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동 내의 십자로에서 아스카와 마주쳤다.
「있어?」
「으으응, 이쪽엔 없었어」
오늘 아침, 식사시간에 레이가 식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스카에게 살펴보고 오라 했는데, 자기 방에도 없었다.
본부에 왔다는 것은 로그를 봐서 알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행적이 묘연하여 알 수 없다. 마기도 트레이스할 수 없어서 놀랐다.
전략자위대가 쳐들어오는 지금, 그것은 생명이 달린 문제였다.
「그럼, 난 이쪽을」
「응, 나는 이쪽」
각자의 침로를 그대로 유지하며 십자로를 교차하려던 순간.
≪ 신지군, 아스카. 미안해. 마감 시간이야. 슬슬 스테이크가 본부동에 들어올 거야. 빨리 에바에 타! ≫
문답무용의 전관방송은 미사토의 목소리. 신지의 억지에 이렇게 레이를 찾을 시간을 마련해준 것이다.
…
아스카와 얼굴을 마주보고, 케이지를 향해 내달렸다.
****
이호기는 지오프론트 내부에서, 초호기는 제3신동경시로 출격하여 각각 침공해온 전자부대와 대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제3신동경시에는 아직 전자부대가 들어오지 않았다. 본부동에서는 벌써 발령소까지 쳐들어갔는데.
그래서 초호기는 제3신동경시 주변의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박살냈다. 굳이 전자부대를 격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미사토의 지시. 후속부대의 진입을 끊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래서 외륜산 기슭을 따라, 남동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게이트를 짓밟고 있다.
의외로 이 배치는, 이렇게 될 줄 알았던 미사토의 안배일지도 몰라. 지오프론트에서는 전자부대를 상대로 아스카가 자비없이 날뛰고 있으니.
하지만, 뭔가 이상해.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오프론트를 함락시킬 생각이라면, 더 진출해야지…. 교외의 게이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시내로 진입하면 침입루트 확보는 문제 없을 텐데.
놈들이 전개해 오지 않는 이유가, 무언가….
제3신동경시 서남부까지 와서 아시노호에 도달했다. 케이블을 교체한 신지가 문득 내려다본 곳에는, 예전의 그 운하. …인데, 뭐야? 방금 수면에 비친 빛?
『신지, 위!!』
「뭐야?」
올려다보는 초호기의 시야 속. 플러그 스크린 한가운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광점. 단 하나라는 것은, 분명…
『N²!?』
「에엑!!」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 때 지오프론트 천정이 날아가고 없었지. 영호기의 자폭 때 날아간 건가 싶었는데, N²병기였다니.
『신지이!!』
「필드으! 전개!!」
하늘이 굴절될 정도의 AT필드를 펼치고, 케이블을 퍼지한 초호기가 뛰쳐나갔다.
제10사도전 때를 훨씬 뛰어넘은 스피드로, 낙하지점에 도착했다.
N²든 뭐든, 폭발물이란 기본적으로 위를 향해 폭염을 올리는 것. 완전히 밀봉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폭압의 바닥을 지탱하는 정도야 에바라면, 에바의 AT필드라면 손바닥 뒤집듯 쉽다.
『신지, 더 올지도 몰라. 팔레트 라이플』
고개를 끄덕여 응답한 신지가, 준비를 하려다 초호기가 빈손인 것을 깨닫는다.
어라? 하고 돌아보니, 팔레트 라이플이 운하에 반쯤 잠겨 있다. 아까 내달릴 때 정신이 없어 던져 버린 것이다.
『저건 못 쓰겠다. 새 것 보내달라고 하자』
응. 고개를 끄덕인 신지가 발령소로 회선을 열었다.
「미사토씨. 라이플 부탁드려요」
…
영상이 연결되지 않는다.
≪ …알았어, 신쨩. 미안하지만, 여기는 이제… ≫
발포음
≪ 끈질기게 구애하는 남자들을 처리해야 해서, 손을 뗄 수가 없을 거 같아… ≫
이번에는 폭발음
레이를 찾을 시간을 내준 만큼, 전자의 지오프론트 진공이 용이해진 것일까. 그 청구서를 미사토는 지금 지불하고 있겠지.
≪ …무기는 적당히 무기고 빌딩에 올려보낼게. 그쪽은 알아서 부탁해 ≫
그 사이, 신지도 멍때리고 있지 않고 가까운 전원 빌딩에서 새 케이블을 연결했다.
「…알겠어요. 몸 조심하세요」
≪ 신쨩도… ≫
저쪽에서 회선을 끊었다. …아니, 끊어진 것이다.
가장 가까운 9번 무기고 빌딩을 열었다. 수납된 라이플을 신지가 꺼냈다.
『신지, 온다』
이번에는 엄청난 수. 만약 저게 다 N²라면 아시노호가 아시노만이 되어버리겠네.
아까보다 낙하속도가 빠르다. ICBM이라면 마하 30을 넘을 테니 당연한 거지만.
신지가 라이플 제사를 개시한다. …하지만,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종말단계의 ICBM을 요격하는 건 지극히 어렵다고 렉쳐받은 적이 있었지. 1만 발의 탄체를 흩뿌리는 스웜로켓을 몇 기나 투입해야 한다던가.
끝까지 버티다, 신지가 라이플을 버린다.
「필드! 전개!!」
다행히 N²탄두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작은 폭발이라도 이렇게 연속해서 연달아 폭발하면 견디기 힘들다.
신지가 신음한다.
…
N² 왔고, ICBM 왔고, 다음은…. 설마, 이제 곧 에바 시리즈?
『신지, 15번 빌딩의 스나이퍼 라이플. 탄창도 갖고 외륜산을 올라가 보자』
「응」
스나이퍼 라이플을 짊어진 초호기가 교외로 향한다. 동쪽 산마루라면 아슬아슬하게 케이블이 닿을 거야.
위력 면에서는 포지트론 라이플을 사용하고 싶지만, 양전자는 델리케이트해서 마기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명중률이 불안하다.
…포지트론 스나이퍼 라이플은 애초에 전용 케이블이 여기까지 닿지 않을 테고.
N²나 ICBM의 공격은 이제 없을 거 같다. 그런데도 멀찍이 둘러싸듯이 전개한 전자부대는 진공을 시작할 기미가 없다. 그것 역시 에바 시리즈가 나온나는 증거 같은데…
침착하게 신지가 그들을 바라본다.
『어차피 대단한 위협은 되지 않잖아. 걱정되면 필드만 전개해 놓고 무시해 버려』
지금은 저것들이 문제가 아니다.
끄덕이면서도 불안을 떨칠 수 없는지, 신지가 자꾸 흘낏흘낏 뒤돌아보며 외륜산을 올라갔다.
외륜산 능선에서 얼굴을 내민 초호기의 시야에, 아홉 개의 빛나는 점이 보인다. 신지도 보았는지, 확대영상으로 전환했다. 햇빛을 반사해 둔탁하게 빛나는 검은 기체, 윙캐리어?
『…생각했던 대로네. 신지, 쏴서 떨어뜨려』
알았어. 라는 대답도 건성으로, 스나이퍼 라이플을 내린 초호기가 양각대를 설치한다.
바이저를 내리고, 선두의 윙캐리어가 십자선에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마기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지지부진하다.
…
짜증나지만, 여기서는 참자. 어쨌든 이 거리라면 사격이라기보다 포격이다. 문외한의 조준이 맞을 리가 없으니, 컴퓨터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겨우 십자선이 윙캐리어를 포착했다. 지체없이 발사된 포탄은, 선두의 놈을 빗나가 두번째 놈의 날개끝을 날렸다. …아무래도 바람에 휩쓸렸나.
하지만, 에바 같은 중량물을 달고 날아오는 윙캐리어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순간적으로 대열을 이탈해, 고도를 떨어뜨린다. 밀집해서 날아오는 덕에 맞힌 럭키 스트라이크였다.
황급히 윙캐리어들이 산개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기동을 할 수 있는 기체가 아니다. 느릿느릿 흩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봉오리가 개화하는 것을 고속촬영한 것 같다. …어째서 호위기가 없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초탄의 결과가 있기에 컴퓨터의 계산이 빨라졌다. 두 발째는 멋지게 선두의 기체를 직격했다.
이대로 터키 슛으로 태반을 쏴 떨어뜨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 얼러트.
「내부전원으로 전환?」
케이블이 끊긴 것 같다. 전자부대의 소행이구나. 이 새끼들이 봐줬더니.
『다음 조준을 향해 모조리 다 쏴 버려. 그리고는 케이블을 고쳐 달러 가자』
알았어. 라고 말을 끝냈을 때쯤, 탄창이 비었다. 소켓을 퍼지하면서 산비탈을 내려왔다.
…에바 시리즈.
그 때, 이미 쓰러뜨렸다고 생각했던 놈들은, 그 뒤 태연하게 날아다녔다. 회복력이 상당한 것인지, 애초에 손상 따위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그렇다면, 기동하기 전에 뭉개 버리는 게 제일.
방금 그걸로 수가 줄어들었다면, …좋겠는데.
시가지로 돌아온 초호기를 포격이 반겨준다. 1만 2000장의 특수장갑을 믿고 강행돌파한 초호기가 요령 좋게 전자부대를 뛰어넘었다.
전원 빌딩에 이르러 AT필드를 치면서 케이블을 연결한다.
돌아보고 올려다본 외륜산 상공에 에바 시리즈. …떨어뜨린 건 2기 뿐, 인가.
「뭐야…, 저거?」
『좀전에 캐리어가 싣고 온, 에바 시리즈야』
「에바?! 어째서?」
『전자가…, 즉 일본 정부가 쳐들어오고 있는 거야. 다른 에바 건조국도 적으로 돌아서도 이상할 게 없어』
역시 전자부대는 진공해 오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포위만 하는 그대로. …에바 시리즈는 여기를 전장으로 삼을 셈이구나.
「…도대체 왜?」
『신지, 그런 건 나중에. 지금은 여기를 지키는 것만 생각하자』
「그래도, 에바라는 건, 저거에도 역시, 사람이…, 아이가 타고 있는 거잖아? 나하고 동년배의…」
…
제3신동경시 상공에 도달한 에바 시리즈가 빙빙 고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마, 저건 더미 플러그야』
「진짜!?」
거짓말이다. 그런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 카오루를 예외로 치면, 10년간 4명밖에 모으지 못했던 칠드런. 이제 와서 9명이라니, 모으려고 해도 모이지 않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든다. 물론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만약 파일럿이 타고 있었다면, 그 정도 손상을 입고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 리거 없었는 걸.
「그런가…, 그렇겠네」
『그보다도, 7기나 되는 걸 초호기 혼자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아스카하고 연락해』
통신창을 열었지만 모래폭풍이 불면서 간신히 음성만 들린다. 엄빌리컬 케이블에 포함된 유선통신이 이 모양이라면 인프라를 꽤나 파괴했구나. 얼마나 우회해야 하는 거야…
≪ …뭐야. 이쪽도 지금 힘들어 ≫
「에바가 7기나 나타났어. 나 혼자서는 감당 못 해」
≪ 에바 시리즈!? 완성되어 있었던 거야? ≫
그런가봐. 라며 신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 미사토! 에바 시리즈가 7기 나타났다고 신지가 그래 ≫
발령소와의 통신이 부활한 모양이라, 신지도 연결한다.
≪ …미아~안. 여기서는 지금 지상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 ≫
이호기를 거쳐 들리는 미사토의 목소리는 의외로 팔팔하다. 아니, 미사토다운 건가….
≪ …좋아, 아스카는 지상으로 나가. 21번을 확보할 것 같으니까, 그쪽으로… ≫
≪ 괜찮아!? ≫
발령소와 연결된 통신창은 모래폭풍, 음성은 작달비였다.
아무래도, 지상에서의 직접통신은 무리인 것 같네. 의외로 지오프론트는 아직 레이저 회선이 살아있는 건지도 몰라.
≪ …놈들은, 마기를 갖고 싶어하는 거 같으니까, 그렇게 난폭하게 나오지는 않아. 괜찮아요♪… ≫
≪ 알았어. 조심해야 해. …신지, 지금 올라갈 테니까, 무리하면 안 돼! ≫
응. 신지가 끄덕이는 순간, 초호기를 에워싸듯이 에바 시리즈가 내려앉았다.
엄빌리컬 케이블을 전원빌딩에서 끌어낼 수 있는 만큼 끌어내고, 무기고 빌딩에서 팔레트 라이플과 스매시 호크를 꺼냈다.
날개를 접은 에바 시리즈가 히죽 비웃으며, 한 걸음을 내딛었다.
21번이라고 했으니, 선택 가능한 출현위치는 5개소. 미사토니까…,
『신지, 남쪽으로 강행돌파!』
「? …그렇구나!」
팔레트 라이플을 난사하며, 초호기가 뛰쳐나간다.
내 의도를 신지가 이해한 것 같다. 포위망을 벗어나자 몸을 돌려 견제의 탄환을 흩뿌리며 후퇴한다.
감쪽같이 에바 시리즈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향한 순간, 21번 사출구에서 이호기가 튀어나온다.
예상대로 록을 걸지 않은 이호기가 상공에서 소닉 글레이브를 휘두른다.
≪ 쨔~잔♪ ≫
영상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안 봐도 알겠네.
초호기가 보는 방향에서 가장 끝에 있던 1기의 정중선에 빛이 달린다. 예쁜 일직선.
좌우로 허물어지는 하얀 체구 너머에서, 이호기가 몸을 일으킨다.
≪ 에르슈테! ≫
이변을 깨달은 에바 시리즈가, 무방비하게 돌아본다. 그것을 내버려 둘 만큼 신지도 이제 호락호락하지 않다.
즉시 선두의 1체에게 달려들어, 스매시 호크로 머리를 내려찍었다.
『아직이야!』
「엣?」
『그 더미 플러그야. 절대 이 정도로는 멈추지 않을 거야』
그런가…. 라고 중얼거린 신지가, 스매시 호크를 끌어당기는 동작으로 에바 시리즈를 허물어뜨린다.
『머리를 베거나, 플러그를 뭉개야』
한 순간 주저한 신지가, 스매시 호크로 하얀 목을 내리찍었다. 위치적으로 플러그에는 스치지도 않겠지. 사람이 타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역시 어쩔 수 없을까.
절단되지 않는 경추를 끊기 위해, 스매시 호크의 물미에 발뒤꿈치를 실었다.
『떨어져!』
튀어오르듯 물러난 초호기를 스치고 내려친 칼날이, 누워있던 놈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 츠바~이트! ≫
머리를 반쯤 베어 버린 에바 시리즈를 걷어차 넘어뜨리고, 이호기가 다음 적을 덮친다.
…역시, 그것만으로 쓰러뜨렸다고 생각하고 있어….
『…신지, 아스카한테』
「아스카, 좀더 철저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뭐야, 지금 나한테 지시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닌데…. 라며 칼날을 피한 신지가 스매시 호크의 윗면으로 턱을 쳐올렸다. 옆에서 베어오는 놈으로부터 숨듯이, 뒤로 쓰러진 놈의 옆으로.
「이 놈들, …더미 플러그라는 그거인 거 같아」
같은 편을 공격할 뻔 해 당혹한 놈에게, 뒤로 쓰러진 놈을 걷어찬다.
≪ …그래? ≫
그 음성에, 불쾌감이 서려 있다.
≪ 그런 거 같아 ≫
이호기가 방금 전 얼굴을 뭉개놓은 놈을 그대로 끌고 와서, 연수에 소닉 글레이브를 휘두른다. 자루를 짧게 잡고, 비틀듯이 엔트리 플러그를 도려낸다.
새빨간…, 저게 더미 플러그?
≪ 이딴 거 한테! ≫
움켜쥔 플러그를, 이호기가 주저없이 뭉개 버렸다.
≪ 드리~트! ≫
…좀전의 불쾌감은, 더미 플러그에 대한 것이었나. 자신의 존재의의를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이, 지금 바로 눈 앞에 구현되어 있으니.
휘두른 칼을 백덤블링으로 피한 이호기가, 그 기세 그대로 아까 걷어찼던 놈을 짓밟았다.
≪ 다시 츠바이트 ≫
견제를 위해 한 손으로 소닉 블레이드를 붕붕 크게 휘두르고, 에바 시리즈가 멈칫한 틈을 타 케이블을 연결한다. 실수가 없다.
『신지이!』
내가 이호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지의 시선이 그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
…에바 시리즈로부터 눈을 떼고.
일어난 2체가 협격하듯이 칼을 휘둘러 왔다.
「우와악…!!」
한쪽은 스매시 호크로 걷어내고, 다른 쪽은 탄환을 들이쏘았다.
오른쪽은 좋아. 스매시 호크가 간신히 받아냈다.
하지만 왼쪽은, 저지력 따위 없는 팔레트 라이플로는, 벌집을 만들어도 칼의 기세는 멈출 수 없어!
라이플을 동강낸 칼날이, 초호기의 왼팔을 파고든다.
「끄윽…아아아악!」
신지가 왼손에 힘을 주어, 반쯤 끊긴 초호기의 근육으로 날을 억누른다.
스매시 호크를 반회전해 오른쪽 놈의 칼을 걸어, 왼쪽 에바 시리즈를 향해 밀어넣었다.
질질 끌려온 오른쪽 놈 쪽으로 발을 디디자, 칼날을 피하려는 왼쪽 놈의 움직임과 맞물려, 초호기의 왼손에서 칼날이 빠져나간다.
통증과 피가 새는 감각에 신지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스매시 호크를 오른쪽 놈의 목덜미에 내리꽂았다.
≪ 이걸로오! 라스트으~!! ≫
신지의 눈 앞에, 새빨간 손바닥이 튀어나왔다.
이호기가 2체를 겹쳐 손으로 한꺼번에 관통해 왔다. 손이 주먹을 쥔다.
그 손을 끌어당겨 빼며, 그 기세로 등 뒤로 팔을 뻗쳤다.
공기가 굴절될 정도의 AT필드로 받아낸 것은, 날아온 칼날!? 저거!!
『신지! 저거어!!』
칼날이, 순식간에 롱기누스의 창으로 변했다.
≪ 뭐야!? ≫
이호기의 AT필드를 꿰뚫은 창을, 스매시 호크를 덧댄 초호기의 왼팔이 간신히 막아낸다.
「끄윽끄으으으!」
≪ 시…신지… ≫
그나저나 이 자식….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야?
아픔으로 찡그린 눈썹 아래 좁은 시야로, 창이 날아든 방향을 응시했다.
투척 자세에서 몸을 일으킨 에바 시리즈가 1체. 징그러운 웃음을 띄우고 있다.
상처가 없어? …이렇게 완벽히 회복하는 거야? 이렇게 단시간에?
…아니, 아니야. 저쪽 위치에서 쓰러뜨린 놈 없었어…
그렇구나! 윙캐리어째로 떨어뜨린 놈! 기동한 놈이 있었어!!
≪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
초호기의 그늘에서 뛰쳐나가려던 이호기가, ≪ 꺄악! ≫ 하고 넘어진다.
「아스카아!?」
넘어진 이호기의 발목을, 에바 시리즈가 잡고 있다.
머리가 없는 것을 보니, 분명 신지가 처음으로 쓰러뜨렸던 놈.
「! 으윽으…」
달려가려던 신지가 날카로운 통증에 붙잡힌다. 바라본 오른팔을 물고 있는 에바 시리즈. 왼쪽 종아리도 물렸겠지. 같은 통증이 느껴지니 보나마나다.
≪ 끄으윽! 이 새끼…. 놓으라고 놔!! ≫
황급히 바라본 곳에선, 이호기가 엎드린 채 깔려 있다. 발목을 잡아 쓰러뜨린 놈 외에도 2기. 차서 찌그러뜨렸던 놈과 플러그를 뭉갰던 놈. 그리고 저 편에서, 아스카가 네 번째로 쓰러뜨렸던 놈이, 고슴도치가 된 얼굴로 일어섰다.
…저렇게까지 되어서도 회복하다니, 이것들…
…
그런가…, 완전히 동체를 반쪽을 낸 놈도 회복했다는 건, 이 정도의 손상 애초에 문제가 아니었던 거야.
이호기를 억누른 에바 시리즈들이 모여들어, 히죽. 비웃는다 머리가 없는 놈까지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아스카아!!」
불온한 분위기를 느끼고, 신지가 뛰쳐나간다. 하지만 2기의 에바 시리즈를 뿌리칠 만한 파워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마아아아아아아아!!!」
금방이라도 이호기를 뜯어먹으려던 에바 시리즈들이, 불현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느릿느릿, 저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초호기를 물고 있는 놈도 그랬기에, 초호기도 함께 서쪽을 보게 된다.
…
운하에, 부드러운 곡선의 하얀 언덕이 두 개 나타났다. 그 건너편, 외륜산 기슭에 또 하나의, 조금 날카로운 것이.
세 개의 언덕이 솟아오르더니, 홀연히 연결된다. 이거…? 이 라인은…?
…
지면도 수면도 무시하고 일어선 그것은…. …거대한, 에바보다도 거대한 여자의 육체. 그 상반신이었다.
일어난 기세로 허리를 숙인 그것이, 귀에 거슬리는 호흡음을 낸다.
…
신지의 양손이 얼굴을 감싼다. …하지만, 크게 열린 손가락 틈새는 제대로 시야를 가리지 못한다. 안 보는 게 더 두려운 걸까…. 아니, 나도 두렵다. …두려워.
서서히 면상을 들어올린, 그 얼굴은…
「아야나미… 」
껌껌한 동굴 그 자체인 안와에, 변명하듯이 존재하는 눈동자에 붉게 불이 들어온, 그것은 레이였다.
「 …레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뭐, 뭐야?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야!? 신지? 왜 그래!? ≫
밑에 깔려 있는 이호기에서는 상황을 알 수 없는가. 지금 인프라 상황으로는 초호기 시점 영상에 링크도 할 수 없을 테고.
신지의 비명 탓에 심상치 않은 사태가 일어났다고 추측은 했지만, 조금 긴장감이 모자란 느낌.
뭐, 덕분에 나도 냉정을 되찾긴 했지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지이! 진정 좀 해!』
≪바보신지, 뭐가 일어나고 있냐고 묻고 있잖아!≫
신지의 눈은, 레이의 붉은 눈동자에 빨려들어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지! 말 좀 들어!!』
≪야 임마! 언제까지 비명만 지르고 있을 거야!!≫
이럴 때, 말을 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이가 갈린다. …하지만, 하지만…
「아아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신지이!! 너한테는, 내가 있잖아!!!』
≪신지이!! 적당히 안 하면 때릴 거야! 주먹이야 주먹!≫
…
목에 걸린 비명을, 서서히 삼키면서, 신지의 시야가 닫힌다.
…
『…신지?』
≪…신지?≫
「…미안. 이제… 괜찮아」
날뛰는 심장을 누르면서 그래 봐야, 설득력 없어. …그래도 뭐어, 용케 견뎌냈구나.
호흡을 고른 신지가,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초호기가 올려다보는 눈앞에, 거대한 레이의 얼굴. 침착하게 살펴보니, 몹시도 상냥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다.
…
『…이거, 아야나미인가?』
『그건 모르지. 사도의 의태일지도 모르고』
≪잠깐만 신지! 진짜 괜찮아? 도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야!≫
질문을 받은 신지가 곤란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주위에 답이 떨어져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다시, 묘하게 흐뭇해하는 레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미안.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
≪너 바보야~!? 보이는 대로 말하면 되잖아 보이는 대로!≫
말은 쉽지….
…
「저기…, 아야나미? …아야나미야?」
쭈뼛쭈뼛 신지가 말을 걸자, 거대한 레이가 두세 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좀전까지 전혀 눈을 안 깜빡였네…?
「…이카리…군」
중얼거린 레이는, 그 크기와, 거짓말처럼 새하얀 것만 제외하면, 평소의 레이였다.
그건 그렇고, 원래부터 세상 일에 초탈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레이, 너. 아예 인간을 그만두려는 거야?
「아야나미? …어떻게 된 거야? …사도한테 납치라도 당한…거야?」
≪에엑!? 레이? 찾았어? 근데 사도한테 납치라니 뭔 소리야!≫
혼자 사정을 모르는 아스카가 언성을 높이지만, 눈으로 보는 우리라고 뭘 알 수 있고 그런 상황이 아니다.
「…나는, 이 때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
「도…구? 아야나미가? …무엇의?」
…이것을…. 이라며 왼손으로 누른 것은, 자신의 가슴팍.
「…생각대로 하기 위한」
그…. 목소리를 높이려던 신지가, 꾹 말을 삼켰다.
「무슨…, 아야나미.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어. 아야나미…」
나는 항상 이래…. 신지가 입 속에서 말을 죽였다. 통신 너머로 아우성치는 아스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
신지의 시선이 오른손에 떨어졌다. 천천히 주먹을 쥐는 것은, 카오루 때의 일을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었던 친구에 대해서…
『이제 됐어?』
응하는 것인지 항거하는 것인지, 신지의 시선이 주먹에서 돌아간다.
…
『포기해도 되는 거야? …카오루 때와 똑같아도, 되는 거야?』
힘이 들어가 버린 오른손을 황급히 펼치고,
「카오루군…」
무엇을 닦으려는 것인지, 왼손으로 미친 듯이 문지른다.
…
「나는, 너를…」
…
그리고 신지는, 확인하듯이 천천히,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래, 생각대로 할 수 있다면…」
올려다보이는 레이의 얼굴을, 마치 노려보듯이.
「아야나미, 집에 가자! 같이 미사토씨 집으로 돌아가자!」
…
「…그게, 이카리군의 부탁?」
끄덕. 레이에게서 눈을 피하지 않고 수긍했다.
…
「…사람의 모습을 취할 수는 있어」
그럼 됐네! 기운이 오른 신지를 거부하듯이, 살래살래 고개를 젓는다.
「…이 힘을 품은 채로는, 다툼을 불러올 것」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 걸 사용할 수 있다면, 그건 확실히 분쟁의 씨앗이 되겠지.
사도와의 생존경쟁이 아니라, 사람끼리의 욕망을 건 전쟁이 시작된다는 건가….
…
그런 싸움에 신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야나미가 도구라든가, 다툼이 일어난다든가, 그딴 거 난 하나도 이해 못 하겠어!」
굳게 쥐었던 주먹을 내밀고, …펼친다.
「하지만, 아야나미. 네가 또 쉽게 포기해 버리면, 나 또 때릴 거야」
레이가 자기 왼뺨을 눌렀다. 제16사도전 직후, 신지에게 얻어맞았을 때처럼.
「나 뿐만이 아니라, 아스카도 때릴 거야. 아스카는 분명히 주먹으로」
거대한 레이가, 그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주춤했다.
≪잠깐만 신지! 진짜 너 괜찮아? 뭘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거야!≫
…레이의 말, 아스카에게는 들리지 않나 보다. 뭐어, 어차피 설명할 도리가 없으니까 됐나.
하지만, 아스카의 말은 레이에게 들리는 듯. 살짝 찡그렸던 입꼬리가 서서히 풀려났다.
…
입을 연 레이가, 왠지 도로 입을 닫았다.
『…단 하나, 방법이 있어』
『『에엑??』』
얼라…? 방금….
『방금, 레이야?』
『에에엑?? …방금 그게, 아야나미?』
마음의 소리는 육체적 특징을 전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성별조차 분명하지 않지만.
『…그래. 직접 이야기하고 있어. 그녀에게 이야기해야 하니까…』
『즉, 나에 관한 거야?』
『무슨 소리야?』
거대한 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초호기 주위를 시선으로 훑었다.
갑자기 해방된 초호기가 고꾸라졌다.
살펴보니, 에바 시리즈들이 쓰러져 있다. 아무래도 레이가 한 것 같다.
『…당신은, 이 우주에서 태어난 넋이 아니야』
내미는 레이의 오른손. 이끌린 대로 신지가 초호기로 올라탔다.
그랬어? 라고 신지가 물어보지만, 내가 대답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당신은, 다른 우주에서 온 넋』
그랬군. 그러니까, 귀신이 아니었구나.
응? …그렇다고 해도, 귀신이 아니면 그럼 뭐야.
『…거기 그녀에게 이 힘을 넘기면, 그녀는 원래 우주로 돌아가. 이 힘을 가지고 가는 거야』
그렇구만.
『레이는 힘을 잃고, 보통 인간으로서 지내는 거야?』
초호기가 올라탄 오른손을 살며시 끌어당기며, 『…아마도』라며 끄덕인다.
…
『잠깐 있어 봐. 그건, 앙제가 없어진다는 소리야?』
『그…런 거 아닐까나』
『싫어! 계속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잖아!?』
분노를 어디에 퍼부을지 알 수가 없어서일까. 움켜쥔 주먹이 레버를 내리친다.
『신지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아. …그치만, 레이가 하는 얘기 들었지. 레이냐 나냐, 양자택일이야』
『그런…』
가능하다면 이대로, 신지의 마음을 지켜보고 있고 싶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이물질. 원래 있어서는 안 될 넋이라니까.
…그러니까, 신지가 레이를 선택했으면 한다. 이 세계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를 결의해 줬으면 한다.
…
비강이 뜨겁다.
굳게 닫은 눈꺼풀에서, 눈물이 넘쳐흘러 녹아간다.
부탁이야, 신지. 울지 마…. 네가 우니까 나까지 슬퍼지잖아. 결의가 흔들리잖아.
『앙제에게는, 돌아갈 장소가 있었구나…』
『…그런 거 같네』
…
신지가, 강하게 눈시울을 문지른다.
『카오루군이 그러더라.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래. 행복한 거래』
…
필사적으로 눈물을 막으려는 듯, 강하게 강하게 문지른다.
…
……
결국 포기한 신지가, 억지로 웃었다.
『그러니까, 앙제. …지금까지, 고마웠어』
『…신지』
…
결연히 신지가 올려다보니,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깐 레이는, 기도하듯이 고개를 쳐올렸다.
…
?
그 신체가, 작아지는 것 같은? …아니, 잘못 본 게 아니야. 순식간에 작아진 레이가, 초호기 바로 정면의 허공에 떠 있다.
쭈뼛쭈뼛 내민 초호기의 손바닥에 두둥실 착지. 신체는 아직 새하얀 그대로지만, 크기는 보통 인간 사이즈로 돌아온 것 같네.
뒤돌아보는 시선은, 초호기의 등 뒤를 향한다.
≪어라…? 어떻게 된 거야? 이 자식들?≫
이호기를 깔고 있던 에바 시리즈들도 쓰러졌다.
웅크려 앉은 레이가, 초호기의 손바닥에 양손을 갖다댄다. 그 몸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아니지, 그 인공물 같던 흰색이 빠져나가고, 원래의 빛깔을 찾아가는 거구나.
…
이제 와서야 레이가 망측한 꼴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신지가 고개를 돌렸다. …뭐어, 좀전까지의 새하얀 몸은 확실히 석고상 같아서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지.
시선을 돌린 곳에, 이호기. 힘없이 매달린 에바 시리즈들을 떨쳐내고 있다.
그 모습이, 복시로 보였다.
어라? 하고 내민 신지의 손이 잔상을 남긴다. …아니, 잔상이 아니야. 스며나오는 것처럼, 하얀 손이 떠오르기 시작한 거야. 신지의 손으로부터.
시야가 겹쳐 보인 건, 같은 것을 다른 거리로 보아서 그런 거…겠지.
놀라서 시선을 돌리는데, 왼손에서도, 다리에서도, 하얀 육체가 떠오르고 있다.
으와악. 하고 입을 벌린 모양인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 때는 얼굴이라도 나타나고 있었던 걸까.
…
복시가 되었던 시야에서, 거리가 먼 쪽의 영상이 사라진다.
…
아까에 비해, 플러그 내벽이 가깝다.
시야 가장자리에 나부끼는 긴 머리칼. 부자연스럽게 새하얗지만, 눈에 익은 길이다.
그리고, 등에 느껴지는 온기.
「…앙제?」
참 오랜만에, 신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기질한 마음의 소리가 아니고, 골전도로 울리는 낮은 목소리도 아니다. …믿을 수 없는 목소리. LCL을 통해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이호기에 같이 탔을 때 이래로 처음이네. 그래도 신지의 육성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야 가장자리에, 걸어오는 이호기의 모습. 신지에게 보이지 않게 통신 볼륨을 줄였다. 지금은 방해받고 싶지 않아.
「…앙제, 구나?」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 …지금까지 고마웠어」
머리를 흔든다.
지금이라면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담아 이런저런 말을 해줄 수 있을 텐데, 목이 메여 말이 안 나온다.
아니다. 무슨 말을 해 봤자 어차피 말은 말. 전달에 한계가 있다.
그러니까…,
돌아보자마자 꼬옥 신지를 안아 주었다.
긴 머리칼이 방해가 되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겠지. …그걸로 됐다.
휘저어진 LCL에 이끌려, 눈물이 녹아흘렀다.
신지의 온기 때문에 눈물샘이 느슨해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 내가 이딴 일 정도로….
…
어라?
왜 나 이런 고집쟁이로 돌아온 거야? 내 마음인데, 내 기분에 솔직하지 않아. 모처럼 자유로운 육체를 되찾았는데, 이렇게 고집 센 마음은 의미가 없잖아.
…설마, 이 신체 탓인가? 아니면 육체를 손에 넣어서 그런가?
아니지, 그런 게 아니야. 내 마음이 신지로부터 떨어졌으니까. 분명 그동안, 신지의 약함이나, 상냥함이나, 내향성 같은 것들에, …신지의 마음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던 거야.
그래서, 이렇게 육체를 얻은 지금, 내 마음은 옛날의 고집쟁이였던 나로 돌아가고 있다.
안 돼! 아스카. 솔직해져야지.
지금의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면, 다음 한 걸음을 나설 수 없는 걸.
무엇보다 나는, 지금의 내가 약하다는 걸 알잖아. 울어도 당연하다는 걸 알잖아. …아니, 울 수 있을 정도로 굳세다고, 자신을 믿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 눈물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외로운 나의 기분. 인정해라, 내 마음아.
…
뺨을 갖다대어, 서로의 눈물이 섞인다.
이 정도 거리를 남자와 공유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실감하게 된다. 여자라는 것을 거부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여러가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
이대로 여기 남고 싶다. 그런 마음을 딛고, 더 강하게 신지를 끌어안았다.
이제야 겨우, 이제야 겨우 신지가 쭈뼛쭈뼛 내 등에 손을 올린다. 그 감촉을 충분히 느끼고, …그리고 신지를 뚫고 지나갔다.
지구가 보인다.
태양계가 보인다.
은하계가, 이 우주가 보인다.
그리고, 이 우주의 밖. 세계의 형태가 보였다.
그런가, 우주라는 게 많이 있구나.
옹기종기 모여서 만개한 것이…. 마치 꽃다발이네.
그 가운데, 말하자면 시들어 버린 꽃이 있다. …그것이 내 세계라고, 왠지 알 수 있었다.
분명 거기에는, 그 새카만 하늘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거기가, 내가 있을 세계니까.
2007.09.05 PUBLISHED
2021.11.15 TRANSLATED
2021.11.29 TRANSLATION REVISED
원본 アスカのアスカによるアスカのための補完 最終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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