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게시물

대담: 안노 히데아키 × 노비 노비타

2008년 3월 31일 월요일

『초호기의 초호기에 의한 초호기를 위한 보완』 제삼화


몸에 남은 물방울을 대강 닦아내고, 석고붕대에 두른 비닐을 뜯어낸다. 안대는 벗었기에 이쪽은 수고를 덜었다.
기상과 취침 때 샤워를 하게 된 것은 간호사의 조언에 근거한다. 청결한 편이 부상의 치유가 빠르다고 했다.
개방성 골절로 인한 외상은 이미 완치되어 치유를 위한 필요는 더이상 없지만, 습관으로서 몸에 배었다.
 
오늘은 이카리군의 영호기 기동실험이 있다.
초호기 파일럿인 내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지켜보고 싶다.
 
머리칼에 남은 습기를 수건에 흡수시키며, 아코디언커튼을 연다.
시야 구석에 위화감을 느끼고 시선을 돌리니, 거기에 이카리군이 있었다.
…왜지?
「아니, 저기…」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다는 것은 나를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달리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카리군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딱히…」
「…뭐야?」
뒤로 물러나는 이카리군을 뒤쫓듯이 발걸음을 내딛은 것은, 기뻐서 그랬던 것 같다.
더욱 물러난 이카리군이 발을 헛디디며, 넘어지지 않으려다 오히려 그 반동으로 엎어졌다.
「…켈록」
바닥에 떠밀린 충격으로, 폐 속의 공기가 쥐어짜였다.
 
「…크읏」
잃어버린 공기를 찾아 숨을 들이쉬자, 흉부가 심하게 아프다. 유합되고 있던 오른쪽 제7늑골에서 제9늑골까지가 모두 어긋났다.
고통을 무시하려 하는데, 잘 안 된다. 우흉부에 실린 하중으로 환부가 압박되기 때문이라고 추측. 확인해 보니, 이카리군의 왼손이 올려져 있다.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은, 기쁜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는 통각 때문에 의식이 끊길지도 모른다.
「…좀 비켜… 줄 래?」
왼손만 치워 주면 충분한데, 이카리군은 펄쩍 뛰며 몸이 통째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것이 슬프다고 느끼는 마음이, 통각을 무의식 영역 아래로 내쫓는 것을 거든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얄궂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형용할 수 있다.
「…」
일어나서 침대 머리맡으로 향한다. 이렇게 갈빗대가 다 나가서야 별 의미도 없지만, 코르셋을 착용한다.
이대로 의복을 착용해야 할까, 어떨까. 침대 위에서 속옷을 집어드는 동작 도중에, 이카리군의 시선이 느껴졌다.
「…뭐야?」
얼굴을 돌리자, 이카리군이 눈을 피한다.
「에, 아니, 나는… 그…」
흉부의 통증을 무시할 수 없다. 통각을 배제한 상태인데도.
「나는, 부, 부탁을 맡아서…, 그…, 뭐였더라…」
흘끗흘끗 이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치면 다른 데로 돌아간다.
…이카리군은, 나를 피하고 있는 걸까?
「카드, 카드 새로 나왔으니까, 갖다 주라고」
카드? 네르프 ID카드? 갱신시기는 아직 아닐 텐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딱히 일부러 그런 게…」
손에 들었던 속옷을 침대에 떨어뜨리고, 이카리군 쪽으로 걸어간다.
「리츠코씨가 건네주는 걸 잊어버리셨다고…. 저, 정말이야. 게다가 초인종 울렸는데 아무도 없고, 문은…, 열려 있었고…. 그게…」
「…이카리군」
그 눈앞에 서자, 놀란 이카리군이 물러서다 서랍장에 부딪었다. 또 엎어지려나 싶어 자세를 취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왜… 왜?」
「…카드」
양손을 내밀자, 심하게 당황한 모습으로 가방을 뒤진다.
「미안…」
떠넘기듯이 ID카드를 건넨 이카리군이, 그대로 내 곁에서 뛰쳐나갔다. 고맙다고 말할 새도 없이.

문 닫히는, 소리. …그 울림이 몇 번이고 나를 괴롭힌다. 여기는 실내인데, 마치 내가 쫓겨난 것 같은 기분이다.
 
이카리군이 여기에 온것은, 아카기 박사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
카드를 주었으니까, 이제 용무는 없다.
당장이라도 떨어지고 싶어서, 저렇게 급하게 뛰쳐나갔다.
 
무릎에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않는다.
…가슴이 아프다. 아니, 정말로 아픈 것은 마음일 것이다. 몸의 통증이라면 어떻게든 대처할 텐데, 마음의 통증은 견뎌내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무섭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한다. 내 마음이 나를 깨뜨릴 것 같은 이 감각을, 달리 뭐라고 표현할까.
무릎에 떨어지는 눈물의 열기도 급속히 사라져서, 마치 나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았다.
 

***
 

 「엔트리, 스타트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등가치이며, 무한을 살 수 있는 사도는 시간에 정확하면서도 무관심하다. 세슘 원자의 진동을 지각하면서도, 자신에게 의미 없는 것이라고 무시할 수 있다.
에반게리온이었던 내게도, 시간이란 외계의 변화를 계측하기 위한 지표에 불과했다. ……그랬을 텐데.
  ≪ LCL, 전화 ≫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내가 이리도 발빠르게 컨트롤룸에 뛰어들어온 것인지.
의료부에서 처치를 받기 위해 소비한 시간은 심장박동으로 불과 4296회. 그런데도, 마치 마음을 얻은 이래 지금까지 흘렀던 모든 시간과 맞바꾼 것처럼 느껴졌다.
주관적 시간관념이 객관적 시간관념을 왜곡하여, 지금은 자신의 박동수마저 믿을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모니터 속의 이카리군을 본 순간, 두개골 속에서 뇌수가 공전하는 듯하던 이 감각이 가라앉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데도 왜 모니터 속의 이카리군과 시선을 마주칠 수 없는 것인지.
 「제1차, 접속 개시」
영호기 기동실험은 스케줄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컨트롤룸에는 아카기 박사와 이부키 중위. 그리고 다른 오퍼레이터들이 몇 명. 주로 대답하는 것은 안경을 쓴 남자 오퍼레이터. 이 사람 알고 있어. 휴가 중위.
카츠라기 대위가 벽에 기대 있어서, 그 옆에 가서 기댔다.
「어때, 신지군. 영호기의 엔트리 플러그는?」
아카기 박사의 음성에, 평소의 긴장된 느낌이 없다. 부드럽다기보다, 가냘프다.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눈 아래 그늘도 시커멓겠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이상한 기분이네요』
「위화감이 있다는 말일까?」
『아뇨, 그게, 아야나미의 냄새가 나는…』
안면에 혈류가 모이는 것을 느낀다. 뺨에 손을 대어 보니, 너무 뜨겁다.
…이것은 뭐지? 이것은 뭐지? 이것은 뭐지?
「어머어머, 레이가 부끄러워 하네. 귀~여~운 구석도 있잖~아♪」
귓가에서 중얼거린 카츠라기 대위가, 내 뺨을 찌른다.
…부끄러워? 이것이, 부끄럽다는 감각?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카츠라기 대위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렇겠지.
부끄러워…? 나, 왜 부끄러운 거지?
「응~, 소독약 냄새밖에 안 나는데」
코를 킁킁 소리를 내가며 냄새를 맡던 카츠라기 대위는, 뭔가 아쉬운 듯하다.
…냄새. 후각…인가.
 
 「라져. 그럼, 상호간 테스트, 세컨드 스테이지로 이행」
  「영호기, 제2차 콘택트에 들어갑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수십 배 이상의 능력을 가진 에반게리온에서, 유일하게 사람과 몇 배 정도밖에 능력차가 나지 않는 것이 후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의 이, 사람의 육체를 얻었을 때 소독약 냄새에 압도당한 것이. 두드러지게 감쇠하는 다른 오감 가운데, 상대적으로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모닉스 모두 정상위치」
   ≪ 제3차 접속을 개시 ≫
아까 바닥에 떠밀렸을 때, 이카리군의 냄새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도 느낄 수 없었으니,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가까워져야 할 것 같다. 방금 전 거의 코를 묻을 기세였던 카츠라기 대위처럼.
상대의 일부를 잠식하는 그것은, 퍼스널 스페이스를 파고드는 행위. 사도라면 AT필드 안쪽으로 녹아드는 행위. 하나가 되자는 유혹.
마음속들 들여다보인, …아니, 맡아진 것 같았다. 마음 속에 아무 것도 없음을 들킨 것 같았다. …그래서 부끄러웠던 건가?
 
 「A10신경 접속 개시」
  「하모닉스 레벨, 플러스 20」
『…뭐야 이거? 머릿속에 들어오는… 직접… 뭔가가…』
모니터 속의 이카리군이, 이마를 누르며 고개를 숙인다.
 『  ?    ?            …  … 아닌가…?』
 
날뛰는 영호기가 구속구를 잡아찢으려고 몸부림친다.
「왜 이래!」
노호성을 지른 카츠라기 대위가 콘솔을 향해 다가선다.
 ≪ 파일럿의 신경 펄스에 이상발생 ≫
  ≪펄스 역류≫
  「정신오염이 시작되었습니다!」
 「설마! 이 정도 플러그 심도에서 있을 수 없어」
 
내가 노란 에반게리온이었을 때, 딱 한 번 이카리 신지를 태웠던 적이 있다.
  「플러그가 아닙니다. 에바로부터의 침식입니다!」
기뻐서 다가가려다가, 그의 의식을 냅다 튕겨내 버렸다.
  「영호기, 제어 불능!」
그것이 슬퍼서 조금 날뛰기도 했다. 지금 이 영호기처럼.
 
 「전 회로 차단, 전원 커트!」
   ≪ 에바, 예비전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 여전히 가동 중 ≫
이쪽으로 다가오는 영호기를 마중하듯이, 창가로 다가간다.
「신지군은?」
 「회로 단선, 모니터할 수 없습니다!」
 「영호기가, 신지군을 거부하는 건가?」
 
「…왜?」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됩니다. 오토 이젝션, 작동하지 않습니다!」
 「또 같은 거야? 그 때처럼. 신지군을 집어삼키려는 거야?」
너는 이카리군을 신경쓰지도 않는데, 왜 그런 일을 하지?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무시하면 될 텐데.
 
「시끄럽다」고 말하는 듯, 영호기의 주먹이 날아든다. 여섯 번째 주먹질에 강화유리가 깨지고, 뺨이 얕게 그였다.
「레이, 내려와! 레이!」
 「영호기, 활동정지까지 앞으로 10, 9, 8, 7, 6, 5, 4, 3, 2, 1, 0!」
벽에 머리를 박아대던 영호기가, 힘을 잃고 퍽석 쓰러진다.
 「영호기, 활동을 정지했습니다」
「파일럿의 구출을 서둘러!」
카츠라기 대위의 명령을 가로막듯이, 내선 콜 착신음.
「뭐라고!」
내려친 수화기가 콘솔 위에서 튀어올라 떨어져 내렸다.
「미확인 비행물체…. 분명히 사도야. 리츠코, 초호기는?」
 「…, 380초 안에 준비할게」
「레이, 되겠니?」
「…문제 없습니다」
내 몸상태에 대한 보고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호기, 출격 준비!」
 

***
 

 『목표는 토노사와塔の沢 상공을 통과』
 『초호기, 발진 준비에 들어갑니다』
 『제1록볼트 제외』

『초호기 파일럿.
 해제 확인, 제대로 되었습니까?』
그 말에, 발진 절차를 따르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초호기의 감촉이 아닌, 스크린 너머 시야로 록볼트의 상태를 확인한다.
「…해제 확인」
 『라져. 제2구속구 제외』
초호기에 엔트리하면서, 처음으로 이 엔트리 플러그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했다. 그것은 어쩌면, 초호기 발진 준비 때문에 이카리군의 구출작업이 후순위로 밀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라져 ≫
  『목표는 아시노호 상공에 침입』
 『에바 초호기, 발진 준비 완료』
『발진!』
…?
「…카츠라기 대위」
『왜?』
통신창에 나타난 카츠라기 대위의 입가가 살짝 올라가 있다.
「…초호기의 사출 속도가」
            『조금 느리지. 조정할 수 있도록 개량했어』
『빨리 하라는 것도 아니고 느리게 해달리니 이 뭔』
아카기 박사의 중얼거림은, 거의 한숨이었다.
중력관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해서 플러그 수트 위로 코르셋을 감아 왔는데, 이 정도라면 없어도 되었을 것 같다.
…나, 때문에?
「…고마운…, 고맙습니다」
『에이, 인사 들을 만한 일 한 것도 없어』
왜 카츠라기 대위는 천만에요라고 말하지 않는 걸까.
 
  ≪ 목표 내부에 고에너지 반응! ≫
『뭐라고!?』
  ≪ 원주부를 가속, 수속합니다! ≫
 『설마!』
『안 돼!! 멈춰!』
 
지상에 나오기 직전. 손 뻗으면 사출구에 닿을 위치에서 캐터펄트가 멎는다.
올려다본 직사각형 하늘이, 다음 순간 빛의 격류로 가득 메워졌다.
 『 일단, 초호기 귀환… 』
         「…카츠라기 대위, 가겠습니다」
통신창 속. 이쪽을 바라본 카츠라기 대위가 나를 살핀다.
『레이…』
「…AT필드로 막겠습니다」
초호기에 대한 지배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지금의 출력이라면, 피탄경사를 가하는 것으로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네」
조금 시선을 옮긴 카츠라기 대위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출구 주변은 그을리고 녹아내리고 있다.
「…AT필드, 전개」
하전입자의 흐름 주위로 AT필드를 전개한다. 물이 흐르는 호스를 구부리는 감각…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모방하는 것은 쉽다.
작열하는 격류를 상공으로 흘려보내고, 사출구 부근을 확보한다. AT필드의 강도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통신창을 돌아보니, 눈꺼풀을 반쯤 닫은 카츠라기 대위가 있었다. 그것을 도끼눈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레이…. 너 또, 명령위반』
나도 모르게 올라온 왼손이 뺨을 감싼다. 석고붕대가 없었으면 오른손도 그랬을 것이다. 상공에서 하전입자가 날뛰는 것은, AT필드의 제어가 느슨해졌기 때문.
왠지 자꾸 벗어나는 시선을, 간신히 카츠라기 대위에게 고정시켰다.
「…상의, 했습니다」
노력하고 있다는 거지…. 라며 카츠라기 대위가 한숨을 쉬었다.
『좋아, 어디 해 봐. 초호기 올려보내!』
재시동한 캐터펄트가, 초호기의 어깨 부근까지 지상에 끌어올리고 멈춘다. 사출구 주변이 녹아내려서 그 이상은 무리일 것이다. 연장되어 전개되어야 할 가이드레일도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최종 안전장치 해제! 에반게리온 초호기, 리프트 오프』
록볼트가 풀린 것을 보고, 어깨너머로 구속대 프레임을 잡는다. 턱걸이를 하는 요령으로 신체를 들어올려, 한 바퀴 돌아 지표에 무릎으로 착지한다. 예전에 마트리엘과 대치했을 때, 빨간 에반게리온이 보여줬던 움직임.
올려다보이는 하전입자포의 격류 너머로, 푸른 정팔면체. 이 사람 알고 있어. 라미엘Ramiel, 제5사도.
지금 내 지배율로는 AT필드를 펼친 채 상대의 AT필드를 중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대로 하전입자포를 흘려넘기며 접근. 지근거리에서 AT필드 중화로 전환하고, 돌아들어가듯 고기동회피를 하면서 프로그레시브 나이프로 공격한다.
그렇게 결정하고 발을 내딛으려 할 때, 격벽이 열리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돌아보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AT필드는 마음의 벽이니까, 마음이 산만해지면 금방 무산된다.
정신이 팔려서 느슨해진 AT필드를 뚫고, 하전입자가 초호기의 왼쪽 등을 잡았다.
 ≪ 엄빌리컬 케이블, 단선! ≫
  ≪ 에바, 내부전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뭐라고!』
 ≪ 활동한계까지 앞으로 4분 53초 ≫
하전입자의 격류가 물리적 압력을 주면서 초호기를 떠민다.
육체가 타오르는 감각에 세를 얻은 것인지, 지금까지 무시해온 온갖 통증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주장을 시작했다.
과열하기 시작한 LCL의 기체교환비가 떨어져, 숨쉬기가 괴롭다.
팔방색. 사면초가. 수업에서 배웠던 말들이 떠오른다. …안 돼, 약한 생각 해서는.
『레이!』
왼손으로 뺨을 꼬집는다. 통증을 더할 뿐인 불합리한 행위인데, 통신창 속에서 열심히 호소하는 카츠라기 대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뺨의 통증을 발판 삼아, 의식의 핵을 확보. 어떻게든 AT필드를 고쳐 펼친다. 초호기 신체의 제어까지는 힘이 닿지 않아, 풀썩 쓰러진다.
초호기가 쓰러진 곳이 작은 산이라는 것을, 시야 가장자리에 비치는 낯익은 교량 덕분에 알았다. 이 산 알고 있어. 제일중학교 근처.
그 산기슭, 대피소로 이어지는 격벽을, 초호기의 오른손이 뭉개 놓았다. 초호기로부터의 피드백에, 석고붕대 안의 오른쪽 척골이 삐끗거린다.
 
『신지군과 레이의 반 친구들!?』
 『어째서 이런 곳에?』
스즈하라 토우지와 아이다 켄스케가, 격벽 바로 곁에 주저앉아 있다.
  ≪ 초호기 활동한계까지, 앞으로 3분 28초 ≫
『레이, 거기의 두 명을 조종석으로! 두 사람을 회수하고 일시후퇴, 다시 하면 돼』
  『허가 없이 민간인을 엔트리 플러그에 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제가 허가하겠습니다』
  『월권행위야! 카츠라기 대위!』
『에바는 현행명령으로 홀드, 그 사이 엔트리 플러그 배출, 서둘러!』
    「…안 됨, 싱크로를 끊으면 AT필드가 사라져. 그러니까 이대로…」
『레이…』
  ≪ 초호기 활동한계까지, 앞으로 3분 ≫
「…카츠라기 대위, 빨리」
카츠라기 대위의 몸짓과 함께, 엔트리 플러그가 배출된다.
「우윽……」
순간적으로 입가를 누르고, 치밀어 오르는 메스꺼움을 삼킨다. 사람의 육체에는 있을 수 없는 기관에서, 사람의 육체에는 있을 수 없는 기능의 감각. 내장이 뒤집히는 듯한 감촉에, 솟구치는 메스꺼움의 맛이 쓰다.
비강으로 호흡하면서 위화감을 없앤다. 에반게리온이었던 적이 있는 나에게, 이 감각은 고통도 불쾌도 아니어야 한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사람의 신체인 지금, 그 차이가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입 안에 고이는 타액에 쓴맛이 더해지면서, 내게서 집중력을 앗아가려 한다.
무엇보다도, 코어가 멀어져서, AT필드 유지가 너무 괴롭다.
 

  
「 뭐꼬, 물이가! 」
「 카메라, 카메라가… 」
뇌수에 몰려든 잡음 때문에, 다시 가까워졌을 코어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초호기 제어의 일부를 지탱하는 데 불과한 간접 싱크로가, 왜 이렇게 모든 것을 교란하는 것일까.
 ≪ 신경계통에 이상발생! ≫
 『 이물질을 2개나 플러그에 삽입했기 때문이야! 신경펄스에 노이즈가 섞여 있어 』
『지금이야, 후퇴해! 회수 경로는 34번, 산 동측으로 돌아서 후퇴해!』
물리적인 음성마저 내 집중력을 빼앗아서, 결국 AT필드가 도절되어 버렸다. 몰려든 하전입자가 오른쪽 허리 부분을 찌르지만, 산이 장애물이 되어서 초호기가 떠밀려가지는 않는다. 운동에너지로 낭비되지 않는 만큼, 아까보다 더 가열찬 느낌이다.
 ≪ 초호기, AT필드 소실 ≫
『맙소사…. 레이, 빨리 후퇴해!』
「아야나미, 도망가라잖아! 아야나미이!」
「…그래」
이제는 초호기 그 자체의 제어조차 어렵다.
하반신은 타오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팔힘만으로 초호기를 끌고 간다. 피드백으로 삐끗하는 오른쪽 척골의 통증이, 기어갈 때마다 스치는 오른쪽 늑골들의 통증이, 내 의식을 갉아먹는 것 같다.
 ≪ 초호기, 활동한계까지 앞으로 30초! 29, 27, 26, 25, ≫
『레이, 서둘러!』
회수 스폿까지 앞으로 조금.
 ≪ 14, 13, 12, 11, 10, 9, 8, 7, 6, 5, 4, 3, 2, 1! ≫
 
초호기가 활동을 정지하는 것에 끌려가듯이, 내 의식도 끊겼다.
 

***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얀 천장. 낯익은 의료부 병실.
들려오는 것은 벌레 우는 소리. 이 소리 알고 있어. 저녁매미. 곤충강 노린재목 매미충아목 매미상과 매미과 매미아과 저녁매미족 저녁매미속 저녁매미.
사람은, 사물을 분류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을 알았던 아야나미 레이는, 그 분류 가운데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고 책들을 뒤지기도 했다.
실망밖에 얻지 못한 것 같지만.
 
얼마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레이」
「…카츠라기 대위」
명령위반을 꾸짖으러 온 것일까? 문을 닫지도 않고,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온다.
「좀 더 쉬도록 해」
몸을 일으치려는 나를 말리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는다.
「몸 상태는 어때?」
「…문제 없습니다」
비강에서 내뱉는 것 같은 짧은 한숨.
「재출격이 결정되었어. 탈 거야?」
「…네」
다시 한 번 한숨. 이번에는 폐의 내용물을 모두 내뱉듯이 길다.
「그런 꼴을 당했는데, 어째서 너는 망설임 없이 그걸 타겠다고 그러니? 무섭지도 않아」
그 말을 듣고, 아까의 전투의 경과를 떠올린다. 잠드는 것보다 빠르게 의식을 잃었었다.
자신의 의도에 근거하지 않고 의식을 놓은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무섭습니다」
「그런데도, 탈 거야?」
왜 카츠라기 대위는 같은 걸 자꾸 물을까?
「…무서우니까, 탑니다」
「무서우니까?」
…네. 라고 대답한다.
카츠라기 대위는 왜 열려 있는 문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걸까?
「…나는 이미, 공포라는 걸 알아버렸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공포를 알지 않아도 되도록」
「…그거면 되는 거야?」
사람의 몸이 되어,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알았다. 자신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몸이 소중하다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실감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카츠라기 대위나 이카리군. 스즈하라 토우지에 아이다 켄스케. 호라키 히카리도. 아직 만나지 않은 이호기 파일럿까지. 그 사람의 소원이 이해된다.
…지금
그 사람의 소원이, 내 소원이 되었다.
나는, 지키고 싶다. 그 사람에게 받은 사명이 아니라, 자기 의사로서.
그 소원이, 내 모든 것.
「…나한테는, 달리 아무 것도 없는 걸」
「…」
눈썹꼬리를 치켜올렸던 카츠라기 대위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출발은 60분 후, 그때까지 식사를 마치고 케이지로 집합하도록」
「…라져」
고개를 숙인 채, 카츠라기 대위가 일어선다.
병실을 나가는 카츠라기 대위의 등이, 왠지 작아 보였다.
  

***
 

 
탑승용 리프트의 데크 위. 이 행성의 위성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
카츠라기 대위는 징발한 양전자포를 사용한 초장거리 저격작전을 발동했다.
사수와 그 호위, 이렇게 2기의 에반게리온이 출격하게 된 것 같다.
「…이카리군은, 왜 에반게리온에 타기로 했어?」
「…」
케이지에 집합했을 때도, 트레일러에서 플러그 수트로 갈아입을 때도, 이카리군은 아무 말도 건네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슬픔에 타격을 받는다.
엉겨붙는 침묵만이라도 쫓아내 버리고 싶어서, 생각하고 생각해서, 입에 올린 질문.
 …
물어보는 것조차 꺼리는 것인가 싶어, 무서워서 달아나고 싶어진 그 때였다.
「…」
조금 깊게 호흡하는 기척. 한숨이라고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나는, 아버지가 불러서 이 동네에 왔어. 아버지한테 내가 필요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어…」
무릎을 안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수그린다.
「그런데, 겁보라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어. 아버지에게 칭찬 받고 싶었는데, 실망시키는 것조차 무서워서, 어느 쪽도 결단하지 못했어.
 나는 겁쟁이야」
이카리군의 한숨은, 밤바람에 섞여 사라져 버린다.
「갑자기 에바를 타라 그래서 겁 먹은 날 대신해서, 아야나미가 타 주었고…. 그래서 나는 이제 필요없어졌을 텐데, 여기서 못 떠났어. …아니, 안 떠났어.
 교활해선, 무서운 꼴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도망치지 않은 거야」
이카리군의 이야기는 어려워서,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빠짐없이 들으려고 몸을 내밀었다.
「에바 파일럿이라는 것만으로 모두들 잘 해 주지만, 사실 나는 아야나미가 싸우는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비겁자야」
 
얼굴을 올린 이카리군이, 이쪽을 바라본다.
「토우지하고 켄스케를 지켜 줬지. 고마워」
끔찍하게 슬픈 미소인데, 그래도 그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 아야나미가 만들어준 거야」
이번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보게 되는……이카리군의 웃음.
「나는, 내 친구들을 지켜줄 수도 없어」
그 미소에 마주 웃어줄 뻔 했던 뺨이 굳는다.
나는, 이카리군의 미소에 응해줄 수 없다. 이카리군에게서 겹쳐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을 뿐.
이카리군을 보지만, 이카리군을 보지 않는다.
그것이, 이카리 사령관이 나를 볼 때의 눈과 같다고 느껴져, 등골이 서늘해진다. 마음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지켜주는 사람을 돕는 것 정도라면……, 」
그것을 이카리군이 알아챘다면,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내가 이카리 사령관에게 보여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듯이.
「이런 나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황급히 눈을 피한 나를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 이카리군이 일어선다.
「시간 됐네. 가자」
 

***
 

아야나미 레이가 영호기를 탄 것은 기동실험 이후 처음이니까, 심장박동 기준 524만 3618회 만이다. 나로서는 아주 처음이다.
영호기와의 기동실험에 실패한 이카리군을 태울 수는 없으니까, 내가 영호기, 이카리군이 초호기로 출격하게 되었다.
파일럿의 싱크로율이 기동지수에 턱걸이고, 상태 자체도 만신창이인 초호기는 기체동작이 안정되지 않는다. 정밀함을 요구하는 장거리 저격은 무리라 하여, 초호기가 호위역이다.
지금은 영호기의 전방에서 SSTO 바닥판을 들고 쭈그려 앉아 있다.
 
『제1차, 접속 개시!』
제7차 최종접속까지 그 짧은 시간에, 영호기의 마음에 닿는다.
「…그렇구나. 사람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싫었구나.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
오렌지색 수면과, 붉은 하늘.
「…그 기분 이해해. 나도 에반게리온이었으니까」
아무리 물결을 일으켜도, 번져나가지 않는 파문. 영호기의 희박한 마음. 그 굶주림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무리. 너의 마음은」
미안해. 나로선, 너에게 마음을 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적어도 사람을 따르자. 창조주의 명령에」
이카리군은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을, 당신에게 나누어 줄게. 이 기분, 당신에게 나누어 줄게」
이카리군을 받아들여 줘. …어때, 기분이 좋을까? 마음이 충만해질까?
 
 『 격철 젖혀! 』
볼트를 쥔 손맛에, 얇은 종이가 한 장 끼어든 것 같은 위화감.
엔트리 플러그 속에 나의, 아야나미 래이의 냄새가 옅어진 것을 깨달았다.
 『 제7차 최종접속, 전체 에너지, 포지트론 라이플로! 8, 7, 6… 』
그것이 영호기의 대답. 이라는 것일까.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 목표에 고에너지 반응! ≫
 ≪뭐라고!≫
십자선이….
  ≪ …3, 2, 1, ≫
 
­ …모였다.
『발사!』
 

***
 

「…이카리군」
오른손 석고붕대 때문에 구출 해치를 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 것인지,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이 눈에 비치는 모든 세계가 어지러이 난무하고, 세계 자체가 고장난 것처럼 나를 미혹한다.
「…괜찮아!?」
어둑한 엔트리 플러그 속, 좌석 위에 맺힌 초점, 그곳만 잘라낸 것처럼 선명하다.
이카리군.
늘어져 널부러진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옥죄이는 것 같다.
「…이카리군!」
어렴풋이 눈을 뜬 이카리군이, 머리를 일으킨다. …무사하다.
비강을 끓이는 이 감정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는 기분이 든다. 안도가, 모든 것을 풀어 버린다.
 

「아야나미…. 왜 울어」
나 때문에 다른 누가 상처받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것인 줄, 알지 못했다.
내가 상처입으면 괴로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소원이, 얼마나 독선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미안해요」
 
몸을 일으킨 이카리군이, 자기 어깨를 감싼다.
「사도의 공격을 받아들일 때는, 정말 무서웠어.
 아야나미는 저런 말도 안 되는 싸움을 해 왔구나」라며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곱다.
「사과해야 하는 건, 내 쪽이야. 아야나미는, 무섭지 않으니까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어」라며 시선을 떨군다.
「달리 아무 것도 없어서 싸울 수 있다니, 그 방을 몰랐으면, 그 말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왜 이카리군이 그 말을 알고 있지? 카츠라기 대위에게 들었나?
「그래서 나는, 무섭게 느껴지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헤드레스트headrest에 머리를 맡기고, 이카리군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더니, 무서운데 무섭지 않더라. …웃기지」
고개를 흔들었다. 이카리군의 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해하고 싶다.
「여기 왔더니, 에바에 탄다는 것만으로 모두들 날 신경써 줘.
 싸운 적도 없는데, 나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여기 오기 전과는 딴판이야.
 의미가 있는 건 나를 둘러싼 환경이고, 나 자신에게는 가치 따위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그게 어쩐지 잘 느껴지거든」이라며 눈썹꼬리를 내린 이카리군이, 나를 본다.
「나 오늘, 아야나미를 지켰어. 모두를 지키는 아야나미를.
 적어도 거기에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나한테 가치가 없어도, 내가 하는 일에 가치가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지금 그걸 알 수 있는 게 나 뿐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보여준 것은, 그 사람과 꼭 닮은 미소.
「그러니까, 에바를 타고 싸워 볼 생각이야」
기도를 타고 솟구친 열기가, 비강을 직격한다.
…눈물.
나, 또 울고 있어? …왜, 슬프지도 않은데 우는 거지?
「아야나미!?」
웃고 있던 이카리군이, 황급히 몸을 일으킨다. 걱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마저 기쁘다.
…기쁘다?
 
기쁘다고 자각했는데,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사람은, 기뻐도 눈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카리군의 미소가 아니더라도 기뻤던 것은, 굉장히 곤란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뻤던 것은, 분명히 이카리군을 통해서 겹쳐 보이는 그 사람 뿐만이 아니라, 이카리군 본인까지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던 것은, 이 이카리군이 웃어 주었고, 그 미소가 그 사람의 웃는 얼굴과 꼭 닮았기 때문 아닐까?
다만 그것이 왜 이렇게 기쁜 것인지는,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기분이 재촉하는 대로,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계속 つづく

2021.11.24 TRANSLATED
2021.12.03 TRANSLATION REVISED




원본 初号機の初号機による初号機のための補完 第参話



기어나오지 말라고 샴시엘젼을 조기에 끝내 버렸더니 라미엘전(!)에서 꾸역꾸역 기어나오는 무서운 아이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