛰어노는 아스카를, 신지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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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이부자리를 편 카지씨와 함께 자기 위해, 신지가 이불을 꺼낸다. 오늘 아스카의 귀가를 시도한 것도 그렇고, 최근 신지는 남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가지려 하는 것 같다.
그것은 좋은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세가 되어 겨우 알게 된 것이지만, 사람은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마룻바닥 위에 누워 자는 것은 저항감이 있는데, 이럴 때는 이불이 편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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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세요? 카지씨?」
「아니, 아직」
카지씨도 분명, 신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함을 느낀 것이겠지. 자는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
「제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건 또 뜻밖인데. 카츠라기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지」
카지씨, 혹시 자세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어깨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은 기색이다.
 
「카지씨, 아버지하고 계속 함께 계시는 거 같고」
「함께 있는 건 부사령이지. 넌, 자기 부친에 대해 남들에게 묻고 다니냐?」
자기 부모가 신경쓰이는 것은 아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가장 가까운, 자신의 뿌리인 걸. 그렇지 않다고 존재를 부정했던 나도 결국은…
「계속 같이 지내지 않았으니까요…」
「아는 게 없다는 거군」
「그런데, 요즘들어 이해가 될 것도 같았어요. 아버지에 대해 여러가지로요. 일에 관해서라던가, 어머니에 관해서라던가, 그래서…」
「그건 틀렸어.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뿐이야. 사람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자기자신마저도 의심스러운데.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거야」
…뭐야, 카지씨. 신지한테는 이런 얘기도 해 주고. 예전에도 이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나?
카지씨의 인생관, 지금의 나라면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지금의 아스카라면, 카지씨의 말을 필사적으로 이해할 거야.
「뭐,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을, 타인을 알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래서 재미있는 거야, 인생은」
나도 이렇게 대해 주었다면, 나도 좀더 솔직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치사해, 다들 신지한테만. 나, 여기 오고 나서 처음으로 너를 질투했어. 예전에 모두들 신지만 싸고돈다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게 피해망상이 아니었구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신지가 구원받은 것도 아닌 것 같다는 게 또 슬프지만.
­ 
「미사토씨와도, 인가요?」
그녀彼女란, 아득한 저(彼) 편의 여자(女)라는 거야. 여성이란 강 건너편의 존재지, 우리에게 있어서 말이야」
글쎄, 남자들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부러 여자를 멀리 여기는 게 아닐까 싶은데….
지금, 이렇게 붙어 다니면서 나는 신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편견이 개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남자라던가 여자라던가 그런 것과 관계 없는, 사람으로서 보편적인 몰이해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바다보다도 넓고 깊은 강이 있다는 거야」
그렇게 인식함으로써 골을 넓히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저는, 어른은 이해할 수가 없네요」
­ 

****
­ 

­ ≪ 목표 접근! ≫
­ ≪ 전기, 지상전 준비! ≫
들어온 영상은, 선봉에 선 이호기와 동행하는 부대에서 송신한 것.
일몰이 빠른 산기슭의 석양을 등뒤에 짊어지고 걸어오는 것은,
「엑? 설마, 사도…? 이게 사도라고요?」
에바…, 삼호기.
≪그렇다. 목표다≫
참으로 담담하게. 신지 아빠의 목소리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목표라니, 이건, …에바잖아요」
­  ≪ 그런, 사도에게 탈취당하다니… ≫
발령소를 경유한 아스카의 중얼거림. 신지에게는 들리지 않았겠지. 나도 말했던 기억이 나니까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이…, 아이가 타고 있는 건가…. 내 또래의…」
≪너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 삼호기에는…≫
열린 통신창이 순식간에 모래바람에 휩싸이고,
「아스카?」
≪꺄아아아아아아악!≫
…두절되었다.
「아스카아!?」
­ 
­   ≪ 에바 이호기, 완전히 침묵! ≫
…미안해, 신지. 나도 너한테 바보토우지에 대해 알려줘야 할지, 한참 망설였어.
­   ≪ 파일럿은 탈출. 회수반 보냈습니다 ≫
미사토를 욕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네.
­   ≪ 목표 이동, 영호기로 ≫
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그렇게 생각해 버렸어.
­   ≪ 레이, 근접전은 피하고, 목표의 발을 묶어라. 지금 초호기를 보낸다 ≫
하지마, 신지. 아무리 미사토라도,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분명히 가르쳐 줬을 거야. 그러니까…

『…신지. 포스 칠드런은 분명히 토우지야』
「엑! 『에에엑!? …어떻게 된 거야?』
『토우지가 교장실로 호출되었을 때, 학교에 네르프 차가 왔었어…』
『…거짓말!』
거짓말 맞다.
『수업에 늦게 들어와도 혼나지 않았고, 게다가 오늘 하필 토우지가 학교를 쉰 게 왜겠어?』
『…설마!』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의, 내 추측일 뿐이지만』
­ 
­   ≪ 영호기, 중파. 파일럿은 부상 ≫
「그런…」
나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린 신지는, 영호기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로 좋다.
≪목표는 접근 중이다. 앞으로 20이면 접촉한다. 네가 쓰러뜨려라≫
「하지만, 목표라고 해도…」
등에 진 석양이 무거운 듯 등을 구부정하게 굽힌 삼호기가 걸어오고 있다.
「…토우지가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던 삼호기가, 몸을 내던지듯이 튀어올랐다. 그대로 회전하여 발바닥으로 부딪혀온다.
논밭을 문대면서 날아간 초호기가, 산비탈을 만나서야 겨우 멈추었다.
 
사이를 두지 않고 신지가 삼호기의 행방을 쫓는다. 사지를 모두 구부린 자세로 땅에 엎드린 삼호기, 그 연수에 초점.
「엔트리 플러그…. 역시, 사람이 타고 있는 거야!」
일어서려는 순간, 목이 졸렸다.
저런 장소에서, 이만큼 팔이 늘어나다니!!
배가되는 힘. 왼손도 더해서 졸라오는 것 같다.
「…큭, 끄아악!」
『신지! 싸워야 해!』
『…하지만, 토우지가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초호기가 산에 내동댕이쳐졌다. 산비탈에 밀어붙이듯이, 삼호기가 체중을 실어 목을 짜부라뜨려 온다. 악력만으로 조르던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힘.
『바보신지! 잘 생각해. 네가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될지를!!』
『…내가, 여기서…?』
­  ≪ 생명유지에 지장 발생! ≫
『그래. 제7사도를 떠올려 봐』
『제7? 분열하던 놈…?』
­  ≪ 파일럿이 위험합니다! ≫
『…N²폭뢰!?』
­ 
≪신지, 왜 싸우지 않는 거냐!?≫ 『신지, 싸워야 해. 토우지를 구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건, 너 뿐이야』

『구하기… 위해서…』
­ …
졸라오는 양손에 항거하며, 신지가 삼호기를 노려보았다.

「…알았어. 싸울게. 내가 싸운다고!」
 
­  ≪ 좋아, 싱크로율을 60%에 컷해라 ≫
부사령!? 나이스! 신지에게 전해져오는 고통이 가벼워졌다.
『신지! 무릎, 무릎으로 삼호기의 팔꿈치를 걷어차올려!』
차올린 오른무릎이, 삼호기의 왼팔꿈치를 탈골시킨다. 그대로 치켜든 발끝이 턱을 걷어찬다.
…할 수 있잖아.
삼호기의 기가 꺾인 틈을 타, 돌아들어가듯이 등 뒤로.
『엔트리 플러그를 노리는 거야』
『…알고 있어』
연수를 향해 뻗은 손이, 몸을 뒤집은 삼호기의 오른손에 튕겼다. 그 손이 다시 목을 향해 뻗쳐오지만, 같은 수에 또 당할 정도로 신지가 바보는 아니야.
『그거, 잡아서 쓰러뜨려!』
머리를 기울여 삼호기를 피한 신지가, 삼호기의 손에 왼손을 휘감아 쓰러뜨린다.
『밟아버려!』
그대로 고꾸라진 삼호기의 어깨를 오른손으로 떠넘겨 땅에 엎드린 자세로 만들고, 등을 밟아 고정. 즉시 연수에 얽혀 있는 균사 같은 것을 잡아 찢는다 …하지만 플러그는 배출되지 않는다.
『뽑아내자. 플러그 주변을 통째로 도려내!』
초호기가 양손을 플러그의 양 사이드에 쑤셔넣었다. 그래서 어딘가 락을 건드린 것일까, 순간적으로 플러그가 배출된다.
「됐다!」
『일단 떨어졌어』
병아리라도 감싸듯이 플러그를 안고, 초호기가 달려나간다. 목적지는 산그늘에 숨은 지휘차.
­ …
「좋아!」
조심조심 플러그를 내려놓는 순간, 시야가 날아갔다. 물론 날아간 것은 초호기이고, 날려보낸 것은 삼호기. …였겠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데굴데굴 뒹군 끝에, 겨우 초호기가 멈춘다. 케이블에 끌려다니던 전원차가 초호기의 발밑에 떨어졌다. 시야 구석에서 상황표시를 확인. 역시, 전압이 불안정해졌어. 아예 끊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신지, 일어서!』 
일어서려는 순간, 삼호기가 다시 시야에서 사라진다. 처음 나타났을 때와 같은, 전방 공중제비로 뛰어올랐다. …신지가 반 보 물러서서 타격점을 피한다…고 생각했는데, 내리찍어오는 일격을 먹었다. 거기에서 한층 더 회전해서 박치기…라니 이게 뭐야!
「…크윽」
앞으로 고꾸라진 초호기에게, 뒤이어 바로 타격이 들어온다.
!! …연수에 충격. 삼호기가… 스톰핑stomping!?
일어나려는 신지의 노력을 모조리 짓밟고 걷어차는 삼호기의 발길질이 가차없다.
­ 
…토우지라는 인질만 없으면, 이놈을 쓰러뜨리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야? 이 강함은!?
­ 
­  ≪ …상관 없다. 파일럿과 초호기의 싱크로를 전면 컷해라! ≫
…에엑?
­  ≪ 그렇다. 회로를 더미 플러그로 전환한다! ≫
…더미 플러그?
­  ≪ 지금의 파일럿보다는 도움이 되겠지! 어서 ≫
오토파일럿 말이야?
순간, 싱크로가 끊어진다. …아니, 잘린 거야. 일단 끊겼던 모니터가, 비상등으로 전환되면서 복귀한다. 시야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어, 기분 나쁘다.
 
「뭐야…?」
등 뒤에서 윙윙 소리를 내기 시작한 디스크 드라이브를, 신지가 돌아보았다.
「뭘 한 거야!? 아버지!」
­ …
방금 기체가 진동한 건, 초호기의 포효!?
「…뭐, 뭐야?」
팔굽혀펴기 하듯이, 초호기가 돌연 몸을 들어올린다. 짓밟히는 것 따위 신경쓰지 않고, 실로 무심하게. 짓밟으려던 발이 잡혀, 삼호기의 자세가 무너진다.
『…폭주, 하는가 봐』
지체없이 일어서, 좀전의 답례를 하듯이 목을 조른다.
「폭주?」
아참, 초호기가 폭주한 상황이면 신지는 거의 항상….
『더미 플러그라고 했지. 초호기를 폭주시킨 거야. 발령소의 명령으로』
「그런…」
목이 졸려도 삼호기의 기세가 꺾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즉석에서 마주 목을 졸라온다. 하지만, 폭주상태가 아니었던 초호기도 교살하지 못했던 삼호기에게 승산이 있을 수 없었다.
­ …
우드득.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삼호기의 경추가 부러졌다. 놀랍게도, 그랬는데도 삼호기의 저항은 그치지 않는다.
불쾌하다는 듯 으르렁거린 초호기가 삼호기를 내던진다.
산비탈에 내던져진 삼호기를 향해 전방 공중제비. 양 무릎을 흉부장갑에 찍어누른다. 그대로 마운트 포지션을 취하고 나자, 전투는 순식간에 일방적인 살육으로 변했다.
­ 
저번에, 회수반과 합류한 뒤 나는, 통곡하며 간청하던 신지의 절규를 듣고 있었다. 초호기를 멈추기 위해 미친 듯이 움직이던 레버의 작동음까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남을 상처입힐 우려가 없으니, 이번의 신지는 통곡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필사적으로 토악질을 참아야 했다. LCL 속에서 토했다가는 질식하니까…. 일단 한 번 토하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겠지. …여러가지 의미로.
­ 
겨우 초호기가 정지했을 때, 주위는 토막살인사건 현장을 방불케 했다.
이런 상태로, 저번의 포스 칠드런은 용케도 그 정도 부상으로 끝났구나.
­  
계속 つづく
2007.08.01 PUBLISHED
2007.08.24 REVISED
2021.11.09 TRANSLATED
2021.11.28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アスカのアスカによるアスカのための補完 第拾四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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