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소파에 레이가 혼자 앉아만 있다니, 진귀한 광경이다.
아동서도 읽지 않고, 그렇게 좋아하던 펭귄 모자 인형도 곁에 얼씬 못하게 하는 것은, 상당히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이겠지.
신지가 자기 방에서 수학여행 짐을 꾸리고 있다.
저번에는 그저 외로웠을 뿐이고, 남들 눈에도 보일 만큼 불쾌해 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외로운 것이야 물론 마찬가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자신에게,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가 버리는 신지에게,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선물은 뭐가 좋을까? 라고 묻는 신지에게, …필요 없어. 라고 대답하는 레이의 서투름은 변함이 없지만.
무슨 말을 걸어 줘야 할까.
만약 여기 아스카가 있었다면, 하여튼 어린애는. 이라고 조롱했을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해? 라고 레이가 입을 삐죽이면, 레이에 대해서는 거의 육감이 발달했다고 할 정도인 신지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아스카에게 불평하겠지.
그리고 성대하게 입씨름이 시작되면, 내가 끼어들어 간식이나 먹자고 할 거야.
…
바랄 수조차 없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지금 아스카가 여기 있어봤자, 소외감만 느끼게 만들 뿐이라고.
내가 카츠라기 미사토였던 시절. 가짜 가족이었을 때는 줄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진짜 가족이 있기 때문에 줄 수 없다.
저번 세계에서, 진짜 모친이 될 수 있기를 희구했다. 그렇게 됨으로써 오히려 할 수 없게 되는 것들을 생각지도 못하고.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다.
무언가를 잃으면, 무언가를 얻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는 상냥하지 않다. 유무형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생애를 착취하고 있다.
****
리츠코씨가 가져온 것은, 이호기에 삽입된 문제의 블랙박스의 해석결과였다.
「잘 먹겠습니다」
유리잔을 기울이는 리츠코씨를 흘끗 보았다가, 서류뭉치로 눈을 돌린다.
「이호기의 텔레메트리 축적・송신 외에, 조종을 저해하는 기능이 있을까요…」
전생에 실컷 능욕하고 유린한 뒤 방치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제레가 이호기에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맡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텔레메트리 데이터 송신은 순수한 데이터 수집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왜 그런 데이터를 원하냐는 것이다. 이 정도 데이터를 날조・왜곡할 만큼 이쪽도 한가하지 않은데.
우려낸 커피를 들이키고, 리츠코씨가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우려하셨던, 이호기의 컨트롤을 탈취하거나 하는 그런 기능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더미 시스템도 더미 플러그도, 장비구성으로서는 어마어마했다. 이렇게 작은 부품으로 그렇게까지 하는 건 무리겠지.
가능하다면 그런 기능을 넣었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더미 시스템 자체를 개발하지 않고 있고, 넘겨주는 데이터는 모두 날조다.
…잠깐 있어 봐. 더미 시스템 데이터가 거짓투성이라는 것을 제레가 깨닫고, 이쪽에서 보낸 데이터는 모두 허위라고 경계하게 된 것 아닐까?
올바른 데이터를 얻기 위해, 또는 대조해서 검증하기 위해 이호기에 이 장치를 심은 건가?
그렇다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도 이호기가 최전선에 나서는 것이 이치에 맞겠지.
즉, 아스카에게 부여한 작전행동의 자유 보장, 초호기에 대한 대항심을 심어준 교육, 이것을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이호기가, 싸움을 계속하기 위한.
…이럴 수가. 결국 여기에서도, 내가 아스카를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아스카를 상처입히기 위해 이번 세계에 온 건가.
「유이씨?」
나도 모르게 엎드려 울 뻔한 나를, 리츠코씨가 현실로 끄집어내 주었다.
아아, 미안해요. 라고 변명하려던 나를, 내선전화 착신음이 구해 준다. 눈짓으로 거절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사도대책실입니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발령소의 아오바씨였다.
「…뭐라고요? 아사마산의 카츠라기 대위가 A-17을 요청해요?」
그러고 보니, 화구 속의 형체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에 나가 있었지.
「제 권한으로 기각합니다」
리츠코씨가 몹시도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정중히 무시했다.
「네? …자기가 직접 얘기하겠다 그런다고요? …알았어요, 외선 3번이지요」
비밀회선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비즈니스폰을 조작한다. 네르프 권한으로 자산을 동결한다고 소문이 돌 때마다 증시붕괴가 일어나니까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 사도를 포획할 수 있는 다시없을 찬스입니다!!』
잠깐의 침묵은, 기각될 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 침묵의 반동으로 뒤이은 목소리가 고성을 질러와, 수화기를 귀에서 떨어뜨렸다.
「그런 거 주워 와서 누가 키울 건데요. 버리고 있던 데로 돌려보내세요」
『…무슨, 개나 고양이가 아닙니다』
「개나 고양이는 돌보는 방법을 아니까 차라리 개나 고양이 쪽이 낫지요」
어차피 포획 따위 성공하지 못한다. 쓸데없이 준비하는 사이에 부화해 버릴 것이다.
게다가, 만일 포획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둘 데가 없다. 제레가 좋아라 하면서 가져갈지도 모르고, 그래서야 그동안 코어를 남기지 않도록 고생해온 것이 말짱 물거품이다.
「…」
「단독생명체인 사도를 한 마리 조사해 봤자, 다음 사도에 대한 참고는 되지 않아요」
이것은 뭐, 궤변이지만.
「아무튼, 한번 이쪽에 들르세요. 포획이든 섬멸이든, 준비가 필요하니까」
『…알겠습니다』
바라던 바가 아님이 티나는 목소리를 남기고, 회선이 끊겼다.
「조금 아깝지 않겠습니까?」
리츠코씨는 아직 미련이 남은 것 같다.
「너무 위험해요. 살아 있는 사도를 도대체 어디서 키울 건데요.
지금까지 쓰러뜨린 사도들의 잔해도 부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서 잠이 안 오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능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사도의 코어를 집요하게 파괴하시는 겁니까?」
「제레 손에 넘기지 않는 게 더 중요하지만, 그런 이유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라며 리츠코씨가 수긍한다. 가능한 한 철저히 코어를 파괴하려는 내 방침에 이유가 있음을 알아본 것 같다.
코어를 입수해도 그것을 제레에 보내지 않으면 그만이다. 라고 리츠코씨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레가 그렇게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 리츠코씨를 내버려 두고, 또 하나의 문제에 착수하기 위해 수화기를 든다. 몰래 사도를 섬멸했다는 것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인물이, 지금 오키나와로 가고 있는 중이다.
****
「출격하지 않는다니, 무슨 소리야」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갔던 아스카는, 연락을 받자마자 주일유엔군 기지로 달려가 초음속 전략정찰기를 징발해 날아왔다.
그나저나, 지난 세기 말에 퇴역한 기체인 줄 알았는데, 세컨드 임팩트의 혼란기 와중에 복귀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사도가 AT필드를 치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으니까, N²폭뢰만으로 끝내려고」
「에바의 존재의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갈 거야」
발 밑의 영상을 가리키며 아스카가 언성을 높인다.
「1300미터 용암을 뚫고 사도에게 접근할 수단이 없어」
D형 장비를 만들어 뒀더라면. 이라며 리츠코씨가 계속 탄식한다.
「뭐야.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거야!?」
될 수 있으면, 이걸로 포기해준다면 기쁘겠는데.
「미사토! 저엉마알로 방법이 없어?」
「엑? 아니, 그게에… 없는 것도 아닐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아스카가 갑자기 몸을 잡고 흔들어대자 미사토씨가 도움을 구하는 시선을 보내온다. 그것을 놓칠 아스카가 아니다.
「있는 거구나!」
눈초리를 끌어올리고 따져오는 아스카에게, 포기할 기미는 티끌만치도 없었다.
역시, 아스카의 굶주림은 전장에서밖에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굳이 꼭 그래야겠니…?」
「당연하잖아. 뭘 위해서 에바가 있는 건데」
어쨌든, 작전행동의 자유를 보장받는 아스카니까, 아무 대책도 없이 출격해 버릴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쪽의 작전하에 행동하게 하는 편이 낫다.
「…에바 출격 준비를 시작하죠」
****
「아하♪ 아스카 피부 쭈글쭈글해져서 웃겨ー!」
「아 싫다고! 간지럽히지 말라고!」
이럴 때면, 미사토씨의 프렌들리함이 부럽다고 생각한다.
「그럼, 여기는ー?」
「아하하! 그런 데 만지지 마!」
「왜 좋잖아, 닳는 것도 아닌데」
노천탕의 개방감도 거들고 있겠지만, 미사토씨기에 아스카로부터 저렇게 걱정없는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겠지.
댓개비 울짱 너머로 아사마산이 보인다.
………
초호기의 AT필드에 붙잡혀 화구저까지 끌려나온 무방비사도는, 그 도중에 부화했다.
하지만 용암의 바다 속을 헤엄치는 것을 전제로 한 신체구조였기에, AT필드 스테이지 위에서는 역시나 무방비였다.
액체질소를 사용한 전투는 너무나 허무해서, 아스카가 N²폭뢰에 맡기고 오키나와에서 바캉스 하고 오는 게 나을 뻔 했어.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에바에 대한 집착이 줄어간다면 기쁘겠는데.
………
그 자태를 아낌없이 저녁놀에 비추며, 미사토씨 역시 아사마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카가 가슴팍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을 눈치채고, …보여주며 시원스러운 미소. 그 사이에 쓴웃음 같은 낌새를 느낀 것은 나 뿐인가.
「…알고 있지, 나에 대한 것도, 전부」
「뭐, 일이니까…. 서로 옛날 일은 신경쓰지 말자」
…미사토씨. 자신을 속이는 말은, 상대에게 닿지 않아요.
아니나다를까, 낙담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으로 아스카가 시선을 돌린다.
저번 세계에서처럼, 아스카에게 말을 걸어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같은 관계로는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이 분위기만이라도 어떻게 하기로 했다.
「…지금쯤, 신지는 뭘 하고 있을까요」
어깨까지 잠겨 있던 아스카가, 앉은채 발이 미끄러져 머리까지 탕 속에 풍덩 빠졌다.
「왜왜왜왜왜, 갑자기 신지 얘기가…」
「왜ー애 그러는 걸까ー?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거야」
사냥감의 발소리를 들은 올빼미의 얼굴이 돌아가듯이, 전신이 호기심 덩어리가 된 미사토씨가 미끼를 물었다.
에, 아, 아니…. 아스카의 대답은 말을 이루지 못한다.
「혹시 아스카…」
아줌마 냄새가 나는 자세로 입가를 가린 미사토씨가 빙긋이 웃었다.
「아, 아니거든!」
「뭐야, 뭘 쑥스러워하고 있어어♪」
이럴 때면, 미사토씨의 프렌들리함이 부럽다고 생각한다.
****
며칠 뒤, A-17이 발동될 것이라고 속단하고 주식이나 증권을 투매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시 크게 손해를 봤겠지만,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책임져 줄 수는 없다.
계속 つづく
2007.07.23 PUBLISHED2021.11.03 TRANSLATED
2021.11.27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シンジのシンジによるシンジのための補完 NC 第丗参話
발령 정보가 새어나간 것은 미사토가 화산연구소에서 아오바에게 걸었던 전화가 일반회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원작도 동일. 발령을 요청한 미사토의 전화는 일반회선이라 새어나갔고, 그것을 기각한 유이의 전화는 비밀회선이라 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식충들이 설레발을 쳤다가 쪽박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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