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9일 월요일

『아스카의 아스카에 의한 아스카를 위한 보완』 제삼화


혼자는 싫어…

잠들 수 없는 나는. 겨우 신지의 오감을 차단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해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거야.
 
신지가 잠든 동안, 나는 혼자가 된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바로 곁의 신지의 고동과 숨결을 느끼게 되니 적적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틀어박혔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으면, 고독도 느껴지지 않아.
 
강해지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강해질수록…, 아니지, 강한 척 할수록, 혼자가 되어간 것 같은 느낌.
거의 일심동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지가 가까이서 느껴지는 지금은, 그렇기에 더더욱 혼자인 것이 괴로워.
그렇다고 이게 내가 약해진 건 아닌 거 같고.
내가 고독이란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스스로 주위를 거부하고 타인을 멀리하는 것 정도를 고독이라고 생각했으니.
고독하지 않음을 맛본 뒤에, 다시 내던져지는 고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사색이 뇌리를 채운다.
혼자 생각하는 거 싫어. 시간이 느리게 흘러 버려….
 

 
『이런 밤중에 뭐 해?』
신지가 깨어난 것을 느낀 나는, 앞뒤없이 말부터 걸어 버렸다. …아마 기뻐서 그랬을지도.
『…앙제?』
순간, 신지의 심장이 꽉 움츠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엑? 나 뭔가 안 좋은 짓 한 거야?

이렇게 깜깜한데, 신지는 불도 켜지 않고 무언가를 물에 담그고 있다. 희미하게 보이는 주변 윤곽을 보고, 욕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지는, 세면대에서 흰 천을 씻고 있는 것 같다. 이 촉감은… 삼각팬티?

『신지, 너 설마… 야뇨…』
              「아니야! …」
내 목소리를 끊듯이 올라온 부정, 그렇다고 잘라 말하는 것도 아닌 것이…
멈춘 거 아닌가 싶었던 심장이, 뒤늦게 경종을 울려댄다. 신지의 뺨에 급속히 열이 오른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것은, 거의 끈적할 정도의 진땀.
억울하다고 말하는 어조를 봐서, 오줌을 싼 것은 정말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말을 다 마치지 못한 것이, 밤중에 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한 조심성은 또 아닌 거 같고 …?
신지의 시점이 안정되지 못해서 멀미가 날 거 같다. 흘긋, 흘긋 시선이 왼쪽으로 스쳐대는 것은 무슨 갈등의 표현일까?

여자가 아닌 남자가 밤중에 속옷을 더럽힌다라….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짚이는 것은 있다. 보건체육 시간에 그런 것을 배웠던 것 같기도 하고, 나도 14살 여자니까, 그 나이답게 들어서 아는 건 많았다.
 
『 …기분 나빠』
반사적으로 흘러나온 말은, 진심으로 혐오를 느껴버렸기 때문이 아니야. 다만, 신지가 남자인 부분을 보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내가 여자임이 드러나게 된 것에 대한 거부.
신지가 싫은 게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것,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에 혐오를 느낀다. 자신이라는 존재에, 여자라는 사실이 도저히 벗길 수 없는 족쇄로 채워진 것을 견딜 수가 없다.
무엇보다, 육체를 잃고 신지에게 씌어져 있는 상태 주제에, 아직도 여자임에 대한 혐오를 버릴 수 없는 어리석은 자신이 싫었다.
 
잠시 자기혐오로 굳어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종야등만 켜진 신지의 방.
신지의 손에서 툭 하고 떨어진 것은, 아마도 물기를 꽉 짜낸 팬티.
중인방에 걸려 있던 옷걸이에서 교복을 낚아챈 신지가, 말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신지?』
거의 사용할 일이 없던 그립백을 꺼내더니, 묵묵히 지갑이나 SDAT 같은 것들을 집어 넣기 시작.
『…뭐 해?』
조용히 방을 뒤로 한 신지가, 발소리를 죽여가며 현관으로….
『저기, 어디 가…?』
구두를 신고, 한 순간 복도 안쪽, 아마 미사토의 방 쪽을 바라본다.
『잠깐만 있어 봐! 아까 그건 그런 게 아니고!』
하지만, 뻗친 손은 망설임 없이 개폐스위치를 누른다.
『신지! 부탁이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어』
새벽이 가까운 밤 공기는 차가웠지만, 신지의 손발의 차가움만 강조될 뿐…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아까 그건 그런 게 아니라고! 부탁이야, 내 말 좀 들어 줘어』
내딛는 신지의 발소리가, 모든 것의 끝을 고하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
 

 
순환선 첫 차를 탄 신지는, 큰 음량으로 SDAT를 틀었다. 밤이 되어 어슬렁거린 곳은 떠들썩한 번화가. 돌아다니다 겨우 앉아 쉬게 된 곳은 싸구려 영화관. 효과음만 성대한 B급 스펙터클을 철야상영하고 있었다.
그 선택이 모두, 말을 걸려 하는 나에 대한 거절의 표시라고 생각하니, 공연히 슬퍼졌다.
 
  ≪ 안 됩니다, 해일이 옵니다! 초속 230 미터로 접근 중! ≫
어렴풋해졌던 신지의 시야가, 갑자기 초점을 되찾았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노닥거리는 커플.
  ≪ 선생님! 탈출합시다! ≫
갑자기 일어선 신지가, 로비로 피난했다.
…역시, 신경쓰이는구나.
 
 
긴의자를 찾아 누운 신지는, 곧이어 숨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평소 같으면 고독을 들볶을 뿐인 신지의 숨소리가, 왠지 기뻤다.
불러 봐도 대답이 없음은 변함이 없지만, 잠이 든 지금은 불가항력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으니까.
거짓된 안식임을 알면서도, 거기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악물듯이 신지의 고동을 헤아리며, 밤을 새웠다.
 

****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신지는 조용하고 인적 없는 곳들을 돌아다녔다. 산, 무논, 해바라기밭….
『…』
나는, 신지를 부르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이렇게 조용한 장소에서 말을 걸면, 모래에 물을 뿌리는 것 같은 공허함이 나를 타격해 때려눕한다. 신지가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슬프다.
거부당하는 것은, 적어도 불청객이라고 인식이라도 되는 것. 존재를 인식조차 해주지 않고 있음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편이…
 
 
「이야,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내 마음대로 에반게리온 조종해 보고 싶다!」
모닥불 불길 너머로, 바보켄스케.
「그러지 않는 게 좋아. 어머니가 걱정하실 테니까」
「아아, 그런 거라면 괜찮아. 나, 없거든. …이카리하고 마찬가지야」
바보켄스케 따위와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신지의 모습에, 신지의 마음 속에는 내가 없음을 통감했다.
『부탁이야 신지!』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떠밀려,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 좀 들어 줘! 나 무시하지 좀 마! 사과할게, 사과할 테니까!』
몇 번이나 반복했던 말을, 지금 다시.
『그러니까 나를 봐 줘! 나를 무시하지 마!』
내 목소리가 들리고 있을 텐데,
『죽는 거 싫어. 자신이 사라지는 것도 싫어』
내 마음에 가림막 하나 없는데,
『부탁이야 신지! 나를 죽이지 마!』
신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싫어』
 싫은데.
 『싫어…』
  싫어하는데.
  『…싫어…』
   …그냥 곁에 있고 싶을 뿐인데.
   『혼자는 싫어어…』
…있을 곳이 없어,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다.
 

****
 

…혼자는 싫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인데, 위화감이 없었다.
그것은즉, 감각을 차단하든 말든,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

잃어버린 것의 크기를, 이제야 깨닫는다. 이 망막茫漠한 허무가 나의 모든 것이라니….
모든 것을 어이없이 빼앗긴 것 같은 상실감은, 어쩌면 죽음 그 자체일지도 몰라.
 
 
죽음을 이미지할 때면, 꼭 떠오르는 것, 천장에 매달려 있던 엄마.
기뻐 보이는 그 얼굴이, 너무 싫었어. 그러니까 죽는 건 싫어. 자신이 사라지는 것도 싫어. 나를 지워버린 엄마가 싫어. 엄마를 버린 아빠도 싫어! 아빠와 동류의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남자도 싫어! 다 싫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아. 함께 있어주지 않아.
그래서,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어. 나는 혼자서 살 거야, 라고. 아빠도 엄마도 필요 없어! 혼자서 살 거야. 나는 이제 울지 않아!
그래야 하는데, 싫다고! 괴롭다고!
 
 혼자는 싫어…
 
   혼자는 싫어1人はいや, 혼자는 싫어ひとりは嫌, 혼자는 싫어어独りはイヤぁ!
 

****
 

돌아가면 다시 고독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면서도, 이 허무를 더 참을 수 없어, 차단했던 신지의 오감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약해진 것이 아니야.
나는, 원래 약했어. 그걸 깨닫지 못해… 아니지, 깨닫고 싶지 않았을 뿐.
스스로 고고함을 유지한다고 큰소리치면서, 외로운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어. 외로운 것은, 선택받은 자의 고뇌라고 허장성세를 부렸어.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약하다고 자각한 지금은….
그래서, 거절당해도 좋아, 무시당해도 좋아. 다만, 타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아.
 
「요 이틀간 어딜 싸돌아다니고, 정신은 맑은 거야?」
「…네에」
좁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시선은 무엇을 찾지도 않고 아래쪽으로.
「에바가 스탠바이하고 있어. 탈 거야? 안 탈 거야?」
「혼내지 않으시네요. 가출했는데. 당연하겠죠. 미사토씨는 남이니까요」
눈앞에는 잘라낸 것처럼 빛이 드리운 바닥. 고대비가 질감을 없애고, 경도를 더했다.
「만약 제가 타지 않겠다고 하면, 초호기는 어떻게 되나요?」
 
길게 드리운 그림자, 분명 미사토겠지.
「레이, 가 타겠지. 안 탈 거야?」
「그런 거 어쩔 수 없잖아요. 걔한테 다 떠넘길 수도 없고. 괜찮아요, 탈 거에요」
「타기 싫은 거구나?」
「그거야 그렇죠. 무엇보다 저한테 안 맞아요, 그런 거. 하지만, 아야나미나 미사토씨나 리츠코…」
「작작 좀 해!」
미사토의 성난 목소리에, 신지가 무심코 얼굴을 들었다. 바라본 시선 끝에는, 어깨를 드높인 실루엣.
「다른 사람을 핑계로 대지 마! 싫으면 아예 나가! 에바나 우리 같은 거 전부 잊어버리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 너 같은 마음으로 타는 건, 민폐야!」
미사토의 말이 너무 제멋대로라, 나는 나도 모르게….
『억지로 태워 놓고, 이제 와서 마음까지 어떻게 바꾸라고!』
 
목소리를 내 버렸다.
『네가 신지의 뭘 안다고 그래!』
목청을, 아니 생각을 울리며,
『맞지 않는 줄 알면서도 남들을 위해 싸우겠다니, 훌륭한 거잖아! 충분히 훌륭하잖아!』
모조리 털어놓아 버렸다. 
『등을 돌리건 소극적이건, 신지는 아무튼 에바를 타고 싸웠잖아』
신지의 마음 곁에, 나는 있다. 싸우는 것을 쭉 보아왔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남을 위해 싸워 왔잖아』
그리하여 알게 된 것은, 우리 둘이 닮았다는 것.
쌍둥이처럼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야. 우리는 둘 다 마음 속에 결핍된 것, 채워졌으면 하고 굶주리는 데가 있어. 그 결핍된 것의 형태와 의미는 다르더라도, 거기에 에바를 채워넣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같았어.
『어째서, 이 이상. 마음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바꿔야 하는 건데…』
전생에 함께 생활했을 때, 그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신지를 멸시했었다. 어설프게 같은 구석이 있었기에, 오히려 다른 부분들의 차이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족혐오, 그렇게 말해도 좋을까?
『…네 죄책감을, 신지 탓으로 돌리지 말란 말이야』
내게, 내게 몸이 있었다면…
이 따위로 마음을 흙발로 짓밟는 짓 따위, 하지 않을 텐데.

 ……
뻐끔. 신지가 중얼거린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작게.
그래도, 나는 알 수 있어. 오감을 공유하지 않았어도 알았을 것 같아.
이름을, 불렸어.

『 … 신지? 』
미사토에게 퍼붓던 욕설과는 정반대로 조심조심.
「앙제, …미안」
 …
『…나, 나야말로…』
좀전엔 다른 이유로, 공연히 자기 몸을 원했다. 몸이 있어서 신지와 마주보고 싶었다. 내 말에 담겨 있는 만감의 생각은, 마음 속에서 울리는 말로는 오히려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니…, 여기 온 뒤로 있었던 모든 게 싫어져서」
절대 앙제가 싫어졌다거나, 그런 게 아니야. 라고 말하고는, 뒤늦게 떠오른 듯 마음 속의 목소리로 바꾸어서.
『이렇게 든든한 내 편이 있는데, 나는 뭘 망설이고 있었을까…』
자신이 스스로 싫어져. 라는 말은, 마음 속 목소리와 입말로 동시에.
그렇네. 너의 그런 내벌적内罰的인 부분, 싫어했는데… 싫어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양 어깨를 붙잡혀 난폭하게 흔들렸다.
「신지군, 괜찮아?」
…멀미는 고사하고 현기증이 날 것 같아…. 이거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설마 정신오염!?」
혼자 중얼중얼거리고, 미사토를 무시하고 입을 다물거나. 남 보기에는 섬뜩했겠지. 사정없이 신지를 흔들어대는 미사토의 눈이 진지했다.
「 …미사 토씨」
목소리까지 셰이크되니, 뭔가 골계滑稽스럽네. 낄낄 웃고 있는데, 웃을 일이 아니야. 라는 신지의 항의. 뭐, 미사토의 바보력으로 흔들리고 있는데 어쩔 수 없잖아아.
「뭐 뭐야? 의료부 갈까?」
흔들던 것을 겨우 멈춘 미사토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남을 위해서, 에바에 타면 안 되는 건가요?」
에? 하는, 미사토의 얼빠진 얼굴.
「저한테 안 맞아요. 그런 거. 무섭기도 하고요.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나 밖에 할 수 없다고 하면,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걸로 좋은 거야? 신지군」
꽉 움켜쥔 어깨의 통증에, 신지가 얼굴을 찌푸린다. 항의하지 않는 것은, 신지도 보았기 때문이겠지. 미사토의, 너무나도 비통한 표정을.
도대체, 신지한테서 뭘 보고 있는 거야? 미사토…
「저한테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거든요」
「지키고 싶은 것?」
「네에, 예컨대 가족이라던가」
올려다보는 시선은 올곧고, 미사토는 왠지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예컨대…. 라고 중얼거리던 신지가, 오른손바닥을 가슴에 올렸다.
잠깐만 신지. 그거 무슨 의미? 제대로 말을 해!
너 그렇게 흐리멍텅한 부분, 진짜 싫어!!
 

****
 


 
 ……
  
이틀만에 귀가한 신지를 기다리던 것은, 팬티에 피어난 곰팡이였다.
 
 
계속 つづく
2007.05.16 PUBLISHED
2009.01.01 REVISED
2021.10.14 TRANSLATED
2021.11.26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アスカのアスカによるアスカのための補完 第参話



「들어서 아는 건 많았다」: 원문은 耳年増미미도시마. “경험은 없지만 타인의 말을 듣는 것으로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이 풍부한 젊은 여성”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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