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기 카피를 억누르고 있는 이상, 네르프 본부에 대한 기습 따위, 할 수 없다.
A-801이 발령되었을 때, 나도 소류 아스카 랭글리도 엔트리 플러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나설 차례, 흐아암, 라는 걸까』
【FROM EVA-02】 통신창 속에서,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하품을 하고 있다. LCL 호흡 중에는 혈중 산소농도가 부족할 리가 없으니, 기분의 문제인 것이다.
아카기 박사는 마기 카피에 미리 손을 써 두어, 마기 오리지날을 교환대로, 마기 카피 각각을 서로의 트랩박스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기들끼리 때리게 만들어 버린 셈인데, 아카기 박사가 흘린 기만정보 때문에 제레는 마기 오리지날을 공략할 수 있다고 믿어버린 것 같다.
그렇게 번 심장박동 기준 5936회분의 시간 동안, 카츠라기 소령은 방어전 대비의 최후 마무리를 마쳤다고 한다.
「입구를 싹 다 봉쇄했으니 여간해서는 지오프론트 구경도 못 할 걸」이라고 그랬다.
『두 사람 모두 있어 봐』
【FROM CONTROL】 통신창에 카츠라기 소령이 나타났다.
『기다리다 지쳤어』라고 중얼거린 소류 아스카 랭글리는, 말은 그렇지만 급속히 생생해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거 알고 있어. 물 만난 고기.
『양산형의 출격이 확인된 것 같아. 6개, 앞으로 20이면 여기에 도착할 거야.
그리고 이쪽은 방금 N²탄도탄과 ICBM의 발사가 확인되었어. 벽제하는 셈이지.
두 사람 모두 출격해서, AT필드로 막도록 해』
『알았어』 「…라져」
윈도창 너머로 들여다보듯이 이쪽을 바라본 카츠라기 소령이, 무언가 삼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게리온 초호기, 이호기, 발진!』
***
아무리 위력이 있어도, 아무리 수가 모여도, AT필드 앞에서 재래식 통상병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무한을 구현화한 벽 앞에, N²탄두도 ICBM도 헛되이 튕겨나갈 뿐.
그렇다면, 같은 에반게리온이라면 맞먹을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불과 4기로는 그것도 무리일 것이다. 게다가 더미 플러그니까 더더욱.
『나한테 이기려면 100만 년은 일러』
재생할 수 없을 정도로 갈갈이 세절당한 하얀 에반게리온의 두부를 발로 걷어차고,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입술 끝을 치켜올리고 있다.
제3신동경시에 진공해온 윙캐리어는 6대. 도착하기 전에 모두 격추해 버렸지만, 자율기동에 성공한 것이 4기 있었다.
『아무리 S²기관 탑재형이라고 해도, 겨우 6기로 쳐들어오다니』
『그거 말인데…』라며 통신창 속에서 카츠라기 소령이 얼굴을 든다.
『독일에서 에바 시리즈 2기가 날뛰고 있는 것 같아』
『날뛰어? 리츠코가 장치해둔 것 때문에?』
『 나? 나 아니야! 』라며, 카츠라기 소령의 등 뒤에서 말하는 아카기 박사. 어느새 카츠라기 소령을 밀치고 화면 전면에.
『아무래도 사도와 전투중인 것 같아. 상대가 너무 작아서 이쪽 통제하의 위성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도!? 도대체 왜?』
『노인네들은 예정을 앞당기려 한 거다. 자기들 손으로 직접』
희미하게 들려온 것은, 이카리 사령관의 목소리.
『우리 손을 빌릴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지』
뒤이어 후유츠키 부사령.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에반게리온이 여기 온 것을 생각하면……,
「…언제부터, 입니까?」
『독일에서의 전투? …A-801 발령 직전이었으니까, 벌써 3시간은 지난 거 같네』
그 타브리스가, 아무리 2대 1이라도 더미 플러그를 상대로 그렇게 고전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아주 조금이라도 연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수고로울 뿐 아니라 위협적이다. 그것을 다양한 형상으로 증명한 것이, 여기서 좀전까지 벌어졌던 전투였다.
………
수효로 따지면 4기의 하얀 에반게리온은 이쪽의 두 배이지만, 초호기는 아르미사엘의 몫까지 겹쳐서 3중의 AT필드를 전개할 수 있었기에, 그 점에서 호각이었다. 그러니, 이쪽은 이호기와 함께 4개의 AT필드를 집중해 우선 각개격파에 노력했다.
분단에 하나. 포박에 하나. 중화에 하나. 방어에 하나. 그렇게 고립무원 무방비가 된 1기째를 이호기가 일도양단.
그래도 학습이라는 것을 하는 듯, 하얀 에반게리온들이 AT필드를 중화해왔다. 내 쪽의 세 겹의 AT필드를 상대의 중화에 대응하는 데 모두 사용하고, 이호기가 방어로 전개한 AT필드에 막힌 1기를 내가 쓰러뜨렸다.
이렇게 2대 2. 하지만 AT필드 전개량에서 이쪽이 우세하니, 하얀 에반게리온들을 중화하는 동시에 방어로도 전개한다.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손으로 요기가 격파되자, 내몰린 최후의 1기가 난처한 나머지 되는대로 롱기누스의 창 같은 것을 내던졌다. 하지만 대처법만 알고 있으면 AT필드 하나로 피할 수 있는 그것이, 지금의 내게 통할 리가 없다.
방어로 발이 묶인 사이, 롱기누스의 창의 안티 AT필드를 안티 AT필드로 상쇄. 그리고 전개하는 반전 AT필드.
「…」
아무리 가짜라도, 이렇게까지 되면 누구를 쫓아야 하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나와 초호기와, 지금 이 지상에서 가장 달에 가까운 것을 향한 날을, 롱기누스의 창은 가지고 있지 않다. 순간적으로 나선을 풀어헤친 롱기누스의 창이, 물미와 창끝을 조절해서, 날아온 방향을 역으로, 하얀 에반게리온을 향해 질주했다.
이호기에 의해 AT필드가 중화당한 최후의 1기가 손쓸 새 없이 코어를 관통당하고, 그 기세 그대로 허공의 저 편으로 끌려간다.
『마지막 1기는?』
『제1우주속도를 돌파, 현재 달 궤도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4기가 중화에 전념에 4대 2의 상황을 만들어냈다면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가짜 롱기누스의 창을 꺼내지 않았다면 이쪽은 승기가 없었을 것이다.
………
타브리스는 강력한 AT필드를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취약한 사람의 몸에 불과하다. 게다가 AT필드 이외에는 공격수단이 없다.
하얀 에반게리온들이 AT필드의 사용법을 학습하기 전에, 저 롱기누스의 창 같은 가짜를 들이대기 전에 끝장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갑니다」
『가다니, 너. ……설마 독일에?』
【FROM EVA-02】 통신창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기서 얼마나 걸리는데……』
S²기관을 전개하고, 아르미사엘과 공명해서 펼친 2쌍 4장의 빛의 날개.
『잠깐, 레이!』
소류 아스카 랭글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데려갈 생각은 없다. 왜 타브리스를 구해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미안해」
이호기가 내달리려는 순간, 초호기는 이미 허수공간에 가라앉았다. 닿을 리 없는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고함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만들어진 디랙의 바다는, 빛의 속도로 3억 9034만 5998 카운트 분량의 직경의 구체. 즉, 이 행성과 거의 같은 크기.
사도나 에반게리온이 발하는 파동을 확인한다. 지근거리에 2개, 멀리에 3개가 느껴진다. 가까운 것은 이호기와 릴리스일 테고, 먼 셋이 타브리스와 하얀 에반게리온들이겠지.
위치를 파악하고, 허수공간을 압축한다. 초호기를 겨우 감쌀 정도의 크기까지. 사도가 만드는 허수공간은 마음의 현재화니까, 물리적 성질을 유지하면서 자유자재다.
허수공간을 원래 크기로 확대하자, 멀리 있던 3개의 파동이 바로 곁에서 느껴진다.
타브리스의 상대로 하얀 에반게리온이 2기 차출된 것이 다행이었다. 덕분에 공간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파동을 구별할 수 있으니까.
허수회로를 닫고 자아낸 접점은 2개소. 그 가운대 1개소는 아르미사엘이 자아내 주었다. 각각 밀어넣은 양 손에 꿰뚤리는 확실한 느낌. 전해져 온다, 열과 함께.
나는 하얀 에반게리온이었던 적도 있었기에, 당신들 탓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나로서는 당신들에게 마음을 줄 수는 없어. 그러니, 적어도 그 허무를 꺼뜨려 줄게.
꿰뚫린 하얀 에반게리온의 코어가 급속히 식어간다. 마치 이 우주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처럼.
…왜지?
나는 지금까지 숱하게 하얀 에반게리온들을 파묻어 왔다. 방금 전에도 소류 아스카 랭글리와 함께 싸워 2기를 이 손으로 죽였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하얀 에반게리온들을 매장하는 것이 서글픈 것일까.
「렐리엘이 왔나 싶었는데. 이건 초호기인가? 그렇다면, 네가 퍼스트 칠드런이구나」
꿰뚫은 손을 빼내고 접점을 닫은 순간, 초호기의 눈앞에 실수공간으로의 접점이 생겨났다. 거기로 들어서자마자 그렇게 내뱉은 타브리스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도 꺼내지 않는다.
「…」
소류 아스카 랭글리였으면 그 자리에서 호통을 쳤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자, 애초에 지금 나 자신이 그러고 싶은 기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도나 에반게리온이 만들어내는 허수공간은, 실수공간에 대한 표리유일의 공간이 아니다. 아무리 사도라 할지라도, 광속도를 축으로 물리법칙이 반전한 공간에서 자기를 보전하기는 어렵다.
사도가 만들어내는 허수공간이란, 그 마음을 무진장의 에너지로 AT필드를 통해 구축한, 이른바 입체적 그림자.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구성된 세계.
거기에 발을 디디고 느끼게 되는 것은, 습도가 늘어나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것 같은 감각.
그것이 불쾌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타브리스의 신체가 초호기의 손아귀 속에 있었다.
「어라? 구해주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건가?」
언제 뭉개 죽일지 모르는 상황인데, 타브리스의 표정은 긴장감이라곤 없다. 그것이 초호기의 손에 들어가는 힘을 늘린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지금까지와의 차이.
그동안 나는 숱한 우주에서 그 우주의 타브리스들과 만나 왔다. 그 가운데는 허수공간에 불러들인 경우도, 이렇게 붙잡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은, 즉…….
마음 속에 AT필드를 가진, 사람이라는 존재에 내가 가까워져서인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함부로 취급당했다고 느껴서인가?
「아야나미 레이」
어느새 벗어난 것인지, 타브리스가 초호기의 눈앞에 둥둥 떠 있다.
「너는, 나와는 다르구나.
이 별에서 살아가는 신체는 릴림과 같은 형태에 도달했지만, 삶의 괴로움까지 얻고, 외로움을 자각하고,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고 있어」
이 공간은 내 마음으로 충만하다. 마음을 알고, AT필드를 조작할 수 있는 존재라면, 거기에서 여러가지를 읽어낼 수 있겠지.
「삶과 죽음이, 네 앞에서는 등가치가 아니야」
렐리엘의 허수공간에서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던 것과 다르다.
「우리들 사도가 우주를 방황하는 얼어붙은 혜성이라면」
응시해오는 붉은 홍채는 내 것과 다르지 않을 텐데, 심히 눈부신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너는, 눈의 결정과 같이 섬세하구나.
…조금 부러울지도 모르겠어」라며 미소. 그것이 조금 쓸쓸하다.
무연한 우주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영원히 날아다닐 뿐인 혜성과, 해가 비치면 녹아버릴 몸일지라도 다함께 산더미처럼 내리는 눈을 비교하다니. 그것을 외롭다고 느낀다면, 역시 타브리스도 사람에 가까워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떠나면 돼. 혜성의 무리에 뛰어들어. 우선은 그것부터」
「혜성의 무리? 무슨…, 아야나미 레이….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어」
나도 모르게 입가가 벌어진다. 나도 꽤 성격이 나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인 걸.
아르미사엘에게 맡겨서 허수공간의 압축과 확산을 반복했다. 허수회로를 닫고 실수공간의 접점을 자아내자, 그곳은 터미널 도그마.
「이것은…」
릴리스의 존재를 깨달은 타브리스가, 그쪽으로 다가서려 한 순간이었다.
『그 자식이 그 사도야?』
돌연 열린 【FROM EVA-02】 통신창 속에서,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물어온 것이.
『이번에도 또 사도를 길들여 왔다는 거구나』
「…어째서」
허수공간을 해소하고 돌아보니, 격벽에 기대듯이 이호기가 서 있다.
『이카리 사령관이 그랬어. 분명히 여기로 올 거라고』
팔짱을 풀고, 이호기가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그리고는 여기서 떠나버릴 것 같다고 그러던데』
내가 자신의 사죄에 관심이 없다는 것에, 이카리 사령관은 승복하지 못했다. 내게서 아야나미 레이의 소멸에 대한 갈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대가로서 아담의 조각을 요구하자는 생각이 떠오른 것은, 그 사람이 타브리스에게 그것을 전해주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내 허무를 메우겠다. 라는 구실을 이카리 사령관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임팩트는 일으키지 않는다는 내 말을 믿을 수 없었기에 소류 아스카 랭글리를 보내놓은 것인가?
『이카리 사령관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맡길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왼쪽 어깨 웨폰랙이 열리고 튀어나온 개량형 프로그레시브 나이프. 뽑혀나온 칼날이, 고주파로 흐느낀다.
『이기고 도망가는 걸, 내가 용납할 거 같아!?』
메인카메라가 상하로 벌어져 진짜 안구가 드러난 이호기가 덮쳐들어왔다.
「…소류양」
뒤로 물러섰다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좌우로 도망치면 칼날이 쫓아온다.
무릎에 힘을 빼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저함이라곤 없는 칼날의 일섬이 초호기의 머리가 있던 위치를 긋고 지나가며,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온다.
그 위치를 지나갔던 이호기의 팔이 아래를 내리찍어, 초호기의 어깨죽지에 팔꿈치가 떨어졌다. 반항하지 않고 왼어깨부터 무너지듯 쓰러진 뒤, 솟구친 오른다리로 이호기의 머리를 노린다.
회피하듯이 이호기가 몸을 일으킨 틈을 타, 오른다리에 실린 관성을 사용해 일어선다. 애초에 이호기를 공격할 의도 따위 없었다.
『에바 시리즈를 쓰러뜨리면서까지 사도를 구한 너는 지금, 인류의 적』
【FROM EVA-02】 통신창 속에서,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입술을 핥는다.
『고맙네. 덕분에 이렇게 너하고 직접 붙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걸』
입맛을 다신다. 라는 표현을 나중에 알았다.
「…소류양, 」
기다려 줘. 라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돌연히 자세를 낮춘 이호기는, 그것을 어떻게 추진력으로 바꾼 것인지 금세 눈앞에 와 있다.
박혀온 팔꿈치를 힘겹게 받아내며 한 걸음 물러섰을 때는, 이호기가 등을 보이고 있었다.
뒤돌려차기가 올 것을 예측하고 간격을 다시 좁힌 초호기를 덮친 것은, 증설 배터리. 아마 동작에 들어가면서 동시에 분리한 것이다.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 신경쓰지 않고 돌진한 초호기를, 이호기의 발등이 아닌 발바닥이 맞아준다.
이쪽이 간격을 좁힌 것을, 증설 배터리의 충돌음으로 판단한 것인가? 뒤돌려차기에서 전화된 변칙적인 발길질에, 밀려나듯이 날아가 버린다.
…왜?
…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
눈 앞이 어둠에 갇혀 버린 듯한 이 감각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어째야 좋을까?
명확한 판단을 찾아낼 새도 없이, 내동댕이쳐진 초호기가 벽에 부딪는다.
그대로 쓰러지려는 것을, 간격을 좁혀온 이호기의 주먹이 허락하지 않는다. 개량형 프로그레시브 나이프를 역수로 잡고 어퍼컷.
사도의, 에반게리온의 뇌는 구성소재가 달라서 사람처럼 뇌진탕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느껴지는 고통은 주어진 충격 이상의 강력함으로, 내 마음 그 자체를 타격한다.
이호기가 릴리스의 체액을 헤치면서, 그 등 뒤에서 체액이 광란한다. 마치 끊임없이 주먹을 날려오는 이호기 그 자체처럼.
『안 덤비고 뭐 해! 덤비라고!』
「…싫어」
간신히 팔을 들어 가드할 수 있었다. 도망치기에는 이 장소는 에반게리온에게는 너무 좁다.
『그냥 당하고만 있을 거야!?』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어. 라고 말하려던 입을 도로 닫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좀 받아치라고! ……』
에반게리온의 육체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일격마다 마비가 달린다.
『들어오라고!!』
이쪽의 가드를 쳐내고, 이호기가 크게 휘두른다.
무심코 펼쳤던 AT필드를 캔슬. 또한 아르미사엘이 멋대로 펼친 AT필드를 중화.
저 기세로 AT필드를 때리면 이호기도, 소류 아스카 랭글리도 무사할 수 없으니까. 이쪽의 AT필드를 중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여기서 마음의 벽을 쳐 버린다는 것은, 소류 아스카 랭글리를 거절한다는 것이니까, 싫었다.
서로 상처입힐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아직 상대를 봐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류 아스카 랭글리는 내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러 터미널 도그마까지 내려와서.
그 행동에 숨은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크윽」
머리를 기울인 초호기의 측두부를 이호기의 주먹이 스친다. 거기서 팔을 접으며 안면에 육박한 팔꿈치는, 아르미사엘 시점의 시야가 제공되지 않았다면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신체만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어째선지 거의 움직임이 없는 이호기의 머리에, 바싹 달라붙듯이 타브리스가 나타났다. 무슨 뜻인지, 이쪽으로 눈짓한다.
「…안 돼」
소류 아스카 랭글리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라면, 내가 용납할 수 없다.
타브리스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한 순간이었는데, 어퍼컷이 가드 사이로 파고들어왔다.
『이번에는 그 목숨째로!』
쳐올려진 시야 하단에서, 이호기가 크게 상체를 비틀었다.
『나한테 양보하려는 속셈이야!?』
위아래로 들어오는 양손지르기. 안면을 노리는 오른손에는 순수로 잡은 개량형 프로그레시브 나이프가 들려 있다. 고주파가 공기 분자를 찢어발기며 도신이 눈부시게 적외선을 발하고 있는데, 어째선지 그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칼의 광채가 이렇게 차갑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사태를 초래한 자신에 대한 벌이라고 포기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마음의 발로라면, 그것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사명이 있었다.
좌하에서 우상으로, 내가 치켜든 오른팔로 이호기의 오른손을 쳐낸다. 동시에 차올린 오른무릎이 이호기의 왼손을 막았다.
크게 양손을 올린 이호기의 모습은, 아야나미 레이의 망막에는 이미 비치지 않는다.
내려오는 오른다리와 오른팔에 동기화해서 내미는 왼손.
노리는 것은 이호기의 오른뺨, 거기서 주먹 하나쯤 왼쪽.
오른발이 릴리스의 체액을 흩날리고, 그 아래 바닥에 닿은 순간, 왼손 주먹을 시계방향으로 틀었다.
그 순간, 초호기의 시각이 포착했다. 이호기의 카메라 아이에서 빛이 사라진 것을.
뒤이어 두절된 통신창 속에서,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미소를 짓고 있던 것이, 흐릿하고 분명치 않은 아야나미 레이의 이 시야 속에서, 어째선지 그것만 명료하게 보였다.
이 상황을,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원하고 있었다. 라고 깨달은 순간, 이호기는 맞은편 벽에 내동댕이쳐진 뒤였다.
「…왜?」
활동한계에 도달해 미동도 하지 못하는 이호기에게로 달려간다.
AT필드를 반전시켜 이호기의 마음째로 끌어들이자, 오렌지색 수면에 허벅지까지 물에 잠긴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뺨을 문지르고 있었다.
「훌륭한 펀치였잖아……」
「…소류양」
「엑!?」하고 고개를 든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내 얼굴을 보고, 이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 어디야!?」
「…초호기와 이호기의, 마음 속」
「하아…」뭔가 이것저것 섞인 날숨을 토하고,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이것도 네가 한 짓인 거야?」
고개를 젓는다.
「…에반게리온의, 능력. AT필드의 반전」
「흐응」하며 오렌지색 수면을 걷어찬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내 등 뒤에 시선을 날린다.
「저쪽에 있는 건 그렇다 치고, 」
돌아보자, 조금 거리를 둔 곳에 타브리스가 있다. 아무래도 휘말려 버린 모양이다.
「그 쪼그만 건 또 누구?」
돌아서서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순식간에 내려가는 시야 가운데, 내 신체 뒤에 반쯤 숨은, 작은 여자 사람의 모습이 있다.
아야나미 레이가 어릴 때 그런 모습이었으리라 생각되는 형상으로.
그것은, 이 아야나미 레이의 모습을 모사하여, 자신의 마음의 길이에 맞게 크기를 바꾼 모습.
「…아르미사엘」
사도는 사람보다 훨씬 자아경계선이 강고하다. 자신이 유일한 단체생물이니까. 그래서 비록 AT필드를 풀어서 타자와 하나가 되더라도 자기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보완하여 기쁨이 가득하다.
지금의 아르미사엘은 초호기와 둘이서 하나, 하나로서 둘. 개체로서 전체, 전체로서 개체. 타자라는 존재가 있으면서, 서로 이해도 할 수 있다. 사도이면서 사도가 아니다. 그것은, 보완된 사람의 모습.
「…사도였던 것」
「혹시 그 고리처럼 생겼던 녀석?」
양손의 검지와 엄지로 고리를 만들어 보인 소류 아스카 랭글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음의 모습」
쭈그리고 앉아 아르미사엘과 눈높이를 맞춘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조금 미간을 찌푸린다.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목을 비틀어 이쪽을 올려다본다.
「…본질은, 마찬가지. 사람도, 사도도. 막 싹튼 이애의 마음은 아직 어리니까, 여기서는 이런 형상으로 보여」
「잘 모르겠지만」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소류 아스카 랭글리는 오른손을 내민다.
「나, 아스카. 소류 아스카 랭글리. 친하게 지내자. 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잘 부탁해」
내민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인지, 나를 올려다보는 아르미사엘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쭈뼛쭈뼛 뻗은 작은 손을 잡아당기는 난폭한 악수.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거친 것은 아닌지, 거의 몸째로 흔들리고 있는 아르미사엘의 입가가 올라간다.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웃는 얼굴을 모사하는 것처럼.
놓아준 손바닥을 신기한 듯, 조금은 쓸쓸하게 바라보던 아르미사엘이, 그래도 미소짓는다.
「…그래, 잘 됐네」
그 오른손을 마치 보물처럼 왼손으로 감싸고, 가슴팍에 모으고 있다.
「그건 그렇고」라며 무릎을 손으로 짚은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팔힘을 가해 일어섰다.
「가야지, 이제?」
거기 응해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추었다.
「…왜?」
내 시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눈을 돌렸다. 시선을 따라가듯 몸도 돌아가서 등을 보인다.
「고리를 태우고 날개까지 돋아난 초호기를 보니까. 그대로 네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었어」
오렌지색 파문을 일으키며, 한 발 두 발 멀어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생각했거든」
멈춰서서 붉은 하늘을 올려다본 소류 아스카 랭글리는, 거기서 무엇을 찾아냈을까.
「네가 저거를…」이라며 엄지로 가리킨 어깨너머. 정확히 타브리스를 가리키고 있다.
「구하러 갔을 때, 이카리 사령관이 그랬어」
오렌지색 수면을 박차며 돌아본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이번에는 내 시선을 받아들인다.
「뒤탈을 없애기 위해서, 네가 이런저런 것들과 함께 여기서 떠나 버리려는 것 아닐까? 라고」
스스로 일으킨 파문에 밀려나듯이 한 발. 거기에 끌리듯이 다시 한 발.
「만약 네가 여기서 떠나 버릴 작정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대로 물결을 헤치며 거리를 좁혀오는 모습이, 좀전의 이호기 같은 기세.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돌아와 버렸지 뭐야….
너하고 직접, 진심으로 해보고 싶다고…, 아직 그 생각밖에 못 했는데」라며 가슴팍에 손가락을 들이댄다.
「뭐, 초호기가 이호기와 싸웠다는 사실은 남겼으니까, 나머지는 어떻게든 속일 수 있겠지. 미안하지만, 너는 초호기째로 내가 섬멸했다는 게 될 거야?」
손바닥을 자기 가슴팍으로 끌어당겨 상체를 돌린 소류 아스카 랭글리의 웃음이, 조금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본의가 아니라고, 흔들리는 윤곽이 말해주는 것 같다.
「…고마워」
「집어치워」라며 다시 등을 돌린 소류 아스카 랭글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
AT필드의 반전을 풀고, 터미널 도그마로 시야를 되돌린다.
「이제 됐어?」
「…그래」라며 돌아보니, 릴리스에게 박힌 진짜 롱기누스의 창에 올라탄 타브리스.
「이건 릴리스구나. 넌 도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소류 아스카 랭글리였으면, 사람을 쓰레기를 만드네. 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니까」
그 중얼거림이 타브리스에게 닿았는지 어떤지, 확인하지 않고 롱기누스의 창에 손을 댔다. 간격을 두지 않고 바로 뽑아 버리자, 롱기누스의 창 위를 걷듯이 타브리스가 이쪽으로 끌려왔다.
「난폭하구나. 호의를 못 사겠어」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태연히 그렇게 말해 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다.
땅울림에 시선들 돌리자, 릴리스의 다리가 재생되고 있었다. 롱기누스의 창으로 꿰매여 묶여있던 에너지가 그런 형상이 되었을 뿐이지만.
롱기누스의 창으로 강제적으로 눈을 뜨게 했을 뿐, 이 릴리스는 아직 졸고 있다. 자신이 낳은 사람들이 자아낸 세상을, 덧없는 꿈처럼 꾸면서.
자신의 각성이 사람 세상의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잠버릇 나쁜 카츠라기 소령처럼 눈을 뜨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깨어나지 않아도 된다면, 스스로 소멸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릴리스의 카피였던 내게, 초호기에서 샐비지되었다는 아야나미 레이에게, 비뚤어진 형상으로 계승되었다. 초호기이면서 아야나미 레이이기도 한 지금의 나밖에는 그것을 자각할 수 있는 존재가 없지만.
「…」
초호기의 손 안에서 변형된 롱기누스의 창에 반응하듯, 릴리스가 잠꼬대 같은 파동을 발한다.
「…그래. 잘 됐네」
엉켜 비틀어진 그 모습은, 사도살해의 형상.
가슴에 꽂아 주자, 목소리 아닌 목소리로 환희가 가득찼다.
……죽음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런 것인가, 릴리스」
오른어깨 웨폰랙 위에서, 타브리스가 중얼거린다.
뽑아낸 롱기누스의 창을, 소용돌이치는 그릇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자, 내뿜어진 릴리스의 체액을 받아내다가 금세 넘쳤다.
이것은, 사도를 받아들이는 형상.
당신도 데려가도록 할게. 저 우주로.
만나게 해 줄게. 저 우주의 릴리스를.
당신의 기쁨을, 그 사람에게도 나누어 줘.
그 사람의 슬픔을, 받아 줘.
그러기 위해 당신을 죽였어. 당신의 소원대로. 나는 당신이, 아니지만.
드리운 그릇 너머에서, 릴리스였던 것이 그 형상을 잃고 눈처럼 무너지고 있다. 릴리스의 체액과 섞여 분간할 수 없게 되자, 그릇의 내용물은 초호기의 목 너머로 사라졌다.
……신생과.
「릴리스. 초호기. 그리고, 아야나미 레이. 그 세 가지가 합쳐진 것의 의미가 뭐지?」
쏠리는 붉은 색 홍채.
「…말했을 텐데.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너는 심술궂구나. 호의를 못……」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초호기와 아르미사엘과 릴리스의 공명으로 불어난 에너지를, 롱기누스의 창에 쏟아넣는다. 마치 한 장의 천을 짜서, 그 모양으로 만들어낸 듯 풀어서, 초호기를 감싸안을 정도로 확대시킨다.
휘날리며 휘감는다.
그것은, 사도의 힘을 덮어 엮어올리는 형상.
인테리어 아래에, 서바이벌 키트를 빼고 대신 넣은 트렁크가 있다. 그 안에 있는 아담의 조각까지 에너지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타브리스에게 건네줄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카리 사령관을 납득시키기 위해 받아낸 아담의 조각. …그래, 당신도 외로웠구나? 외로움이란 걸 알게 되었구나?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릴리스와 아담. 하지만, 지금은, 지금만큼은…….
……하나가 된다.
돌아보자, 마치 고개를 떨어뜨린 것처럼 맥없이 쓰러져 있는 이호기.
「…당신도, 갈래?
…그러자」라며 전개한 반전 AT필드로 끌어당긴 것은, 이호기의 마음만. 그것이 깃들 코어는 없지만, 이렇게 남아도는 에너지가 있으면 모조사도 1인분 정도는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할 것은……,
「이것은……」
초호기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인광, 예전 우주의 타브리스가 보여준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
허수공간이 아닌 이상, 타브리스라도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라며 인광 하나에 손을 내민 타브리스가, 그렇게 눈부시지도 않을 텐데 눈을 가늘게 뜬다.
「외로움에, 마음의 아픔에, ……사는 것조차 괴롭고, 반드시 순수하지도 않은데, 순수하게 있을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이토록 헛되고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인가……, 호의를 살 만하구나」
「…호의?」
그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력함으로 자아내는 말에, 그만 묻고 말았다.
「좋아한다는 거야」라며 이쪽을 바라본 타브리스의 미소는, 그전까지의 면상에 붙이고 있을 뿐인 웃음이 아니었으니까.
「…그러게」
나도 미소를 돌려준다.
「…그것은 분명, 사람이 갖는 희망」
너도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타브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진하게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계속 늘어난 소류 쿄코 체펠린의 마음이 터미널 도그마를 빛으로 채운다.
「…」
자, 시작하자, 릴리스.
소류 쿄코 체펠린의 AT필드를, 마음의 벽을 풀어내라.
갈가리 찢겨버린 정신을 보완하고, 그 혼을 다시 태워라.
그것은, 결핍된 마음의 보완.
셀 수 없이 많은 인광이 이호기에 쇄도하여, 꿰뚫는다. 그 찰나마다 그 마음을 새기면서.
마음이 없는 껍데기가 된 이호기의 코어. 그것은 혼의 좌이면서, 마음의 요람. 언젠가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불러낼 그 날까지, 소류 쿄코 체펠린의 마음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휘감긴 롱기누스의 창의 안겹에 오른손을 내밀자, 역할을 끝낸 인광들이 손바닥에 내려서 모이더니, 사라졌다.
이것으로, 이 우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이제 타브리스를 데리고 그 우주로 돌아가면 된다.
「…자, 가자」라고 중얼거린 목소리가 왠지 잠겼다.
모든 것을 공명시켜 증폭된 에너지로 만들어낸 것은, 릴리스의 마음에서 짜올린, 이 우주보다도 큰 허수공간. 아까 독일까지 왕복했을 때의 방법을, 보다 대규모로, 우주 단위로 실행한 것이다.
에둘러 가는 방법이지만, 나는 이 우주의 릴리스를 데려가고 싶으니까, 이 방법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릴리스의 네트워크로는, 릴리스 자체를 데려갈 수는 없다.
눈앞에서 자아낸 접점에 파고든 순간, 허수공간이 한층 더 팽창했다. 아마도 이 세계와 같은 크기까지.
그것은 물론 내가 한 것은 아니다. 나와, 졸고 있는 이 우주의 릴리스로는, 이렇게 큰 허수공간을 유지할 수 없다.
「이것은, 릴리스의 마음? 아니, 하지만……」
무엇이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타브리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지금 이 허수공간을 지탱하는 것은, 그 우주의 릴리스. 나를 여기로 보내준 릴리스다. 그렇게 느낀 순간, 초호기에 태운 이 우주의 릴리스는 그쪽에 녹아들고 말았다.
「그런가, 이것이 우주…, 아니, 세계의 형상이구나」
허수공간에 충만한 그 마음을 읽은 것인지, 타브리스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보였다. 릴리스의 마음을 통해, 세계의 형상이.
그것은 틀림없이, 한 줄기 자양화였다.
이 세계에, 우주는 원래 하나였던 것이다. 양자적 요동을 내포하면서도, 세계이자 우주는 동일했다.
그것이 갈라진 것은, 사람들이 세컨드 임팩트라고 부르는 아담의 폭주 때.
아담의 포효에 억지로 깨워진 릴리스는, 아주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당한 것이다.
그대로 아담의 폭주를 내버려두면, 행성이 통째로 날아가 사람은 멸해진다. 아담의 폭주를 다스리면, 아담 자신의 손에 의해 사람은 멸해진다. 릴리스 자신이 눈을 뜨면, 그건 그것대로 사람이 멸해진다.
졸음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다가, 릴리스는 아담이 폭발시킨 에너지로 허수공간을 만들었다. 허수공간으로 에너지를 뿜어올리는 아담과, 그 눈앞에서 마음만으로 버티며 허수공간을 유지하는 릴리스. 그 모습은 두 개의 빛의 기둥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폭주의 결과 광란한 아담의 마음과, 어떻게든 깨어나지 않으려난 릴리스의 마음이 짜올린 허수공간은 에너지가 소진되어 소멸하는 순간, 세계를 뒤흔들었다.
천 갈래 만 갈래 흩어진 아담의 마음은 그대로 세계를 가르고, 졸고 있던 릴리스의 마음이 그대로 그 흐트러짐을 애매하게 만들어, 그로부터 수많은 우주가 태어난 것이다. 사람의 파멸을 미루는 대가로.
같은 듯하면서도 각각이 미묘하게 다른 것은, 우주와 함께 나누어진 릴리스의 주관도 다시 나누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소망도 함께. ……아니, 어쩌면 릴리스는 사람이 태어나도록 짜여진 진화와 다양성과 가능성을, 우주 차원에서 시험해 보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릴리스의 마음에는, 세계가 자양화처럼 보이는 것이다. 같지만 다른, 수많은 자신의 분신들과 함께.
압축된 허수공간이 튀어오르듯 원래 크기로 돌아간 순간, 그곳은 저 붉은 파도가 철썩대는 바닷가였다.
초호기의 발치에 주저앉은 사람 그림자.
이 사람 알고 있어. 킬 의장. 그 사람이 데려온 마음.
내가 처음 보았을 때도, 이렇게 물가에서 붉은 물결을 맞고 있었다. 그 때부터 계속 주저앉아 있었나 보다.
멀리 사람 그림자 여러 개. 모래 위에 쓴 수식을 둘러싸고 있다.
저 사람 알고 있어. 이카리 유이. 그 사람이 내게 마음을 주었을 때의 모습.
저 사람 알고 있어. 아카기 박사. 손에 쥔 막대로 수식을 쓰고 있다.
저 사람 알고 있어. 후유츠키 부사령. 평소의 그 뒷짐 진 자세.
저 사람 알고 있어. 아카기 나오코. 아카기 박사의 어머니인 사람.
저 사람 알고 있어. 소류 쿄코 체펠린. 소류 아스카 랭글리가 데려온 마음이라고 들었다.
저 사람 알고 있어. 아오바 중위. 누가 데려온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 알고 있어. 휴가 중위. 미묘하게 사람들의 고리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 사람 알고 있어. 이부키 중위. 혼자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저 사람 알고 있어. 이카리 사령관. 언제 여기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사람이 데려왔을 마음.
다들 저기서, 이 우주를 재생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잘 다녀왔어」
엔트리 플러그를 나와 백사장에 내려선 나를 맞이한 것은, 제3신동경시립 제일중학교 교복 차림의 릴리스였다.
「…다녀왔어」
귀환의 말. 여기서는, 처음 해 보는 말.
…그 말이, 무엇을 해방한 것일까? 내 눈가에서 넘친 것의 뜨거움에 놀란다.
「…왜 울고 있어?」
그 붉은 홍채는 나와 같은 것일 텐데, 직시할 수가 없다. 떨어지는 눈물에 이끌려 시선을 떨어뜨렸다.
「…돌아오고 싶지……않았어」
한 번 입에 올려 버리니, 더는 멈출 수가 없다.
「…그 우주에서, 그대로 끈을 길러가고 싶었어」
릴리스를 피해서 시선을 돌리자, 멀리서 수식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그림자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기 있는 것은, 내가 알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내 끈이 없어」
내 팔로 자신을 안았다.
「…아파. 끊어져 버린 끈이, 끊어 버린 끈이 아파. 끊어 버렸으니까, 아파」
나는, 그 사람처럼 굳세어질 수 없다.
「…어떻게, 그 사람은 이렇게 괴로운 일을 반복할 수 있지?」
어머니를 좋아하지만 당장 만날 수 없어도 좋다고 말한 소류 아스카 랭글리도, 그 사람과 같은 굳셈을 내포하고 있을까?
「…비교해 봐」라는 말에 릴리스를 쳐다보자, 자기 오른손을 가슴팍에 갖다대고 있다.
「…초호기의 모습으로 있는 힘껏 우주를 지켰을 때와, 지금의, 자랑스러움을」
「…자랑스러움?」
릴리스가 하듯이, 내 가슴팍에 손을 대 보았다.
「…그래. 그 우주를 지켰다는 성취감」
비교할 것도 없었다.
초호기였을 때는, 우주를 지켰다는 성취감 따위 아예 없었다. 있는 것은 우주를 지켰다고 전해주었을 때 그 사람이 지어주던 미소 뿐.
「…당신이 그 우주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자랑스러움도 커지는 거야」
그렇다. 초호기로서 지켜낸 6 그레이트 그로스와 1 그로스와 6 다스의 우주보다, 단 하나 뿐인 그 우주가 더 소중했다. 거기서 자아낸 끈이 내 마음을 길러주었으니, 그 우주야말로 내게 고향이나 다름없다.
「…선택해」
모래 밟는 소리를 울리며 다가온 릴리스가, 그 손가락을 내 이마 앞에 갖다댄다.
「…그 육체는, 그 우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 돼. 세계의 밸런스가 무너지니까」
손톱을 세워서 살짝 밀어낸 것은, 어쩌면 꾸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선택해. 그 육체와 함께 그 우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우주로 갈 것인지」
마음이 끌린다. 라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 우주로, 돌아간다니.
하지만, 그보다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돌아간 이 육체는, 어떻게 되지?」
「…그 아야나미 레이의 육체는 접촉실험 사고로 뇌사했던 것.
하지만, 당신이 깃들어서 활동했기에 뇌조직이 의식을 가진 채 돌아갈 것.
…당시의 기억과 행동을 알기에, 두 번째 아야나미 레이도 아니고, 초호기도 아닌, 새로운 존재가 된다.
얼마동안 혼란은 있겠지만, 당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거야」
불꽃이 사그라던 초에 나라는 이름의 불을 옮겼다. 그렇다면, 그 불이 멀리 가도, 남은 열은 새로운 불을 태운다.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돌려보낼 사람에게 돌려보내야 할까? 이 육체를.
「…이카리군은 가끔, 자기가 방문했던 우주들을 돌아보고 있어. 특히, 처음으로 방문했던 우주는 몇 번씩이나」
한 번 떨어뜨렸던 시선을 다시 올린다. 릴리스는 어째 조금 불쾌해 보인다.
「…응원하고 있어」
「…응원?」
「…그래. 14세였지만 이카리군의 기억과 행동을 계승하고, 자신이 아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 한 여성, ……30세에 눈을 뜬 그 우주의 카츠라기 소령을.
…그리고」라며 미소짓는 릴리스는, 조금 외로워 보였다.
「…기뻐하고 있어.
혼란하고,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카츠라기 소령을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자기 일처럼」이라며 시선을 올린 릴리스가 보는 것은, 분명 내게는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까, 이카리군은 이해할 거야. 당신이 그 우주를 선택한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기뻐할 거야. 당신이 그 정도로 마음이라는 것을 길렀다는 것을」
시선을 돌린 릴리스가, 그 흐름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우주에서 이 육체로 보낸 불과 십수년의 행적. 그 유혹이 내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우주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결코 거짓이 아니다. 그 사람의 소원이 내 소원이 되었다. 그것 역시 저 우주에서 얻은, 나의 마음.
그래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라며 눈을 가늘게 뜬 릴리스. 흐뭇하지만 쓸쓸해 보이는, 이런 미소는 처음이다.
「…어서 와, 발할라에」
도망치는 듯한 릴리스의 시선에 이끌려 돌아보니, 초호기의 카메라 아이 명도가 높아졌다가 떨어졌다 한다. 아르미사엘이 물결치는 파도처럼 광량을 변화시키고 있어서다. 초호기의 블레이드 안테나 위에 걸터앉은 타브리스는 가볍게 손바닥을 들어올리는 동작으로 대꾸하고, 또한 흥미로운 듯 주위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그들의 배후에는, 어느새 육체가 만들어진 이호기의 모습. 이쪽에 흥미가 없는 듯, 타브리스와는 반대쪽 방향을 보고 있다.
「…그래, 여기 말이야. 이호기 파일럿이 그렇게 이름붙였어. 본인은 자기를 발퀴랴라고 부르고」
그 순간 눈에 의지를 태우고, 다시 명멸하는 초호기의 카메라 아이.
나로서는 마음을 줄 수 없을 텐데.
「…당신에게도, 사람의 마음을 형삭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틀이 생겼다는 것」
돌아보니, 릴리스의 미소. 이번에는 쓸쓸하지 않다.
「…다시 한 번 다녀오도록 해. 이번에도, 더 많은 마음을 데리고 돌아오는 거야」
뻗어온 손가락이, 내 이마에 닿는다.
…잠깐만. 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시야는 벌써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접촉실험보다는 전으로……」
신체 손상이 많으면 힘드니까, 적어도 그것만은.
「…알았어」
…… 빛이 보인다. 저기가 목적지.
갈라진 다른 우주. 거기는, 알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
이렇게 옮겨타는 동안은 육체가 없다는 것에, 가슴팍을 조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노력도 고생도, 이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1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해낸 것도 못한 것도, 모두 저번 우주에 남겨두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 이제야 새삼스레 생각이 미친다.
그래도 그 사람은 웃으면서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 사람처럼 굳세게 될 수 있을까?
아니, 굳세어져야만 한다. 사람으로서 사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나는 배웠다.
그 사람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결의를 담아, 다가오는 빛을 노려본다.
초호기의 초호기에 의한 초호기를 위한ための 보완補完 종극 終劇
2021.11.30 TRANSLATED
2021.12.09 TRANSLATION REVISED
원본 初号機の初号機による初号機のための補完 最終話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 12:24
아스카가 분명히 싫다고 했을텐데 꿋꿋이 “이호기 파일럿”이라고 부르는 릴리스나미의 새까만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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