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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아스카의 아스카에 의한 아스카를 위한 보완』 제십육화


 
「어째서 그딴 식으로 싸운 거냐」
쓸데없이 넓은 사령실, 무진장 훌륭해 보이는 자리에 앉은 신지네 아빠는 깍지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이 방의 넓이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듯, 두 사람의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마음의 거리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아.
「처음의 일격을 받고, 초호기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공격을 봉쇄하기로 한 겁니다」
입장이 입장, 상황이 상황이니까, 어조가 사무적인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자식간의 대화의 음성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네.
얄궂게도 방의 넓이가 목소리를 반향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거리에서 이런 텐션의 대화, 성립할 수가 없지.
 
「애초에 이호기를 감싸지 않았다면, 그런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나저나…, 작전부장을 제끼고 총사령관이 직접 파일럿을 심문?
「아스카가 못 피한 공격을, 제가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신지가, 불끈 주먹을 쥔다.
「이호기가 공격당하는 동안 공격했으면 되었을 거다」
「읏! …」
신지의 말문이 막히자마자, 총사령관의 말씀이 계속된다.
「이호기 파일럿이 주저했기 때문에 초호기의 손상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감싸지 않고 공격하는 편이 손해가 적었을 거다」
확실히, 신지네 아빠 말대로다. 이호기가 당하도록 내버려뒀으면, 토탈로서 데미지는 더 적었겠지.
하지만, 그런 식의 싸움을 신지가 할 리가 없잖아. 이봐 당신, 자기 자식에 대해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너한테는 실망했다. 이제 더 볼 일도 없을 거다」
「…무슨, 의미입니까?」
「너의 등록은 말소다. 이제 에바에 타지 않아도 된다」
이게 무슨 경우? 초호기의 손해가 좀 심했다고, 귀중한 칠드런을 해임한다고.
「멋대로! 제멋대로야! 타라고 할 때나 내리라고 할 때나」
신지네 아빠가 눈짓하자, 검은 양복 2인조가 신지를 끌고가기 시작한다.
「아버지! 또 날 버릴 셈이야아!?」
필사적으로 손을 뻗지만, 닿을 리가 없다.
「아버지, 나는 필요 없는 애야?」
결사적으로 호소하지만, 두터운 문이 차단한다.
 
 
「놓아 이거! 놓아주세요! 저는 아직 아버지한테 할 얘기가」
「우리 일이 이런 거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라고 말한 검은 양복의 얼굴을, 어디선가 날아온 에나멜 하이힐이 덮쳤다. 달려온 미사토가, 그 기세 그대로 뒤돌려날아차기로 냅다 날려 버렸다.
나머지 한 명은 턱에 왼팔의 석고붕대를 갖다대고,
「내 성격이 이 모양이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급소에 무릎차기를 먹여줬다.
아~이고 아프겠다~! 체육시간 때 신지가 두 번 정도 맞았던 적이 있는데, 정말 형용하기 어려운 아픔이었지. 숨이 턱 막힌다고나 할까, 허리가 부서지는 것 같다고 할까.
「…미사토씨. 너무하셨어요」
동감.
「에? 아, 아니. 그게. 왜냐면, 신쨩, 뭔가 필사적이었지. …그래서, 무슨 큰일 났나 싶어서…」
신지의 탄식에, 미사토가 상처받았다는 듯한 얼굴이다.
마음은 기쁘지만…. 이라며 몸을 수그린 신지가, 하이힐을 주워서 다시 신기 편하게 바닥에 놓아 주었다.
애초에 나는 원래 신쨩을 혼내러 왔던 거야. 그런데도 구해준 건데…. 라는 둥 뭐라는 둥, 미사토가 중얼중얼 궁시렁거린다. …다 큰 어른이 양손 검지를 마주치면서 투덜대고 그러지 좀 마. 소름 끼쳐.
 
「저기…, 괜찮으세요?」
몸을 수그린 자세 그대로 다가간 신지가, 급소를 가격당한 쪽의 허리를 두드려 준다.
「우리 미사토씨 때문에 죄송합니다. 분별없이 행동하게 내버려둬서 송구합니다」
「신쨩, 그런 거 그냥 대충 내버려 둬」
아마 창피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미사토가 신지를 잡아끌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정말로 죄송합니다~아. 자~알 타일러 두겠습니다~. 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신지의 입을 미사토가 틀어막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러고 보니, 신지. 아빠한테 무슨 말 하려고 하지 않았어?』
에? 잊어버렸나? …뭐, 그래.
 

****
 

신지의 행동거지는 밝았지만, 마음은 고민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말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는 걸.
놀라웠던 것은, 욱여넣듯이 미사토의 쿠페에 동승했던 아스카가 그대로 맨션 방까지 따라 올라온 것이었다. 이런 시간에 집에 들어오다니. 오늘 밤은 히카리네에서 묵을 생각이 없구나.
분명, 칠드런에서 잘린 신지가 신경쓰이겠지. 아스카에게도 생각 밖의 사태였을 거야. 그렇다고 지금으로선 말을 걸 수도 없겠지. 중간중간 신지의 기색을 살필 뿐,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니.
레이는 평소 그대로고.
덕분에 혼자 텐션을 올려보려 애쓰는 미사토만 붕 떴다. 안쓰러운 걸 넘어서 뭐랄까, 꼴불견이더라.
 
일찌감치 자기 방에 들어간 신지가 미닫이문을 닫았다. 문틈을 최소한 살짝만 열어놓은 것이 애처롭다.
 
♪♪♪♪♪♪… ♪♪♪♪♪♪… ♪♪♪♪♪♪…
침대에 드러누워 알전구를 올려다보는 신지의 귀에, 휴대전화 착신음.
♪♪♪♪♪♪… ♪♪♪♪♪♪… ♪♪♪♪♪♪… ♪♪♪♪♪♪…
느릿느릿 손을 뻗쳐 돌아누우면서 통화 버튼을 누른다.
 
≪신지냐? 파일럿 때려쳤다는 게 진짜야?≫
아니 바보켄스케!? 이 왕바보가! 지금은 이 나조차 뭐라 말을 못 꺼내고 있는데!
「…여전히 귀가 밝구나」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지는 실소를 흘린 것 같았다.
≪……진짜였어?≫
「그런 말, 하면 못 써…」
≪야, 신지. 네가 좀 미사토씨한테 부탁해 주라. 나한테 파일럿 시켜달라고 말야≫
「전에 말했잖아. 가족들이 걱정할 테니까, 그러지 않는 게 좋다고」
≪도대체 왜! 시발…, 토우지까지 에바를 탔는데, 나는! …≫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회선이 두절되어서, 틀림없이 신지가 끊은 줄 알았는데.
 ≪ 이 전화는 도청됩니다. 보안유지를 위해 회선을 도절했습니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
츠ー. 하는 불통음.

버튼을 눌러 통화를 종료한 신지가, 떨어뜨리듯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

 ……

 
 …바보켄스케 때문에 말을 걸기 어렵다니, 어이가 없네…….
 

 … …

「…정말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거든」
『신지?』
「에바를 타지 않게 되어서, 기쁜지, 슬픈지」

「이제 더는 그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아도 되고, 그런 무서운 생각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자신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왠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조차 꺼려져서, 그저 듣기만 하련다.
신지가 지금 입밖에 내는 말은, 스스로의 생각을 반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만, 누가 들어 주었으면 할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그건 아마, 내가 무엇을 위해 에바를 타는지,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인 거 같아」
…엥?
신지는, 아빠에게 칭찬받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지 않았어…?
 
「…타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부터 눈치챘던 거야. …내가 생각했던 건, 태워진 것에 대한 변명에 불과했다는 걸」
신지가 다시 똑바로 눕는다. 올려다보이는 알전구가, 어쩐지 울적하다.
「내가 찾았어야 하는 건, 스스로 타기 위한 동기였던 거야」
째려보는 것처럼 시야가 가늘어졌다. 도대체 저 알전구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
 
「다른 인간에게는 무리니까. 라고 아버지가 그랬지」
 
「미사토씨는 그런 마음으로 타는 건 민폐라고 그럤고」
 
「아스카는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해 탄다고 그랬어」
 
「아야나미는 끈이니까 탄다고 그랬고」
 
「켄스케는 동경하고 있다고 그랬어」
 
「토우지는…, 물어보질 못했네…」
 
  …  「나는, 무엇을 위해 타야 되는 걸까?」
 

 ……
신지의 독백은 하염없이,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점차,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야 신지! 제대로 환복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아무리 1년 내내 여름이라도 이러고 자면 감기 들어.
야아~!
 

잠깐!! 방금 삐걱 하는 소리, 뭐지? 복도? 누가 있어! 왜 나 눈치를 못 챘지!?
그런가! 바보켄스케의 전화에 신경이 팔렸던 사이에 다가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살금살금 발걸음이 멀어져 갔다.
…보폭으로 볼 때, 미사토 체격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장교인 미사토가 마음먹으면 기척을 죽이는 것 따위 일도 아니겠지.
레이는, 애초에 그럴 리가 없고.
그렇다면, 남는 건 물론 아스카.
도대체 저애는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와서, 무슨 생각을 하며 떠난 걸까?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엄연히 실적을 가진 신지가 단칼에 잘렸다는 소리를 듣고, 저애도 분명 번민했으리라는 것. 자신들의 입장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이번에 재차 실감하지 않았을까.
그랬기에,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신지의 방 앞까지 왔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냥 가 버린 것일까. 여기까지 와선 주눅이 들다니,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이름에 먹칠이야?

으으응, 그게 아니겠지.
만약 미닫이 너머로 신지의 말을 들었다면, 저애 나름 생각하게 된 게 있겠지. 그래서 물러난 것이라면, 그건 도망친 게 아니야.
…아스카. 너, 실은 생각하고 있었구나. 에바라던가 칠드런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제외한 자신을 마주보려고 했구나. 그랬기에 거기서 물러날 수 있었던 거야.
네가 어떤 답을 찾아냈는지, 아니면 답을 찾는 것을 서두르지 않기를 선택했는지, 그건 알 수 없어.
하지만 이제는, 만약 싱크로율이 제로가 되어도 너는 망가지지 않을 거라고, 그것만은 알 수 있어.
 
…기쁘네. 너무 기뻐.
 

****
 

꽃다발을 안고, 팬시한 무늬의 종이가방을 들고.
 …
토우지의 뒤를 따라 병실로 들어가려다, 신지가 넘어질 뻔했다. 문간에 손을 짚고, 가볍게 심호흡. 그런 줄도 모르고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들어간 토우지의 그림자 사이로 여자애의 모습이 엿보여, 신지가 마른침을 삼켰다.
「사쿠라, 오늘 몸상태는 좀 어떻노」
「뭐꼬, 오빠야가」
 
단서 없는 답을 찾던 신지는, 참고사례를 구하기 위해 토우지에게 에바에 탄 이유를 물었다.
「인제는 인사도 옳게 안 하나」
「하도 봐가 지겹다」
여동생의 병원을 옮기기 위해. 라는 답을 들은 신지에게, 병문안을 제안한 것은 나.
『저거 사이 안 좋은 건가?』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어라? 손님 있나?」
「그랴. 내 친구, 이카리 신지다」
침대에 누웠던 여자애가 용을 써가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것을 말없이 제지한 토우지가 리클라이닝을 일으켜 주었다.
「이카리라 카문…. 혹시, 오빠야가 줘팼다 카던, 로봇 파일럿 그 사람?」
「그…, 그렇제잉」
안 닮은 남매네. 뭐어, 여동생 입장에서는 안 닮아서 다행이겠지만. …토우지의 여동생이라니, 살짝 상상이 폭주했었는데.
어떻게든 침대 곁까지 걸어간 신지가 간신히 웃어 보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카리 신지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스즈하라 사쿠라예요. 우리 오빠야가 폐를 끼치가, 정말로 죄송합니다」
토우지의 여동생이 머리를 숙였다. 말투의 진지함에 비해 동작이 작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허리를 숙이면 완전히 폭 엎드리는 자세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겠지. …그러고 보니, 반신불수라고 그랬던가.
「다 지나간 일이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교사 뒷편으로 불러내 때리다니. 남자들이란 하여간 바보들이야. 불러내는 쪽도 불러내는 쪽이지만, 부른다고 가는 쪽은 또 뭐야.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매듭을 못 짓겠는다는 게, 도대체가…?
「아, 맞다. 이거. 위문선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신지가 꽃다발과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종이가방 속에는 히카리의 지도를 받아 손수 만든 머핀이 들었다.
「와아! 고마워요!」
받아든 꽃다발에 얼굴을 묻다시피해서 향기를 즐긴다. 정말 기쁜가 보네.
「진짜 좋다♪ 우리 오빠야는 잠오는 인간이라가, 세련된 병문안 따위 기대도 몬 해요」
「뭐라카노」
「뭐라카긴」
눈싸움하듯이 서로 노려본다. 뭐래야 하나, 소학생하고 같은 레벨로 겨루고 그러지 말지 좀….
『…역시 사이 안 좋은 거 아냐?』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모처럼이니까, 꽃다발 시들지 않게 해 줄게」
손을 내밀어 꽃다발을 돌려받은 신지가, 허둥지둥 병실을 나선다. …뭐야, 신지도 불편했던 건가?
 
간호사 대기실에서 화병과 전정가위를 받아왔다.
개수대의 물을 틀고, 꽃을 씻어내면서 가지를 친다.
꽃집 주인에게 맡겨서 만든 꽃다발. 여러가지 꽃이 섞여 있는데, 이 선명한 노란색은 란타나lantana인가.
  일체화된 꽃잎이, 마치 직소퍼즐 조각 같네….

 
찬물에 손을 담근 채, 신지의 움직임이 그쳤다.
 …
『…왜 그래?』
정신을 차린 듯한 신지가, 전정가위의 물기를 털어내고 선반에 올려놓았다.

『…사쿠라쨩의 다리, 진짜 꼼짝도 안 했었지』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 죄책감을 참을 수 없어서 그랬구나.
『네 탓이 아니야. …게다가, 토우지도 사과할 필요 없다고 그랬잖아』
『그건, …그렇지만』
물을 잘 빨아올리도록 적신 꽃다발을 화병에 꽂았다.
『…내가 좀더 정신차리고 보았다면, 막을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하면』
『그쯤 해, 이카리 신지』
꽃다발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내밀어진 손이, 딱 멎었다.
『아까 그애 웃는 얼굴 봤지. 열심히 수난과 싸우고 있잖아. 그런데 네가 피해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봐. 어떻게 되겠어』
「피해자라고? 내가!?」
야 야, 목소리로 나왔잖아.
『네가 여기서 그렇게 굴면, 상대방을 상처입혀서 상처입은 피해자라는 게 되어 버리는 거야. 너는 사과해야 기분이 풀릴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봤자 그애의 다리는 낫지 않아』

 ……
   …
『…그렇구나』
신지가 화병을 품에 안았다. 병실로 돌아갈 결심이 선 것일까.
 
『아, 잠깐 있어 봐. 10엔짜리 동전 있어?』
『있긴 한데. …왜?』
『모처럼의 생화잖아. 오래도록 싱싱한 게 좋겠지?』
 
병실로 돌아와 보니, 머핀이 든 종이가방을 둘러싸고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바로 먹어치우자는 토우지와, 신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주장하는 여동생 사이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러니까, 소학생하고 같은 레벨에서 겨루지 말라고. 애초에 너, 머핀 만들 때 동석해서 실컷 먹었잖아. 그것도 히카리가 만든 걸로….
신지가 창가에 화병을 내려놓았다.
「와아♪ 진짜 예쁘다.
 역시 세계를 지키는 로봇의 파일럿쯤 되면 센스가 좋네요.
 우리 오빠야하고는 아주 천지 차이네」
얼라려? 신지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시선이 토우지를 향한다.
이쪽의 시선을 받은 토우지는, 시선을 돌려 외면해 버렸다.
…그렇구나. 너, 여동생한테 이야기 안 했구나.
걱정 끼치고 싶지 않고, 부담 주고 싶지 않으니까. …너, 다른 건 몰라도 오빠로서는 합격이야.
 
또 와 줘요. 라는 토우지의 여동생에게, 다음 번엔 더 많이 데려올게. 라고 약속하고, 병실을 뒤로했다.
 
신지는, 뭔가 얻은 바 있었던 것 같다. 왠지 발걸음이 확고했다.
 

****
 

미사토가 패스코드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케이지까지 오는 것은 간단했다.
이호기도 영호기도 탑승이 끝나고,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이호기의 렌즈 초점이 변한 것은, 캣워크를 달리는 신지를 포착해서겠지.
≪너, 왜 여기…≫
에바의 외부스피커는 이 거리에서는 천둥소리 같다. 무심코 귀를 틀어막은 신지의 발이 멈춘다.
   ≪ 영호기 발진, 초장거리 사격 준비 ≫
그 폭음이, 케이지 스피커에 가로막혔다.
   ≪ 이호기, 아스카는, 백업으로서 발진 준비! ≫
 ≪백업? 내가? 영호기의?≫
외부 스피커 음량 좀 낮춰. 이러다 신지 고막 찢어지겠어.
   ≪ 그래. 후방으로 돌아 ≫
귀를 누른 신지가, 빨리 케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차 달려나간다.
≪야! 바보신지. 도망치는 거야!≫
라는 음파가 신지의 등에 날아와 꽂히는 사이, 영호기가 발진했다.
 
≪네가 그런 데서 얼쩡거리고 있으니까, 내 차례를 빼앗겨 버렸잖아!≫
결국 케이지를 탈출하지 못한 채, 이렇게 아스카의 화풀이 대상으로 찍혔다.
「나 때문이 아닌 거 같은데에…」
≪뭐라 그랬어!?≫
때려박는 듯한 소리의 폭력에, 신지의 전신에 소름이 끼친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왜 네가 여기 와 있는 거야≫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는 아스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치만, 사도가 오고 있잖아?」
≪그래서? 걱정되어서 왔다는 거야?≫
응. 고개를 끄덕인 신지가 난간에 비친 이호기를 바라보았다.
≪하아. 너 같은 거한테 걱정을 다 받고, 나도 죽을 때가 다 됐네~≫

「그래도…」
≪뭐?≫
이런 작은 중얼거림을 용케도 잡아내는구나. 에바의 외부 마이크. 그 정도로 고성능이었나…?
「걱정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올려다보는 시선은 똑바로 이호기를 마주보고, 흔들림 없다. 붉은 거체가, 기분 탓인지 멈칫한 것처럼 보였다.
 …
 
아스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아주 흥미가 있지만, 그럴 겨를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그 빛이, 하필이면 신지에게 쏟아져내린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지를 비춘 빛은, 몸의 표면에서 풀려나가고, 가느다란 철사처럼 변해 침입해 들어온다.
아픔은 없다. 아픔은 없지만, 자신의 껍질이 억지로 벗겨지는 듯한 불쾌감, 마음이 직접 느끼고 있는 걸까?
온몸의 모공을 통하여 침입한 철사는 몸속을 헤집으면서 중심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모든 감각이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그건 육체적 의미의 감각이 아니야.
 
   ≪ 적의 지향성 무기인가? ≫
    ≪ 아닙니다. 열에너지 반응 없음 ≫
주위의 목소리가 멀다.
    ≪ 영호기에 이상 없음. 공격수단은 아닌 듯함 ≫
   ≪ 도대체 사도는 무엇을 하는 거지? ≫
난감하네. 신지가 공격받고 있다는 걸, 발령소가 인식을 못 하잖아.
 
…어둠 가운데 질러 들어오는 빛줄기. 압박과 개방. 아직 열리지 않는 눈꺼풀 위로 덮쳐드는 폭력적인 빛의 소용돌이. 주위에서 사라져 가는 온기. …빼앗겨버린 안녕.
느닷없이 떠오른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고통. 낙원에서 추방되었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라는 건가?
…뭐야 이거? 사도는 어째서 이런 걸…
 
 ≪ 니들 다 뭘 하고 자빠졌어! 여기야, 여기! 케이지의 신지가 공격당했다고!! ≫
   ≪ 뭐라고! ≫
   ≪ 에바에 타지 않은. 무방비한 파일럿을 노렸다는 건가!? ≫
 
다음으로 들이밀어진 것은, 유리 실린더 속으로 사라지는 여성의 모습. 내려다보는 창문을 짓누르는 손은 유아의 것. …엄모니? 엄모니가 뭐야. 설마 어머니? 방금 그게, 신지의 엄마야!?
버리고 떠나가는 등. …저건 신지의 아빠고?
마누라 잡아먹은 놈의 자식이라고, 힐책하는 목소리.
 
…나, 신지의 과거를 보고 있는 거야?
 
    ≪ 사도가 심리공격? 설마, 사도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가? ≫
   ≪ 광선의 분석은!? ≫
    ≪ 가시광선 파장의 에너지파입니다. AT필드에 가까운 것이지만, 상세한 것은 불명입니다 ≫
 
모래 피라미드를 걷어차 무너뜨린, 발.
3년 전의 성묘. 도망쳐버리고 난 뒤의 께름칙함에, 내 마음마저 북받친다.
처음으로 제3신동경시에 왔을 때의 기억은, 눈깔사탕을 빨듯이 특히 공들여 재현되었다.
토우지에게 맞은, 아픔.
엔트리 플러그에 두 사람을 태웠을 때의, 불쾌감.
 
 ≪ 염병들 하네…. 에바 이호기, 발진합니다! ≫
    ≪ 아스카! ≫
   ≪ 닥치고 포지트론 라이플이나 내놔! ≫
 
레이와 이야기하는, 신지네 아빠.
 미사토가 만든 카레의, 맛.
  레이에게 얻어맞은, 놀라움.
 하전입자포의, 열.
물에 빠졌을 때의, 괴로움.
 제12사도에게 삼켜졌을 때의, 불안감.
 
쓸모없는 것을 골라내듯이, 신지의 기억을 지저분하게 탐식하던 빛의 바늘이, 깊숙한 아랫목에 잠겨 있던 먹이를 건드린, 그 때였다.
 
    ≪ 제7케이지에서 에바 초호기 기동!! ≫
   ≪ 말도 안 돼! 신지군은!? ≫
갑자기 덮쳐온 진동에, 신지의 눈꺼풀이 느즈러진다.
    ≪ 제7케이지입니다. 확인 완료했습니다 ≫
   ≪ 초호기에 탄 거야? ≫
눈 앞에…, 3개의 기둥? …보라색?
    ≪ 초호기는 무인입니다. 엔트리 플러그 삽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
    ≪ 좌완 구속구를 뜯어내고 있습니다! ≫
아니, 이건 초호기의 손가락!? 손바닥을 캣워크에 내던지듯이 신지에게 손을 뻗친 거야? 위험하잖아. 까딱 잘못하다가 신지를 뭉개버릴 뻔 했다고요.
    ≪ 설마, 있을 수 없어! 정지신호 플러그가 삽입되어 있는데. 움직일 리가 없어! ≫
    ≪ 펄스 소실! 정지신호, 거절됩니다! ≫
 
…확실히, 사도의 빛의 압력은 줄었는데….
 
 
하얀 어둠 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 앞에서 걸어가는, 작은 사람 형체.
우는 것은, 어린 남자애. …그것이 신지임을, 바로 알았다.
눈앞까지 걸어가, 쭈그려 앉았다.
「욘~석. 남자애가 그렇게 질질 짜면 못 써」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우느라 퉁퉁 부은 눈을 들어 올려다본다.
「…누나는, 누구야?」
「나? 나는 아스카. 소류 아스카 랭글리」
시야 가장자리에, 익숙한 색의 머리칼이 흐르는 것을 보았기에, 주저없이 단언했다.
 
「아스카… 누나?」
「그래 맞아. 그러는 너는 누구야?」
물론, 누군지 알지만.
「이카리… 이카리 신지」
「그렇구나. 그래서, 신지는 왜 울고 있어?」
일단 그쳤던 눈물이, 다시 또르르…
「나… 필요 없는 애야…」
불붙은 듯이 운다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걸까. 아무 것도 거리끼지 않고, 이렇게 울 수 있었다면, 나도 좀 편해졌을지도 몰라.
「욘~석, 질질 짜지 말래도」
마음까지 채운다. 그런 기세로, 힘껏 끌어안았다. 내가 울음을 참으며 살던 시절, 부질없는 위로의 말들보다도, 이렇게 억지로라도 안아줄 사람이 있었다면, …매달려서라도 안기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훨씬 솔직해질 수 있었을 거야.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준다. 이런 짓 누구에게도 해준 적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

「신지처럼 버려진 여자애하고 만났던 적이 있는데, 그애는 울지 않았어」

「…진짜로?」
「그럼. 나는, 거짓말 하지 않아」
 
다름 아닌, 나 자신이야.
「…」
훌쩍훌쩍, 열심히 콧물을 들이킨다.
「그애는, 강한 애인가 봐」
「…그런 걸까? 너무 약해서 울지도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
부드럽게 꼬마신지를 품에서 떼어내 보니, 좀전까지 울던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멍해져 있었다.
「…약한데, 안 울어?」
「아마도」

그 작은 머리통으로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생각을 굴리고 있을까. 필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아니, 어리다고 업수이 여길 수 있을까. 나도 어려서부터 고민했고, 고뇌했다. 어린애니까 걱정이 없다. 어린애니까 천진하다. 그 따위 말들은 어렸을 적을 잊어버린 어른들의 오만일 뿐.

「…그애하고, 만나고 싶어」
「그래? …그러게. 신지가 울지 않게 되면, 만나게 될 거야」
거울이 없어도 지금 내 눈매가 상냥함을 알겠다.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울지 않게, 되면?」
「그래, 분명히」
북북 눈가를 닦아 눈물자국을 지우려 한다.
「나…, 힘낼 거야」
「그래? 그럼, 언젠가 꼭 만나겠네」

어라? 하얀 어둠이 희미해…진다?
「…벌써 시간이 다 되었나」
「아스카 누나, 이제 헤어지는 거야…?」
일어선 나를 올려다보는 신지의 눈에, 다시 눈물.
「욘~석, 더이상 안 운다고 그래놓곤?」
그치지 않는 눈물을, 열심히 닦아내고 있다.
「그래그래. 울지 말고 제대로 앞을 보면서 살다 보면, 다시 만날 거야」
마구마구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활짝 웃어 주었다.
「또 보자, 신지」
「응, 또 봐. 아스카 누나」
꼬마신지가, 무리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가속기, 동조 스타트 ≫
돌아온 시야가 좁고, 끔찍하게 희미하다. 신지는 아직 의식을 못 되찾았고.
   ≪ 전압상승 중, 가압역 돌입 ≫
캣워크와 반대편, 케이지 안쪽에, 동그랗게 오려낸 듯한 어둠이 있었다.
    ≪ 강제수속기, 작동 ≫   
    ≪ 지구자전 및 중력오차 수정 0.03 ≫
LCL과 공기, 고정되지 않은 가벼운 물건들이, 그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 초전도 유도시스템 가동 중 ≫
    ≪ 약실 내부 압력 최대 ≫
신지는 무언가에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머리카락 한 올의 살랑댐도 없다.
    ≪ 최종 안전장치, 해제 ≫
    ≪ 해제 확인 ≫   
어둠 속으로 처박힌 초호기의 팔이,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움켜쥐었다.
    ≪ 모두 발사위치 ≫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것 너머로 보이는 것은, …달? 그럼, 저 어둠은 우주공간이고, 빛은 사도? 에바는 이런 짓도 할 수 있는 거야!?
­   ≪ 발사! ≫
­ ≪ 받아라ーーーー!! ≫
들릴 리 없는 파쇄음을 신지의 귀에 남기고, 사도의 코어가 찌부러진다.
불쾌한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울리며, 초호기가 어둠 속에서 오른팔을 뽑아냈다.
도려내듯이 비튼 손끝은 뽑아냈을 때의 형태 그대로. 마치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는 듯이 떨고 있어, 왠지 좀 무섭다.
 
증발하는 웅덩이처럼 오그라들어가는 어둠 속에서, 사도의 잔해가 청백색 광선에 꿰뚫렸다.
 
계속 つづく
2007.08.15 PUBLISHED
2007.08.22 REVISED
2021.11.11 TRANSLATED
2021.11.28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アスカのアスカによるアスカのための補完 第拾六話



란타나는 수국(자양화)과 생긴 것이 매우 비슷합니다. 하지만 수국은 층층나무목 수국과이고, 란타나는 꿀풀목 마편초과라서 계통상으로는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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