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쨩. 이호기의 움직임을 멈추는 데 전념해」
「알았어」
이호기의 양손에 보호받는 듯한 카오루군의 모습. 올려다보는 미소가, 상냥하다.
「 기다리고 있었어 」
역시, 멈추어 주기를 바라는 건가.
≪ 에바 양기, 최하층에 도달 ≫
≪ 목표, 터미널 도그마까지 앞으로 20… ≫
≪ 에바 양기, 강하중. 현재 제7마…≫
계속 연결되던 통신창에, 갑자기 모래폭풍이 불었다. 카오루군이 바깥과 격리되기 위해 AT필드를 사용했을 것이다.
차단되었던 중력이 돌아오면서, 갑자기 낙하속도가 붙는다.
이쪽에서 대신 중력경감 AT필드를 전개, 이호기와 함께 터미널 도그마에 강하했다.
헤븐스 도어로 향하는 카오루군에게는 곁눈질만. 우선은 이호기를 상대하는 것이 급하다.
「좀 날뛰지 말란, …말이야」
싱크로율이 낮아서 그런지, 초호기의 움직임이 둔하다. 그것을 예측과 파워로 보완하며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다.
이호기의 왼쪽 어깨 웨폰랙이 열린 것을 눈치채고, 아스카가 오른손을 놓았다. 이호기가 나이프를 손에 쥔 순간, 그 손을 나이프째로 웨폰랙에 억눌러 고정. 그대로 우격다짐으로 왼팔을 비틀어 올리며, 이호기의 배후를 잡았다.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초호기의 왼손의 고정은 흉부장갑에 맡기고,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이호기의 오른쪽 팔꿈치를 잡는다. 이렇게 팔힘을 완전히 꺾어놓으면, 삼호기 같은 묘기를 부리지 않는 이상 이 자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에바 조종은 아스카가 제일이다.
AT필드를 전개하고, 그 안쪽에 이호기를 가두었다. 카오루군의 지배력이 차단되면서, 이호기의 움직임이 확연히 둔해졌다.
필드의 강도를 더욱 올리면, 완전히 지배로부터 탈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범위 밖으로 벗어나면 효력을 상실할 테니 의미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 답은, 다름아닌 카오루군이 가르쳐 주었었다.
―― 에바는 나와 같은 몸으로 되어 있어. 나도 아담에서 태어났으니까. 혼만 없으면 동화할 수 있어. 이 이호기의 혼은, 지금 스스로 틀어박혀 있으니까 ――
「AT필드, 반전」
처음 세계에서 에바침식사도와 대치할 때 아야나미가 사용했던 수단.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빛의 하늘뚜껑. …아니, 무엇도 놓치지 않는 빛의 감옥. 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까.
실체가 있는 이호기 자체는 융합할 수 없겠지만, 그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가능하다.
…
마음 속에 보이는 것은, 오렌지색 수면과 붉은 하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곧은 수평선.
눈앞에, 아스카.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듯, 잠시 두리번두리번.
「유이. …여기는?」
그 말에 대답 없이, 아스카의 등 뒤를 가리켰다. 거기에 이끌려 돌아본 곳에는, 젊은 여성의 모습. …유구한 존재에 사로잡히면, 변화가 허용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10년 전의 모습 그대로.
『 아스카 』
소류 쿄코 체펠린은, 한눈에 딸을 알아본 것이다. 이호기 안에서 계속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모친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아스카는 졸지에 닥친 일에 바로 인식하지 못한 듯. 눈에 띄게 혼란스러워한다.
「가 봐, 아스카쨩」
재촉을 받고, 꿈이 아님을 알았으리라. 아스카가 천천히 걸어서 다가간다. 수면을 헤치는 발걸음이, 몽유병 환자처럼 불안불안하다.
이쪽의 수면에는 잔물결이 이어진다. 기분 탓인지, 아스카를 뒤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경계를 넘은 아스카의 다리를, 거울처럼 고요한 수면이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의미를 직감한 듯, 아스카가 몸을 뻣뻣이 굳혔다.
…
가만히 수면을 내려다보던 아스카가, 시선을 들어 확인한 것은, 쿄코씨의 표정일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러나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엄마, 거기 있었구나」
끄덕. 쿄코씨가 수긍한다. 그 눈은 이미 눈물로 가장자리를 둘렀다.
「…쭉, 지켜보고 있었구나」
그래. 상냥한 눈길로.
「엄마는, 죽고 싶어했다고 생각했어」
「엄마는, 나도 죽이려고 했다고 생각했어」
고개를 젓는 쿄코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수록, 아스카의 목소리에 습기가 찬다.
「…나, 그동안 쭉 오해했었어」
포옹하기 위해 모녀가 서로 다가서는 순간, 쿄코씨의 몸에 잎맥과 같은 착종이 치솟는다.
「엄마아!」
동시에, 현실세계에서는 이호기가 날뛴다. 관절기 같은 것 개의치 않고 초호기를 뿌리친다. 코어에 봉입된 인격을 빼앗겨 광란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신경쓰지 않았겠지. 허나, 줬다가 뺐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이, 마음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도라는 것인가.
아스카가 내민 손을 물리치고, 쿄코씨가 애처롭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해, 아스카. 라는 말을 다 끝마치지도 못하고, LCL로 화하여 무너져 내렸다.
…
「엄마!? 엄마아!!」
정신이 든 아스카가 오렌지색 수면을 헤집지만, 아무 것도 찾아질 리가 없다.
현실세계에서는, 이호기가 서서히 진정한다. 코어로 돌아간 쿄코씨가 달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마음이 닫힐 일은 없으리라 확신하기에, AT필드의 반전을 풀었다. 마음이 열려 있으니, 카오루군에게 손쉽게 조종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
시야가 현실에 돌아온 것에 당황하여, 아스카가 허우적거렸다. 꿈속에서 계단을 헛디뎌, 움직이며 잠이 깬 것처럼.
망연할 것이다. 이완되어 있음을 뒤에서도 알 수 있었다.
어깨가 떨리나 싶은 순간, 갑자기 몸 전체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시트에 붙잡혔다. 압착록을 해제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필사적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엄마는!?」
「저기에, 계셔」
가리킨 곳, 손가락 방향에 이끌려 돌아간 아스카의 시야는, 이호기의 붉은색으로 물들었으리라.
…
나…. 오열로 목이 메여, 아스카가 이호기에게로 손을 내민다.
나…. 압착록이 몸을 놓아주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싫어…. 라며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좌석의 록을 쌍방 모두 풀고, 아스카 쪽으로 헤엄쳐갔다.
그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듯 안아주자, 머뭇머뭇 안겨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는. 나느은!
…엄마한테, 엄마를…, 엄마하고.
섬망 환자의 헛소리 같은 중얼거림은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거품 같은 허망함에 찌부러져 사라져간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아스카의 한과 번뇌가,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아 애달프다.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상냥하게 떼어놓는다.
「어머니를, 되찾고 싶니?」
엣. 하며 마주치는 시선은, 눈물로 테두리를 둘러 LCL 농도를 떨어뜨린다.
「나한테 이호기를 준다면, 어머니를 되찾아 줄게」
「…되는 거야?」
수긍했다. 무대가 갖추어졌고, 배우들이 모인 지금이라면. 아니, 지금이기에.
「어머니를 되찾으면, 더이상 이호기는 쓸 수 없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이호기를 나한테 주지 않겠니?」
한때 저울질했을 자신과 어머니를, 지금 다시 천칭에 달아본다. 그 푸른 눈동자가 흔들린다.
접시에 분동을 놓을 때처럼, 조용하게 속삭인다.
아스카쨩을 버렸던 건, 그냥 빈 껍데기였어」
눈이 휘둥그레진 아스카를, 재차 껴안는다.
「…아니지, 그게 아니야.
그렇게 껍데기가 되어 버렸어도, 아스카쨩의 어머니라는 것만은 잊지 않았지, 쿄코씨는」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아직 천칭은 기울지 않고, 아스카의 갈등은 학질이 되어 몸을 떨린다.
…
「…세계 제일이 아니더라도, 엄마는 나를…」
「물론이지」
너무 슬프니까, 다들 이야기하지 않은 걸거야.
「그렇지 않았으면, 이호기는 움직이지 않았겠지」
스르르. 아스카의 몸에서 힘이 빠져, 둘이서 LCL 속을 표류한다.
… …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기척.
…
「…부탁해」
꾸르륵. 거품이 피어로르는 소리는, 마치 아스카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생각을 짜낸 것 같았다.
「그래, 맡겨 주렴」
얼싸안은 팔에, 힘을 실었다.
****
양팔로 안고 있던 이호기를 살짝 내려놓은 초호기가, 공중에 뜬 카오루군에게 덤벼든다.
아스카, 안 돼!!
금방이라도 카오루군을 쥐어 으스러뜨릴 뻔한 초호기의 오른손이, 그 직전에 억지로 궤도를 바꾸어서, 카오루군의 발밑의 공간을 움켜잡았다.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에, 빠져나가지 못한 공기가 손 안에서 뜨겁다.
「알고 있어. 당신한테 맡기기로 했다는 거」
이쪽이 뭐라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말하는 아스카.
「그치만, 저 히죽거리는 면상을 보니까, 어째선지 복장이 뒤집혀서…. 미안」
아스카 입장에서 보면, 소중한 이호기를 강탈해간 범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마른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
「컨트롤, 회수할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아스카와의 싱크로를 해제. 연결을 잃게 되는 이 순간에는, 언제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온다.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끈이라는 것 그 자체가 필요 없다거나, 그런 생각 더는 하지 않는다.
먼저 초호기를 꿇어앉혔다. 엔트리를 해제해야 하니까, 선 채로는 넘어져 버릴 것이다.
꽉 쥔 주먹을 천천히 펴서, 권유하듯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의외였을까, 그 아르카익 스마일이 한 순간 무너지고, 카오루군이 내려앉았다.
그 오른손을 왼쪽 어깻죽지까지 끌어당겨 놓고 홀드. 엔트리 플러그를 배출하고, 초호기의 어깨에 발을 딛는다.
무엇이 시작되려는 것인지 지켜보려는 듯 얼굴을 내민 아스카가, 해치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부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일러 두었으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카오루군을 보는 눈빛이 험하지만, 일단은 간섭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안녕, 카오루군. 인사도 없이 가 버리려 하다니, 섭섭한걸」
「이별은 괴로우니까요. 기분에 거슬렸다면 사과하죠」
그럴 것까진 없어. 라며 고개를 젓자, 그 붉은 눈동자가 꽃이 피듯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의 환대가 릴림들의 고별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지와 둘이서 밤늦게까지 깨어 있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부인께는 각오가 보였어요. 이제 와서 나를 섬멸하기를 주저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그래서 안심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너에게 가능성을 보았다고 생각해서」
「무슨…, 말씀이신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카오루군이라니, 처음 보는 것 같다.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고, 너를 지우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사도까지 구하는 길로 나아갈 가능성」
플러그 수트의 좌완부를 어깨 부근에서 찢어냈다. 왼팔을 치료하던 동안 사용했던 왼팔이 없는 플러그 수트에, 찢어냈던 좌완부를 덧대듯이 입고 온 것이다.
「무엇을…, 유이씨…. 부인께서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군요」
「제안이야」
왼손 손바닥을 펴서, 시선을 떨어뜨린다. 표피가 일그러져 엉겨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화상 흉터가 아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속은 셈 치고, 이걸 받아주지 않을래?」
위장용 클론 피부를 벗겨, 카오루군에게 보여주었다.
「아담!!」
고개를 저었다.
「아담은 세컨드 임팩트 때 없어졌어」
정확히는,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부활하겠지.
허나, 그것은 수십억 년 후의 일이다.
달을 형성할 정도의 기세로 지구에 충돌했던 아담은, 아마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인류가 깨우기 전까지, 45억 년이나 눈을 뜨지 않았다.
35억년 전 퍼스트 임팩트를 일으켰던 릴리스는, 상반신밖에 회복되지 못했다. 심지어 롱기누스의 창을 찔러넣을 때까지 반쯤 잠들어 있었다.
중대한 손상을 입을 것인가, 임팩트를 일으킬 것인가. 어쨌든 그 잠은 길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릴리스를 아담으로 착각하고 여기에 왔지」
하나의 행성에 두 개의 【달】이 강림하다니,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롱기누스의 창, 사해문서 이본은 의외로 그 이레귤러를 수정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손바닥에 아담을 이식한 것은, 깁스를 제거한 그날 밤 일이었다.
아무리 네르프의 의료수준이 높다지만, 아예 절단난 팔 한 쪽을 완전히 치료하기는 쉽지 않다. 리츠코씨의 소견으로는 재활기간을 포함해 전치 7개월이었다.
일반적인 의료수준으로 보면, 그것도 충분히 경이적으로 빠른 것이다. 비교적 치료하기 쉬운 예리절단조차 완치까지 1년이 걸린다고들 하니까.
허나, 내 쾌유를 기다릴 수 있을 만한 정세가 아니었다.
초호기의 부상이 내 부상인 것과 똑같이, 초호기도 내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광편사도전 직후 부상을 즉시 복구했던 초호기지만, 어째서인지 악력이 저하되었다. 원인이 불명이었는데, 악력이 자연스럽게 회복된 것은 내 손에서 통증이 사라진 바로 그 날이었다.
빙의사도전 때 잃은 초호기의 왼팔은, 대인사도전 이후에야 수복되었다. 허나, 내 왼팔이 완치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을 것이다. 사도전은 그렇다 치고, 그 상태로 양산기와의 싸움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렇게, 아담의 파편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이, 숙주인 이 몸을 보전하고자 했기에, 재활기간을 거의 생략할 수 있었다.
초호기의 손바닥으로, 뛰어 넘어갔다.
「…하지만, 부인께 그런 기척은…, 지금도 안 느껴지는데」
…조금 기세가 오른 것인지, 카오루군의 얼굴이 가깝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착임한 카오루군을, 에스컬레이터에서 매복해 기다리다 붙잡아서, 우리 집에 초대했다. 밤 늦게까지 거실에서 기다렸다.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는데, 결국 카오루군은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정말로 그랬다면, 이호기를 강탈하는 짓을 하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가…」
카오루군이, 내 손에 잠든 아담에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한 가지 신경쓰이는 것은, 왼팔이 완치될 무렵이 되자 손바닥에 아담이 거의 파묻혀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가…. 라며 뒤돌아본 카오루군의 시선이 향한 곳은, 릴리스인가.
「저것이 릴리스라면…. 그 파동은, 땅에 충만한 릴림들의…」
올려다보는 것은 터미널 도그마의 천장. 아니, 어디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일까.
돌아온 시선이, 초호기를 향한다.
「그리고, 아담의 분신이 아닌 에바. 거기에다 자아경계선을 넘어갔다가 돌아온 부인…」
붉은 눈동자가, 상냥하다.
「게다가, 너무나도 미약한 아담의 파동…」
마지막으로 아담을 내려다보며, 카오루군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선 모르겠군요. 이렇게 소란스러워서야…」
여러 가지 조건이 겹친 결과, 그 기척이 지워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이송되던 중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던 아담을, 해중사도를 제외하면 아무도 노리지 않았다. 그 해중사도마저도, 함대 안에서 아담을 찾느라 꽤나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컨드 임팩트 이후 최초의 사도였던 광창사도는, 아담이 있는 독일이 아니라, 여기 제3신동경시에 나타났다. 그 시점에서 제레는 아담의 파편에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방비할 필요가 없으니 방출되던 이호기와 함께 내보낸 것은, 제레에게 나루터에 배 있는 격으로 마침가락이었겠지.
또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져가야 사도를 유도할 수 있으니까…. 그걸 노리고 한 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카오루군의 기척에 눈을 뜬 것 같다. 아담의 눈알이 뒤룩 굴러 카오루군 쪽을 바라보았다.
「아담이 없어진 이상, 아담의 사도에 의한 임팩트는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그 조각을 삼키게 되면, 너는 한없이 아담에 가까워지겠지」
그것은, 임팩트 아닌 임팩트.
「일시적이지만, 릴리스마저도 거느릴 수 있겠지」
시선은, 카오루군을 넘어 릴리스를 향한다.
겐도씨의 계획에서는, 이 아담의 파편을 사용해 릴리스를 지배하에 둘 생각이었다. 신이 아닌 사람의 몸으로 릴리스가 되는 것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지만.
그런데, 이렇게 아담을 이 몸에 품고 이 자리에 섰는데도, 릴리스에게 내 목소리가 닿을 것 같지가 않다.
그 의식이 거대해서 그런 것인지, 사람과 구조가 달라서 그런 것인지. 어쨌든 사람의 뜻을 전달하려면, 무언가 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내게 무엇을 시키고자 하시는지?」
바라보는 시선을, 맞받아 마주본다.
…
「우주의 모습을 봐 줘」
이 말 뿐이지만, 너라면.
아담의 파편을 봤다가, 릴리스를 돌아보고, 다시 나를 바라본 카오루군이, 훗. 하고 숨을 터뜨린다.
「아담에게서 태어난 사도, 인간으로서 꺼려야 할 존재. 그것에게 무엇을 시키려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를 못 하겠군요.
그래도, 이대로 그냥 사라지는 것보다는 재미있어 보이니까요」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내 왼손에 겹친다.
처음 느껴지는 것은, S²기관을 가동할 때와 같은 열. 질질 내장이 끌려가는 듯한 감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생리적 혐오감으로 전신에 소름이 끼친다.
…
이윽고 카오루군의 손바닥에, 아담의 파편. 되룩 눈알을 굴리지만,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내 손바닥에는 흉터 하나 남지 않았다. 커다랗게 구멍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과연, 아담의 파편으로는 임팩트는 일어나지 않는군」
확인하듯이 오른손을 움켜쥐고, 그 손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만일 여기에 아담의 사도가 있었다면, 카오루군과 임팩트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는 최후의 사도.
우주의 형태인가…. 중얼거리고, 카오루군이 릴리스를 쳐다본다.
카츠라기 미사토였던 저번 세계에서, 릴리스를 섬멸하자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 이번 세계에 왔을 때, 아야나미가 말을 걸어 주었다. 즉, 이 우주는 릴리스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릴리스에게 원래부터 그런 능력이 있었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아마도 세컨드 임팩트로…, 아니, 원래 세계의 서드 임팩트로 변질되었던 것이 아닐까. 군체의 사도인 인류를 낳은 릴리스가 감추고 있던, 끈을 구하는 마음 그대로. 멸망한 세계의 슬픔과 함께.
릴리스를 통하면, 세계의 바깥을, 우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피었다가, 순식간에 시들어 버린 하나의 꽃잎의 존재도 알게 될 것이다.
…
그 뒷모습에서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다.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자세로 선 카오루군은, 미동도 없이 릴리스를 바라본다.
…
그 눈동자에 떠오르는 이해의 빛깔. 아마 이 몸의 다른 모습을 간파한 듯.
「너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대었다. 그건 입 밖에 내지 않아야 분위기가 사는 거야. 카오루군.
「…유리와 같이 섬세하구나. 라…」
그 우주의 나는, 너를 과소평가했구나. 라며 자기 일인 양 자조하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름답고 섬세하며, 깨지기 쉽지만 영원하다.
…
파트 드 베르 같구나. 너의 마음은」
유리공예의 한 기법이었던가. 깨지고 빻은 유리 가루를 틀에 넣어 가마에서 연성한다. 깨지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고쳐 만들 수 있는 불굴의 형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지만, 후회는 없다.
「그래서?」
재촉하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너는, 내게 무엇을 바라고 있지?」
카오루군이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제대로 내 말로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담을 만나도 소용없다는 것. 사람이나 다른 사도를 멸해도 자신의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도들도 공존의 길을 생각해주지 않을까」
이미 그것을 선택한 사도가 있었다. 다른 사도라고 해서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존이 무리라면, 상호불간섭을 관철하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흐음. 카오루군이 생각에 잠긴다.
「나는 인류를 구하는 길을 걸을 거야. 카오루군은 시도를 구하는 길을 걸어 줬으면 해」
「손을 맞잡고, 모두에게 상냥한 세계를. …그런 거야?」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이쪽의 우려를 읽은 것인지, 카오루군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너는…. 기가 막힌다는 어조의 중얼거림인데, 어째서인지 상냥하다.
「예전에, 너는 내 부탁을 들어준 적이 있었지. 이번에는 내 차례구나」
주머니에서 꺼낸 양손을 펼치며, 카오루군이 미소지었다.
***
「이호기 코어 안에 갇힌 인격을 꺼내 달라고?」
내가 범한 죄.
아스카에게서 앗아가 버린 모친을 되찾아 주기 위한 수단을, 계속 생각해 왔다.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때가,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그래, 부탁해도 될까?」
이제야 자기와 관계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을 짐작했는지, 아스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초호기의 어깨까지 타넘어 오려 하고 있다.
카오루군의 시선이, 모로 눕혀진 이호기의 가슴께를 향한다.
「그건 상관 없지만, …좀 모자라지 않아?」
게다가 몹시도 변질되었는 걸. 이라며 카오루군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것은 이미 아는 바. 그렇기에 바로 이 때를 기다려온 것이다.
「그래서, 부족한 것들을 모아 주었으면 해. 다른 세계들로부터」
카츠라기 미사토의 마음을 알게 되자, 미사토씨는 원래 세계로 귀환했다. 모자란 것은 다른 세계에서 베껴올 수 있다. 불 꺼진 초에, 다른 초로부터 불을 옮겨 붙이듯이.
「과연. 부족한 자아를 다른 우주의 자신으로 보완한다라」
그렇다면. 이라며 초호기의 손바닥에서 뛰어내린 카오루군이 허공을 걷는다.
뒤돌아보며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한 번 던지니, 이호기가 일어선다. 천천히, 붉은 손바닥이 아스카의 앞까지 다다랐다.
「네 힘이 필요한데. 이리 좀 올래?」
살피는 듯한 시선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아스카가, 이호기의 손바닥에 결연히 올라탔다.
다음으로 던진 시선은, 소금기둥에 내려꽂힌다. 소금 덩어리가 릴리스의 체액을 빨아들이며 상승하더니, 허공에서 구체를 이루어 굳는다.
가만 보니, 릴리스, 이호기, 소금구가 꼭짓점이 되어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그 중심에 카오루군.
「자, 말을 걸어 봐. 돌아와 주십사 하고」
고개를 끄덕인 아스카가, 이호기의 흉부장갑에 손을 갖다댔다.
…
조용조용 중얼거리는 내용은, 여기까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절절히 호소하는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카오루군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릴리스 쪽으로 돌아선다.
「…자, 보여 주실까」
그 가운데 단 하나가 딱 멈추더니, 이호기를 향해 날아왔다.
모친에게 이야기하느라 열중한 아스카는, 인광이 이호기로 날아든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잠시 뒤, 이호기에서 빠져나온 인광은 소금구로.
소금구를 어렴풋이 붉게 물들인 뒤, 인광은 릴리스에게 돌아갔다.
그 인광과 교대하듯이, 다른 인광이 이호기로, 그리고 소금구로. 시계방향으로 연쇄를 거듭하고, 소금구가 붉게, 뻘겋게, 그리고 그것을 넘어 어둡게 물들어간다.
「나는! 엄마를 오해해 왔어. 그걸 사과하고 싶어」
호소하던 가운데 격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된 것일까. 아스카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러니까, 돌아와 줘. 내 품으로 돌아와 줘. 엄마, 부탁이야!」
!
순간, 소금구가 십자폭염을 올렸다.
폭압도 폭풍도 없지만, 그 광휘가 너무나 눈부시다.
「신생의 빛이야」
어딘지 기뻐 보이는 카오루군이 일러 준다.
놀라서 돌아본 아스카의 뺨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카오루군이 미끄러지듯 이쪽으로 향해온다. 그에 보조를 맞추듯, 이호기와 소금구도.
소금구에서 토해내듯 빠져나온 여성이, 털썩, 이호기의 손바닥 위에 맥없이 쓰러졌다.
「엄마아!」
아스카가 황급히 모친을 안아 일으켰다. 내 때를 생각해 보면, 의식은 당분간 돌아오지 않겠지.
「옷까지 준비할 수는 없거든. 이걸로 좀 봐줄 수 있을까?」
카오루군이 입고 있던 와이셔츠를 벗어 아스카에게 내밀었다.
무심결에 받아든 아스카가, 일단 말문이 막힌다.
…
「…그, 고마워」
「감사인사를 들을 정도는 아니야」
아니야. 라며 받아든 셔츠를 모친에게 걸쳐 주고, 아스카가 카오루군을 올려다본다.
「나, 내가 잘못했다는 걸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엄마에게 사과할 기회를 준 것, 너무 고마워. 그러니까 감사할 거야」
「그렇게 되나? …아니, 그렇겠구나」
아스카를 내려다보는 그 미소가, 상냥하다.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카오루군의 시선이 내 쪽으로.
이호기의 손바닥에 모녀를 남겨두고, 태연한 발걸음으로 허공을 건너온다.
…
「여기는 이제 다 된 거 같네. 그럼, 나는 가 볼게」
「그래, 카오루군. 고마워」
인사받을 일이 아니래도. 라며 미소짓는 카오루군의 저편에서, 인광들이 릴리스의 몸으로 돌아갔다. 뭄을 웅크린 이호기는 손바닥을 LCL 호수의 안벽에 내려놓았다. 소금구는 어느새 붕괴해 사라졌나?
내가 내민 오른손을, 조금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
「남과 접촉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구나」
「누구 덕분에」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맞잡아 온다. 그 손은 조금, 차갑다.
「고마워. 너를 만나서, 기뻤어」
「나야말로, 카오루군」
만족스럽게 수긍하면서, 카오루군이, 아니, 카오루군이었던 것이 LCL로 화하여 눈처럼 무너져내렸다. 작은 인광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릴리스에게로 날아간다. …남겨진 의복만 차곡차곡 쌓였다.
…일말의 쓸쓸함이 가슴 속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지만, 눈물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분명 다시 만날 테니까.
****
이리하여, 최후의 사도는 섬멸되었다.
사도에게 탈취되었던 이호기는 불순물로서 코어의 중심을 토해냈고, 그 결과 소류 쿄코 체펠린이 귀환했다. 라고 보고서를 마무리한다.
제레에 제출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계속 つづく
2007.08.29 PUBLISHED2007.09.03 REVISED
2021.11.14 TRANSLATED
2021.11.29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シンジのシンジによるシンジのための補完 NC 第世四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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