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만드는 붉은 어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혈액이 비치니까 그렇게 보인다는 것도 알겠어. 하지만 그렇기에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아. 왠지 기분 나빠.
그 어둠 가운데, 나는 외톨이였다.
신지가 혼수상태인 지금,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말동무도 없다.
고독에 익숙해진 줄 알았다. 독일에 있던 시절, 감각박탈훈련이라는 게 있어서 캄캄한 대인실에 몇 시간씩 갇혀 있곤 했는데.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고독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훈련이라나.
쓰라린 건, 어째선지 지금의 나는 수면이 필요없는 것 같다는 것. 신지가 기절해도, 혼수상태에 빠져도, 나는 의식을 잃지 않고, 졸음도 오지 않는다.
유령이라면 이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쓰라린 건, 가장 가까이에서 신지의 고동이나 숨결이 느껴진다는 것. 마치, 자기 것처럼….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신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말을 걸어오지도 않아.
그냥 혼자인 것보다, 훨씬 더 고독해.
그러니까, 신지가 눈을 떴다는 것을 안 순간, 너무 기뻤어.
『정신이 들어?』
『…에 그러니까, 앙제씨…?』
뭐야 그게. 라고 받아칠 뻔하다가, 생각났다. 그렇게 이름을 댔었지, 내가.
『앙제. 라고 부르면 돼, 신지』
신지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가… 꿈이 아니었군요…』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그렇고,
『무서워할 필요 없어. 평소처럼 말해 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신지가, 끄덕 수긍했다. …그러니까 멀미 난다고.
『그래서…, 앙제는 도대체 뭐야?』
뭐죠…라?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말했잖아. 네 편이라고』
사실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는 별 의미도 없는 말이었는데. 일단은 방편이 되어준 셈이네.
그래도, 신지가 혼수상태인 동안, 나도 계속 생각했어.
결국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걸, 후회했어.
…무엇보다, 신지를 동정했어.
그러니까, 새삼스럽지만 그 말은, 내가 정말로 바라는 바.
『그렇게 말해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별로 의미 있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신지의 편이라는 것 뿐』
그럴까나. 라고 입밖에 내는 품이, 신지는 불만족스러운 것 같다. 세세한 것 신경쓰지 마. 나도 이해를 못 하겠으니까.
『그래서… 앙제는 뭘 할 수 있어?』
윽….
….
『앙제?』
『…조언. 이랄까…』
『그것 뿐…?』
….
아아…, 천사가 방을 가로지르는 게 보일 것 같아.
적어도 신지의 신체를 움직일 수만 있다면, 대신 싸워줄 수도 있을 텐데….
『…그렇구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신지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언이래 봤자 정작 긴급상황에서는 늦었고, 그렇지 않아도 도움이 되기는 할까 의심스럽겠지.
신지가 낙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슬퍼졌다. 흘릴 수 있는 눈물 한 방울도 없는데.
….
『들리고는, 있었어』
?
『앙제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 걱정하는 목소리』
신지의 오른손이 가슴 위에 놓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것이 너무 따스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무사히 여기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신지….
『고마워』
너… 그런 꼴을 당해 놓고, 나한테 고맙다는 말이 나와… …정말, 바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래. 이런 상태로는, 별로 대단한 일은 못하겠지만….
『잘 부탁할게』
그러고 나서, 향후의 일을 상담했다.
이 시점에서의 일을 나는 알지 못하고, 신지는 이제부터 알아가야 하니까, 대단한 것을 말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관심은 거의 신지의 과거사로 향했고, 신지는 의외로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신지, 어디 가는 거야? 외상 환자야 너, 일단은 다친 사람이라구.
….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의식 위로 올려서 신지에게 물어봤어야 하는 거였구나. 나도 모르게 내 의식 속에서 말을 완결지어버렸지 뭐야.
****
!
…!
『!☆&%◇¢♂℃∋¥←♀=∞▼*±〒?~!!』
내 절규가 신지의 뇌수를 관통했나 보다. 숙취에 시달리던 미사토도 딱 이렇게 눈살을 찌푸리고 그랬거든.
『…뭐, 뭐야?』
『이 바보신지! 젊은 처녀 앞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하필이면 신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기 앞에 섰던 것.
『…그래도, 쌀 수는 없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나중에 침착하게 생각했을 땐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 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당연한 게, 그… 있잖아? 남자의 그거, 그게 저게, 뭐라고 해야 해?
번민하고 있는데, 신지가 얼빠진 질문을 물어왔다.
『어라? 처녀라니, …앙제는 여자였어?』
….
『당연하잖아!! 이 천상을 흐르는 음악소리 같은 미성을 듣고도 몰랐어!』
이번에는 무슨 예감이라도 했는지, 신지가 귀를 막았다. 소용 없을 텐데, 뭐 기분이라도 낸다 그런 거야?
『그렇게 말해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없는 목소리로밖에 안 들려』
에?
『그으래애…?』
『그렇다고』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난리를 쳐서 그런가, 신지가 기분이 안 좋은 듯.
『…정말루?』
『거짓말을 왜 하겠어』
차분히 들어보니, 확실히 신지의 마음의 소리도 그런 식으로 들리네. 내가 가진 이미지로, 멋대로 신지 목소리로 바꿔 들었나 봐.
생각해 보니, 육성이 아니니까 성별에 좌우되지 않는 게 당연할 지도.
『…저기, 미안. 그렇게 들리는 줄 정말 몰랐어』
왠지, 내 자신이 기분 나쁠 정도로 솔직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런 솔직한 여자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아,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
뭔가 언짢은 듯 투덜투덜 중얼거리던 신지가 황급히 사과했다.
…그런가. 신지는 둘째치고, 나는 말로밖에 내 마음을 전할 수가 없어. 태도 같은 것을 보여줄 수도 없지. 그러니 나도 모르게 솔직해지는구나.
…그런데, 어쩐지 불쾌하지 않아.
『…앙제는, 여자였구나』
순간, 신지의 뺨에 확 열이 올랐다.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생각이 미쳤겠지.
무엇인가 의식하기 시작해서, 시선처리가 엉망진창.
내가 그걸 보이게 된다면 창피하듯이, 신지도 그걸 여자에게 보이면 창피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신지가 측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내가 좀 참았으면, 신지는 아무런 의식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이래서야 도움은 커녕 짐이잖아.
….
…….
….
아스카, 가는 거야.
『신지. 눈 감고도, 할 수 있어?』
『엑? 눈 감고, 뭐를?』
『뭐긴 뭐야, 여기서 할 일 말이지』
그 말에 이끌려, 신지가 화장실을 둘러본다. 예측한 범위 내라, 멀미는 안 나.
『하지만, …』
『거기까지』
뿌리치듯 딱 잘라 말한다. 이럴 때일수록 명쾌하게 처리해야지.
『너도 부끄럽겠지만, 나도 부끄러운 거야. 피차일반이라고』
무엇보다, 신지의 오감은 나도 느끼거든. 신지가 한계인 걸 잘 알고 있다. 고 할까, 용케도 여기까지 참았네. 감탄할 정도야.
『안 누고 살 수는 없잖아. 서로 참자고』
….
…….
『으, 응』
생리적 욕구에 굴복한 신지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몰랐네. 남자는 그럴 때 그걸 손으로 받치는구나….
역시 촉각까지 어찌할 수는 없어서, 어둠 속이라 오히려 생생히 느껴지는 손의 촉각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어떡해… 더럽혀졌어어…….
****
그 뒤로는, 마중나온 미사토와 이런저런 수속을 밟게 되었다.
신지네 아빠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거나, 혼자 살라고 통보하는 직원에게 반발한 미사토가 자기가 맡겠다고 나서거나, 제3신동경시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끌려가 죽순처럼 자라는 빌딩을 보여주거나, 레토르트식품으로 환영회를 하거나, 욕실에서 펜펜에게 놀라거나 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당사자 양해도 없이 맹장지를 벌컥 연 미사토가, 「한 가지 말해 주는 걸 잊었는데, 너는 남들에게 칭찬 받을 만한 훌륭한 일을 한 거야. 가슴을 펴도 좋아」라고 그러기에, 어제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네르프에 대한 울분을 갖은 욕설로 퍼부어 주었다.
….
『아…미안. 민폐였지?』
역시, 나 굉장히 솔직해져 있구나.
아니, 라며 신지가 고개를 저었다. …이거, 빨리 어떻게든 해야겠어. 진짜로… 멀미나.
『나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속에 삭히니까. 앙제가 내 입장에서 대신 말해주니… 그, 기분이 풀렸어』
『…』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왜냐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불평을 늘어놓은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로라도 신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왠지 기뻐.
…역시 나, 어딘가 이상해.
『…고마워, 잘 자』
신지가 이불을 끌어올린다.
『응. 잘 자, 신지』
****
눈 감지 마. 라고 충고해 두었는데, 아무래도 어려웠겠지.
스즈하라의 스트레이트는 기본도 뭣도 없었는데, 그 바보, 힘만으로 신지의 몸을 날려버렸다.
교사 뒤로 불러냈다, 이 시점에서 화약냄새를 맡았기에, 일단 주의를 주었는데,
아무리 나라도,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없어. 내려도 신지는 못 따라오겠지만.
「미안타, 전학생. 내는 니 좀 쳐야겠다. 안 치면은 기분이 풀릴 거 같지가 않아」
「…」
아는 체 하는 얼굴로 다가온 아이다가, 엉거주춤 손바닥을 내밀며 겉으로만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미안하다… 요전의 난리통에 저 자식 여동생이 다쳤거든… 뭐, 그런 거니까…」
나는 이 녀석들의 사이좋은 모습밖에 모르니까, 이런 식의 첫 만남이었다니 좀 의외.
「…나라고, 타고 싶어서 타는 게 아닌데」
그 작은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은 듯. 떠나려던 스즈하라가 발길을 돌려 다가온다.
신지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올려 노려보고 있다.
그러니까 눈을 피하면 안 돼』
내 질타에, 신지의 시선이 스즈하라에게 돌아간다. 희미하게 떨고 있지만, 확실히 상대의 눈을 되들여다보며….
팔을 휘둘러 올린 스즈하라를, 열심히 신지가 노려보고 있다. 눈시울에 걸린 힘이, 눈을 감지 않으려는 신지의 노력을 알려준다. …엥, 눈을 감지 말라는 충고, 지금 그게 실행하고 있는 거야?
「…」
질린 듯한 얼굴의 스즈하라가 갑자기 목덜미를 놓아서,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아야야. 큐트한 히프에 멍이라도 들면 어쩔 거야. …아니, 내 엉덩이가 아니었지.
신지도 꽤나 아팠는지,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다. …남자의 엉덩이는 이상한 감촉이구나. 딱딱하면서 부드러워.
오감 전체를 남김없이 공유하고 있다는 걸 신지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생활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여자가 있는 것인데, 촉각이나 통각까지 모두 새나가는 줄 알면 마음이 편치 않겠지.
여자애 앞에서 엉덩이를 문지르던 것이 창피한지, 신지가 황급히 손을 홀드업.
그런 배려, 이 여자한테는 무의미야.
「…비상소집 …먼저 갈게」
이거 봐.
****
손가락 사이에 위화감을 느껴, 신지의 시선이 아래를 향한다.
『저 저, 바보들이!』
그 녀석들을 시인하는 순간, 전신의 혈액이 끓는 줄 알았다. 물론 정신적인 이야기이지만.
≪ 신지군의 반 친구들? ≫
≪ 어째서 이런 곳에? ≫
여동생이 피해를 당했다면서, 그 혀뿌리가 마르기도 전에 뻔뻔스럽게…!
신지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퍼스트의 재촉을 받고 네르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사도를 상대할 때까지, 신지는 두려울 정도로 조용했다.
탑승수속에 필요한 최소한의 업무에만 응하고, 그 외에는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달래 보려는 내 말에도 건성으로 대답하는 편이었다.
분명히, 열심히 모티베이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을 거야.
나처럼 자신을 위해 싸운다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야. 자기를 때리는 녀석들이나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신지의 기분을, 너희 같은 새끼들이…!
미끄러지듯 접근해온 사도가, 공중에 뜬 채 빛의 채찍을 휘두른다.
놀랍게도, 음속 이상의 채찍을 초호기가 움켜쥐었다.
신지. 너, 좀 하잖아. 내 몸이 있었다면 휘파람이라도 불었을 거야.
≪신지군, 거기의 두 명을 조종석으로! 두 사람을 회수하고 일시후퇴, 다시 하면 돼≫
진심!? 미사토.
≪ 허가 없이 민간인을 엔트리 플러그에 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 제가 허가하겠습니다 ≫
≪ 월권행위야! 카츠라기 대위! ≫
발령소에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에바는 현행명령으로 홀드, 그 사이 엔트리 플러그 배출, 서둘러≫
….
「 뭐꼬, 물이가! 」
「 카메라, 카메라가… 」
바보 콤비가 플러그 내에 확보된 것을 확인하고, 신경접속이 재개된다.
연수에 의주감이 있고…,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진다.
≪ 신경계통에 이상발생! ≫
≪ 이물질을 2개나 플러그에 삽입했기 때문이야! 신경펄스에 노이즈가 섞여 있어 ≫
신지와 함께 이호기에 탔을 때는 이런 일 없었는데. 이 새끼들이 특급 바보라서 그런 건가?
≪지금이야, 후퇴해! 회수 경로는 34번, 산 동측으로 돌아서 후퇴해!≫
「전학생, 도망가라잖아! 전학생!」
『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
너, 너. 설마….
『안 돼애애!!』
있는 생각을 모두 끌어모아 신지를 내동댕이친다.
분명, 그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면서, 말라죽어가는 정신을 붙잡고 있었어. 그렇게 겨우 전장에 머무르고 있던 신지에게, 도망치라는 말은 반대의 뜻으로 들렸던 게 틀림없어.
『안 돼, 신지, 여기서는 물러나야 해』
『…앙제』
제정신이 든 모양의 신지.
『우선 요구조자 구출로 작전 성공이야. 사도 섬멸은 다음으로 미루면 돼. 알았어?』
『응』
****
일단 회수된 초호기는, 바보 2명을 내동댕이친 뒤 곧바로 제4사도와 재대결.
그 채찍을 간파한 신지에게, 이 사도는 대단한 적이 아니었나 보다.
제3사도전과 비교하면, 훨씬 경미한 손해로 섬멸할 수 있었는 걸.
계속 つづく
2007.05.09 PUBLISHED2021.10.12 TRANSLATED
2021.11.26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アスカのアスカによるアスカのための補完 第弐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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